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40대<1>

오키Oki 2012. 3. 23. 00:08

커피, 문제는 카페인이 아니라구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커피에 208가지의 산성물질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카페인 커피라고 더 나을 건 없다. 카페인이 제거된다고 해도 커피가 가진 원래의 산성물질은 변함이 없다. 산은 인체 인슐린과 포도당의 양에 커다란 혼란을 일으킨다. 인체의 모든 화학적 변화는 건강과 직결되고 몸의 화학적 특성을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가장 쉽게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입을 통해 집어넣는 것들이다. - 리시드 부티드,《100세 인생도 건강해야 축복이다》중에서

 

 

 

 

 

 

 

 

 

 

 

- 민도식 지음『 언제까지 회사 다닐 수 있을까 』에서 -

…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40대에게 …

 

 

지은이 민도식

지식전략연구소 대표이자 자기계발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국내 최고의 기업교육 강사이자 셀프리더십 연수 및 코칭 전문가이다. 열정과 깊이 있는 내용으로 지적자극을 선사하는 그의 강의는 기업체 교육담당자가 뽑은 '대한민국 기업교육 강사 30인'의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2008년 인크루트 인재경영 선정 기업교육 명강사 10인에도 선정되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언젠가는 자신이 머물던 회사를 떠나야 한다. 여기서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직장을 잃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의 기대수명이 90세일 때 45세에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45년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잔혹한 현실을 의미한다. 우리는 오래도록 체제 순응적인 방식에 길들여져 살아왔다. 하지만 회사를 떠난 후 행복한 생활을 오래도록 이어갈 수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회사를 쌓은 역량이 퇴직 이후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생의 반환점에 도달한 당신은 지금 어떠한가? 가슴에 품었던 열망들이 하나둘 식어가는 것을 느끼는 나이, 주말 내내 쉬어도 컨디션 좋은 날이 1년 중 며칠이 되지 않는 나이,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당장 닥쳐 있는 현실이 버거운 나이, 모처럼 친구의 전화를 받으면 통장 잔고나 카드대금 걱정이 앞서는 나이, 누군가 재테크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나이, 자식 농사 잘 지은 옆집을 보고 나는 무엇을 했나 한탄하는 나이, 언제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날지 몰라 보험을 하나 더 들까 걱정하는 나이, 디지털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새로운 전자기기를 익히느라 전전긍긍하는 나이 등, 세대 간의 갈등으로 젊은이들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되는 나날을 보내는 것이 지금 당신의 모습일지 모른다. 어느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

우리는 오래도록 체제 순응적인 방식에 길들여져 살아왔다. 하지만 회사를 떠난 후 행복한 생활을 오래도록 이어갈 수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회사에서 쌓은 역량이 퇴직 이후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베이비붐 세대에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은 성공의 열망을 지피는 불씨였고, 고난을 이겨내게 하는 희망의 구호였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은 어떠한가? 고생 끝에 낙이 온 것이 아니라 고통의 트라이앵글 속에 갇히고 말았다. 불안한 노후, 부모 간병, 졸업해도 취직이 되지 않는 자녀를 생각하면 기운이 빠지고 잠도 이루지 못한다.

차세대 경영의 리더로 꼽히는 요나스 리더스트럴러와 첼 노오스트롬은《창조적 괴짜가 세상을 움직인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가라오케 자본주의 세상에서 개인은 끝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은 타인을 모방하느냐 아니면 미래를 창조하느냐는 선택이다. 벤치마킹이나 모범 규준을 따르는 것은 다만 당신을 중간 수준까지 이끌어줄 뿐이다. 모방하지 마라. 혁신하라."

고통을 참아내면 성공과 행복이 찾아온다고 믿으며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에게 모방하지 말고 혁신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라는 시대적 요구는 낯설기만 하다. 회사를 떠나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이 더욱 힘든 세상이 되었고, 연착륙할 수 있는 여건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금 우리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뭔지 모르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오랜 시간 우리는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도록 강요받았다. 그 방식이란 대개 서양식 자기계발 이론에 따라 목표를 세우고 실행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으면 성공과 행복에 도달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노력한 것에 비해 특별히 나아지는 것이 없는 제자리걸음의 인생을 마주하게 된다면,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나 역시 직장을 그만두고 10년 이상, 나만의 독특함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실행해왔다. 하지만 자기계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다가왔다. 그래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자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성찰했다. '뭔가 잘못되어 가는 실체'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하며, 다양한 전략들을 연구함에도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을까? 국민소득은 오르고 대기업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는 데 대다수 국민들은 왜 불행을 호소할까? 젊은이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데도 왜 기회는 없을까? 회사를 떠난 대다수의 사람들이 처음 계획과는 전혀 다른 힘든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원인의 대부분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세계화란 시스템'이 가져다주는 것임을 알았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대한민국은 세계화란 시스템에 경제주권을 빼앗긴 지 오래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피곤하고 골치아프다는 이유로 세계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좀더 근본저거인 대책을 마련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눈앞에 전개된 현상 대응에 급급하거나 원인도 모른 채 공포를 느끼면 살아가고 있다. 당신이 세계화의 시스템을 이해하지 않으면, 어쩌면 다른 사람이 던진 돌에 개구리가 부상을 당하거나 죽듯이 당신의 인생 또한 당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르게 전개될 것이다. 정치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가진 자들에게 적대감을 갖는 것으로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제 다른 방법으로 현상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할 시점이다.

 

 

 

거울 속 낯선 사람이 바로 당신이다

나는 교육의 본질적인 목적이 '성인이 된 후 완전히 독립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를 비롯하여 40대들은 지금까지 받은 교육이 독립성보다는 조직이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성을 강화시켜 온 교육이란 사실에 배신감을 느낀 적이 많을 것이다. 비자발적 교육을 받은 40대가 걸어온 길은 학교를 졸업해서 취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혼 적령기에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자녀 양육과 부모 부양이라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살았다. 그렇게 하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는데, 낙은 고사하고 갈수록 더 힘든 생활만 이어진다. 수입은 늘었지만 통장 잔고는 여전히 비어 있고, 아파트를 살 때 빌린 대출금은 몇 년째 그대로이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자신감을 잃어가는 40대는 우연히 면도를 하다가 거울속의 자신을 본다. 거울 속 남자는 아침에 일어날 때 컨디션이 좋은 경우는 거의 없고, 아이들을 혼낸다고 갑자기 회초리라도 든 날에는 옆구리에 담이 붙고, 글씨가 잘 보이지않아 돋보기를 끼거나 안경을 벗어야 신문을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아이들 학비, 취직, 결혼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며 그 문제로 아내와 자주 다투는 사람이기도 하다. 거울 속에 있는 그는 머리에 이미 흰 눈이 내렸고, 눈이 침침해서 면도가 제대로 되었는지 거울에 가까이 다가서야 알 수 있는, 그래서 수시로 면도기에 베이기도 하는 사람이다. 또한 얼굴을 찌푸릴 때마다. 주름 골이 더 깊어만 간다. 거울에 비친 자신이 바로 이 시대 40대의 자화상이다.

인생의 절반쯤 온 당신은 '이게 행복한 삶인가?' '이것이 원했던 삶인가?'라는 생각이 들 대면 더욱 외로워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화 한 통 마음 편하게 할 친구가 없고, 마음을 터놓고 술 한잔할 수 있는 지인이 줄어든다는 것을 느끼면 왜 이토록 삶이 고독한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또한 자율적이고 믿었던 인생은 어느 날부터 속박으로 다가오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맏었던 젊은날의 의지는 온데간데없고, 눈앞의 이익과 안전에 전전긍긍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당황해한다.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경영한 것이 아니라 회사의 요구에 의해, 가족의 요구에 의해 설계되고 재생산되어 왔음을 깨닫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고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만 간다. 그렇다고 희망찬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도 없기에 더욱 답답함을 느껴 소화불량에 자주 시달린다.

어디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당장 직장을 그만두면 아이들의 학비, 생계비, 카드대금, 할부금 등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삶의 주도권을 빼앗겨 살아온 결과치고는 마음고생이 심하다. 이와 같이 어느 날 직장에서 효용가치가 상실되어 용도 폐기되는 자신을 방치해둘 수 없게 된 것이 지금의 모든 40대가 처한 현실이며 공통적인 고민이다.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무거운 짐

40대를 살면서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면에서 돈은 절대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언젠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다니다 그만둔 40대 중 미래가 과거보다 나은 경우는 1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뉴스기사를 보고, 나는 예외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회사 밖으로 나오니 나 역시 예외가 아님을 깨달았다. 온실의 법칙에 철저하게 길들여졌던 내가 냉혹한 정글 시스템에 적응해 자리를 잡기까지는 무려 7년이란 시간과 고통이 필요했다. 자동화와 소프트웨어의 발달은 화이트칼라 업무를 획기적으로 줄여놓았다. 또한 가격 파괴를 내세운 기업형 유통산업이 발전할수록 개인에게 창업의 성공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창업자들 중 80퍼센트가 1년 안에 사업을 정리한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지적산업의 틈새시장마저도 더욱 치열해졌다. 이러한 환경은 인생의 반환점에 다다른 40대에게 기회이자 위험으로 작용한다.

조직에서 연마한 역량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량이 되지 못할 때 느끼는 그 황망함은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한때 정규직원만 3천 명인 회사에서 제안 1위를 하는 등 나름대로 직장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직원이었지만, 그 능력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량과는 별개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나중에야 깨달았다. 거대한 세상에 비해 좁은 회사에서의 이력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때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것을 왜 회사다닐 때는 몰랐을까?

