10년 후엔 우리나라의 지방 사투리들도 다 사라지지 않을까?
-『 10년 후 세상 』에서 -
중앙일보 중앙SUNDAY 미래탐사팀 ·최재천 지음
건강과 웰빙
장수는 인간의 대표적 욕망 중 하나다. 2000여 년 전 중국 진시황이 신하들을 보내 불로초를 찾게 한 것도,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영생永生을 잃어버린 것도 모두 오래 살고픈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인간의 수명은 근현대에 들어 영양과 위생 상태가 좋아지면서 크게 늘어났다. 나이 60이면 인생을 한바퀴 돌았다며 환갑還甲이라 표현하고, 인생 70은 예부터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며 '고희古稀'라 했지만, 어느새 주변에서 100세 인생을 만나는 게 어렵지 않게 됐다. 현대 생명과학자들은 인간의 최대 수명을 120년으로 계산한다. 병이 없이 건강하게 산다 하더라도 세월이 가면 무릎관절이 닳고, 눈과 귀가 멀어지는 현상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은 노화老化의 원인까지 규명해냈다. 세포가 재생되지 않고 죽어가는 즉, 노화하는 이유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염색체 끝에 붙어 있는 '텔로미어Telomere'란 물질이 조금씩 닳기 때문이란다. 문제의 원인을 알았으니 이젠 해결법을 찾아낼 차례다. 그 방법을 찾아낸다면 인간은 120년이란 최대 수명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구촌 어느 구석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건강과 영생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이 밤을 지새우고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런 과학기술의 혜택을 받으려면 앞으로도 상당한 세월이 흘러야 한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뇌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면, 몸은 썩어 없어지더라도, 기억과 생각만은 데이터화해 저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현세 속의 영혼 영생이다.
좀 더 현실적인 과학자들은 영원한 삶 대신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과학기술에 몰두하고 있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찾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두발 없는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는 장딴지 아래를 '고성능 기계'로 대체해 육상트랙을 돌았다. 이제는 팔다리가 아니라 심장과 간 등 장기를 인공으로 대체하는 기술이 궤도에 오르고 있다. 인공심장은 이미 구문舊聞이다. 인공망막, 인공신장, 인공췌장, 인공간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늙거나 병든 세포를 대신할 수 있는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에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다. 세계 최초의 줄기세포 치료제 '하티셀그램AMI HeartiCellgram-AMI'는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작품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는다. 인간의 예측은 선형적이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발전의 속도를 계산해 그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찾는다. 하지만 여러 분야에서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단순 선형이 아니다. 반도체의 잡적도가 18개월마다 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처럼 기하급수적인 곡선 모양이다. 때로는 과거와 전혀 다른 대체 기술이 나오면서 기술 발전의 그래프가 점프하기도 한다. 21세기 인류의 생명과학기술은 어디쯤 와 있을까. 미국의 미래학자 겸 발명가 레이 커즈와일의 말처럼 이미 도약점에 도달해 특이점을 향해 치솟고 있는 것은 아닐까.
뇌와 기계 연결되는 신경혁명 기계 속 정보도 뇌에 옮긴다
2025년 교실 안 풍경, 헤드셋을 쓴 학생들이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다. 개중 몇 명은 몸이 안 좋아 집에서 수업을 듣는다. 그러나 선생님의 교탁 위 모니터에는 헤드셋으로 측정된 모든 학생의 뇌파를 분석해 얻은 '집중도 레벨'이 표시돼 있다. 지금 이 순간 누가 졸고 있는지, 누가 딴 생각을 하는지 학생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장치가 선생님의 수업 통제를 돕는다.
공상과학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 풍경은 이미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하다. 심지어 학생용 의자가 몸을 비비 꼬고 안절부절못하는 학생의 동작을 정교하게 모니터링해 '수업 몰입도'를 측정할 수 도 있다.(이 기술은 영화 시사회장의 의자에도 적용돼 '영화 몰입도' 측정을 통한 예상 관객수 계산에 활용될 수 있다).
이런 세상을 가능케 해주는 기술은 바로 뇌공학Brain Engineering이다. 이는 뇌신경계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공학적인 장치, 제품,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기술을 말한다.
인류 사회는 모름지기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인간 사고와 행동의 중추'인 뇌에 대한 이해 없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뇌공학 기술이 이끌 미래 사회를 '신경사회Neurosociety'라고 하며, 이를 이끌 '신경혁명NeuroRevolution의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뇌공학이다.
줄기세포 치료 난치병 잡는 핵무기
사람이 병에 걸리거나 늙는 것은 결국 세포 때문이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최근 인간의 배아줄기세포로 만든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을 처음으로 승인했다. 국내에도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 연구가 곧 시작된다는 의미다. 줄기세포는 우리 몸의 모든 세포를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원시세포다. 신체의 어떤 조직이나 기관에 질병이 생겼을 때, 줄기세포로 만든 같은 종류의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줘 병든 세포를 대체할 수 있다. 약이나 수술과 같은 수동적인 치료의 개념을 뒤집는 획기적인 치료법이라 할 만하다. 줄기세포가 과연 21세기 질병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까?
67세 여성인 정희순 씨는 오랫동안 파킨슨병이로 고생해왔다. 초기엔 약을 복용하며 그럭저럭 생활해왔지만, 최근엔 약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약을 복용하면 팔다리가 꼬이는 이상異常 운동장애 등 부작용도 생겼다. 뇌심부자극수술을 하려 했지만 이 또한 증상을 조금 완화시킬 뿐 병의 근본적인 진행을 막지는 못한다. 2021년이라면 정희순 씨는 어떤 치료를 받을까. 아마 줄기세포에서 만든 도파민 신경세포의 이식을 바탕으로 다른 치료법을 병행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상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파킨슨병에 대한 세포이식 치료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파키슨병은 도파민이란 세포가 소실되면서 생기는 병이다. 그간 낙태아의 신경세포를 이용해 전 세계에서 400여 건의 임상이 시도된 바 있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10년 이상 병이 진행되지 않고 증상이 회복된 사례도 있다. 이는 제대로 된 줄기세포로부터 순수 도파민 세포를 분화시키고, 이식수술 및 검사 방법만 잘 개발한다면 얼마든지 세포 치료가 가능함을 암시한다. 현재의 줄기세포 연구 속도로 보면 몇 년 안에 이식 가능한 순수 도파민 세포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면 임상시험을 거쳐 5~10년이 지나면 파킨슨병 치료제가 탄생할 수 있다.
