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

이젠...

오키Oki 2013. 7. 31. 22:44

중국 명나라 때 묘협이라는 스님이 불자들에게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할지에 대해 쓴 글이라고 합니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수행하는 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마라.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마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마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마라.

                                              - <보왕 삼매론>

 

 

 

KBS2 TV 다큐멘터리 3일 141.2km의 선물 동해남부선 중에서...

 

 

 

 

 

 

 

 

 

 

이시형 박사의 산에서 배운 지혜

- 이시형 지음『이젠, 다르게 살아야 한다』중에서 -

 

 

지은이 이시형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이자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으로,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활용한 '면역력과 자연치유력' 증강법을 전파해왔다. 그의 탁월한 통찰력과 독창적인 인생론은 국민건강, 자기계발, 자녀교육, 공부법 등 다양한 주제로 대한민국 남녀노소 모두에게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2007년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 문화원을 건립하고, 현재 '병원이 필요 없는 사람'을 만드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다.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정신과 신경정신과학 P,D,F를 받았다. 이스턴주립병원 청소년 과장, 경북의대 · 서울의대(외래) · 성균관의대 교수, 강북삼성병원 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이기도 하다. 저서로는『이시형처럼 살아라』,『세로토닌하라!』,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베짱으로 삽시다』 외 60여 권이 있다.

 

 

 

자연에의 외경심, 그게 곧 힐링입니다

산에 오면 잔잔한 감동이 일어납니다.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집니다.

이때 뉴런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됩니다.

세로토닌 소포가 터지는 것이죠.

이것이 터져야 감동 반응이 온몸에 조용히 일어납니다.

이것이 감동의 뇌과학입니다.

 

 

 

프롤로그   내가 체험한 자연 속 힐링 파워

난 얼마전『나처럼 살지 마라』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은 다 그러했지만 특히 내겐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15세에 한국전쟁이 나면서 열세 식구의 가장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돌격 앞으로의, 참으로 힘든 질곡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다 덜컹, 내 몸은 완전히 내려앉았습니다. 정확히 46세, 내 무릎은 노인성 퇴행성 관절로 지팡이 신세를 져야 했고, 허리 디스크로 앉지도 못하고, 서맥으로 인한 현기증이 깨나 괴롭혔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젠 내 생활을 다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 수술도 거부하고, 약을 끊고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건강 회복에 힘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약 쓰지 않고 스트레스로부터, 병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해 주는 방어체력증강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딱하게도 이건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병원에 장사진을 치고 앉은 환자들도 모두 나와 같은 처지입니다. 저분들이 평소에 조금만 심신을 다듬과 건강에 유념했더라면 저 고생을 안 해도 될 텐데. 자연의학, 생활습관의학 공부가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과학문명은 편이. 쾌적, 효율을 추구하지만 그로 인한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게 건강상의 문제를 몰고 온 양날의 칼입니다. 우린 거의가 과학문명 중독증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블록을 걷지 않습니다. 지하철 계단은 텅 비어 있고 엣컬레이터엔 긴 줄이 늘어섭니다. 춥다고 히터, 덥다고 에어컨…… 우리 건강이 성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깊은 산골에 자연의학 캠프를 마련한 시대적 배경입니다. 홍천 산골에 터를 잡고 구상한 지는 족히 10년은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힐리언스 선마을이 열린 건 5년 전이었습니다. 그 당시엔 웰빙 붐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연 속에 힐링 파워가 있다는 게 내 신념이었고, 이를 의학적으로 활용하자는 게 우리 마을의 목적이요 이념입니다. 자연의학 힐링 캠프라 물론 여기엔 아무런 의학시설이라곤 없습니다. 과학문명의 폐해로부터 인간을 보호하자. 우리 캠프엔 고압전선도 안테나도 없고 출구가 완전히 가려져 있어 밖에 전쟁이 나도 모르는 은거지입니다. 휴대폰도 안 터지고 TV, 라디오, 인터넷, 신문, 아무것도 없는 참으로 재미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여길 찾는 손님은 그게 무엇보다 좋았다고 합니다. 노마드적, 원시적 향수가 충족되었기 때문입니다. 10년을 이렇게 산속에서 사노라니 의학 서적이나 어떤 인문학 서적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참으로 소중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나는 깨나 많은 책을 썼습니다만 거의가 정신과 에세이였습니다. 하지만 본서는 내가 몸으로 부딪혀 익힌 걸  풀어놓은 것입니다. 나 혼자 간직하기엔 아까운 체험들이라 함께 나누고자 쓴 책입니다. 가끔씩 등장하는 선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그냥 자연, 숲이라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체험한 걸 풀어쓰자니 많은 시간을 보낸 우리 마을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월든 호수』를 쓴 소로에 비하긴 외람스럽지만 그런 뜻으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책은 선마을 홍보용이 아닙니다. 고맙게도 이제 선마을은 예약으로 넘쳐 납니다. 산이 주는 힐링 파워를 체득한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게 무엇보다 고마운 일입니다. 우리나라엔 명상이 따로 없습니다. 어디나 선마을입니다. 그냥 산골이라 읽어주셔야 편합니다.

