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

나답게 행복해지는 길!

오키Oki 2012. 9. 12. 18:22

 

 

 

 

 

 

 딸들아!

시골은 서점이 없어 새책이 궁금한 엄마 아빠한테

최고로 따끈따끈한 신간을 엄마 아빠도 맘에 드실거라며

아빠 생신 선물로 받았놓고선 청명한 가을에야 다 읽었구나.

(그동안 도서관에서 빌린 책 읽었고 한여름엔 돌, 흙일 하느라

3주 동안은 책에서 완전 손 놓고 지냈었지롱. ㅎㅎㅎ)

이 좋은 책을 엄마 아빠만 알아서도 안 되겠는데 어쩌지?

추석 연휴때 울딸들도『윤리지능』읽어보라고 권하고 싶구나.^^

 

  사랑해  보고파  뿌잉

 

 

 

 

- 브루스 와인스타인 지음 윤리지능에서 -

불안한 시대를 현명하게 사는 삶의 원칙

 

 

지은이 브루스 와인스타인

세계적인 윤리전문가. 미국에서 이른바 'The Ethics Guy'로 불릴 만큼 윤리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스위스모어 대학에서 철학으로 석사학위를 , 조지타운대학에서 철학과 생명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가치관이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현명한 선택과 행동을 하게 해주는 윤리지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저자는, 단 한 사람이라도 더 후회 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썼다.

 

 

원칙이 흔들릴 때,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어떻게 살지 답답할 때,

윤리지능이 답이다!

 

윤리지능이 높은 사람은

나를 지키면서도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나답게 행복해지는 길!

 

 

 

다음은 윤리지능의 다섯 가지 원칙이다.

제1원칙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

제2원칙 상황을 개선하라.

제3원칙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

제4원칙 공정하라.

제5원칙 사랑하라.

 

이들 원칙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 당신은 이미 이 원칙들을 알고 있다.
  • 이 원칙들은 종교적 전통과 일반 사회의 기반이다.
  • 이 원칙들을 지키며 사는 것은 대단히 힘들다.

당신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이 원칙들을 지키라는 말을 숱하게 들으며 자랐을 것이다. 또한 이들 원칙은 사회생활을 위한 각종 모임이나 단체의 거의 모든 활동 지침에 포함된다. 다시 말해 이 다섯 가지 원칙은 단순히 어린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제프르 모세가 자신이 저술한《일체성: 모든 종교가 공유하는 대원칙들》에서 설명하듯 이러한 원칙은 동서양을 떠나 모든 종교적 전통의 기반이다. 만약 이들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회나 문화권이 존재한다면? 아,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가령 우리 사회에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는 제1원칙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당신은 집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울 것이다.

우리는 다섯 가지 원칙을 통해 하나의 국가 혹은 종교 아래 뭉친다. 현재의 모든 인간관계는 물론 앞으로 맺게 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들 원칙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중요성을 잊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 그런 행동이 누군가에게 도움은커녕 상처를 주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지금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중이라고 해보자. 그런데 갑자기 뒤따라오던 운전자가 연신 전조등을 깜박이고 경적을 울려대며 빨리 가라고 성화를 부린다. 당신은 이미 제한속도에 육박하는 속도로 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추월차로에 있지도 않다.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 당신은 뒤를 바짝 쫓는 운전자의 행동을 그냥 무시한다. 당신은 분명 잘못한 일이 없다. 그럼에도 뒤차의 운전자는 차로를 바꿔 옆으로 바짝 붙더니 창문을 열고 상스러운 제스처와 함께 욕설을 퍼붓는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은 화가 나서 똑같은 제스처로 응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아예 차를 세우고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이고 싶을 수도 있다. 만약 그런 행동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십중팔구 당신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 기분이 나빠진다.
  • 상대편 운전자의 기분도 나빠진다.
  • 당신을 비롯해 주변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에 이를 위험성이 커진다.
  • 경찰관의 단속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 누군가가(특히 당신의 아이가) 차에 함께 타고 있을 경우, 힘든 상황에 대처하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 놓였을 때 상대방의 무례한 태도에 똑같이 응수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실제로 충동에 휘말려 맞대응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충동을 이해하는 것'과 '충동에 따른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고속도로에서 자신이 당한 만큼 보복하는 행동은 개인뿐 아니라 모든 관계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여기서 모든 관계자에는 두 사람과 아무런 관련 없이 그저 안전하게 여행하고자 하는 주변의 운전자도 포함된다. 당신은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상황을 악화시킬지도 모를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옳지 않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충동을 억제하면 설령 다혈질 운전자를 진정시킬 수 없을지라도 그 운전자와 당신 자신, 동승자, 주변 운전자에게 해를 입힐 위험은 피할 수 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는 제1원칙은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을 알려준다.