초장수 시대의 빛과 그늘
슈퍼 센터내리언, 나이 110세를 넘어 한 세기 이상 사는 '초超장수 노인'을 뜻한다. 장수를 누리는 사람들은 타고난 건강 유전자에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절제된 습관을 유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조건은 심장, 간, 폐 등 신체 장기들의 '유효기간'을 늘려준다.
하지만 암 같은 질병이나 사고, 노화 때문에 장기가 손상된 사람도 슈퍼 센터내리언이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인공장기 개발을 위한 연구가 활발해서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박상철 소장은 "인공장기 발달은 장수 인구와 평균수명을 늘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기이식 분야의 발달이 가져다줄 1순위 혜택은 수명 연장이다. 신체 일부가 심각하게 손상된 환자에게 대체 장기를 이식하면 생존기간을 수십 년 늘릴 수 있다. 1992년 국내 처음으로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뒤 생존해 있는 69세의 조영희 씨가 산증인이다. 장기이식 기술 발전의 혜택은 신체 기능이 퇴화된 노인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대형 사고나 난치병으로 생명이 위독한 젊은 환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췌장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얼마 전에 사망한 전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만약 인공췌장과 간을 이식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장기이식 활성화로 고령인구의 기대수명이 늘면 국가경제에도 간접적인 기여가 예상된다. 한국골든에이지포럼 김일순 회장은 "고령자 용품, 시설, 복지 등 실버산업이 발달해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장기이식 기술 발전에 따른 생명연장은 마냥 '축복'이기만 할까 전문가들은 복지 분야와 인구 구조, 생명윤리에 휘몰아칠 부작용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 선임연구원은 "수명이 늘어나 노인 인구가 늘면 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국민연금 등 각종 사회보험의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구인회(의료윤리학) 교수는 "건강보험 등을 통해 고비용의 장기이식 수술비용과 관리비용을 사회가 떠안을 경우 경제활동을 할 젊은 층의 부담이 증가해 세대 간 이해가 충돌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생명경시 현상에 대한 우려도 크다. 구인회 교수는 "언제든 신체 일부를 교체해 생명연장이 가능하다면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기보다 생명을 경시하고, 인간을 대상화, 수단화하는 풍조가 확산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가족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 장기이식을 받은 부모의 기대수명은 점차 증가하는데 자식이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 장기간 홀로 지내는 독거노인이 증가한다. 결국 생활고와 고독에 지쳐 노인 자살이 늘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면'노노老老 케어'라는 새로운 가족문화도 예상된다. 100세 고령 노인이 130세 초고령 부모를 부양하는 생활상이다. 결국 노인부양 문제는 정부나 공동체의 부담을 늘려 국가 전체의 활력을 갉아먹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출산을 더욱 기피하게 돼 인구 구조가 역삼각형이 될 가능성도 크다. 박상철 소장은 "고령화 사회는 필연적으로 출산율 저하 문제를 안고 있다"며 "평균수명이 길어질수록 노후에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녀 출산을 기피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생명윤리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첫째, 법적·사회적으로 합의점을 찾지 못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받은 환자가 늘 수 있다. 둘째, 장기이식을 받았지만 추가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 상태가 됐을 때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해야 할지도 고민거리다. 셋째, 치매처럼 고령에서 발생하는 뇌질환 '쓰나미'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치매 발병률은 65세 이상에서 10퍼센트지만 85세 이상에서는 40퍼센트나 된다.
인공장기 개발과 상용화 과정에도 복병은 숨어 있다. 울산대 의대 구영모 교수(의료윤리학과)는 "임상시험 과정에서 환자들이 겪게 될 고통과 위험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이식 기술 발전으로 발생할 문제를 최소화하려면 제도 보완과 함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일순 회장은 "지금도 노인들은 길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고 수명만 연장되면 본인도 행복하지 않고 국가도 큰 짐을 떠안게 된다"고 밝혔다. 박상철 소장은 "수명이 다한 자동차의 엔진만 갈아 끼운다고 다시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엔진을 움직일 연료가 필요하다. 직장 정년을 늘리고 정부는 복지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과 사회
21세기들어 한국 여성들의 사회 진출 속도는 눈부실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여성선발을 10퍼센트 선에서 제한하는 군인, 경찰 등 일부 직업을 제외하고는 모든 분야에서 '우먼파워'가 커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남녀 역학구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직장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여성의 주도권이 강해졌다. 흔히 '연상연하' 커플이라 불리던 연상녀-연하남의 연애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재혼은 중년 남성만의 것이라는 생각도 바뀌었다.
노처녀의 결혼 미루기는 '공주병'이 아니라 '선택'으로 인정받는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일반화되고, 남녀의 지위가 비슷해지면서 '나보다 잘난 짝'을 찾는 여성들의 결혼이 어려워진 탓도 있다. 오히려 자신보다 못한 남자를 만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됐다.
10년 후 세사에선 남녀 결혼의 개념도 변할 것 같다. 동거와 결혼의 중간 단계인 '파트너혼婚'을 선택할 커플이 적지 않다. 파트너혼에는 수많은 하객도, 호화스런 예식장도 필요 없다. 두 사람의 마음만이 필요할 뿐이다. 갈라설 때도 쿨하게 헤어진다. 법원에 파트너혼 계약서를 제출하면 성립되고, 둘 중 어느 한쪽이 파기하면 혼인 관계가 큰 부담 없이 끝나는 식이다.
가정의 보금자리인 주택도 변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주거공간인 아파트는 더 똑똑해지고 있다. 휴대전화로 가정의 각종 기기를 제어할 수도 있고, 치안이나 침입자 관리도 자동으로 하게 된다.
현재 미국 등에서 입국심사 때 적용하는 홍체인식 같은 기술이 모든 아파트에 보급된다.RFID Radio Frequency Identfication 등 첨단 태그로 인증하던 것이 생체인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의 발달을 악용한 '볼 수 없는 범죄'도 늘어난다. 첨단범죄와 과학수사는 '창과 방패'처럼 진화해나갈 것이다.