우리에겐 산이 너무 흔해서 산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산은 그냥 바쁘게 오르내리는 걸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최소한 며칠은 산에서 묵어야 합니다. 이 한마디로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사계절의 축복

태풍만이 강력한 기류를 동반하는 건 아닙니다. 저리도 평화롭게 보이는 하늘에도 온갖 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여름 하늘의 하얀 뭉게구름, 보기만 해도 평화롭고 낭만적이죠. 저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비행기 조종사가 가장 두려워하는게 저 뭉게구름입니다. 뭉게뭉게 꽃봉오리처럼 피어오른다고 그런 멋진 이름도 붙였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보기엔 조용하지만 그 속엔 음양 전류와 함께 힘찬 난기류가 급습으로 자칫 비행기를 통째로 집어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 창공에 독수리를 보십시오. 유유히 날갯짓도 없이 하늘에 떠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합니다. 어떻게 저것이 가능할까요? 조류학자 설명에 의하면 독수리는 기류를 잘 탈 줄 아는 천부적 감각이 발달되어 있다고 합니다. 상승, 하강 기류, 맞바람, 뒷바람도 적절히 잘 탄다는 것이지요. 유연한 활공, 그리곤 조용히 날개를 편 채 날갯짓 한 번 없이 그대로 떠 있는 것도 서로 맞부딪히는 기류의 흐름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서로 대항하는 힘의 균형과 조절, 이것이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또 다른 힘입니다. 남녀, 음양이 따로 있습니다. 동서남북, 춘하추동,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에너지의 균형과 조화가 완벽할 때 우주의 순환질서가 순항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자연환경의 붕괴는 물론 인간사회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근년엔 그런 조짐이 있어 불길합니다. 이상난동이란 소리도 자주 들립니다. 없는 서민들 입장에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겨울은 추워야 당장 시장경기가 돌아갑니다. 난방기구만입니까. 의류, 신발에서 따끈한 찐빵까지 날씨가 따뜻하면 장사가 되지 않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겨울엔 추워야 온갖 잡균, 병균을 동사시켜 여름철 질병을 예방해줍니다. 겨울이 춥지 않으면 이듬해 농사도 안 됩니다. 우리 몸도 추울 때 추워야 추위에 대항하는 방어호르몬이 분비되며 면역력 증강으로 몸이 튼튼해집니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겨울이 추워야 새봄의 따뜻함에 더 감사하게 되며 계절에의 아취, 새봄에의 횐희도 커집니다. 생각이 이렇게 돌아가면 엄동설한에의 불만도 줄어들겠지요.

겨울은 겨울답고 여름은 또 여름다워야 하는 게 자연의 질서입니다. 햇빛이 있기에 그늘이 시원하고, 그늘이 있기에 햇빛이 따뜻합니다. 인간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괴로움 없이 즐거움을 어찌 알리요. 슬픔없는 기쁨은 없습니다 좋은 일에서 좋은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불행히도 현대인은 겨울도 여름처럼, 여름은 겨울처럼 나고 있습니다. 이것도 발달된 과학문명과 풍요가 몰고 온 재앙의 하나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한국인은 사계절의 뚜렷한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게 진화 · 발전되어 왔습니다. 계절마다 계절의 특성에 따라 계절스럽게 살아야 건강은 물론 삶의 멋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백 증후군

남미 에콰도르 강변, 미국 사업가가 바쁘게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초라한 배에 한 어부가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딱히 여긴 미국 사업가 "고기를 더 잡지 않고 왜 그러고 있소?"