 

사실 다섯 가지 원칙은 우리의 인생에 필요한 훌륭한 지침을 제공한다. 이들 원칙은 법률적, 경제적, 심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윤리적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나아가 내가 이름 붙인 이른바 '윤리지능'의 핵심을 이룬다.

이 책은 당신이 평소에 이러한 원칙을 익히고 터득함으로써 윤리지능을 높이는 밥을 알려준다. 윤리지능 수준을 높이면 직장이나 개인생활에서 올바른 결정 및 판단을 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 또한 일과 인생에서 정확한 선택을 하고 타인에게 존경받는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윤리지능'이라는 말 자체에 어색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의 습관대로 이것을 다른 개념과 비교해서 살펴보자. 윤리지능과 이웃한 개념인 감성지능과 비교해보면 윤리지능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윤리지능과 감성지능

1995년 심리학자 과학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대니얼 골먼은《EQ 감성지능》을 출간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과 감정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런 까닭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인 감성지능이 등장한 것이다. 골먼은 이 개념을 설명하며 직업적, 개인적 성공에 감성지능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당신과 내가 잘 아는 사이인데 어느 날 가볍게 차를 한잔 마시기 위해 만났다고 해보자. 당신은 내게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고 나는 별일 없다고 대답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나는 은연중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암시하는 여러 징후를 드러낸다. 평소와 달리 당신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내 목소리는 유난히 가라앉아 있다. 나답지 않게 잘 웃지도 않는다. 더구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어딘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이러한 징후를 감지해 별일 없다는 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는 능력이 바로 감성지능이다. 감성지능 수준이 낮은 사람(혹은 아예 감성지능이 없는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내게 뭔가 이상한 점이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만약 감성지능을 갖춘 당신이 내게 문제가 있음을 감지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나을까? 이런 질문에 명확히 어떤 답을 찾아내는 것은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다.

함께 차를 마시는 동안 당신이 내게 발생한 일과 관련해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했을 경우, 나중에 전화나 이메일로 알아보는 것이 적절할까? 그냥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얘기하고 싶을 때 털어놓겠지' 하는 생각으로 신경 쓰지 않는 게 더 나을까?

감성지능은 이러한 의문 앞에서 당신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으며 알려줄 수도 없다. 감성지능은 심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행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윤리적인 문제다. 따라서 올곧은 인성에는 감성지능뿐 아니라 윤리지능도 필요하다.

 

 

사생활에서의 윤리지능

스마트폰과 어리석은 선택

기술은 윤리적으로 똑똑한 것도 아니고 명백하게 비윤리적인 것도 아니다. 기술에 자율적인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물건이나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좋은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고 그것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다. 아니면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 선택은어디까지나 사용자의 몫이다.

우리는 날마다 그것을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을 이용하면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한 친구들과 연락이 닿을 수도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나와 같은 반이던 한 친구는 페이스북을 통해 내게 연락을 취했고, 우리가 많이 따랐던 선생님이 잘 지내신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페이스북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렇게 기쁜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로 어떤 작업을 하려고 할 때 페이스북은 금세 주의를 흩뜨리는 훼방꾼이 되기도 한다. 탭을 클릭해 무언가를 올리거나 친구에게 메세지를 보내는 것, 사람들이 최근에 올려놓은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너무 쉽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페이스북의 잘못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가치 있고 필요한 일에서 사소한 일로 관심의 초점을 옮기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지 못할 뿐이다.

 

변호사 포리스트 잭슨 브라운맨은 시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해서 처리한다. 문자메세지, 이메일, 전화, 인터넷을 가까이 하다 보니 두 가지 일을 혼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내가 아는 한 은행 간부는 직원회의 때마다 상사가 주의를 집중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 상사는 직원들에게 브리핑을 하면서 이메일을 읽거나 쓰고 전화 통화를 한다. 그 간부의 불만을 들어보자.

"상사가 우리에게 지시한 업무와 관련해 질문을 하면 엉뚱한 대답을 하기 일쑵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너무 몰두해 있기 때문이죠. 할 수 없이 질문을 두세 차례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데 남들보다 세 배나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훌륭한 관리자는 멀티태스킹이 일을 제대로 해내는 능력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한다. 당신 자신이 이것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멀티태스킹의 충동을 떨쳐내라고 요구할 수 없다. 가령 부하직원이 일에 집중하지 않고 전화 통화에만 매달린다면 짜증이 날 것이다. 역으로 당신이 부서 직원들과 함께 일할 때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괜찮을까?