얼마 전 공무원 한 분을 소개 받았다. 그분은 현재 수입에 비해 지출이 많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사람을 찾고 있던 중 나를 만난 것이다. 그분의 이야기를 다 듣고서 나는 말했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사명은 뜬구름 같은 것입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명이 우선인지, 돈이 우선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사업적인 구체성도 사명도 모두 빈약해 보였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떠나서는 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어떻게 포장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의식주와 관련된다. 아마 나도 오래 전에는 그때 만난 공무원처럼 다소 공상 속에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깥의 세상살이는 조직 내에서 공상하는 것만큼 쉽지 않다. 40대가 되면 누구나 다양한 수입처를 찾을 수밖에 없다. 돈 들어갈 곳이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시기인  탓이다. 그래서 그분의 입장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아직도 한때의 영광에 얽매이고 있는가

40대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과거의 영광이나 경험에만 의존해서 현재를 판단하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준비할 때 이런 점들은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조직 내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사람일수록 개인 사업에서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좋은 인맥을 자랑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명문고나 명문대를 졸업했거나, 그렇지 못했더라도 좋은 직장을 다닌 사람들이라면 일반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인맥을 갖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40대에게 좋은 인맥이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사회는 그 사람의 과거 경력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경력이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고, 그 경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관심을 가진다. 그런 면에서 인맥의 실체에 대해 40대라면 재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알고 지내는 인맥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맥을 통해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낼수 있으냐 없느냐 하는 질적 인맥이 더 중요하다. 나에게 있어 좋은 인맥이란 3자에게 공동의 이익이 되는 관계를 말한다. 3자란 소개하는 사람, 소개 받는 사람, 소개 당사자를 말한다. 아무리 좋은 인맥을 가졌다 하더라도 3자중 누구 한 사람에게 피해가 가거나 부담이 되는 관계가 되면 인맥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런 측면을 모르는 사람들은 도움을 받을까 인맥을 찾았다가 상처만 잔뜩 입고서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투정을 부린다. 결국 좋은 인맥이란 3자가 공동이익이 될 때 최대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20대가 취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 시기라면, 40대 이후의 삶은 새로운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야 하는 시기다. 문제는 40대 이후의 삶에서 과거의 경험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직장에서의 경험이 사회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동안 넓혀온 인맥도 3자 이익이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40대 이후의 삶은 조직 내에서의 '성공한 경험에 대해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자기계발 분야 통계에 따르면, 이 세상을 구성하는 빈민층과 서민층 87퍼센트는 목표 없이 인생을 산다고 한다. 중산층을 구성하는 10퍼센트 사람들은 마음속에 간직한 목표를 품고 살고, 상류층과 주도적인 삶을 산 3퍼센트의 사람들만 문서화 · 구체화 · 계량화 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이 통계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통계를 통해 우리는 반면교사를 삼을만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고,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자 하는 대로 통계에 맞는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욕망으로는 3퍼센트에 속하는 삶을 살고자 하면서도, 3퍼센트의 주도적 사람들이 행하는 목표의 문서화와 구체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3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이 했던 행복 방식을 자기화하지 못한다면 결코 3퍼센트에 속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3퍼센트에 도달하는 방식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따라하지 않는다. 글로 적은 것으 매일 읽고, 큰 소리로 반복하는 3퍼센트의 행동 방침이 내게는 번잡하기고 하거니와 굳이 상위에 올라가야 하는 목적의식도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복잡하지 않다. 성공 시스템대로 따라하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지 않는 데 있다. 똑같은 통계나 사실을 알고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행동으로 옮기느냐, 마음속에서 작심만 하느냐가 주도적인 삶을 사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경계선이다.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은 자기와 결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와 결별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새로 시작하는 40대에게 뒤돌아보지 않는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뒤돌아보는 것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과거에 발목 잡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족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직장을 그만둔 뒤 가장 어려웠던 것이 과거와의 결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왜 그토록 미련하게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에 많은 지식과 사례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을 지혜로 풀지 못하고 지식의 영역에서만 해석하고 있었던 것 또한 어리석었다. 목표와 중요성을 일러주는 수많은 자료를 보면서도 큰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큰 그림보다는 작은 성취에 눈이 멀어 나무 하나하나에 마음울 빼앗긴 채 숲을 보지 못했던 것이 나의 한계였다. 단편적으로 달성한 성취의 경험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모든 것이 잘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로 변질되어 있었다.

실패를 통해 나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속에서 능력과 가치가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눈물로 배웠다. 또한 과거의 자기를 빨리 버리지 못할수록 현실은 더욱 어려워져 구렁텅이로 빠져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그 시절 중국에서 보았던 속담이 생각났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라. 그럼 평생 동안 억지로 일할 필요가 없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사례를 통해 과거와 결별하기 위해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는다. 서른 여덟 살이 되어 처음으로 MBTI성격유형검사 라는 도구로 적성검사를 하였다. 적성검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내가 그토록 꿈꾸었던 많은 것들이 내 적성과 상관없는, 외부의 영향을 받아 습관적으로 학습된 전시용이었다는 사실이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졌다. 과거와 빨리 결별하지 못해 사서 고생하긴 햇지만, 값진 실패의 시간을 후회하지 않고 가슴으로 품어 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다음 적성에 맞는 목표를 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아갈 수 있었다.

목표가 없던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쉽게 동조하며 귀를 기울이던 삶의 태도에서, 지금은 다른 사람의 의견은 참조하되 목표를 향해 곰처럼 우직하게 걸어가는 태도로 바뀐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좋았던 과거든 부끄러웠던 과거든, 그것이 현재의 나를 결정해줄 아무런 영향력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에 충실한 것만큼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적성을 파악하고, 문서화 · 계량화 된 목표를 가졌다면 모든 것은 행동으로 증명될 뿐이다. 그것을 깨닫는 데 30초면 충분한데, 고루함과 과거에 집착하느라 너무나 많은 수업료를 지불한 셈이다.

하루는 도서관에 원고를 수정하기 위해 갔다가 담배를 빌려달라는 40대를 만났다. 거의 10년째 놀고 있다는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대부분 과거였다. 조직을 떠난 40대를 만나보면 대부분 자신이 한때 잘나갔던 사람이었음을 듣게 된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사람일수록 과거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자신을 위로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잘났던 과거가 왜 현재의 궁핍을 이겨내게 해주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열등한 위치에 처할수록 과거의 무용담을 술자리에서 넋두리나 푸념을 늘어놓는데, 그 결과는 언제나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회상은 대부분 자신에게 자괴감과 불평을 안겨주고, 타인에게는 진저리로 기억된다. 조금 더 심해지면 자기혐오나 경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 과거의 기억을 버리고 제로베이스로 돌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넋두리를 하고 나서의 소득 없음과 허탈감을 항상 생각하는 것이다.

능력이 있는데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잘난 과거는 몇 년에 불과했음에도 오랜 시간 과거의 향수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존심 하나로 어려움을 버틴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고달파서 타인의 과거에 거의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는 사실을 빨리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현명해질 것이다. 과거의 경험, 과거에 졸업한 대학, 과거의 회사에 갇혀 정작 소중한 자신의 오늘을 희생시키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뒤돌아보지 마라. 과거와의 결별이 빠를수록 현재와 미래는 행복해진다.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의 경험들은 빨리 잊어라. 새로운 출발선에 빨리 설 때 과거의 화려함은 대개 40대의 전진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새로운 환경에 접하면서 "나도 한때는…" 하는 태도는 40대 이후의 삶을 현명하게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방해꾼이 된다. 루스벨트, 마이클 조던, 스티븐 스필버그 등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보면, 모두 슬픈 과거와 빨리 이별함으로써 현재의 성공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슬픈 과거에 대한 콤플렉스는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자기비하와 부정적인 곳에 에너지를 사용할수록 현실은 더욱 궁핍해지고 세상이 불평등해 보인다. 하지만 적성을 파악하고 목표를 정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사용하면 새로운 인생을 사는 데 무한한 경쟁력이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뒤돌아보지 마라. 매일 진화하는 인생만이 당신의 고민이나 정체성을 해결해주는 유일한 해답이다. 자기르 잘 알지 못하고 설정한 목표는 궁극적으로 당신 인생이 아니다. 세상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구의 인생인 것이다.

세상과 타인은 당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현재의 위치와 경쟁력이 당신의 현재를 결정지을 뿐이다. 평생 학습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요즘, 철저한 준비를 통해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새로운 출발선에 서는 용기와 행동만이 인생의 영원한 후원자가 될 수 있다. 그것만이 40대에게 새로운 성공을 책임져줄 유일한 해답이다. 매일 학습하는 자는 주도적 삶을 살 것이요. 학습하지 않는 자는 과거의 경력과 상관없이 힘든 하루를 살게 될 것이다.

 

 

 

오래 사는 게 걱정인 세상

어느 날 밥을 먹다가 갑자기 아내가 말했다.

"여보, 우리 여든일곱 살까지만 삽시다. 건강하게…."