아파트값이 너무 비싸던 시대에 유행하던 '돈을 깔고 잔다'는 말은 사라질 전망이다. 아파트는 이제 투자 대상이 아니라 주거 공간으로 개념이 변하고 있다. 10년 후엔 주택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될 것이다.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사람들은 교통이 편리한 도심공간에 자리한 초고층 아파트를 선호할 것이다. 소위 '서비스트레지던스Servicedk residence'라 불리는 공간은 주거 변화의 신호탄이될 것이다. 붙박이 주거가 주는 불안정성보다는 공간을 빌려서 쓰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도시인의 주거 선호가 강화될 전망이다.
미래의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 확실한 답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왜 결혼은 안 하느냐?", "아직도 혼자 사느냐?". "왜 헤어졌느냐?" 같은 거침없는 질문은 사라질 게 확실하다. 2011년 현재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23퍼센트 수준이다. 1985년 6.9퍼센트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 속도다. 독일, 미국 등 선진국은 이미 30퍼센트를 돌파했다.
아파트의 변화 늘어가는 싱글족 작지만 고급스럽게 진화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주택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아파트이고, 국민이 원하는 주택 유형도 아파트가 압도적이다. 물론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빈익빈 부익부'의 주범으로 아파트를 지목하기도 한다. 재테크 수단이라는 혐의다. 이웃공동체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로, 도시의 잿빛 살풍경殺風景을 낳는 주범이라는 이유로 공격받는다. 최근 아파트 전성시대의 몰락을 예고하거나 기대하는 담론이 부쩍 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아파트를 대신할 대안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어 보인다. 향후 10년 안에는 더더욱 그렇다.
아파트 불패론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우선 인구학적 요인이다. 한국 사회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일련의 '인구 쇼크', 곧 인구 감소, 고령화, 저출산은 주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집은 사는 곳 아닌 머무는 곳
주목할 대목은 1인 가구의 급증으로 2030년이면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절반에 육박할 전망이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주로 만혼晩婚과 혼인율 하락, 이혼율 상승, 독거노인 증가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구조나 제도의 힘이 약화되는 대신, 모든 게 개인의 결정이자 책임으로 바뀌는 이른바 '개인화 시대' 역시 1인 가구를 확산시키는 문명사적 배경이다. 나 홀로 가구는 성, 세대, 계급, 학력 등을 초월하는 보편적 현상이다. 다인多人, 혈연 가구에비해 단독單獨, 무연無緣 가구는 주택 구매와 소유 열망 둘 다 낮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1인 가구는 자가自家가 아닌 차가借家를 선택할 공산이 크다. 2년 전부터 정부가 이른바 '도시형 생활주택'과 '준주택' 공급에 부심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1인 가구 시대에 대처하는 미래의 주택정책은 무엇일까.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의 대량공급 위주로 펼쳐질 것이다. 혼자 살면서 단독주택에 살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시원과 같은 준주택, 다세대주택이나 원룸형 혹은 기숙사형, 도시형 생활주택이 정답은 아니다. 미래 사회의 신종 트랜드인 '싱글족 문화'에 부합하는 것은 소형, 고급, 임대 아파트일 것이다.
지식 기반 정보화 사회의 진전 역시 아파트 주거문화를 촉진할 전망이다. 미래 사회에서 부가가치 생산의 공간적 원천은 농촌도 아니고 교외도 아닌 도심이다. 이른바 창조도시 혹은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르네상스사업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한 이유다. 직장고 주거의 분리는 산업사회의 유산일 뿐, 미래에는 직장과 주거의 일치 내지 직장과 주거의 근접 시대가 다시 열릴 것이다. 일과 가정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도심은 창의와 문화와 감성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이럴 경우 가장 효율적인 도심 공간 소비 방식은 당연히 고밀화와 고층화다. 그러므로 아파트는 지식 정보화가 진전될수록 더 인기를 끌 주거형태다.
세계화 또한 가세할 것이다. 도심 속 고급아파트는 세계화의 주역 '수퍼리치Super ricrh'에게 안성맞춤이다. '글로벌 부르주아 보헤미안'의 입장에선 보안이나 유동성, 환금성 측면에서 도심 아파트가 교외 전원주택보다 낫기 때문이다. 이미 뉴욕, 런던, 도쿄 등 이른바 글로벌 도시에서 나타나는 공통 현상이다. 이주노동자 역시 붙박이 주거보다는 아파트가 편한 것이다. 이처럼 신유목민이 활약하는 세계화 시대의 주택은 전반적으로 '사는 곳'에서'머무르는 공간'으로 바뀔 것이며, 소위 '서비스드 레지던스'가 그 시작일 게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각별하고도 독특한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와 달리 사회 변동에는 일종의 관성의 법칠이 작용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중산층 진입의 징표로 자리 잡았다. 특히 단지형 혹은 빗장Gated 아파트, 브랜드 아파트는 사회적 신분을 구별짓고 있다. 매우 한국적인 현상이다. 흥미롭게도 아파트는 최상류층이 선호하는 주거공간이기도 하다. 산업화 시대에 한국의 급작스럽게 부자가 된 신흥 부유층을 의미하는 '누보 리치Nouveau rich'들은 최고급, 첨단 아파트를 통해 부와 신분을 과시하는 한편 사유화된 초고층 전망을 통해 세상을 시각적으로 지배한다. 게다가 한국에는 서구와 달리 중상류층의 집단적 교외화를 부추길 만한 인종 문제도 거의 없다.
일반 서민들 또한 아파트를 주거생활의 근대화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파트가 제공하는 기능적 편리성 때문에도 그러하지만 아파트가 나만의 혹은 우리 가족만의 프라이버시 공간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모든 계층의 선호 속에 주거패턴의 '수직적' 분화를 더 심화시킬 전망이다. 서구 사회가 대체로 계급 간 수평적 공간 분화를 보여준다면, 우리나라에서 는 같은 도시나 동네 안에서 빈곤의 등고선이 점점 더 뚜렷해지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다.