 

 

나는 기술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나는 휴대전화가 집중력 문제를 일으키는지 혹은 예민한 사람이 그런 문제에 더 취약한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기기와 늘 붙어 지낸다는 것은 잘 안다.

우리는 어딜 가든 전자기기에 폭 빠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당신은 기술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내가 한때 알고 지내던 어떤 배우는 자신의 명함에 눈에 띄는 표현을 새겨 넣었다.

"항상 대기 중입니다. 항상 준비돼 있습니다!"

기억하기 쉬운 이 말은 분명 배역 담당자들에게 일에 대한그의 열정을 알리는 데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당신의 상사 역시 근무시간이든 아니든 당신과 언제나 연락되길 기대할 수도 있다.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 당신은 일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시간을 누려야 하고 당신이 근무하는 회사는 당신의 휴식시간을 존중해줘야 한다.

만약 당신의 상사가 이런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사업적인 관점에서도 휴식은 꼭 필요하다고 설명해야 한다. 늘 대기하거나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에너지를 재충전할 자유를 누리면 당신의 업무 효율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이것은 당신과 항상 연락되길 원하거나 기대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물론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어서 늘 대기 상태로 있어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전화를 한 통이라도 놓칠까 봐 늘 휴대전화를 켜놓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가? 기술을 윤리적으로 똑똑하게 사용하려면 다음과 같은 지침이 필요하다.

 

1. 한번에 한 가지 일만 한다.

일을 완수하는 최선의 방법은 지금 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멀티태스킹이 효율적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매진하는 것은 당신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모범적인 사례로 비춰진다. 당신이 정해 놓은 시간만큼 인터넷 접속을 차단해주는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스스로 코드를 뽑아버릴 수 없다면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2.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존중한다.

이메일이나 문자메세지를 보내는 데는 불과 몇 초밖에 걸리지 않지만, 수신자도 그렇게 빨리 응답해주길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 윤리적으로 똑똑한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들 간에 경계를 두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3. 누군가가 운전할 때 멀티태스킹을 한다면 만류한다.

친구나 가족 혹은 직장동료와 통화할 때 상대방이 운전 중이라고 하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당장 전화 끊고 주차한 후에 전화해. 아니면 내가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

 

4. 일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한다.

당신에게는 중간에 이메일을 확인할 필요 없이 영화 한 편을 끝까지 보거나 근사한 식사를 즐길 권리가 있다. 생각해보라 단 몇 시간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록 시급한 이메일은 별로 없다.

 

5. '병가'와 '휴가'의 의미를 잊지 않는다.

너무 아파서 출근할 수 없다면 일을 신경 쓰지 않고 집에서 쉬어야 한다. 당신이 휴가 중이라면 이메일이나 보이스메일을 확인하지 않고 해변에서 여유를 즐겨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멀티태스킹에서 벗어나 한 번에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술에 대한 집착과 관련해 멀티태스킹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나는 그것을 '아이솔레션isolation'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고립'이라는 의미의 단어 'isolation'을 'iPhone처럼 'iSolatin'으로 표기한 것으로, 현대인이 각종 첨단기기로 인해 진정한 인간관계와 인간성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솔레이션' 현상

1997년 애플은 광고에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1884년 패스트푸드 업체 앤더스의 햄버거 광고에 등장한 문구) 는 문구를 넣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쇠고기가 어딨죠?Where a the beef?'(1993년 우유 소비를 증진시키기 위한 캠페인 광고에서 입가에 콧수염처럼 우유를 묻힌 유명인사들의 사진과 함께 실은 문구) 나 '우유를 마셨나요?Got milk?' 만큼이나 순식간에 선풍을 일으켰다. 2007년 6월 29일 애플은 아이폰을 출시했고 그때부터 세상은 달라졌다. 휴대전화, 아이팟, 카메라, 웹브라우저를 결합한 이 제품은 우리가 그때까지 접해보지 못한 세련되고 똑똑한 전자기기였다. 이후 이것보다 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이패드가 등장했다.

그렇다면 보다 편리하고 즐거운 삶을 보장해주는 이들 최첨단 장난감은 어떤 문제를 낳을까? 이미 우리 사회는 켜짐, 꺼짐, 접속을 반복하는 기술 애호가의 집단으로 퇴보하고 있다. 어떤도시의 거리, 버스, 비행기 쇼핑몰에서는 목격할 수 있뜻 이제 공적인 생활과 사적인 생활 사이에 존재하던 경계는 거의 사라졌다.