놀란 어부가 힐끗 쳐다보더니 "더 잡으면 좋은 일이라도 있소?"

"돈을 더 벌지요."

"더 벌면?"

"큰 배도 사고 좋은 그물도 사서 많이 잡으면 돈 걱정 없이 느긋하게 낚시를 즐기면서 한가로이 살 수 있을 것 아니겠소."

어부는 기가 차서 "내가 지금 그러고 있잖소. 당신이 내 낮잠을 방해하기 전까진."

비즈니스는 'Busy', 바쁘다는 어원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비즈니스맨은 기본적으로 바빠야 합니다. 실제로 사업이 잘되느냐고 물을 땐 "Busy?"

라고 묻습니다. "응. 바빠!" 하면 잘된다는 뜻입니다.

밀려오는 손님으로 밥 먹을 시간도 없을 때 '즐거운 비명'을 울린다고 합니다. 그래야 만족하고 안심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도 '여백 증후군'입니다. 수첩에 빈칸이 있으면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무슨 큰일이나 놓친 듯, 삶에 큰 구멍이나 난 듯 안절부절못합니다. 이걸 일명 '이러면 안 되는데!'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어떻게든 수첩에 일정을 빽빽하게 메워야 비로소 안심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한가롭게 사는 사람에게 이 세상은 참으로 냉정하고 냉혹한 곳입니다. 바삐, 정신없이 달려야 합니다.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치열한 삶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기계도 과열되면 고장이 나는 법인데, 이렇게 바빠서야 뇌라고 성할 리 없습니다. 휴식 없이 달리면 뇌가 열을 받습니다. 실제로 뇌온도를 측정해본 많은 연구가 있습니다. 뇌에 열이 나면 정교하게 얽혀 있는 뇌신경망이 제대로 돌아가질 못합니다. 주의집중은 물론 안 되고 계산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때 처방은 잠시의 휴식입니다. 뇌를 식혀야 합니다. 뇌과학에선 '쿨 다운 Cool Down'이라고 합니다. 자동차 엔진도 냉각수로 열을 식혀야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원리와 똑같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열 받는다.'고 합니다. 그땐 어떻게 하나요? 밖의 찬 공기를 쐬기도 하고 찬물로 세수도 하고 찬 수건으로 머리를 식혀 줍니다. 모두 쿨다운 기법들입니다. 이럴 때 가장 확실한 방법은 휴식입니다. 수첩엔 간간히 여백도 있어야 합니다. 바쁘면 상상력도 솟아나지 않습니다. 바쁘면 인간관계도 메말라버립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일정한 시간과 여유가 필요합니다.

가까운 공원이나 산에 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무 일 말고 그냥 멍하니 산만 바라보고 계십시오. 그게 바쁜 당신에게 내가 내릴 수 있는 처방의 전부라는 것 잊지 마십시오.

바빠 즐거운 비명이라지만 그러다 진짜 큰 비명을 질러야 할 수도 있습니다. 몸이 구급차를 부르게 합니다. 들어보셨지요? '일과 생활의 균형Work Life Balance ― WLB', 열심히 일하면서, 삶을 여유롭게, 둘 사이에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합니다.

 

 

 

절제의 미덕

"다음 비행기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호수에서 겨우 사진 한 장 찍곤 바쁘게 버스에 올라타는 우리를 보고 딱했던지 늙은 운전사가 하는 소리입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니 서두를 수밖에. 하지만 그곳 페루 사람들 생각은 우리와는 사뭇 다릅니다. 오늘 못 타면 내일도 날인데, 서둘러야 하는 이유를 이들은 이해 못하는 것 같습니다.

브라질의 밤은 화려했습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점점 무도회장은 달아 올랐습니다. 하지만 우린 내일 또 먼 여정을 소화해야 합니다. 아쉬운 자리를 뜨는 우릴 보고 안내원이 놀라 묻습니다. "재미가 없느냐?"고.

