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사는 이야기

장담그기와 고무신

오키Oki 2006. 2. 25. 01:10
 

 

 

음력 정월이 며칠 남지 않아서 장을 담그기로 했다.

결혼전에 보아 온 친정엄마는 꼭 말날을 고집하지는 않았었다.

남동생이 말띠였기 때문에

식구들의 띠를 피하거나 손없는 날을 택하곤 하였다.

 

나도 우리식구들의 띠를 피했고

날씨도 화창하고 바람도 덜 불어서 좋은 날이 따로 있나 싶어서

달걀을 띄워 염도를 맞추는 것으로 장담그기를 끝냈다.

 

항아리 뚜껑 자주 열어주고 햇빛을 잘 받도록 하면

자연(햇빛, 공기)이 잘 알아서 맛있게 장맛을 내주리라 믿는다.

 

 

 

 

 

메주는 깨끗이 씻어 잘 말려야 한다.

 

 

 

 


자연건조만으로 메주가 띄워질까 걱정했는데

망에 넣어 자연건조를 시켰는데도 볏짚이 메주를 띄워 주었다.

 

 

 

 

 

집앞 우리밭의 차나무들은

겨울 추위를 이겨 내느라 얼마나 몸을 떨었던지

따스한 햇빛을 온종일 받은 차나무가 뻘겋다.

4월 벚꽃이 질때면 까스러진 차잎을 밀어내고

여리디 여린 어린 차잎이 삐죽이 올라올 것이다.

 

 

 

 

 

 

우리집 여자들한테 사랑받는 고무신이다.

흰 고무신은 흙물도 잘들고 때가 잘타서 조심스럽다.

밭일 할때는 삼가고 읍내 볼일 보러 갈때는 흰 고무신을 신고 간다.

(겨울엔 발이 시러워서 긴 볼일은 피한다)

 

보라 고무신 두 켤레중

한 켤레는 지금 밑이 많아 닳았는데

짧은 밭일 할때는 보라고무신을 신고 일한다.

(장시간 밭일 할때는 장화가 편하다.)

 

 

 

 

 

엄마를 위해 발 모델이 된 딸들 발에도 고무신이 잘 어울린다.

여자 셋이 발크기가 모두 비슷해서 아무거나 먼저 신으면 임자다.

 


 

 

검정 고무신 두 켤레는 녹차아저씨 신발이다.

흰 고무신은 진작에 다 떨어져서 버렸고 외출할때도

자주 신더니 때가 잘타서 싫다며 이제는 검정 고무신만 고집한다.

 

이제 이 검정 고무신도 찾는 이들이 없어 공장에서 잘 안만든다고 한다.

검정 고무신은 한켤레 다 닳아서 떨어지면 예비용으로 한 켤레 더 산다.

두 켤레가 있어야 하는 이유도 있다.

 

오른쪽 검정 고무신은 작년에 산 것인데

검정 고무신의 단점은 흰 고무신처럼 고무가 부드럽지 못하고 딱딱한데

특히 발뒤꿈치가 닿는 부분이 너무 두껍고 딱딱해서 까지곤 한다.

 

한 일년 넘도록 햇볕에 일부러 놔두기도 하면서 길을 들여야 부드럽게 된다.

그렇게만 되면 흰 고무신처럼 아주 편안하다.

 

첨엔 멋 모르고 나도 밭일 할때는 검정 고무신을 신었는데

발뒤꿈치가 아파서 나중엔 도저히 못 신고 말았다.

 

한번은 꽤를 쓴다는게 성냥불로 딱딱한 부분을

녹여보고 하다가 제대로 녹아지지도 않고 녹인 자리에서

검정이 자꾸 묻어나와서 하는 수 없이 버리고 말았다.

 

 


 

 

각시야~~

흙 묻히고 살아 본께

내는 길이 잘난 검정 고무신이 최고로 편하다.

손님이 와도 퍼뜩 신고 나갈수 있고

이렇게 밭둘러 보고 물한잔 마시러 올때나

맨발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게 검정 고무신아이가.

 

그라고 억수로 질기고 값도 싼데다 

춘하추동 아무때나 신어도 참 조오타.

 

 

 


 


- 감동을 전해주는 도토리에서 옮겨 적었습니다 -

 

 

아버지와 신발

 

누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면 저는 유독 아버지가 사 주시던 신발 생각이 납니다. 요즘 아이들이야 '메이커 있는' 품질 좋은 운동화를 사 신지만 제가 어릴 적만 해도 검정 고무신이나 질 낮은 운동화가 고작 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제 발보다 한두 치수 큰 신발을 사 주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아이들이 워낙 빨리 자라고, 가난한 집안 형편에 어떻게든 더 오래 신발을 신기기 위해서 그러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슨 신발을 신든 그리 오래 신지를 못했습니다. 제 발이 채 크기도 전에 언제나 신발이 먼저 떨어져 버렸습니다. 신발의 품질이 너무나 나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껴 신어도 항상 신발이 먼저 닳아 제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을 기회란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게 불만이었습니다. 길을 걸을 때마다 신발이 벗겨질까 봐 조심스럽게 걷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한 번은 운동회 때 신발을 신고 달리다 꼴지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자연히 걸음이 느려졌고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뛰어가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게도 아버지의 신발을 사 드릴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버지의 환갑을 기념하기 위해 구두 가게에 들른 것입니다.

 

"예전에 저한테 그러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아버지가 한 치수 더 큰 구두를 사세요."

 

예전 기억을 더듬으며 농담을 건네자 아버지는 싱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네 발보다 큰 신발을 사준 것은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다. 그건 항상 여유를 가지

 

고 살라는 뜻이야.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바쁘게 세상을 사는

 

것보다 조금 헐거운 신발을 신고 여유 있게 세상을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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