예전에 슈퍼마켓이나 우체국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것은 앞사람과 대화를 튼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는 주변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전화로 타인의 은밀한 애정관계를 함부로 폭로하는 것, 마음에 드는 노래를 듣기 위해 노래 목록을 스크롤하는 것, 인터넷에서 꼭 필요하진 않지만 원하는 걸 검색하는 것을 뜻한다.

아이솔레이션은 우리에게 세 가지 주요 비용을 요구한다.

첫째, 기회비용이다. 우리가 인간적인 관계를 전자기기 연결로 대체하면서 우리 사회의 구조는 산산이 와해될 위험에 처해 있다. 공동체는 단순히 디저털매체 간의 접속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접촉으로 존속한다. 사회인이 된다는 것은 가족이나 친구의 범위를 넘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예전에는 그런 의미였다.

집을 나서자마자 휴대전화로 수다 삼매경에 빠지기, 주변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될 정도로 볼륨을 높여 음악듣기, 새로 들어온 이메일 읽기, 인터넷으로 싼 물건 검색하기 등을 위해 첨단기기를 손에서 놓치 못하면 여러 기회를 놓치게 된다. 출퇴근길에 새롭게 친분을 쌓거나 예전의 친분을 다시 살릴 기회, 낯선 사람과 인사를 나누며 얼굴을 익힐 기회, 주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기회 말이다.

공동체는 단순히 개인의 집합이 아니라 상호연결망이다. 구성원 각자가 전적으로 자신에게만 집중할 경우 이 연결망은 오래 존속할 수 없다. 우리가 주변 세상과 따로 떨어져 있으면 윤리지능의 원칙은 그 어떤 것도 적용하기 어렵다

둘째, 정신건강과 관련된 비용이다. 당신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이를 닦는 것처럼 소소한 활동이나 단순한 몽상에 젖어있을 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몽상은 시간낭비라고? 그렇지 않다. 창조는 자유롭게 꿈을 꿀 때 나온다.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가 사라지게 하거나 제멋대로 활개를 치도록 해야 한다.

당신은 너무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된다. 휴대전화나 MP3 플레이어를 만지작거리며 보내는 시간 중 일부만 떼어내도 시간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다. 그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마라, 뇌가 끊임없이 전자데이터의 자극을 받으면 기발한 아이디어의 원천인 자유분방한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다양한 전자매체로부터 끊임없이 쏟아지는 엄청난 이미지와 소리는 창조성의 관문이 아니라 장벽이다. 기술에 대한 집착은 자신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 즉 윤리지능의 주요 요소를 위태롭게 한다.

셋째, 상해와 사망의 잠재적 위험을 높인다. 앞서 말했듯 운전하면서 통화하거나 문자메세지를 주고받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가령 당신의 아들이나 딸이 면허증을 딴 후 차를 몰고 나갔다고 상상해보라. 만약 다른 운전자가 휴대전화로 수다를 떨면서 당신의 아이가 모는 차의 옆이나 앞으로 다가온다면 어떨까? 당연히 심각한 문제로 여길 것이다.

사실은 운전 자체가 그리 만만한 활동이 아니다. 작고한 작가 닐 포스트먼이 쓴 구절을 빌리자면 지금 우리는 "죽어라 하고 즐기고" 있다. 또한 "친구라면 다른 친구가 음주 운전을 하도록 방관하지 않는다"는 표어가 기억나는가, 여기게 우리는 '운전하면서 문자메세지를 주고받거나 통화하는 것,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덧붙여야 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는 윤리지능의 제1원칙은 우리에게 이것을 요구한다.

전자기기를 운전하는 운전자만 다른 사람을 위험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보행자도 마찬가지다. 뉴욕 주 상원의원 칼 크루기는 뉴욕 주 어디에서든 보행자가 길을 건널 때 휴대전화, MP3 플레이어, 기타 전자기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재상정했다. 아칸소 주도 유사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거리를 걷고 있을 때 전화 통화, 이메일, 문자메세지에 정신이 팔린 운전자를 조심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다 당신마저 전자기기에 빠져 있으면 더욱더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만다. 화제가 된 유튜브 동영상이 보여주듯 쇼핑몰에서 걸어가며 휴대전화로 문자메세지를 주고받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라디로 하나를 앞에 놓고 함께 웅크리고 앉아 즐거움을 나누곤 했다. 그렇다고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물론 나는  그 시절이 그립다.), 멋지고 새로운 전자기기를 판매하려는 상술 혹은 자본주의를 고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기기는 사용하는 목적에 따라 유익할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잘못을 따지자면 기술이나 기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아직 늦지 않았다.