"파티야 신나고 재미있지만 내일 일정 때문에."

"네, 내일 일정?"

지금 여기가 재미있으면 더 즐겨야지, 내일을 위해 오늘의 기쁨을 버리다니? 이들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겁니다.

우리에겐 절제가 미덕이었습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적당히 즐기고 놀아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절제 교육이 철저했습니다. 나중에 늙어 잘살기 위해 젊은 날의 오늘 노는 걸 절제하고 공부에 열을 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보다 빨리, 멀리 갈 수 있습니니다. 40대를 위해 30대를 절제하고, 또 50대를 위해 40대를 절제해야 합니다. 쓰지도 즐기지도 못하고 오직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여유나 즐김이니 하는 건 사치였죠. 죽어 저승에 가서 잘 쓰고 잘 놀기 위해 평생을 절제하고, 죽어라고 바삐 뛰어야 하는 건 분명 아닐 텐데, 천천히 걸어야 멀리까지 간다는 남미 사람들과는 아예 삶의 방식이 다릅니다.

'내일을 위해 좀 참아두자. 쓰지 말고 더 모아야 한다.' 그러니 언제나 모라잘 수밖에 없습니다. 더, 더, 더를 외치는 사람에겐 언제나 부족감, 불만감, 결핍감과 함께 항상 거지 근성으로 쫓기고, 조들리며, 시달려야 합니다. 뇌과학에선 이처럼 끝없는 욕심을 '도파민적'이라 부릅니다.

뇌 속의 이 호르몬은 뭔가를 이루고 싶을 때, 갖고 싶을 때 벌써 가슴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이게 도파민의 작용입니다. 그리고 그걸 얻기 위해 접근합니다. 손에 들어올 듯하면 도파민 분비가 더욱 많아집니다. 드디어 잡았습니다. 이루었습니다. 그땐 도파민 분비가 최고 조에 달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합니다. 칭찬합니다. 기분 째집니다. '더 큰 걸 또 해야지!' 의욕에 넘칩니다. 도파민을 일명 '의욕 호르몬'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불행히 이런 들뜬 기분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시큰둥, 당연할 걸로 됩니다. 이게 도파민의 약점, 습관성입니다. 그러면 현재 가진 것이 모자라고 불만입니다. 환희를 맛보려면 보다 더 큰 것에 도전해야 합니다. 도파민적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에겐 끝이 없습니다. 인간의 욕심에 끝이 없는 건 도파민 탓입니다. 그런 한국 사람을 남미 사람이 보기엔 딱할 수밖에 없지요.

 

 

《개미와 베짱이》이야길 좀 해야겠습니다.

여름내 놀기만 하던 베짱이가 겨울이 되자 개미집에 구걸하러 갑니다.

"거봐, 내가 뭐랬어?"

개미가 혀를 끌끌 차며 나무랍니다. 이 게으른 베짱이에게 먹을 걸 줄 것인가 말 것인가? 서구에선 당연히 '노No'지요. 원전에 의하면 문전박대를 맞고 쫓겨난 베짱이가 춥고 배고파 얼어 죽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이솝이 서구인이니까 이야기가 그렇게 될 수밖에.

서구에선 열심히 일해 모은 걸 게으름뱅이에게 내줄 수 없다는 그들의 책임논리입니다. 잘 먹고 잘 놀았으면 응분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게 냉엄한 서구사회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인정은 그래도 줘야 한다는 것, 개미 입장에선 괘씸하지만 불쌍하니 주어야 한다는 게 한국의 인정문화입니다. 이게 서구사회의 책임문화와 확연히 다른 점입니다.

문화가 다르면 건강에 대한 가치관은 물론이고 보험정책도 달라집니다. 서구에서는 베짱이에게는 보험료가 훨씬 비싸게 책정됩니다. 흡연, 과음, 비만 등 나태한 생활자에겐 보험료가 비쌉니다. 건강 예방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심지어 계약을 파기합니다. 성실한 사람들이 비축해 놓은 보험 재정을 게을러 생긴 제멋대로의 사람에게 지불할 수는 없다는 게 서구의 책임논리입니다.