아파트 속으로 들어오는 자연
아파트의 자체 진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은 전형적으로 공급자 주도 시장이다. 수요자가 스스로 집을 짓지 않는다. 그래서 미래 수요자들의 요구와 취향에 맞추려는 관련 업체의 경쟁도 치열하다. 1인 가구의 급증에 대응해 이웃공동체 형성을 위한 노력이 각종 커뮤니티 시설의 확충으로 이어질 것이다. 친환경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은 교외나 전원이나 농촌으로 떠나는 대신, 아파트 속으로 자연을 끌어올 것이다. 녹지를 확대하든, 실내 공기를 청정화하든 방법은 무수하게 많아질 것이다. 아파트의 토착화도 마찬가지인데, '한옥 아파트'라는 개념은 사실 아파트에 대한 한옥의 투항이라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요컨대 현대 그런 것처럼 향후 10년 뒤에도 보다 많은 한국인이 거주하게 될 공간은 위치나 크기, 높이, 가격, 소유 혹은 임대 여부에 상관없이 아파트 형태가 압도적일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근대건축의 대표적 격언을 남겼다. 무릇 건축은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기술공학적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성냥갑 대한민국'의 현실과 미래는 우리 사회의 주어진 조건과 기능성 수요를 나름대로 반영한 결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목적 합리성과 기능주의적 편익이 주거문화와 주택정책을 세울 때 최선의 기준은 아니다.
그래서 10년 뒤가 아니라 30년 혹은 100년 앞을 내다보면 아파트 공화국의 무한연장을 체념할 수만은 없다. 아파트 위주의 주택건설이 훗날 우리 시대를 대표할 만한 한국적 주택문화 유산의 멸실로 귀결될 것 같은 걱정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아파트에 의한 주거공간의 수직적 양극화가 궁극적으로 '분단도시Divided city'로 귀착될 위험성 때문이다. 말하자면 반촌班村과 민촌民村의 부활이다.
사라지는 결혼적령기
K는 올해 28세의 여성이다.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은 두 살 연하의 대학생이다. 군대에 갔다 오고 1년간 외국 어학연수를 한 후 복학해서 졸업반이다. 아직 학생 신분인 남자친구의 처지도 그렇지만 K도 당분간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 부모님도 아직 느긋하신 눈치다. 친구들도 대부분 미혼으로 만나서 얘기해보면 결혼적령기가 많이 늦춰지거나 아예 없어진 것 같다. "서른 전에 결혼해야 한다"거나 "서른을 넘기면 노처녀다"라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결혼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내가 살면서 하는 많은 일 가운데 하낟. 우선은 내 분야에서 확실한 커리어를 쌓고 인정받고 싶다. 그렇다고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아마 10년 이내에 결혼할 것 같지만 현재의 남자친구와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B는 올해 33세의 여성이다. 1년 전에 결혼했지만 혼인신고는 아직 하지 않았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몇 년 살다가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2년 연애했으니 교제기간이 짧지는 않았다. 그러나 연애와 결혼은 그 부피와 밀도가 다르다. 차원이 다른 것이다. 같은 이유로 임신도 미루고 있다. 좀 더 확신이 생기면 그때 아이도 갖고 혼인신고도 할 계획이다. 물론 남편도 동의했다. 그러나 시댁 부모님, 친정 부모님은 이 사실을 모른다.
L은 31세의 남성으로 지난달에 결혼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을 했다. 신랑 신부 입장도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했다. 성혼서약 대신에 신랑, 신부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부부십계명을 낭송했다.또 신랑은 장인, 장모에게 드리는 감사 편지를, 신부는 시부모님에게 드리는 감사 편지를 낭독했다. 신랑, 신부 친구들의 축가와 축하인사도 이어졌다. 예전에는 양가 부모가 혼주로서 결혼식을 치렀다면 이제는 신랑 신부 당사자가 결혼식의 주체가 된 것이다.
H는 올해 35세의 여성으로 동갑의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다.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아이는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면 가장 부러운 것이 아이다. 우리 사회는 결혼 친화적이지 않다. 결혼하면 여성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임신, 출산, 육아, 가사의 전부 혹은 대부분을 여성이 부담해야 한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결혼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결혼을 원한다.
S는 지금의 남자친구를 사랑하고 있고 그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 아무래도 내년쯤에는 결혼하게 될 것 같다.
예전과 비교해 결혼에 대한 요즘 세대의 태도는 매우 자기중심적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행복이 우선한다.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도, 언제 할 것인지도 남의 눈치나 사회적인 기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일정을 바탕으로 결정한다.
결혼식도 마찬가지다. 갈수록 결혼식의 주도권은 양가 부모에서 신랑, 신부, 즉 혼인 당사자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혼인신고 역시 결혼을 하면 무조건 하기보다 일정 기간 유예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혼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도 많이 사라졌다.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이혼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고 큰 퍼포먼스다. 그러나 자기 자신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인생의 한 부분이 결혼에서도 당연히 내가 주인공이 돼야 한다. 지금 세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2모작, 3모작… 여성도 다모작 필수
고도의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면 지금 같은 남녀의 차이는 희미해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 공상고학 영화 <공각기동대>가 묘사하는 서지 2029년은 누구나 육체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술을 이용하는 네트워크 사회다. 영화에선 필요에 따라 육체를 복제하거나 주요 장기들을 기계로 대체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 나아가 인간의 고유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세계에서 남녀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필요에 의해 신체를 재구성할 수 있으므로 구태여 즉정한 성의 정체성과 역할을 고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이 정말로 남녀의 경계와 차이를 사라지게 할 것인가. 이에 답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적어도 초기에는 기술 사용 비용이나 접근권에 있어 계층이나 성별, 인종 및 민족 간 격차가 발생할 것이고, 이는 새로운 불평등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위력만큼이나 기술이 초래할 사회적 파장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열린 토론의 구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남녀의차이는 새로운 방식과 형태가 유지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하나로 분류되고 있다. 이는 생명 재생산 기술의 발달과는 무관하게 결혼과 출산을 더 이상 삶의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지 않는 젊은 세대가 늘어감을 의미한다. 앞으로도 혼인연령은 더욱 늦어지고 혼인율 또한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바꿔 말해 여성이 과거처럼 결혼과 가족생활에만 전력을 다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는 의사소통 방식의 혁명과도 무관하지 않다.
현대인들은 이동하면서도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는 열린 네트워크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특별한 유대감을 공유하고 확인해야 하는 순간조차 '저곳'에 있는 타인과의 네트워크를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소통할 수 있지만, 동시에 누구와도 순수한 관계에 몰입하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을 결험하게 된다.