 

 

건강을 챙겨야 하는 이유

어느 날 스티그 라르슨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다. 할 수 없이 라르슨은 자신의 사무실이 위치한 7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그런데 간신히 7층까지 올라간 라르슨은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향년 50세였다. 《용문신을 한 소녀》라는 소설과 그것의 속편 두 권을 쓴 라르슨은 성인소설 부문에서 꽤 성공적인 작가 중 한 명이다.

운동 부족, 과도한 흡연, 일상화한 정크푸드 섭취를 라르슨의 주요 사망 원인으로 보는 것은 단순한 억측이 아니다. 자신의 건강을 일만큼 진지하게 챙기지 않은 그의 태도를 불행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한 태도는 윤리적으로 똑똑하지 못한 일이자 비극적인 것이가도 하다.

건강을 윤리적인 사안으로 제시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사실은 그 무엇보다 윤리적인 사안으로 취급해야 한다. 건강하지 못하면 삶에 가치를 부여해주는 많은 활동을 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건강에는 유전적 요인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건강이 나쁜 것을 모두 개인의 선택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공정한 판단이 아니다. 사회경제적인 요소도 건강에 영향을 준다. 가난한 사람들은 대개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섭취할 수 없기 때문에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DNA나 사회경제적 환경이 아니라 건강에 높은 가치를 두지 않아 건강을 잃는다. 우리는 식습관, 운동, 건강에 필요한 기타 요소의 현명한 선택으로 자신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그런 선택을 할 때 윤리지능의 다섯 가지 원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자. 여기에는 몇 가지 구체적인 실천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마음, 몸, 정신

- 윤리지능의 원칙을 자신에게 적용하기

 

마음

누군가가 당신의 비위를 건드리면 그를 얼간이 혹은 멍청이라고 부르고 싶은 충동이 일겠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는 윤리지능의 제1원칙에 따라 그것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그런 경멸적인 표현이 그에게 딱 어울린다고 해도 말이다.)

만약 당신의 셀프 이미지가 낮다면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욕하는 것도 윤리적으로 똑똑한 행동이 아니다.

 

가령 당신이 친구 몇 명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고 해보자. 이때 당신은 그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선택하는 음식과 음료 중에는 쓰레기통에서 나온 것보다 낫다고 볼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데이비드 징크젠코와 매트 골딩의 저서《이건 먹고, 저건 먹지 마라》에는 어느 인기 있는 레스토랑이 제공하는 아침식사 사진이 실려 있다. 이것은 기름에 튀겨 육즙 소스를 듬뿍 바른 스테이크 두툼한 팬케이크 세 개, 달걀 세 개, 해시브라운(다진 감자튀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맥경화의 주범인 이 흉물스런 음식은 총열량 2,400칼로리, 포화지방 55그램, 탄수화물 159그램, 나트륨 4,500미리그램을 함유하고 있는데다 족히 3인분은 되고도 남을 만한 양이다.

미국에서는 매일 수많은 사람이 몸에 얼마나 해로운지 따져보지도 않고 이런 끔찍한 음식을 마구 삼키고 있다. 기업은 자신들에게 이러한 음식을 생산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이들 음식을 탐닉하는 것은 옳다고 볼 수 없다. 윤리적으로 똑똑한 사람처럼 당신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는 원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또한 당신이 마라톤이나 올림픽을 위해 훈련을 하는 선수가 아니라면 어떤 이유로든 아침식사를 이처럼 푸짐하게 먹는 것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아울러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는 것도 이 원칙에 위배된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대학의 에이드리인 바우만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신체 활동 부족은 사망과 질병의 주요 위험 요인이다. 그것은 심장병과 당뇨병의 약 6분의 1이, 노인 낙상 중 약 12퍼센트의 발생 요인이다. 모든 유방암과 대장암의 약 10퍼센트도 신체 활동 부족으로 발생한다."

그러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정적 이유보다 무언가를 하면 좋은 긍정적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보다 똑똑한 관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운동 부족이 어떻게 윤리지능의 제1원칙을 위반하는가보다는, 운동을 하는 것이 어떻게 '상황을 개선하라'는 윤리지능의 제2원칙에 부합하는가에 초점을 두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메이요 클리닉은 웹사이트에 규칙적인 운동의 여러 장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기분이 좋아진다.
  • 만성질환을 극복할 수 있다.
  • 체중관리에 도움을 준다.
  • 기력을 증진시킨다.
  •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성생활이 개선된다.

설령 당신이 '운동은 즐거운 활동'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위의 이점은 분명 당신의 현재 상황을 개선해줄 것이다.