뜬금없지만 아내의 말이 현실로 다가온다. 요즘은 현재 나이에 0.7을 곱해서 미래를 준비하라는 말이 설득력을 가진다. 50세가 되는 사람은 자신은 35세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의학기술 발달과 기대수명을 생각해볼 때 실제 나는 그보다 더 오래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공병호 박사는 평균수명 연장이 40대에게 가져다주는 위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평균수명이 70세에 못 미치던 산업화시대에는 50대 중반이나 60대 초반에 은퇴를 해 그럭저럭 인생의 후반기를 보내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평균수명은 놀라운 속도로 늘어가고 있는데 50대에 명예퇴직이라도 당하게 되면 그 이후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 우리 주변에는 화려한 직장생활을 끝으로 잊혀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은퇴 전에 얼마나 잘나가는 인생을 살았는지에 관계없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것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평균수명 연장은 특히 40대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불과 반세기 사이에 평균수명이 배로 늘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삶도 중요하지만 남은 인생을 어떻게 설계하고 마감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최근 의학 발달의 추세를 볼 때 체세포 연구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최대 120세까지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의학의 발달이 불치병을 앓는 환우나 가족에겐 희소식이지만, 노후 준비가 부족한 대다수 사람들에겐 반가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세상의 흐름을 반영하듯, 한국의 노인 자살률이 OECD 가입국 중 1위라는 사실은 정말 충격이다. 자녀에게 자립심과 독립심을 먼저 가르치지 않고 맹목적으로 희생하며 살아온 세대에게 그 결과가 너무나 충격적이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부모가 나중에 기댈 곳이라는고는 자식밖에 없다. 자식들이 생활비를 보전해주는 노인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노인가정은 외로움을 견디기가 힘들다. 주변 사람들의 싸늘한 눈총이 두렵기도 하거니와, 사는 것이 지긋지긋하여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하루에도 열두 명의 노인들이 세상을 등지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2008년 한국 직장인의 희망 정년은 57.7세인 데 반해 체감 정년은 49.8세다. 실제 평균 정년은 53세라고 하는데 이는 전체 근로자를 기준으로 산출한 수치이므로, 관리직의 평균 정년은 이보다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 앞에 선 40대의 하루하루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국내 대기업의 평균 정년이 40세를 조금 웃도는 것을 보면, 40대의 삶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험해 보인다. 또한 직장을 그만두고 나오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여의치 않다. 중견기업 이상을 다니다 퇴직한 40대에게 이전보다 나은 조건이 주어질 환경은 15퍼센트 정도전직 10퍼센트, 창업 5퍼센트에 그친다고 하니 강 건너 불 보듯 할 사안이 아니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 앞에서 40대의 가슴은 무너진다. 그렇게 죽어라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치고는 너무하다는 억울함까지 드는 것은 왜일까? 특별히 은퇴후에 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역량도 없고 자녀 교육과 부모 봉양 하느라 수중에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니 노후 준비 역시 제대로 된 것이 없는 현실 앞에 가끔씩 아니 자주 울고 싶은 것이 40대의 자화상이다.

재정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50세인 한국인에게 필요한 노후 자금은 4억 원 정도이며 좀더 여유 있는 생활을 바란다면 8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근거는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이 한 달에 200만 원최저 100만 원정도의 생활비를 쓴다고 가정하여 추상한 것이다. 당신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몇 억 원의 돈이 준비되어 있는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다른 대안이 있는가? 준비된 40대에겐 나이 든다는 것은 휴식과 추억을 나누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준비도 갖추지 못한 40대라면 어떤 모습으로 인생 후반기를 보내게 될까?

 

 

 

창조적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다

관리직으로 근무하던 40대가 조직을 떠나 맞이하는 세상은 신규프로젝트팀이 주도하는 세사이다. 40대가 오랜 시간 동안 조직 내에서 쌓아온 역량들이 자동화와 정보화로 인해 필요 없는 것이 되었다면 참 당황스러울 것이다. 지적산업의 아웃소싱 환경 또한 공급과잉으로 실력 있는 사람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컨설팅 분야의 경우 L그룹 출신들이 같은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안정의 시대에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았기에 조직생활에서 조금만 두각을 드러내도 장래가 보장되었다. 그러나 구조적 변혁기와 주기적 변혁기가 혼용되는 지금은 독립적이고 창조적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새로운 인재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성실함과 일상적인 업무경험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재창조하는 사람이다. 곧 창의적 인재가 되는 것이다. 창의적 인재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목표 발견형 인재를 의미한다. 창의적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아서는 곤란하다.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사람들 속에서 잠시 떨어져 외로운 시간을 견디는 훈련이 필요하다. 40대라면 창조적 단절 속에서 새로움을, 창조적 단절의 경험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재생산하여 자신의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도록 해야 한다.

아직도 안이한 40대는 외로움의 시간을 견디기보다는, 다수의 인맥을 통해 뭔가르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고유한 기술이나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지적 노하우를 갖지 못한 사람을 반겨줄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40대 이후의 구직자에게 300만원 이상의 월급을 줄 수 있는 고용주는 거의 없다. 월 100~200만 원을 주는 일자리만 넘쳐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미래학자 톰 피터스는 "앞으로 승자생존자는 사실상 나 주식회사의 CEO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기업이 제공해주는 안정으로 버티기엔 이제 40대의 미래가 너무 불투명하다. 몰입하지 못하고 직장을 다니는 사람에겐 기회가 줄어들고, 사장 마인드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에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맡은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사람은 누구나 나 주식회사의 CEO가 될 것이다.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로 바쁜 생활을 하는 40대이지만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내 하늘을 보자. 외로움을 견디는 훈련을 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기 그릇 밖의 세상을 보도록 하자.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

 

 

 

현재는 존재하지만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의 공식은 욕구와 성취 사이에서 결정된다. 행복=성취/욕구로 나타낼 수 있다. 첫째, 욕구가 상승하는 만큼 성취가 올라가면 사람들은 더 큰 행복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주로 자기계발 이론에서 강조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우리는 꼭 구분 지어야 할 것은 욕망과 욕구의 차이다. 욕망을 욕구로 잘못 이해할 때 우리는 행복해지기 힘들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항상 가지지 못한 것만을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하루는 욕구와 욕망 사이에서 늘 시소놀이를 한다.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욕구가 삶을 발전시키고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욕망은 다른 사람이나 사회현상을 통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 탐하게 되는 행복을 파괴하는 요소다.

인간의 3대 욕망은 탐욕, 식욕, 색욕성욕이다. 최영주의《세계의 교양을 읽는다》를 보면 욕망과 욕구를 다음과 같이 구분해놓았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적당량의 음식물, 휴식, 운동, 그리고 성관계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기본적 욕망은 욕구라고 불러야 옳다. … 욕망은 사회적인 것으로 욕망의 충족이 반드시 생존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욕구와 욕망은 부족함에서 발생한 심리의 몸이 음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있음에도 되도록이면 특정한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성향은 욕망의 차원에서 고찰될 수 있다. 욕망은 기본 욕구의 충족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을 요구할 때 생겨난다. 갖고 있는 것 이상을 바라고 가질 수 없는 것마저 갈구하는 것이 바로 욕망이며, 이것은 인간만의 특징이다."

또한 요죠 라르니쉬의 잠언집《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라》에는 욕망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모든 욕망은 건전치 못하다. 욕망 자체가 건전치 못한 것이다. 욕망은 미래에 사는 걸 뜻하는데, 미래는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모든 욕망을 버려야 한다. 욕망은 그래를 지금 '이곳'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욕망이란 내일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 그대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존재하지만,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있지도 않은 것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런 의미에서 욕구가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자 구체적인 것이라면, 욕망은 현재를  버리고 미래에서 답을 구하는 포괄적인 개념이자. 행복을 뒤로 미루는 다소 어리석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하루를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포괄적이고 닿을지 닿지 않을지도 모르는 욕망에 의지하는 것은 인간의 삶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고 행복을 앗아간다.

둘째, 성취가 떨어질수록 욕구를 끌어내리는 방법이다. 나는 두 번째 방법을 인생에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어쩌면 이 방법이 행복을 지키는 데 훨씬 나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욕구가 아닌 욕망에 빠져든 사람은 두 번째 방법을 실천하기 힘들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 부분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해준다. 가계수입이 100원에서 70원으로 줄어들면 간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이다. 예를 들어 가계수입이 100원일 때 바나나 우유를 사 먹었다면, 수입이 70원으로 줄어들면 좀더 싼값의 팩으로 된 바나나 우유를 사먹어야 한다는 논리다. 만이 아이 때 훈련을 해 두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 능력이 안 되는 데에도 카드로 긁다가 결국 파산하는 것이다.

우리 삶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아니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존엄한 존재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다른 사람이나 세상의 눈치를 보며 욕망 주위를 서성대는 것은 행복조차 파괴하는 경계해야 할 속성이다.

셋째, 욕구는 계속해서 상승하는데, 성취는 제자리에 머물거나 떨어지는 경우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세 번째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 같다. 사회는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세 번째를 강요하는 것 같다. TV나 신문, 잡지 광고를 보면 그것을 갖지 못하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 같은 감정을 들게 할 때가 많다. 어른들은 명품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아이들은 부모의 능력은 아랑곳하지 않고 뭐든지 사달라고 생떼를 부린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마케팅 전략에 우리는 해옥을 저당 잡힌 채 이용당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폭식증에 걸린 사람이 되어간다.

40대를 살고 있는 당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세 번째 방식으로 살게 될 때 사람들은 자기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비교한 자신의 모습을 통해 불행을 경험한다. 세 번째 방식이 되어서는 평생 행복 근처에도 닿지 못할 수 있다.

40대여! 이제 자신만을 위한 행복한 하루를 살자. 자신이 정한 행복 기준 속에서 욕망을 절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한 하루를 살 수 있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열심히 산다고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나친 관대함은 엄격함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그 관대함이 자기 통제를 벗어난 것이라면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변명거리만 제공해줄 뿐이다. 따라서 가끔 스스로에게 적당한 압박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도전하는 인생을 사는 데 장점이 될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의 말처럼 "스스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을 때, 우리는 스스로 변하라"는 도전을 받게 된다. 이때 스스로 변하라는 말은 시대 변화의 실체를 이해하고 자신의 관점을 새롭게 바꾸어보라는 의미이다. 변화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면, 불안의 실체도 알 수 없거니와 대안을 찾을 수도 없는 것이 40대가 해결해야 할 변화 혁신의 영역이다.