이렇게 느슨하고 임의적인 관계가 확산되는 정보 지배 사회에서는 결혼이 더 이상 영속적인 관계의 상징이 되기 어렵다. 더욱이 도처에서 제공되는 상품화된 성적 자극과 욕망의 기회 구조는 과거의 혼인 방식과는 다른 성적 긴장과 친밀성의 추구를 확신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재생산 기술의 발달로 미래 사회에서는 '부모됨'의 의미마저 새로운 방식을 통해 변화할 것이다. 물론 스티븐 스필브그가 묘사한 것과 같이 '부모됨'의 자격과 역할마저 '아이'를 대체할 로봇이 구매를 통해 쉽사리 시장화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다만 지금까지 자녀 출산과 양육이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좌우되는 현실에서 모든 여성이 획일적으로 자녀 보살핌의 전담자이자 가족의 감정관리사로 살아가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도 100세 장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50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3.5세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38.2퍼센트에 달해 세계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세계 최저 출산에 초고령국가가 되면 평생 자신의 부양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판이다.
이런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을 넘어 실질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젊은 여성들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직장생활과 경력관리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생각할 것이다. 출산과 수유기간마저 최소화할 만큼 스스로의 시장 지위는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여성은 결혼이나 출산보다는 직업주기에 따라 인생 2모작, 3모작, 필요하다면 4모작까지 대비해야 하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의 힘이 보태진 미래 사회에서 여성의 직업활동을 방해하는 걸림돌은 대부분 제거될 전망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으로 들어온 여성의 퇴로 역시 닫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일부 여성은 일터에서 '새로운 전사'로 재탄생하는 대신 과거와 같은 여성의 삶을 찾을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여성들은 길어진 수명만큼이나 의지와 선택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문화와 교육
과학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미래엔 사회와 문화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헤아리는 일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은 과학자들의 연구과 정부의 산업, 과학 정책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가 대학과 기업 등에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할 때 소위 '로드맵Road map'이란 걸 만든다. 좀 더 쉽게 얘기하면 실천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연구개발 자금을 집행할 땐 최장 10년을, 지식경제부는 5년의 연구 기한을 정한다.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받는 연구기관은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평균 향후 10년간의 구체적 연구계획과 목표를 세워야 한다. 매 5년마다 과학기술 예측보고서를 발간하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기술예측센터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로 이 같은 정부의 투자 로드맵을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와 문화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예측해보라고 할 땐 얘기가 달라진다. 사회, 문화는 다양한 변수가 뒤섞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하고 발전해나가기 때문이다. 물론 힌트는 있다. 바로 '도구', 즉 과학기술이다. 캐나다의 미래학자 겸 미디어철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우리가 도구를 만들어내지만 그 후엔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는 명언을 남겼다. 과학기술을 만들어내는 건 인간이지만 그 덕분에 혹은 그 때문에 인간의 삶이 바뀐다는 얘기다. 스마트폰엔 수많은 과학기술과 그것들을 어울리게 하는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다. 그 스마트폰으로 인해 오늘날 인류의 삶이 획기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모두가 경험하고 있다. 인구의 변화, 자원의 고갈, 환경오염, 세계화 등 다른 요소들도 있다.
대학과 대학교육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종이책이 사라지고 전자책이 이를 대체할 것인지, 직업이나 종교, 장례문화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와 같은 문제 역시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21세기 초반을 이끌고 있는 IT가 사이버대학 등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인구의 감소와 외국 대학의 국내 진출 역시 한국의 대학과 대학교육을 바꿔놓는 요소들이다. 장례문화는 가장 보수적인 분야이지만 최근 들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해서가 아니라, 지구라는 땅덩어리는 한정돼 있는데 고인을 위한 무덤은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생겨나는 어쩔 수 없는 변화다. 독자의 입장에선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있으나 직간접적인 관련 산업계에선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문자의 발명과. 구텐베르크로 대표되는 인쇄술의 발명은 인류사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21세기의 전자책이 또 한 번 인류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대학과 대학교육 글로벌 명문대 파워 더 세진다
외국 대학 분교 설립, 사이버 대학 증가, 학생 수 감소……, 우리나라 대학교육 시장의 현주소는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2018년이 되면 입학자 수가 대학 정원보다 적어진다. 학생을 뽑지 못한 대학이 본격적으로 문을 닫는 시나리오가 예상되는 시점이다. 대학들은 벌써부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양성한다며 경쟁적으로 영어 강의를 늘리고 있다. 카이스트는 최근 학생들의 연쇄 자살로 홍역을 치렀다. 10년 후 대학의 모습을 전망해보자.
"한국대학교 홍길동 교수는 하루 평균 3시간씩 강의한다. 사실 강의라고 해봐야 MIT매사추세츠공과대 스미스 교수의 온라인 원격 강의록을 받아 화상으로 재현해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혹 질문이 있으면 대답해주는 것이 전부다. 직접 현장에서 수강하는 학생은 전체 수강생의 10퍼센트 이내, 나머지는 화상을 통해 원격으로 수강한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오세정 교수는 이인식의《미래신문》이란 책에서 미래 대학의 수업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오 교수는 김광웅 교수가 엮은《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에도 "미래 대학의 모습 미래에 우리는 어디에서 공부할 것인가"라는 글을 게재해 학문과 대학의 미래를 전망했다.
여러 해 전에 MIT가 자기 대학 교수들의 강의를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했을 때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상당한 예산과 시간을 투자해 개발한 양질의 강의 자료를 참조하거나 부분적으로 또는 거의 통째로 내려받아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는 고마워하면서도 도대체 그들이 왜 그렇게 하기로 햇는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거의 모든 대학이 크고 작은 규모로 인터넷 공개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이 예측하는 미래 유망산업의 목록에는 뜻밖에도 교육산업이 포함돼 있다. 세계 전체로 보면 여전히 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비교적 윤택한 나라들은 거의 한결같이 심각한 출산율 저하를 겪고 있다. 그나마 제대로 된 교육 시장이 형성 돼 있는 나라일수록 취학 아동의 수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교육산업이 미래 유망산업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성인 재교육 위한 대학의 필요성
언젠가 정년제도가 없어지면 대학 졸업자의 경위 대개 25~30세 부터 95~100세까지 일하게 될 것이다. 평균 70년을 일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평생 동안 적어도 직업을 대여섯 번은 바꾸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그렇지 않아도 취직 걱정에 대학 4년 내내 오로지 '스펙 쌓기'에만 여념이 없는 우리 대학생들의 삶에는 과연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가? 대학 4년 동안 일찌감치 낭만일랑 접어두고 젊음을 바쳐 학점을 관리래 용케 첫 직장은 잘 잡았는데 40세가 되기도 전에 쫓겨나면 어떻게 다음 직장을 얻어야 할까?