철저한 1차 예방 교육을 시키고, 그래도 무절제한 생활로 발병이 되면 보험료가 껑충 뜁니다. 자기 편한 대로 잘 먹고 잘 놀았으면 응분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철저한 책임문화의 소산입니다. 물론 고령자나 전염병, 유전적 소인이 강한 사람에겐 공적 보조가 있습니다. 이런 사회제도는 생각해보면 합리적입니다. 우리나라도 차 사고를 내면 보험료가 비싸지 않던가요.

하지만 건강보험만큼은 인정적人情的입니다. 보험이 민영民營인 서구와는 달리 우리는 관에서 징수합니다. 해서 병이 나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당연한 논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의료는 복지, 어떤 생활을 한 베짱이든 일단 병이 난 이상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정문화입니다. 건강을 지키느라 흡연, 음주, 먹을 것을 참고 싫은 운동을 열심히 한 성실한 국민으로서는 억울합니다. 그대로 말을 못하는 게 한국의 인정문화입니다.

이게 자제할 줄 모르는 나태한 자의 변입니다. 문제는 굵게는 살 수 있지만 짧게는 안 됩니다. 제 마음대로 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암, 당뇨, 고혈압 등 생활습관 병이란 것이 쉽게 죽지 않는 병, 장기 질환입니다. 뇌졸중, 심금경생증 등은 일단 발명하면 평생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평균 10년은 앓다가 죽는 게 한국인의 건강 실태입니다. 앓아누우면 결국 가족, 이웃, 정부의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내 인생 내가 사는데? 천만에요.

 

 

어느 날 개미집에 가보니

우리에게 많은 인생교훈을 주었던 이솝우화에 대해서도 풍요로운 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차츰 달라지고 있습니다. <흥부과 놀부> 등 전래 동화에 대한 해석도 달라지고 많은 패러디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는 특히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원전과는 아주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런 해석에 의학적 근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베짱이가 외상값을 받으러 개미집에 갔습니다. 여름내 공짜 공연을 즐겨 들은 덕분에 일도 열심히 할 수 있었으니 당연히 개미에게 관람료를 물려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좋은 엔터테이너인 베짱이로선 당연한 권리입니다.

한데 문을 두결겨도 대답이 없습니다. 열고 들어서니 이게 웬일인가. 개미가 떼죽음을 한 것입니다. 하나라도 더 모으겠다고 이을 악물고 일하다 그만 고혈압, 심장병으로 죽은 놈도 있고 일을 않고는 못 배기는 일 중독증이라 한겨울에도 일하러 나갔다 동사한 놈, 과로사로 죽은 놈도 있습니다. 잠시 쉬면 무슨 큰일이나 날 것 같아 불안 공황발작으로 죽은 놈도 있습니다. '모아놓은 걸 먹기만 하니 이러다 살림 바닥이 나는 건 아닌가.' 발발 떨고 아끼다 굶어 죽은 놈도 있습니다. 반대도 있습니다. 그렇게 죽으라고 일하던 놈이 갑자기 너무 편하게 쉬고 먹기만 하다 보니 생활리듬이 완전히 무너져 당뇨병에 걸려 죽은 놈도 있습니다.

"쯧쯧 거 봐, 내가 뭐랬어?" 베짱이가 기가 막혀 하늘을 보고 웃습니다.

 

 

한국 개미의 특성

현대 한국인은 후천성 A형 성격입니다. 눈만 뜨면 치열한 경쟁 속으로 뛰어듭니다. 한 걸음도 늦으면 안 됩니다. 성공 지향적입니다. 안정된 미래를 위해 한 푼이라도 아껴 모아야 합니다. 가히 미래 공포증입니다. 이러니 이들은 온종일 만성교감신경 흥분상태입니다. 혈압이 오르고 호흡이 거칠고 혈당이 높습니다. 인술린 분비로 높은 혈당을 지방으로 비축합니다. 배가 다옵니다. 복부비만은 무서운 생활 습관병입니다. 심장병, 고혈압, 암, 당뇨병 등의 생활습관병에 걸릴 확률이 보통 사람의 3~5배 높아집니다. 특히 허리둘레 남 90cm, 여 85cm 이상이면 강력한 대사증후군 후보입니다. 발병 일보 직정의 위험군 제1호입니다.