절대 성장시대를 오래 겪어온 40대에게 아마도 '노력'과 '열심히'는 가장 친숙한 단어일 것이다. 그래서 40대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학습된 그대로의 방식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물론 자녀나 후배, 심지어 주변 사람들에게 여전히 이 방식을 강요하기도 한다. '열심히'란 단어는 성실성의 측면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이지만, 40대는 성실성만으로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까닭에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40대 중반이라면 누구나 남은 인생과 새로운 도전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당신이 전직을 하거나, 창업을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절대성장 시대에 학습된 사고방식이다. 경영의 구루 찰스 핸디는 사람들의 이러한 상태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미 지나간 세상, 혹은 자기가 원하는 세상을 목표로 자신의 인생을 준비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개인에게 과거처럼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것은 부도덕한 짓이다. 그것이 드라마  학교든 요리학원이든 간에 말이다."

 

 

인류 발전을 연구해온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역사상 안정의 시기안정의 조건:연간 경제성장률 7~8퍼센트, 직장을 얻을 기회가 항상 있음, 조직 내에 유휴노동력 20퍼센트는 85년밖에 없었다고 한다. 인류의 황금기였던 르네상스시대 50년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60년대부터 1995년까지 35년이 안정의 시기에 해당한다. 안정의 조건 3가지를 우리나라에 적용해보자 1963년 1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이후 우리 경제는 1997년 IMF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평균 경제 성장률 8.3퍼센트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는 안정의 조건 첫 번째를 만족시킨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이 시기엔 열심히만 일해도 수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구멍가게로 시작한 회사는 문어발식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임금은 연간 10퍼센트 이상 지속적으로 상승했으며, 성장이 빠른 사업부에 배치된 사람은 직급 연령을 훨씬 앞당겨서 고속 승진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서른다섯 살에 현대건설 사장이 되었으니, 안정의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정말로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시절이다.

과거에는 실제로 용은 되지 못할지라도 대학 졸업장만으로도 성공할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온가족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공부를 많이 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인의 엄청난 교육열은 인구 대비 대학 졸업생의 비율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이 같은 인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전쟁 폐허와 국민소득 100달러도 되지 않는 빈국에서 50년 만에 세계 경제 10대 대국에 드는 나라로 신화를 일궈냈다. 1980년대 이후 학교를 졸업하고서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눈높이를 낮춘다면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주어졌다. 안정의 조건 두 번째를 만족시킨다.

이 시기에는 선진국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국가가 많지 않았다.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눠진 냉전체제는 전 세계적으로 중복투자를 낳았다. 품질이 조금 떨어져도 하위 시장을 장악해 성장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때 조직은 성장이 가속화되었기에 조직 안에 20퍼센트 유휴노동력요즘 용어로는 무임승차자라 함이 있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부분 회사에는 20퍼센트 유휴노동력이 존재했다. 안정의 조건 세 번째를 만족시킨다. 하지만 유휴노동력은 나중에 세계화가 가져다준 다운사이징과 리엔지니어링 열풍으로 조직에서 점점 자취를 감춘다.

40대의 위기는 여기서 출발한다. 지금 40대라면 직 · 간접적으로 안정의 시기를 거쳐 온 습관들이 몸에 남아있다. 조직 환경과 사회 여건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한 조직에서 계속 근무해 온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여전히 안정의 시대 방식 일부분을 직장에서 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40대가 조직을 떠나 맞이해야 할 세상은 세계화 시장이다. 바로 글로벌스탠더드Global Standard, 단일화 된 세계 시장에서 기준으로 통용되는 세계적 표준을 말함. 이하 GS라고 통칭 환경이다. 조직을 떠나는 40대는 새로운 시작을 GS에 맞춰야 한다. GS란 유리 상자 속에 모든 경쟁자들을 가둬두고서 누가 나은지를 선택하는 시장이다. 일부 국가의 유흥가에서 아직도 여인이 간택되는 것처럼 말이다. 냉전체제 때처럼 숨을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유휴노동력은 고사하고 철저히 비교가치에 따라 인간을 물건의 교환가치와 비슷하게 만들어버린다. 개인은 물론 조직과 국가까지도 그러하다. 그래서 대통령이나 정치인 그리고 정부가 끼치는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 책임을 대통령과 정치인에게 돌린다. 하지만 불안의 해답을 세계화나 GS가 아닌 대통령이나 정치인에게 돌린다 한들 해결되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이젠 인정해야 한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된 지금, 전직이나 창업 그리고 은퇴를 앞둔 40대는 개인이 연착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더욱 나빠져가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가 더욱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불안으 실체에 대해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은 더욱 문제다.

지식이 생산수단이 되는 지금의 시대는 GS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통용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가가 중요해졌다. 이는 곧 '열심히'로 통칭되는 성실성과 조직 내에서 익힌 경험만으로는 GS환경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당신은 무엇보다도 세계화란 실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세계화 실체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하지 않은 채 행하는 40대의 노력은 대부분 성과 없는 결과만 만들 것이다.

 

 

 

세계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지금 세계는 두 곳의 시장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첫 번째는 시장은 부가가치가 높은 선진국 시장이다. 10억미국 · 서유럽 선진국 6억, 기타 지역 선진시장 4억의 돈 많은 고객을 위해 기업과 국가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편 다른 시장에서는 생필품을 둘러싼 시장이다. 이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공급과잉으로 경쟁력이 없는 업체와 개인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있다. 이 시장은 점점 인건비가 나자은 곳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산업공동화를 만들어내고, 국가별로 높은 실업률과 인종갈등까지 빚어내고 있다.

이처럼 현재 전개되고 있는 세계화를 2차 세계화라 부른다. 1985년부터 미국 주도로 시작된 2차 세계화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련의 붕괴를 기점으로 가속화 되었다.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도 세계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하는 4대가 너무 적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강의를 할 때나 일상에서 '세계화의 본질'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그 실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의외로 적다는 사실에 놀란다.

현상과 본질은 다르다. 본질이 일으키는 여러 가지 갈등이나 혼란들이 곧 현상이다. 예를 들어 태풍의 눈이 본질이라면 폭우가 쏟아지거나 강풍이 불고 홍수로 이재민이 발생하는 것은 현상이다.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면,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미리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는 좀더 현명한 방법이다.

40대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질을 이해하고 좀더 큰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우선 눈앞에 전개된 현상을 보고 대응하려 하거나, 그 피해 앞에서 원인도 모른 채 공포를 느낀다. 이래서는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글로벌, 무한경쟁, 승자독식, 무경계, 하나의 시장'을 세계화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이 정말 세계화의 본질일까? 이는 단지 세계화를 정의한 것이거나 세계화로 인해 발생되는 현상일 뿐이다. 세계화란 국가와 지역 간에 존재하던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 정보 등에 대한 인위적 장벽이 제거되어 세계가 일종의 거대한 단일시장으로 통합되는 추세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세계화란 상품, 서비스, 자본 등의 국제적 이동을 촉진시키는 생산, 금융, 정보 등의 새로운 거대한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복잡한 경제학적 이론 배경보다 일반인들이 이해해야 하는 것은 거대한 조직을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곧 '주주자본주의'와 '아웃소싱과 역외조달'이다. 지금 세계화는 이 두 가지의 시스템을 주축으로 철저히 운용되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이해해야 할 세계화의 본질이다. 전 세계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계화 시스템 내에서 경쟁력을 강요당하는 아이러니에 처해 있다. 다음의 표애 나와 있듯이 세계화의 시스템은 5가지 구성원들에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적용된다.

 

 주체 역량  이동성  이동형태  세계화 적용 
 주주  돈  즉시  주식거래. M&A   주주자본주의
 경영자  능력  비교적 용이  임금 및 스톡옵션
 종업원  노동력/역량

 제한적

또는 어려움

 동종업종 이동,

재교육 후

새로운 분야 취업

 아웃소싱
 협력회사

 기술력/가격

/품질생산설비

 제한적

또는 어려움

 폐업, 매각, 새로운 납품처 개척

(국내 · 해외)

 역외조달
 개인  노동력/역량  극히 제한적  의식주 해결  아웃소싱

 

먼저 '주주자본주의'는 돈과 빠른 이동성을 무기로 정보화의 장점에 편승해서, 이익이 생긴다면 단 하루 만에 전 세계 어느 곳이라도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다. 이 세력들은 외환위기의 주범이 되기도 하고, 개별 국가의 경쟁력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그들은 자기가 투자한 곳에서 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나 몰라라 한 채 돈을 빼서 다시 이익이 높은 기업이나 국가에 투자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이미 론스타, 칼라일, 소버린을 비롯한 주주자본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사모펀드의 피해를 경험하였고 현재도 경험하고 있다. OECD 가입과 IMF의 처방은 한국경제를 주주자본주의 시스템에 빠르게 예속화시켰다. 세계화 찬성론자들은 이것을 경쟁력 높은 금융시스템이 정착되었다고 평가한다. 미국색 짙은 주주자본주의를 공부한 관료나 경제학자들이 대한민국의 세계화 경제 예속화에 기여를 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그들과 주주자본주의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세계화로 인한 폐해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심지어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2011년 7월 1일 기준 우리나라 증시에 상장된 시가총액 5대 기업의 외국인 주식 보유 비율울 보면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삼성전자 50.9퍼센트, 현대차 40.6퍼센트, 포스코 49.5퍼센트, 현대모비스44.8퍼센트, 현대중공업20.2퍼센트로 나타났다. 2010년 말 우리나라 주식시장 시가총액 10개 종목 중 외국자본 평균 투자 비중은 42퍼센트요, 주식시장 전체 외국자본의 비율은 32퍼센트 수준이다. 외국인 주식 보유 비율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한다면 이는 그 실체를 잘 모르는 것이다. 개방만이 살길이라며 외국자본을 유치하며 승승장구했던 두바이, 아일랜드, 그리스, 포르투칼의 몰락을 보라.