2004년 당시 우리 정부의 교육인적자원부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로 인내 날로 심각해지는 대학들의 정원 미달률을 감안해 2009년까지 모두 8개의 국립대와 79개의 사립대를 통폐합하는 '대학 구조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 추이를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라 할 수 있지만, 전혀 반대의 발상도 가능하다.
노동 인생 70년 동안 대여섯 가지의 직업에 종사하며 살려면 평생 배워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 직장인의 대부분은 불안한 미래를 대비해 나름대로 공부하고 있다. 이 같은 성인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할 대학이 필요하다. 직업을 바꿀 때마다 수시로 대학으로 돌아가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조만간 대학은 20대에 한 번만 거치면 되는 통과 의례 과정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 돌아가 몇 번이고 새로운 학위를 취득하는 곳이 될 것이다. 현재 직장을 갖고 있으면서 또 다른 직업에 도전하는 성인들을 위한 교육은 당연히 온라인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지식의 세기에 살아남으려면 언제든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한자말로 '수학능력'이라 하며 줄여서 '수능'이라 부른다. 여기서 우리는 하버드, 예일,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 세계적인 명문대학들이 왜 수백 년동안 한결같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만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 즉 기초학문이 바로 수학능력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기초학문의 기반을 튼튼하게 다져주면 언제 어디서나 새로운 학문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걸 그들은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하버드대는 몇 년 전 핵심 교육과정을 새롭게 편찬하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비중을 한층 강화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인문학 열풍은 향후 10여 년간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아이폰은 과학에 인문학을 입힌 스마트폰이라고 으스대던 스티브 잡스의 카리스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직업의 변화 녹색문명의 시대 떠오르는 '그린칼라'
10년 후쯤에는 하얀 와이셔츠 차림의 '화이트칼라'는 전문성과 관리직, 고연봉의 상징이 될 수 없다. 21세기의 블루칼라 노동자일 뿐이다. 그때쯤이면 에너지 전문가, 리사이클리이 분석가, 환경 컨설턴트 같은 '그린칼라'가 각광받는 시대가 된다. 녹색문명으로의 전환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늘 사회에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기존의 산업들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했다. 그러면서 새 직업을 만들고 그때까지 인기를 끌던 직업과 직군을 쇠퇴를 축진했다. 미래학자들은 기후변화와 자원 고갈, 인구구조 변화, 과학기술의 융·복합을 우리가 직면한 주요한 환경 변화로 제시한다. 거시적 환경 변화는 그 자체로 또는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만들어낸다.
많은 전문가가 10년 후에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사막화, 해수면 상승, 태풍·홍수, 지진 같은 기상이변, 신종 전염병 등이 빈번히 발생할 것으로전망한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친환경적인 산업구조로의개편이 가속화되고, 국제적 환경 규제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친환경 재료, 소재 등 새로운 환경 시장이 대두하는 한편 환경 규제가 생산, 유통망의 전 영역으로 확산될 것이다. 에너지, 식량, 물 등 자원 고갈에 대한 위기감으로 에너지원의 다양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연구, 투자가 신속이 이뤄질 것이다. 한마디로 자원 확보 경쟁이다.
이에 따라 해양에서 대기·토양에서 이르기까지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를 종합적으로 예측하고, 재난 발생을 관리할 수 있는 '자연재해관리자'가 각광받을 것이다.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 등으로 신종 질병이나 이미 사라졌던 전염병들이 인류를 괴롭히면서 '질병 검역관'에 대한 수요 또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물 부족 현상으로 곳곳에서 발생하면 물을 관리하는 직업도 유망해질 것이다. 수자원 고갈과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한 노력은 석유자원 못지않게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수자원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물 거래업자'가 성업할 것이다.
에너지자원의 고갈에도 불구하도 대체에너지 기술의 진보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기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돕는 '자원절약 전문가', '리사이클링 전문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특히 인간의 노동력이나 태양광, 풍력, 조력 등 가공되지 않은 자원에서 생기는 에너지를 손실 없이 저장하고 전달할 수 있는 '배터리 기술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석유자원의 고갈과 배터리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전기자동차 같은 연료절약형 자동차의 대중화를 앞당길 것이다. 차체 무게를 줄이고, 부품 수를 대폭 줄이고 구조를 단순화한 연료절약형 자동차의 등장은 자동차산업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안전성 문제는 남아 있겠지만 소규모 차량 정비소나 개인들은 온라인상점을 통해 구입한 자동차부품을 직접 조립해 보급할 가능성도 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조립PC를 만들어온 것과 비슷하다.
사막화, 기상이변, 바이오에너지의 확대 때문에 경작지 면적이 급감할 경우 식량 문제는 더 악화될 것이다. 유전자변형GMO을 한 농산물, 가축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확대되면서 전문인력 수요는 늘어나지만 사람들은 유기농식품을 더 선호할 것이다. 따라서 고층빌딩 형태의 수직농작을 임차해 유기농식품을 생산, 판매하는 소규모자영업자들이 늘어날 것이다.
고층빌딩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식품
인구구조의 변화, 특히 고령화 추세는 필연적인 미래라 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사회의 고령화는 저출산 추세와 맞물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와 함께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촉진해 2020년 이후 한국은 고령화와 함께 다민족화의 특징을 보일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 노인 복지비용은 증가하고 현역 세대의 부담은 가중될 것이다.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 간의 세대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또 외국인이 대량 이주하면 내국인과 외국인 간의 경제, 문화적 갈등도 고조된다.
고령화 사회는 '실버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고령자의 건강, 편익, 안전을 위한 노인친화형 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은 물론 고령자를 위한 의료, 금융, 교육, 여가, 돌봄과 같은 서비스분야에서도 다양한 직종이 생겨난다. 고령자의 건강과 미용을 관리하는 '노인 건강 및 에스테틱 관리자', 고령자들의 치매 예방과 기억력을 증진시켜주는 '기억력 증강 정신과 의사', 고령자의 교육, 취업, 엔터테인먼트 관련 상담늘 해주는 '실버라이프설계사', 노인들이 평화롭고 영예롭게 삶을 마감하도록 도와주는 '황혼준비도우미' 등의 출현을 예상할 수 있다. 아울러 세대 갈등과 노인 소외에 지친 고령자, 한국 사회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국인을 위한 '소셜네트워킹관리자' 혹은 '사회생활치료사' 등의 부상도 전망된다.