 

정신

당신은 몸과 마음뿐 아니라 정신도 소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의학계에서도 요가 강사, 티베트 승려, 록스타 들이 오래 전부터 실천해온 명상의 효과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명상이 정신 회복과 재충전, 활력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당신도 거의 어디서나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명상을 할 수 있다.

명상은 생리적, 심리적으로 여러 이점을 제공한다. 혈압을 낮춰줄 뿐 아니라 명상시간 이후에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게 해주며,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높여준다.(이 마지막 이점만으로도 명상은 꾸준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적절한 운동, 건강한 식단, 금연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지라도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명상을 하면 이 목표를 훨씬 더 쉽게 이룰 수 있다.

 

 

울화통 터지네!

- 윤리적으로 똑똑한 분노

지금 신문을 펼쳐 들거나  TV를 켜보라. 아니면 주변을 한번 돌아보라. 그러면 금세 화가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생필품이나 휘발유 가격 인상 소식이든 항공 여행 중의 불쾌한 경험이든 아니면 옆 자리에 앉은 직장동료의 근무 중 수다든 우리는 매일 혈압을 정상범위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이런저런 일과 맞닥뜨린다.

이럴 때 분노를 터트리는 것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로울 수 있다. 그렇다고 분노를 무조건 억누르는 것도 건강에 해롭거나 현명하지 못하다. 나는 윤리지능의 원칙에 근거해 분노를 해가 아니라 이점으로 만드는 닷섯 가지 지침을 제시하려 한다 나아가 이러한 지침이 직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세 가지의 난처한 상황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볼 것이다. 그 세 가지 상황이란 짜증나게 하는 직장동료, 무능한 부하직원 그리고 불간섭주의를 내세우는 상사를 말한다. 하지만 그 전에 분노의 본질과 이런 감정이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부터 짚어보도록 하겠다.

 

 

분노는 불가피할까

분노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당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발생하는 강렬한 감정이다.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려고 하는데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목소리를 낮추지도 않고 자기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 당신은 화가 날 것이다. 그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무 중에 사적인 통화나 인터넷 검색에 지나치게 시간을 쓰는 직원은 상사 혹은 주변 동료의 분노를 산다. 그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는 까닭이다(그가 자신이 맡은 업무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함).

분노는 심리적인 것이지만 그 뿌리는 윤리 영역에 두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존중하거나 공정하게 대할 윤리적 의무를 지키지 않을 때 분노한다. 그들이 우리를 대할 때 준수해야 할 윤리지능의 제3원칙과 제4원칙을 무시하는 탓이다.

윤리는 분노를 유발하는 요인뿐 아니라 우리가 분노로 인해 선택하는 행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분노 표출은 해가 될 수 있는데 우리에게는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윤리적 의무가 있다. 가정폭력, 성폭행, 살인은 분노가 통제 불능 상태일 때 일어나는 극단적인 사례다.

분노 표출로 유발하는 해는 죽음이나 신체적 외상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위협하는 것, 비하하는 것도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이는 해를 끼치는 행위에 속한다. 윤리의 중요성을 깨달아 양심적인 사람이 되는 것에는 자신의 분노를 다스린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분노를 다루는 다섯 가지 지침

틱낫한 스님에 따르면 어떤 사람은 화풀이를 하듯 베개를 두들겨패면서 분노를 다스린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우리가 해소하려는 감정 자체를 격화시키기 때문에 기분이 더 나빠질 뿐이라고 스님은 지적한다. 분노를 무조건 억누르는 것도 좋은 해결책은 아니다. 그런다고 분노를 유발한 상황이 바뀌는 것이 아니므로 결국 다른곳에서 적대감이 폭발할 소지가 다분한 까닭이다.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다. 그렇다면 분노를 다루는 바람직한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다음은 화가 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윤리지능에 걸맞게 대응하는 방법이다.

 

1. 멈춘다.

즉각 반응하지 않는다. 호흡을 조절하고 일의 진행 상황을 판단한다.

 

2. 심호흡을 한다.

냉정을 되찾으면 성공적인 방안을 생각해내기가 훨씬 쉬워진다.

 

3.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문제가 발생한 이유를 여러 가지 관점에서 검토해본다.

 

4. '어떤 반응이 가장 효과적일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어쩌면 화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5. 필요하다면 도움을 구한다.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혼자 처리하기에 벅찰 수도 있다. 도움에는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는 것도 포함된다.