또한 주주자본주의는 '주가'와 '배당금'에 따라 돈이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이는 곧 주식에 투자하여 발생되는 매매 차익과 배당금 이익에 의해 주주들이 돈을 그 기업에 투자할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주주들은 경영자에게 장기적 투자보다는 단기적 이익을 강요하게 된다. 또한 주가가 떨어질 경우 자사주 매입을 당연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주가가 떨어질 경우 그들의 자신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그들은 주주총회를 소집해 경영자를 교체하거나, 또는 시장에서 주식을 팔고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를 한다. 따라서 최고경영자는 주식을 많이 가진 외국주주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일부 경영자들은 그들과 짜고 놓은 배당을 하면서 스톡옵션을 받아 자기 잇속을 챙기기도 한다. 외국인 주주들의 무리한 고배당 요구는 기업의 고유한 결정권인 경영권 간섭으로까지 이어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외국인들의 경영 간섭으로 애로를 겪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12,9퍼센트이며, 이 중 47.6퍼센트는 설비투자 대신 주주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문제는 자사주 소각이다. 자사주 소각은 먼저 유통주식수가 줄어들어 주당순이익이 증가하고 배당금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주식의 움직임이 주식시장에서 가벼운 효과가 있어 기업들이 주가관리 면에서 자주 이용하는 방법이다. 주주들에게 유리한 주고이지만, 기업 측면에서는 자본금이 감소하여 상대적으로 부채 비율이 높아지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2006~2007년까지 2년 동안 우리나라 대표적 기업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매입한 자사주 금액은 삼성전자가 3조 6천억 원, 포스코가 1조 8천억 원을 투자하였다. 우리 경제가 세계화 경제에 예속되기 전 기업의 유보자금은 미래를 위한 공격적 투자를 위한 총알 역할을 했다. 신규 사업은 고용창출로 이어진다. 그러나 주주자본주의 시대에는 유보자금이 주주들의 개인 주머니를 채우는 데 이용되기도 하고, 투자처를 찾지 못해 은행잔고에서 잠들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주주자본주의는 미래를 우한 사업 전개보다는 1년 단위의 결산을 하는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을 남기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 이런 이유로 주가 관리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많은 돈이 투입된다. 또한 배당금을 받을 목적으로 노후설비에 대해서도 신규투자가 일어나기 힘든 구조가 된다. 신규 사업은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는 것이며, 노후설비 교체 또한 순이익을 갉아먹는 것이기 때문에 주주들은 미래보다는 현재의 이익과 땜질 경영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주주자본주의의 본질이자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 하에서는 전임 경영자가 후임 경영자를 위해 토대를 닦아주고 떠나는 아름다운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측면에서 주주자본주의는 주주나 경영자에게는 아주 유리한 구조이지만 종업원과 협력회사, 개인, 국가 입장에서는 아주 불리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주는 극단적으로 자신의 돈을 정리해서 다른 곳에 투자하거나, 또는 대주주일 경우에는 M&A를 통해 회사를 매각할 수 있다. 아니면 폐업을 통해 일선에서 물러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경영자 또한 자기가 재임하는 기간 내에 종업원과 협력회사의 생존을 고려하지 않고 얼마든지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을 높여 높은 임금과 스톡옵션을 받을 수가 있다. 일부 경영자는 대주주들이 요구하는 대로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노후설비를 교체하지 않고 주가관리나 배당금을 많이 주어 그 자리에 오래 머물 수 있게 된다.

반면 주주자본주의 하에서 종업원과 협력회사, 그리고 개인의 입장을 보면 주주나 경영자와는 전혀 다르게 적용된다. 종업원들과 개인은 세계화 시스템 내에서 아웃소싱과 경쟁해야 하기에 점점 더 노동 강도가 심해진다. 하지만 종업원들이 힘들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콜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이 노동 강도가 너무 심해 일할 수 없다고 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중국동포가 많이 살고 있는 연변이나 다롄으로 콜센터를 이전할 수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실제 HP 같은 곳에선 이미 중국으로 콜센터 업무를 아웃소싱하였다. 한국에서 일하는 직원의 1/6 정도 임금을 주면 그들도 충분히 원격조정을 통해 고장난 HP 컴퓨터를 고칠 수 있다. 조선족 특유의 북한식 발음이 있지만 고객 불만을 처리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솔질히 나는 중국동포 190만 명이 우리 가까이 살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많다. 만약 그들이 할 수 있는 분야의 일이 아웃소싱된다면 우리나라의 실업자 문제는 어떻게 될까? 주주나 경영자가 수시로 아웃소싱을 무기로 종업원들을 협박하지 않을까 무섭다. 그런 점에서 변화경영전문가 구본형 소장의 지적은 우리에게 깊은 통찰력을 준다.

"개혁의 성공은 그러나 잉여 노동력의 감원을 수반한다. 기술 실업이 심한 곳은 생산 부분이다. 또한 서비스 분야라 하더라도 단순 반복적인 업무로 부가가치가 작은 직무는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거부하는 순간 당신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승자독식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기업의 실적 평가에서 단기적인 이익을 신장시키기 가장 좋은 방법이 인력의 구조조정이다. 그래서 외국자본은 투자 조건의 1순위로 항상 고용 유연성을 올려놓는다. 이로 인해 세계화는 종업원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계급으로 나누어놓고 말았다. 고용의 유연성을 위해서는 정규직 인원을 최소화하는 것이 주주나 경영자에게 아주 유리한 구조다. 기업이 어려운 상황을 맞거나 실적 개선이 필요한 경우 비정규직은 언제든지 구조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 또한 평생직장을 보장받지 못하고 아웃소싱의 위협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며 점점 더 노동 강도가 높아지는 환경에 노출된다.

이런 세계화 시스템에서 40대가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어떻게 될까? 전직의 기회나 창업의 기회는 제한되어 있다. 특히 자신이 근무하던 직종이 사양산업이라면 전혀 새로운 직업훈련을 받고 전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전직 프로그램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기업체가 전직교육을 담당하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고, 정부 지원으로 이뤄지는 무료교육은 그 활용 면에서 극히 의심스럽다. 실제로 그런 과정을 이수한 후 눈높이를 아주 낮춘 기술교육에서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직에 성공했다는 40대 이상을 나는 거의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실업자나 전직자를 담보로 해서 적은 예산으로 땜질식 예산낭비만 한다고 말해도 좋다. 정부 정책 담당자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직교육을 다시 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고용노동부, 지식경제부, 여성가족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각 부서별로 배당된 예산을 통합해야 한다. 적은 예산으로 성과를 내야 하니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적은 예산이니 성과를 내기 힘든 사람들이 투입될 것이고, 성과를 내기 힘든 사람에게서 배운 교육생들은 결국 전직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배우기만 하고 끝난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생색 내가, 소규모 단체들의 이익, 참여하는 강사들의 생계 해결 또는 부수입만 낳을 뿐이다. 이래서는 전직자 교육이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라는 예산 취지가 무색해진다.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속적으로 국민을 볼모로 쓸데없는 탁상행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이러한 이유로 준비되지 못한 40대는 안전판도 없는 사회로 내쳐지고 있다. 남의 일이라고 불구경만 하고 있을 노릇이 아니다.

또 협력회사 입장은 어떠한가? 협력회사는 세계화 시스템 아래 지속적으로 역외조달필요한 물자를 자기 나라 안에서 사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을 말함, 역외구매라고도 함과 경쟁하게 된다. 독자적 기술력을 가진 소수의 강소기업을 제외하면 대기업을 비롯한 수요처에서 역외조달과 비교당하면서 해마다 단가를 낮추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따라서 기술력이나 글로벌 마케팅 역량이 없는 중소기업들은 언제나 인건비가 싼 해외공장과 경쟁해야 한다. 이런 시대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역외조달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중소기업들이 하나둘 회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창업 여건에서 현재에 이른 창업 1세대 중소기업 사장들은 낮은 이익이나 원가 이하 생산이라는 구조 속에서 보람이나 기여 의식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나마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업체는 오래 전에 자가 공장 부지를 가진 업체거나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적자를 겨우 면하고 사장 자리라도 보장 받고 있는 회사인 경우가 많다. 공장을 임대해서 중소기업을 창업한 회사는 기술력이나 해외 마케팅으로 고급시장을 개척하지 못한다면 기업을 운영할 어떤 동기도 발견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이런 환경은 창사 이래 최대 흑자를 낸다는 대기업과 달리 3년 연속 적자를 내는 구조가 되었다. 안철수 교수는 그것을 빗대 '대기업 동물원'이라고 했다. 애플 등 선진국 기업들이 알아서 납품단가를 올려주는 것은 왜 그럴까?