10년 후 사라질 직업들
시대적, 기술적 환경 변화가 새로운 직업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면 이런 변화로 인해 10년 후 사라질 직업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1960~1970년대만 해도 타이피스트와 전화교환원이란 직업이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런 직업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우편집배원과 전통적인 인쇄업이 쇠퇴해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직업 전문가들은 10년 후에 회계사, 슈퍼마켓 계산원, 콜센터 직원, 은행 창구 직원, 파출부 등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할 것으로 본다. 자동화 소프트웨어나 로봇 등이 이런 일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사라질 수 있는 직업으로 국회의원과 신문기자를 꼽는 전문가들도 있다. 전자정부 등 전자시스템의 발전으로 시민들이 직접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대의정치도, 국회의원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모바일 기기, 1인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의 급신장으로 언론 매체 역시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다. 그럴 경우 일반 매체에서 일하는 기자들의 설 자리도 좁아질 전망이다.
심화되는 종교의 상품화와 브랜드화
원리주의 기독교나 자유주의 기독교나 모두 한계에 도달했다고 진단하는 학자들은 앞으로 엑스터시, 성령 체험, 명상 등 일상과 다른 체험을 줄 수 있는 기독교회나 다른 종교가 인기를 끌 것이라고 전망한다.
종교와 비종교, 반종교 사이에서 제3의 길은 영성이다. 유럽, 미국에서는 '영성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 사람들이 더욱 증가할 것이다. 영성주의자들은 제도적인 종교에는 속하지 않지만 종교 서적 읽기, 명상, 봉사, 환경보호 활동 등을 통해 종교적, 영성적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기독교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불교도 교리, 의식이 중심이 되는 종교라기보다는 행복 추구에 도움이 되는 영적인 라이프스타일 혹은 무신론적, 철학적 체계로 이해되고 있다. 서구 불교는 잠재력이 크지만 제약 요인도 많다. 서구인은 불교를 신이교주의와 뒤섞어 믿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경우 베트남전 시대, 대항문화 운동을 배경으로 성장한 불교 지도자들이 대거 은퇴, 사망하고 있다. 앞으로 10년간 벌어질 불교 지도자 세대교체에 미국 불교의 미래가 걸려 있다.
종교에 대한 최대 위협이자 기회는 정보통신기기의 발전이다. 뉴미디어의 발전에 따라 종교도 변화한다. 예컨대 가톨릭 고백성사용앱이 등장했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검토해주는 소프트웨어다. 앞으로 현실보다 더 진짜 같고 더 멋진 가상현실의 사찰, 교회, 사원이 등장할 수도 있다. 종교에 따라 그에 대한 적응 양상이 크게 다를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공동체가 함께 모이는 것을 중시하는 이슬람, 가톨릭이 다른 종교들보다 뉴미디어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릴 수 있다.
종교에 대한 이러한 위협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종교미래학자들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이들은 '가능한 미래'와 '바람직한 미래'를 구분한다. 이들은 종교야말로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분야라고 주장한다. 종교미래학자들에 따르면 미래 종교에서는 교리, 위계서열을 탈피하는 성향이 강화될 것이다. 일반 신자들이 교권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워진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우리 종교'로 개종시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트렌드도 강화된다. 세계화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믿을 종교가 대체적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약화된다. 뭔가를 믿고자 하는 사람들은 '종교 백화점'에서 자신에게 맞는 종교를 선택한다. 종교가 다른 신랑, 신부가 결혼할 때에는 제3의 종교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추세는 종교 선택의 자유와 유연성은 종교가 갈등이 아니라 화합의 원으로 작용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종교가 하나의 상품이나 브랜드처럼 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종교들이 대립하는 양상이 유지되겠지만 종교와 비종교, 반종교의 대립 구도도 점차 선명해질 것이다. 유전자 조작 등의 문제에 대해 종교들이 공동 대처할 필요성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빠르게 증가하는 SBNR
미국에서는 '영성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piritual but notj religious' 사람들을 가리키는 줄임말로 'SBNR'을 사용한다. SBNR은 종교 인구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대학교육을 받은 화이트칼라이면서 정치적으로는 리버럴Liberal인 경우가 많다. SBNR이 이미 하나의 운동으로 점화됐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10년 안에 SBNR이 미국 인구의 25퍼센트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20세기 이전까지 영성은 당연히 종교의 부분집합이었다. 20세기 들어 종교와 영성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배경은 종교의 세속화와 세계와 속에서 종교와 종교가 만난 것이다. 종교들이 조우하는 현장을 들여다본 사람들은 종교는 달라도 영성에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기성 종교에 대한 실망까지 겹쳐 신자들을 SBNR로 내모는 데 가세했다.
SBNR이 된 사람들은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화된 종교와는 달리 영성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주장한다. 불교, 힌두교 등 동양 종교의 유입과 자연종교의 복원, 뉴에이지 종교의 유행도 SBNR 부상의 원동력이다.
앞으로 수십 년간 SBNR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첫 번째 방향은 SBNR이 불가지론자. 무신론자로 가는 중간단계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선 무신론을 표방하면 사회로부터 위험한 사람, 이상한 사람, 돈밖에 모르는 물질만능적인 사람으로 '찍힐' 수 있다. 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SBNR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SBNR은 아직 '나는 무신론자다'라고 '커밍아웃Coming out'하지 않은 무신론자일 수도 있다. 데이트 서비스를 신청하는 미국인이 종교 항목에서 '무신론'에 체크하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SBNR이라고 체크하면 무난하다. SBNR은 이미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방향은 '종교 못지않게 종교적인' SBNR이다. 이들은 종교 없이도 영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는 휴머니즘이 있다. 미국과 유럽의 휴머니즘은 느슨한 종교의 형태를 띠고 있다. 대학에는 휴머니즘 교목까지 있다. 휴머니스트들은 사람이 종교를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사랑, 관용, 용서, 책임, 조화,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며 공동체도 중시한다. 이런 경우 휴머니즘 자체가 일종의 종교가 된다.
세 번째 SBNR 방향의 주인공은 영성을 여정旅程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기성 종교에서도 신앙생활은 여정으로 이해됐다. SBNR에서는 여정으로서의 영성 개념이 확장된다. '여정형 SBNR'은 이 종교 저 종교를 기웃기웃하며 자신에게 맞는 영성을 개발한다.