 

이것은 화가 나는 상황에 냉정하게 대처하는 상식적인 접근법이다. 마음이 분노로 들끓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 바람직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면 이 5단계 접근법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

 

 

짜증나게 하는 직장동료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경우, 사적인 전화 통화가 끊이지 않는 경우, 당신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는 경우 등 직장동료가 당신의 화를 돋울 수 있는 상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럴 때 당신은 아마도 "그만해" 혹은 "조용히 해"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응은 무례할 뿐 아니라 당신이 바라는 것을 얻게 해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한참 속을 끓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트리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문제의 직원에게 그의 행동 때문에 당신이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능한 공손하게 알린 다음, 당신이 원하는 바를 확실히 밝히는 게 더 낫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당사자에게 그것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무능한 부하직원

부하직원이 당신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할 때, 그들을 질책하고 모욕적인 말을 퍼붓는 것 역시 무례하고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어쩌면 당신의 부하직원이 당신을 두려워하는 탓에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사람의 능력과 기술이 주어진 업무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의 기대 수준이 너무 높아 사실상 누구도(심지어 당신조차도) 그것을 충족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우선 상황의 본질부터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좋다. 흔히 그렇듯 버럭 화부터 내고 난 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더욱 화를 내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속담도 있듯 "항상 하던 대로 하면 항상 얻던 것만 얻을 뿐"이다.

 

 

사태를 방관하는 상사

어떤 상사는 당신이 하는 일마다 간섭을 해서 짜증나게 만든다. 당신의 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 상사 역시그 정도로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훌륭한 관리자는 늘 부하직원 곁에서 자리를 지킨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부하직원이 알아서 해줄거라고 지레짐작하지도 않는다.

자리를 자주 비우는 관리자는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여기서 상황에 대한 다른 관점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자리를 자주 비우는 관리자는 부하직원에게 무신경한 것이 아니라 조직에서 너무 많은 책임을 맡고 있는지도 모른다.

간혹 상사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긴 했지만 그 수행방침은 거의 혹은 전혀 전달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당연히 화가 난다. 그러나 상사가 워낙 일이 많아서 부하직원이 업무 수행방침을 원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도 있다.

이때 당신은 분통만 터트리고 있을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상사에게 당신이 고민하는 문제를 털어놓고 당신이 바라는 변화가 당신 자신을 포함해 회사, 고객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상사와 동료 직원으로부터 공정하고 정중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

물론 분노를 다루는 5단계 방법을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지구온난화, 테러리즘, 경제위기처럼 사안의 규모가 클 경우 해결책은 복잡해진다. 문제 해결 방법을 함께 모색할 '협력자'를 즉시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여기에 제시한 해결책을 이용할 경우 우리는 여러 힘든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구조조정을 당했을 때

2008년 말 세계 경제위기가 닥치기 전에도 실업에 대한 불안감은 고조돼 있었다. 그해 초 미 농무부는 일자리가 6만 3,000개 줄어들어 5년 만에 월간 최대폭의 감소를 기록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당신의 일자리가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든 아니든 당신은 언젠가 직장에서 구조조정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이때 윤리적으로 똑똑한 대응은 무엇일까? 당신이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해준 다섯 가지 원칙이 여기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당신은 구조조정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 윤리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아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점을 한번 생각해보자. 해고를 당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 매우 충격적인 사건에 해당한다. 홈스와 레이히에 따르면 해고를 당하는 것은 스트레스 척도에서 여덟 번째를 차지한다. 이보다 높은 순위에는 배우자 사망(1위), 수감(4위)이 있고 낮은 순위로는 친한 친구의 사망(17위), 모기지나 대출금 연체로 인한 저당물 압류(21위), 친척 간의 갈등(24위) 등이 있다.

옳든 그르든 우리 중 대다수가 사람을 직업으로 규정한다. 그런 까닭에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보통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부터 한다.

제 6장에서 나는 구조조정이 그 소식을 전하는 사람에게 윤리적 의미가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구조조정 소식을 듣는 사람도 윤리적 사안과 연관되어있다. 만약 당신이 구조조정 대상자라는 소식을 들으면 아마도 "이건 공평치 않아!"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이다. 회사 측에서 구조조정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해도 (혹은 그렇게 믿는다고 해도) 당신의 관점에서는 부당한 처사로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는 '공정하라'는 윤리지능의 제4원칙이 관련되어 있다. 물론 관련된 원칙이 그것뿐은 아니다.

당신은 "아,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고 자문할지도 모른다. 이 질문에는 '내가 어떻게 가족과 나 자신 그리고 내가 빚을 진 사람에게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모든 책임은 윤리적인 것이며 여기에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 '상황을 개선하라',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는 윤리지능의 세 가지 원칙이 적용된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실직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러므로 구조조정에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 모든 사람을 인정 어린 마음으로 대하라고 요구하는 윤리지능의 제5원칙도 관련이 있다.