이것이 조만간 조직을 떠나야 할 40대가 맞이한 위기의 실체다. 따라서 원론적으로 말하면 지금 40대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화 시스템을 넘어설 수 있는 경쟁력을 갖는 것이다. 그와 같은 경쟁력을 갖는 것이 용이한가? 스스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질문해볼 문제다. 당신은 지금 GS환경에서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세계화 옹호자들은 기회가 무척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기회라는 것이 대부분은 승자독식이다. 그런 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세시대 장원에서 끼니만 때우며 하루를 연명하던 농노 신세로 전락해가고 있다.

세계화는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 광범위하게 사회적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소수만을 위한 세계화라는 사실이 다 밝혀진 마당에, 세계화는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지금 벤담의 최대다수를 위한 최대행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승자독식 체제를 만들어놓고 사람들에게 노력하지 않아서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경제적 폭력이다.

나는 어떤 제도이든 간에 60퍼센트 정도의 사람은 대체로 살만하고 희망이 있는 세상이라고 여기는 시스템을 가진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20퍼센트 정도의 사람과 재기를 꿈꾸는 20퍼센트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 구조라면 괜찮을 듯하다. 소수만을 위하고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은 결국 다수의 요구에 의해 붕괴되었다는 사실을 역사는 우리에게 준엄하게 가르쳐준다. 그 변화의 날갯짓이 세계 곳곳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가 세계화를 벗어난 좀더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첫 번째 방식은 제2차 러다이트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산업혁명 초창기에 수공업 노동자들이 기계에게 빼앗긴 일자리를 돌려달라고 기계를 파괴한 것이 러다이트 운동이었다. 이제 전 세계 기업은 이익을 위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방식만을 고집해선 안 된다. 생산성을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을 자동화하는 것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피해를 입을 것이다. 모순이 많은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386세대가 정치 민주화를 위해 젊은 시절 시대적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경제적 민주화를 위해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왔다. 그것이 곧 2차 러다이트 운동이다. 2차 러다이트 운동은 1차 러다이트 운동처럼 폭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공감 아래 고속질주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브레이크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공무원이나 정부투자기관, 대기업 외엔 선택의 자유조차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큰아들에겐 물류회사를, 큰딸에겐 광고회사를, 작은아들에겐 카드회사를, 작은딸에겐 패션회사를 차려주어 다른 사람들에게 경쟁 진입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대기업의 싹쓸이 방식은 이젠 없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강조되는 동반성장, 상생경영이란 단어는 2차 러다이트 운동 측면에서 아주 작은 시발점이 될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인류가 예상하지 못하는 대재앙이 일어나는 것이다. 꿀벌의 전쟁 같은 것이다. 지금껏 인류는 먹고살기 힘들어질 때마다 대재앙이 있었다. 가장 잔혹한 전쟁도 있었고, 페스트 같은 무서운 질병도 있었다. 칭기즈칸이 유럽을 침공할 당시 쥐를 따라 이동한 페스트균은 당시 유럽 인구의 4분의 1인 2,600만 명을 살상했다. 지금 위협이 되는 질병 중 이만큼 가공할만한 것은 없다. 조류인플루엔자. 쓰나마. 지진 등으로 희생당하는 숫자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혹 생명경시로 여기는 오해는 없기 바란다. 만일 한 번이라도 세계화 때문에 힘들어 자살하는 사람들 숫자를 생각한다면 생명경시를 운운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최대 치사율을 기록할 수 있는 에이즈가 1억 8,500만 명 정도라 한다. 만일 다시 인류의 대재앙이 나타난다면 그 재앙 끝에 살아난 사람들은 지금보다는 먹고살기 위해 덜 고생해도 될 것이라 여겨진다. 그 대재앙은 종교분쟁으로 인한 제 3차 세계대전이 될지, 지구 대륙판의 강한 충돌로 엄청난 지진이 전 세계적으로 발발할 것인지즌 아무도 모른다. 나 역시 두 번째 방식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세계화 때문에 죽는 것이 더 낫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

세 번째 방식은 '느리게 살기와 자연으로 돌아가기' 운동을 국가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우리 인류는 1700년대만 하더라도 전 세계 인구의 98퍼센트가 농업에 종사했을 정도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자급자족 경제와 물물교환 경제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고 절대빈곤 상태를 받아들이면서 생활해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무한질주를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안타깝게도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젊은이들에겐 사회 진출의 꿈을 막아버리고 100만 실업자를 만들었다. 지금처럼 막연한 성공을 위해 달릴 것이 아니라 하루 1달러로 살기, 자급자족 사회로 돌아가기 등의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3막 인생 시대에 회사는 마지막 볼모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것은 소통하던 지인들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참석하고 있는 모임의 참석자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해관계를 떠나 충성도가 매우 높은 모임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문득 나를 돌아보았다.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진정 내가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40대 당신이 최근 몇 년 사이 새롭게 느낀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40대라면 '이모작 인생'이나 '인생의 2막'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모작 인생은 최재천 교수의 저서《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에서 출발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최재천 교수에 따르면 일모작과 이모작의 구분은 여성의 폐경기를 기준으로 그 이전을 일모작으로, 이후를 이모작이라 하였다. 한편 2막은 스태판M, 폴란과 마크 레빈이 지은《2막》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직장생활을 1막으로, 직장생활 이후 원하지 않는 인생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는 것을 '2막'으로 규정했다.

학자들의 구분이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통해 인생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충고를 얻을 수 있다. 현재 한국인 평균 은퇴연령이 53세이고, 한국인 남자 평균 기대수명이 76세2010년 기준이다. 이 통계만 보더라도 직장을 그만둔 후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남은 인생은 너무 길다. 게다가 대기업 관리직 평균 퇴직연령이 40세 전후라는 사실은 평균수명이 늘어만 가는 추세를 볼 때 남은 인생을 뭘 하며 살아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진다. 지금까지 40대가 오래도록 학습해온 것에 따르면 은퇴란 단어가 자유나 휴식이 되어야 하는데, 또 다른 생존의 의미로 다가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모작 인생과 2막을 좀더 세분화해서 3막으로 나눠 살표볼 필요가 있다. 나는 3막의 끝을 90세로 잡았다. 3막의 구분을 40대에게 적용하면, 먼저 1막을 보자, 1막은 출생 때부터 독립적으로 첫 직업을 갖게 될 때까지다. 1막은 학교 진학 정도에 따라 개인 차이가 존재한다. 만약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20대 초반까지가 1막일 것이고,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30대 전후가 될 것이다.

다음이 2막이다. 2막은 독립된 생활을 시작한 시기를 기점으로 완전히 직장에서 은퇴하는 시기까지다. 2막에서 개인간 차이가 심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다음 4가지 경우에 따라 격차를 보일 수 있다.

A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3세에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현재 48세로 비리에 연루되지 않는 한 60세까지 공직생활을 할 수 있으며, 퇴직 후에는 퇴직연금과 공무원연금을 받아 3막 인생을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 A의 1막은 23세깢, 2막은 24~60세까지다. 3막은 61~90세까지로 30년이다. 따라서 A에게는 퇴직 후 30년간 무엇을 하고 살지 준비하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A의 경우 2막과 3막의 기간은 유동적이며 선택이 비교적 자유롭다. 퇴직 후 담당업무와 연결해서 5년 정도는 직장생활을 연장할 수도 있다. 또한 재능기부를 통해 75세까지는 사회활동을 연장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3막으로 보낼 시간은 15년만 남는다. 그 15년도 연금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B는 공고를 졸업해서 20세에 기술직 생산직군으로 입사를 해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그는 지금 49세지만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이라 회사가 폐업하지 않는 한 59세의 정년을 보장받고 있다. 결혼을 일찍하여 두 아이가 이미 대학을 졸업해 취업을 했기 때문에 결혼비용 외에는 특별히 자식에게 들어가는 돈이 없다. 우리사주로 받은 주식을 팔아 돈을 좀 모았고, 그것을 다시 부동산에 투자해 놓았기에 노후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다. 또한 시골이 고향이고 장남이기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집과 땅이 있어 언제든지 시골로 돌아갈 수 있는 형편이다. B의 1막은 20세까지, 2막은 21~59세까지다. 3막은 60~90세까지로 31년이다. 따라서 B에게는 퇴직 후 31년간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준비하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B의 경우 퇴직 후 친구가 운영하는 중소기업에 기술자문으로 취직이 가능하다. 그러면 2막의 기간이 10년쯤 늘어날 것이고, 지금 추세대로라면 직급정년이 연장될 수도 있기에 비교적 은퇴 후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아니 시골로 돌아가서 아내와 농사 지으며 살아도 된다. 따라서 B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미래를 갖고 있다.

C는 대학을 졸업하고 28세에 대기업에 취업을 한 44세의 직장인이다. 그는 결혼이 늦어져 중학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다. 부모에게 받은 재산 없이 혼자 벌어서 가정을 꾸려왔기에 은행대출을 받아 서울 근교 신도시에서 34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현재 차장으로 근무하는 그는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한다면 50대초반에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처지다. 현재 노후 대비는 개인연금에 가입해놓은 것이 전부다. C의 1막은 28세까, 2막은 29~52세까지다. C가 전직이 불가능하다고 할 경우 C에게 3막은 53~90세가지로 38년이다. 따라서 C에게는 퇴직 후 38년을 준비하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C의 경우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으로 전직이 가능하다. 또는 전문분야를 살려 지적산업에 종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2막의 연장은 대기업 생활에 비해 훨씬 더 힘든 생활이 될 것이다. 그리고 2막의 연장 기간이 얼마나 될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A, B에 비해 훨씬 선택의 폭이 좁고, 감당해야 할 3막이 길다.