이들은 만달라, 명상, 요가, 채식주의 향 피우기 등 여러 종교에서 실천돼 온 영성 고양 기법을 하나씩 시도해보기도 한다. 가톨릭, 불교, 이슬람 등 각 종교에서 발견되는 신비주의를 독서나 훈련 과정을 통해 직접 체험하기도 한다. 그 결과 '개인 맞춤형' 종교가 탄생한다. 종교가 일종의 개인적인 취향이 되는 셈이다.
향후 10년간 세계 SBNR의 흐름에서 한국도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나 유럽 스타일의 SBNR 운동도 한국에 계속 유입되겠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무교無敎'라는 한국 종교지형의 카테고리다. 무교는 무신론, 불가지론과 다르고 휴머니즘과도 다르다. 무교라는 범주를 낳은 것은 조선사회를 이끌었던 주자학의 붕괴다.
최근 동양학계에서는 실학에 대한 관심이 유교, 주자학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할지 모르는 한국형 SBNR이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할지 주목된다.
줄어드는 장례절차의 거품
납골당 역시 분묘와 비슷한 운명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립 납골당의 경우 유치 기한이 최장 30년인데, 설사 영구보존한다 해도 2,3대가 내려가면 분묘에 찾아올 자손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김찬중 교수의 도심형 납골당은 가까운 미래를 위한 현실적 대안이 되겠지만 납골 수요가 많아진다면 고사될 가능성이 크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07년에 펴낸 보고서 <장사문화 발전을 위한 국가전략계획 수립연구>에서 화장 수요 증가에 맞춰 화장장을 더 확보하고, 납골당 대신 다양한 형태의 자연장을 장려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한다.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박복순(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 사무총장은 "산골이나 수목장 등 다양한 형태의 자연장이 나오겠지만, 일정 기간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유·무형의 공간이 필요할 것"이라 말했다.
현실 세계에선 기존의 공원묘지 중 일부를 자연장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바다에 분골을 뿌리는 해양장, 도심 공원과 북한산처럼 고인이 즐겨 찾던 산의 등산로에 뼛가루를 뿌리는 산골 등 다양한 형태의 자연장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바다장례의 경우 인천 앞바다에서만 매년 1,000건 이상 치러진다.
'장사등에관한법률'의 변천을 살펴보면 장례문화의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도 엿볼 수 있다. 자연장이란 단어는 2007년 5월 공포된 '장사등에관한법률 제10차 정부 개정' 때 처음 등장한다. 법에서 쓰는 용어를 정의하는 제2조에 "'자연장自然將'이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수목·화초·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는 부분이 새로 추가됐다. 자연장 때는 유골을 묻기에 적합하도록 분골해야 하고, 용기는 생화학적으로 분해가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목장림이란 말도 이때 처음 나왔다, 문제는 이미 일반화된 산골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국토해양부는 바다에 유골을 뿌리는 해양장을 '폐기물 투기행위'로 분류해 불법이라 주장한다. 박사무총장은 장사법에 산골이라는 용어를 규정하지 않아 불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한 산골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장사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화장과 자연장이 일반화하면 장례의식이나 장레절차의 거품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장례문화원 유재철 원장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수의나 관, 도자기 유골함 등은 자연장과는 어울리지 않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며 "사흘장, 닷새장인 조문 문화도 서구나 일본처럼 영결식 등 특정 시점에 한 번 치르는 방식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앞으론 고인에게 입히는 수의 역시 값비싼 전통 삼베옷 대신 고인이 평소 즐겨 입던 평상복으로 바뀔 수 있다.
첨단기술
미국 MIT미디어랩의 기초과목 중에 '무언가를 만드는 무언가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수업이 있다. 주입식 강의는 없다. '기쁨', '좌절', '인내' 같은 화두를 부여하면 그에 대해 한 학기 내내 토론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작 기기를 만들어내는 과목이다. 사람의 표정을 인식하고, 그런 표정의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조작해내는 기기 같은 것이 기말 과제로 출제된다.
1990년대 컴퓨터 시대 2000년대가 모바일 시대였다면, 2010년대대는 다양한 디지털 기기의 컨버전스(융합) 시대가 된다. 컴퓨터의 발달과 확산으로 인류는 단순노동에서 해방됐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엑셀'이 없었다면 지금의 5배가 넘는 사무직 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또 모바일 기술은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었다. 지구 반대편 사람과 친구가 되는 '인터넷 지구촌'의 개념을 실현한 것이다.
2020년대는 무엇이 첨단기술의 트렌드가 될까. 확언할 수 없지만 '모든 기기', '모든 물건'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될 것이다.
당장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은 '사물 디스플레이'다. 마트에서 끌고 다니는 카트가 스크린이 되고, 컴퓨터가 된다. 호텔에 투숙한 손님은 유리창을 이용해 TV를 보거나 인터네서 서핑을 하고, 가족과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 태블릿PC는 종이처럼 '접는 디스플레이'로 바뀐다. 평소에는 접어서 가방 속에 넣고 다니다 필요할 때면 펼쳐 사용한다. 오늘 신문을 즉시 다운로드 받고, 방송뉴스를 볼 수도 있다.
인간이 사는 도시도 똑똑해진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주인님'의 생각을 읽는 집이 구현된다. 몸속에 들어가 암세포만 찾아 죽이는 로봇, 노부모의 안마를 전담하는 로봇일 생겨난다. 자동차는 말 한마디면 목적지를 찾아주는 것은 물론 주변의 지인들까지 픽업해주는 수준이 된다.
10년 후 세상에서는 첨단기기 덕에 인간이 일하는 영역은 줄어든다. 하지만 그만틈 첨단기기를 사용하는 인간의 사고력은 더 중요해진다. 아무리 친절하고 뛰어난 로봇이 곁에 있더라도, 인간이 창조성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 1980년대 TV 앞에서 누워만 있던 '카우치 포테이토족'이, 스타벅스에서 아이패드로 동영상이나 보며 멍하니 앉아 있는 '스타벅스-패드족'으로 바뀔 뿐이다. 첨단 미디어 시대에서 콘텐츠의 창조는 여전히 인간에게 숙제로 남는다. 그 옛날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려야 했던 모습이나. 10년 뒤 접히는 디스플레이를 꺼낸 뒤 보고서 작성을 고민하는 당신의 미래상이나 창조성이란 바탕 원리는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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