 

 

윤리지능으로 구조조정에 대처하기

다음의 지침은 갑자기 실직을 당했을 때, 그 힘든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1. 지금 당장은 화내지 않는다.

당신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반감이 치밀어 올라 흥분하기 십상이다. 흥분하지 마라. 앞서 제시한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은 이런 상황에서 특히 효과가 있다. 이러한 일을 겪으면 누구나 속이 상하고 분통이 터진다. 그러나 그 감정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는 원칙을 어기는 일이다. 감정을 자제하면 후회하지 않지만 냉정을 잃으면 후회하게 된다.

 

2. 그 상황을 본인 탓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순전히 자신의 의지력만으로 자기 삶을 관리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3. 추천서를 받는다.

당신의 잠재적 고용주가 당신이 얼마나 귀한 인재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의 상사로부터 정보를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상사의 서면 추천서를 받아야 한다. 편지가 불가능하거나 시간을 맞출 수 없다면 상사에게 짤막한 이메일이라도 요청하라. 한두 줄 정도의 추천서도 괜찮다. 상사에게 허락을 받아 이력서에 상사의 직통 전화번호를 기록하고 면접을 볼 때도 밝히는 것이 좋다.(만약 1번 지침을 지키지 않았다면 이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분노로 모든 걸 날려버리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4. 적극적으로 자기 PR을 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것은 잘못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 생각을 접어둬야 한다. 이 장의 첫 머리에 소개한 힐렐의 인용문을 상기하면 우리가 직면한 커다란 도전 중 하나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의 균형을 이루는 일이다.

당신이 스스로를 내세우는 것은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비윤리적이다. 당신이 스스로를 믿는 것은 당신의 삶에 인정(배려)의 원칙을 적용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아울러 다음의 조언도 감안하기 바란다.

"당신이 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당신의 전문지식을 활용할 수 있겠는가?"

 

5. 자신의 슬픔을 인정한다

당신의 삶에서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을 잃었을 때 슬픔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반응이다. 자신의 슬픔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역시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구조조정에 희생된 후 상담을 받고자 하는 것은 약점이 아니라 장점의 표시다.

당신은 허리에 부상을 입으면 거리낌 없이 물리치료를 받으려 할 것이다. 하물며 당신의 세계가 뒤집혔는데 왜 적절한 치료가 필요치 않겠는가. 아직도 많은 사람이 심리치료를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이는 잘못된 자세다.

 

6.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당신에게 일어난 최악의 상황이 최고의 행운을 가져다주는 반전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베이 맥케이의 저서《우린 해고되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최고의 일이었다》를 한번 읽어보라. 마이클 블룸버그, 무함마드 알리, 빌리 진 킹, 흠디포의 창업자 버니 마커스, 리 아이아코카, 로버트 레드포드는 실직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결국 성공을 거둔 사람들 중 극히 일부다. 해고를 당하는 것은 좌절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맥케이의 책이 일깨워주듯 지평선 바로 너머에는 풍부한 부가 존재한다. 물론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모든 일이 잘되고 있을 때도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처신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당신의 인격이 진정으로 시험을 받는 순간은 당신이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때다. 그런 순간에 위에 제시한 지침을 준수하는 것은 실직이든 그 무엇이든 그것이 당신의 행로에 걸림돌이 될 수 없음을 외부세계에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윤리지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훈련하고 키워가는 것이다!

 

당신은 윤리적으로 얼마나 똑똑한가?

'야근 때문에 가족과 함께 지내지 못하는 것도 비윤리적 행동이다.'

당신은 이 말에 동의하는가?

세계적인 윤리전문가 브루스 와인스타인 박사는 지금까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생활 속 많은 문제들에 윤리적 기준을 적용하여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윤리적으로 얼마나 똑똑한가?"

저자는 직장에서 성공하기 우해, 친구나 가족관계를 튼튼하게 유지하기 위해,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윤리지능이라고 단언한다. 가치 있는 삶 또는 성공의 기준이 돈이나 명예로 결정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는 것이다. 또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윤리지능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윤리지능을 높이는 방법을 알려준다. 윤리지능은 살면서 숱하게 부딪히는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해주고, 까탈스럽고 고민스러운 선택 앞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때 선택의 기준이 되어 준다.

윤리지능이 높은 사람은 자존감이 높고, 배려심이 있다. 또 이럴까, 저럴까 하는 혼란이 없어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적다. 브루스 와인스타인 박사는 윤리지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누구나 높은 수준의 윤리지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당신의 윤리지능은 어떤 수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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