마지막으로 D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26세에 중견기업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한 47세의 직장인이다. 그는 지방 중소도시에서 32평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내는 현재 대형 유통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자녀을 둘 두고 있다. 현재 그는 1차 밴드 업체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 그가 다니는 회사는 중견기업이 부도난 이후 세 번째로 전직한 회사다. 전직을 여러 번 하다 보니 노후를 위해 준비해둔 것은 월 20만 원씩 드는 개인연금이 전부다. 아직 갚아야 할 은행 대출금도 1억이나 남았다. D의 1막은 26세까지, D의 2막은 27~53세까지다. 전직이 불가능할 경우 3막은 54~90세까지로 37년이다. 따라서 D에게는 퇴직 후 37년을 준비하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D 또한 전직을 통해 2막 연장이 가능하다. D의 경우 전직을 했을 경우 몇 살까지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 길어야 50대 후반이다. A, B에 비해 훨씬 선택의 폭이 줄어들고, 힘겨운 3막이 기다리고 있다.

 

 

위에서 예로 든 A, B, C, D 사례를 통해 그들의 2막과 3막을 비교하고, 당신의 2막과 3막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하지만 더 큰 문제는 A, B, C, D에 속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들 외에 어떤 40대가 있을까? 이미 사업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소수의 E가 있을 것이다. 또는 비정규직대리운전기사, 택시기사, 퀵 서비스기사, 3차 밴트 이하 중소기업에서 일당직으로 근무하는 근로자, 경비원, 택배회사 직원, 대형유통업체 일당직 등으로 근무하는 F가 있을 것이다. 그 다름으로 나처럼 전문직강사, 컨설턴트, 부동산 컨설턴트, 금융 컨설턴트, 학원 종사자 등에 종사하는 G가 있다. 그 외에도 뚜렷한 일자리 없이 일자리를 찾고 있는 H도 있을 수 있다.

결국 A, B, E 사례처럼 은퇴 후 선택이 어느 정도 자유로운 40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나이를 불문하고서라도 경제활동인구 2,500만 명 중 미래가 어느정도 예측 가능한 사람은 공무원과 준공무원 150만 명, 정년 보호를 받고 있는 근로자 50만 명, 상류층 3퍼센트 등 고작 11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C, D, G의 경우 선택의 폭은 줄어들지만 나름대로 현명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농업이나 어업을 선택해서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건강하고 욕심만 조금 버리면 은퇴 시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G와 H다. 비정규직 취업자가 거의 900만에 육박한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걷는 형국이다. 이런 현실에서 40대에게 미래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3막은 직업을 구하고자 하나 사회로부터 취업 기회를 완전히 상실한 이후부터 죽는 날까지다. 따라서 어떤 2막을 선택했든 40대는 특정한 시기에는 은퇴를 해야 한다. 여기서 은퇴란 도시생활에서 '경제적으로 최저임금 이하를 벌어들이는 시기'로 규정해보자. 그 이후의 삶이 곧 40대들에겐 3막의 삶이다. 2050년 한국인 평균수명이 83.5세인 것을 감안하면 40대는 85세 전후까지 은퇴 후 삶을 꾸려가야 한다. 이런 이유로 3막은 이 시대를 사는 40대에게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긴 시간이 되었다. 개인마다 그 차이는 현격하게 다를 수 있다. 그 현격한 차이는 40대의 미래 행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지식사회가 가속화 될수록 학벌을 내세우거나 조직에서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점차 줄어든다. 게다가 개인 창업의 여건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지방의 중소도시에서도 자본금 5억 원을 가지고 한 달에 400만 원의 수익을 내기가 힘들다는 것이 이 시대 40대가 맞이해야 할 안타까운 현실이다.

따라서 40대 중 도시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먼 2막의 기간을 최대한 늘리고, 3막의 기간을 최대한 짧게 만드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언제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40대의 현실이다. 거시적으로 세계화로 인해 발생되는 것이 많지만, 개별적으로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따지기엔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규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40대에 접어든 사람이나 40대에 접어들 사람들은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자신에게 적합한 2막과 3막 인생을 준비하는 지혜가 더욱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40대에게 3막 인생의 준비는 지금의 직장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최대한 지금의 직장엣 버티는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좀더 나은 직장에서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 그리고 직장 근무 기간을 최대한 늘리는 것, 이런 것들이 40대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창업은 어쩌면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최후까지 미루면서 준비하고 또 준비한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런 면에서 회사생활은 가족의 행복을 보장해주고 개인의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최고의 수련장임에 틀림없다.

40대에겐 인생 3막을 준비하고 남은 인생의 조화로운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관점에서 인생을 재설계해야 할 필요성과 연관된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보다는 자신이 원하고 행복한 관점에서 성공과 행복의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적 요청이 된 것이다.

 

 

 

속도경쟁의 시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처음에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는 빨리 적응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무엇인가에 익숙해지고 잘하게 되는 순간 위기가 찾아온다. 익숙해지면 새로운 것을 거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무료함과 습관적 안도감, 미래에 대한 낙관이 생각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파묻혀 가야할 길의 방향감각을 잃고 만다. 스스로 인생의 등대를 찾던 전투력과 도전정신은 없어지고, 다른 사람이 안내해준 길을 따라가려고만 한다. 가끔 랜턴을 빌려 길을 찾지만, 돌아서면 그 길을 또 잊어버린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 후 내가 줄곧 느끼는 심정이다.

이전에 살았던 도시를 찾아갔는데, 도시 계획으로 추억의 장소가 사라진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40대가 앞으로 살아야 할 미래는 이처럼 당신이 그동안 애써 준비한 것들이 쓸모없어져 버리는 낯선 세상일지 모른다. 속도경쟁은 세계화가 낳은 시대의 산물이다. 정보통신의 급속한 발달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속도경쟁의 흐름을 놓치고 1~2년만 지나도 외계인 취급을 받기 일쑤다. 과거의 경험과 역량의 효용성을 빠르게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속도경쟁의 시대에는 변신을 잘하는 사람이 유능하고 경쟁력 있는 인재로 인정 받는다. 이런 시대에는 환경 변이에 민감한 카멜레온형이 제격이다. 자기 꼬리를 갉아먹는 줄도 모르고 몇 시간을 보내는 공룡형은 몰락 1순위이다. 또한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싫어하고 남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는 식으로 사는 불나방형도 낙오자가 되기에 알맞은 조건이다. 시대마다 그에 적합한 유형이 있는 법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속도경쟁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신도시가 계속 생겨나는 수도권과 일부 지방도시를 보면 강산은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 변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속도전이라면 10년 후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두렵기만 하다. 나는 1990년대 초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그의 3대 저작에서 말한 예언을 믿지 않다가 큰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 정보화, 환경, 바이오산업의 발전을 예견하고 주식투자를 하라는 고견을 무시한 채 미국 MBA 출신의 저명한 학자 말을 믿다가 깡통계좌를 찬 적이 있다.

세상의 시스템과 주류상품이 진화하고, 인기 있는 직업군과 사회적 효용성이 높은 전공이 진화하듯 40대도 시대의 변화 속도에 맞춰 진화를 거듭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산다. 속도경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수동적인 사람에겐 매우 고통스럽지만, 적극적인 사람에겐 기회의 세상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청신호이다. 속도경쟁의 장점은 세상의 주도 세력이 빈번하게 교체된다는 것이다. 신분제를 무너뜨리는 데 수천 년이 걸린 것에 비한다면, 속도경쟁 시대는 누구나 최하층에서 최상층으로 수직 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노숙자 출신 CEO가 탄생하고 대학생 벤처 기업가가 생기는 것은 이런 속도경쟁이 반영된 현상이다. 40대 대부분의 특성이 수동적인 점을 감안하면, 속도전의 기회들은 40대에게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인지도 모른다.

어떤 관점으로 속도경쟁을 보느냐에 따라 40대 이후의 삶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당신은 어떤 관점으로 속도경쟁을 볼 것인가? 위험인가? 기회인가? 위험으로 보는 40대라면 마땅히 경쟁을 피하고 슬로라이프를 설계하는 것이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될 것이요, 기회라고 보는 40대라면 속도경쟁에 따른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면 된다. 2003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기업의 평균수명은 29년이었다. 하지만 2004년에 발표된 기업수명은 15년이다. 예측할 수 없은 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그 예측 기간이 점점 짧아질 때 삶은 불안을 넘어 공포가 된다. 속도경쟁의 시대를 사는 40대는 큰 철학으로 세상을 준비하는 것이 속도를 따라 잡으려고 힘들어 하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학원이나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학위를 취득하고자 하느 40대가 많다. 하지만 당신이 취득한 학위가 40대 이후의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이미 학력 인플레 문제가 심각해졌다. 최근 서울대 박사과정을 이수한 50퍼센트 정도가 월 80만 원 이하의 월급을 받는 환경에서 근무한다고 한다. 2009년 한 해에 석 · 박사를 포함해 대학원을 졸업하는 인원이 국내에만 8만 6천 명 정도였다. 해외 유학파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이들 중 몇 퍼센트가 졸업장으로 더 나은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까? 이제는 배우는 데도 새로운 전략과 역발상이 필요해졌다. 남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는 본전 건지기도 힘든 세상이다.

40대라면 냉정하게 기대비용을 따져보는 현명함이 필욯다.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학벌 지상주의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현업에 필요하고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문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박사학위를 따면 가문의 영광이 되던 시절에는 학위만으로도 보장 받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40대에게 이미 취득한 학위나 취득을 앞둔 학위가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는 학위가 아닌 시장의 요구가 결정한다는 객관적인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 시대는 학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뭘 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누구나 쉽게 하는 방식으로 미래의 생존전략을 짜는 것은 40대를 더 힘들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배우는 것이 분명 삶에 도움이 되지만, 그 배움으로 인해 더 깊은 감옥에 갇혀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어쩌면 세상은 그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험난할 수 있다. 초등학교 동창 중 소규모 중소기업을 하는 친구와 식당을 하는 친구를 자주 만나는 편이다. 나는 그들을 통해 배운 사람에게서 볼 수 없는 것들을 배운다. 그들에겐 학위는 없지만 인생을 잘 살아가는 지혜가 있다. 왜 배웠는가? 그리고 왜 더 배우려 하는가? 배움에 지친 40대가 한 번쯤 미래를 위해 던져야 할 질문이다.

큰 철학으로 가라, 꿈이나 목표보다 더욱 강력한 원동력을 찾아라. 그것이 큰 철학이자 그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이유다.

 

 

 

불만과 갈등만 늘어가는 냉혹한 현실

● 21세기 삶이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편해졌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 복잡한 문명의 이기를 습득하지 못하면 오히려 불편함과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더구나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미래를 읽는 기술이 필요하다.  -  피터 슈워츠 《미래를 읽는 기술》

 

 

불만이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다면 이는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정확한 목표점이 없거나 세상과 다른 사람의 기준을 맞추는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새로운 사회체제나 제도의 요구에 반응하도록 길들여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기존 체제에 익숙해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변화는 늘 익숙한 것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 손에 익어서 쓸만하면 폐기해야 하고, 상황에 익숙해져서 노력을 덜 들여도 되겠다 싶으면 새로운 위기가 덮쳐온다. 메가트랜드 시대에는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이런 시대 상황들은 40대의 삶을 통째로 뒤흔든다. 미래학자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일 접하는 매스컴을 통해 변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배워야 할 새로운 분야가 얼마나 많이 추가 되는지를 잘 안다. 기업 환경이나 사회 환경은 어제 내게 익숙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나간 정보의 가치는 현저히 떨어지고, 불과 몇 개월 전에 공부했던 정보화 관련 기술서적은 이미 쓸모없는 자료가 되어버렸다. 얼마 전 시작한 대학원 공부가 미래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확신할 수도 없다. 지금 다니는 기업의 수명이 얼마나 될지도 불투명하고, 나의 직장생활 유효기간도 가늠하기 힘들어졌다.

이런 소란들을 접할 때 사람들은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한다. 하나는 변화를 쫓기 위해 몸과 정신이 피곤할 정도로 열심히 사는 것이고, 또 하나는 흐름을 감지하되 필요한 것들만 취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급변하는 디지털 기기들이나 정보화의 혜택들이 40대의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절실한 것인가에 대해 당신은 의심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를 비록산 소셜 네트워크가 실제 관계 형성과 브랜드 상승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측정해본 적이 있는가? 스마트폰, 태블릿 PC나 클라우딩 컴퓨터의 활용이 40대의 삶과 은퇴 후의 삶에 얼마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순기능을 아무리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편으로는 그 도구들은 시간도둑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스스로 통제를 가할 필요가 있다.

하바드 의대에서 주의력결핍장애를 오랫동안 연구한 에드워드 M. 할로웰박사는 정보의 바다에 빠져 혼란을 겪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특징을《창조적 단절》이란 책에서 다루고 있다. 그는 과잉 정보를 조절하지 못하고 미치도록 바쁜 상태에 놓여 있는 현대인의 두 가지 증상을 설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첫 번째가 정보 중독증이다.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당장 알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이 병은 이메일을 수시로 확인하고 주가 변동, 최신 뉴스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특히 TV나 모니터 등 영상매체에 빠져들게 되면 목적 없이 리모컨을 계속 돌리거나 클릭을 멈추지 못하는 스크린서킹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정보 중독은 과잉 정보를 부르고 뇌는 과부하에 걸려 실수를 연발하게 되는데, 이때 현대인은 과거와는 또 다른 기가톤급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멀티태스킹형 주의력결핍증이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한 가지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해 새로운 자극을 찾아 딴짓을 하는 증상을 보인다. 공 두 개로 테니스 경기를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멀티태스킹은 어느 것도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바쁘기만 할 뿐 성과 없는 하루를 보내게 한다. 이 역시 과잉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다중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숙명에서 발생하는 질병이라고 한다.

혹시 당신은 이 두 가지 증상 중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기업의 업무 성과나 은퇴 이후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40대에게 창조적 단절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문명의 발전은 인류에게 편리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개인의 삶에 도움이 되기보다 마케팅 업자나 새로운 기술을 창업한 사람들의 부를 늘려주는 방식으로 끝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들에 의해 우리는 이처럼 빠른 세상과 문화에 길들여져서 갈수록 더 빠르고 짜릿한 것을 찾는다. 그래야만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지루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리는 것을 싫어하는 40대라면 집안에 있는 서랍을 한 번 열어보라. 그곳에는 그 당시 사용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질 것 같아 무리해서 큰돈을 주고 산 많은 물건들이 잔뜩 들어있을 것이다. 그 물건을 보고 자신과 한 번 대화할 시간을가져보라. 그 기기를 사지 않았다면, 그 기기의 사용방법을 몰랐다면 당신이 큰 위기에 빠졌을까? 아니면 그 기기들을 사용함으로써 남들과 차별화 할 수 있는 만큼 역량이 높았는가?

혼란한 세상을 사는 40대에게 자신을 향한 질문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0년 후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20년 후에는 어떤 직업이 중심에 설까? 체세포 연구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인간의 평균수명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까? 여성들의 주류사회 진출이 계속 증가하면서 20년 후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청소년의 왕성한 구매력의 한계는 어디이고, 그들이 원하는 기성세대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노인 인구의 증가가 개인의 소비에 미치는 패턴은 어떻게 변해 가는가? 최종적으로 이런 변화들이 당신의 은퇴 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와 같은 질문을 무수히 던지고, 그 대답을 찾아가는 작업이 변화의 트랜드를 읽는 것이자 당신이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이다. 이처럼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평소 자신의 관점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해보면 변화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 미래 세상을 지배할 트랜드를 예상하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우리의 생활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따라서 변화의 트랜드를 읽는 것은 불만과 갈등을 줄이는 40대의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역량이다.

 

 

다음의 3가지 방법이 불만과 갈등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첫 번째는 현재와 비슷하지만 점진적으로 발전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현재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현재와 전혀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을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다. 이 세가지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을 통해 당신은 은퇴 후의 삶을 현명하게 준비할 수 있다. 이런 노력들은 막연함으로 불만과 갈등이 쌓여가는 하루를 희망과 긍정의 미래로 바꿀 수 있게끔 한다. 40대라면 언제나 개인의 미래나 조직의 미래, 그리고 사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곧 트랜드를 이해하는 작업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내리는 매 순간의 결정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변화를 다루는 것이 현재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영역으로 잘못 이해하거나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선택은 개인이 날마다 내린 결정의 합이다. 변화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역량은 그 사람의 지금뿐만 아니라 미래에 어떤 자리에 있을지를 가늠해보는 일이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40대의 앞날에는 여전히 크나큰 불확실성이 놓여 있다. 따라서 당신은 3가지 방법을 동시에 연구해서 은퇴 후의 삶이 예측 가능한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찰스 다윈은《종의 기원》에서 "강하고 영리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민감한 것이 살아남는다"라고 했다. 자연계의 생물도 안테나를 세우고 주변 환경이 변하면 즉각적으로 변신해 생존하는데, 40대를 사는 당신은 현재 어떤 반응을 보이면서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해 고통을 느끼는 이유는 개인이 알고 있는 지식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가와 지혜와 통찰력이 되어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분명 다른 영역에 속한다. 알고 있는 바보는 많지만, 행동하는 바보는 적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변화 불감증은 결국 실행하지 못하는 지식이 자신을 이끌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앎이요, 안다는 것은 무지한 자신을 알기 위한 과정이다"라고 했다.

 

 

한창 일할 때인 40대가 직장을 떠난 이후의 삶을 심각하게 고민해보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불만과 갈등이 쌓여가는 삶을 피하지 않고 맞서야 하는 이유는 결국 불안의 실체에 접근해서 좀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서다. 따라서 40대에겐 아래 4단계로 나아가는 변화 주도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1단계 : 최대공약수 찾기

현재 변화의 주도성을 방해하는 습관과 환경의 문제점들을 알아보고, 눈앞에 닥친 변화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찾아낸다.

 

2단계 : 두려움 극복

당신은 오랫동안 안정의 시대에 태어나 혜택을 누리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안정 패러다임이 변화의 족쇄가 되고 있다. 안정이라는 모토 아래서 누리던 기득권과 안일함은 이제 역사 속으로 보내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안정에 대한 경험은 변화의 시대에 가장 나쁜 적이다.

 

3단계 : 행동을 통한 적응

일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최대공약수를 행해 행동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물론 고통은 따르겠지만 당신이 예전에 몰랐던 놀라운 능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공이 튀는 방향을 알 수 없듯 학습된 무능을 버리고 예측 불가능한 것에서 새로운 경험을 축적해야 당신의 삶이 한 단계 올라간다.

 

4단계 : 변화에 앞서가기

기존의 가치를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생활을 통제할 수 있으면 모호성과 복잡다변성을 정복할 수 있다. 마라톤에서 한계 상황을 넘어서면 편하게 달릴 수 있는 것처럼 변화의 산을 몇 개 넘고 나면 경험을 통해 핵심 역량이 더 강화된 새로운 당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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