과음, 흡연, 기름진 안주, 폭식, 과로…… 이런 생활을 하고도 건강하다면 그건 기적입니다. 이게 더욱 악질인 것은 '이러면 안 되는 데…….' 하면서 계속하는 데 있습니다. 사업상, 접대용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게 개미들의 변입니다. 이게 더 큰 문제를 만듭니다.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것만큼 악질적인 스트레스는 없습니다. 한국형 일 중독증 개미의 슬픈 현실입니다. 이게 '여백증후군'이란 사실, 알고 계시죠. 거기다 지나친 미래 공포증, 미래를 걱정하는 나머지 언제나 불안할 뿐, 현재를 즐길 줄 모릅니다. 차라리 베짱이처럼 즐기는 게 속 편합니다.

 

 

누가 누굴 나무라?

개미는 절제 못하는 베짱이의 삶을 이해 못합니다. 흉도 보고 나무랍니다. 하지만 건강이란 측면에선 전혀 그럴 입장이 못 됩니다. 자제를 못하는 건 개미도 마찬가지, 양자 모두 절제 결핍으로 인해 생활습관병이라는 종착역은 같습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신나게 놀고 하고픈 것 하고 병에 걸리는 베짱이의 삶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개인적으로 나도 철저한 개미군단이 일원입니다. 사회 기생충 같은 베짱이의 생활이 영 못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베짱이보다 개미가 더 걱정입니다.

우리 마을 손님은 거의가 개미형입니다. 너무 일에 쫓겨 정해 놓은 3일 프로그램을 못 견딥니다. 하루 늦게 오는 사람, 일짝 돌아가는 사람, 이들의 압력에 못 이겨 하는 수 없이 1박 2일 압축 코스를 개설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문명이 닿지 않는 깊은 산골에 왔어도 잠시 내가 비우면 회사가, 아니 이 사회가 안 돌아갈 것 같은 위기의식 때문에 프로그램 종료도 전에 황급히 하산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를 생각해봅니다. 베짱이에게 놀이의 절제가 있어야 하듯.

'Stop & Thik', 잠시 여유를 갖고 자기를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이대로 가도 되는 것인지, 지금 내 건강은 어떤 상태인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합니다. 멀리 넓게 관조할 수 있는 여유도 있어야겠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걸 기획 창조해 낼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개미 쳇바퀴 돌 듯하다.'는 말은 안 하고 살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일과 생활의 균형Work Life Balance ― WLB'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균형과 조화, 이게 '건강, 성공,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개미군단에게 간청합니다. 이번 주말은 뒷산에 한번 올라보십시오. 천천히 올라 10분만 정상에 멍하니 앉았다 오십시오. 어려운 주문도 아닙니다.

 

 

 

먹을거리의 의미

모든 생명체는 삶의 기쁨으로 넘쳐난다.

파브르의『곤충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베짱이의 바이올린, 청개구리의 피리소리, 매미의 심발……

모두는 자기 삶의 기쁨을 구가한다.

삶의 기쁨은 짐승만 느끼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바람 부는 숲 속을 거닐어 보십시오, 장엄한 합창을 들을 수 있습니다. 늦가을 서성거리는 수숫대, 갈대의 노래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가뭄 끝에 내리는 빗속, 채소밭 언저리에 앉아보십시오. 한 방울 내릴 적마다 시들한 잎들이 삶의 약동으로 춤을 춥니다. 파랗게 신선한 기운으로 빛이 납니다. 비 온 후엔 한 뼘 훌쩍 자란 모습이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그리곤 가을 햇빛을 받으면 저마다 수확의 결실을 준비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주어진 자연의 질서에 따라 싹이 트고 자라 결실을 맺습니다. 인간이 어찌 이 엄한 자연의 질서를 깨뜨릴 수가 있겠습니까. 먹을 거리는 생명체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질서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시간을 존중해야 하고 그들 삶의 기쁨이 이어지게 해야 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이게 의례적으로 하는 인사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때가 되길 기다렸다가 기쁜 마음으로, 그리고 진정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 합니다. 그게 남의 생명체를 먹는 예의입니다.

이 소중한 먹을거리를 함부로 수확해서도 안 됩니다. 흙 속에 싹이 트고 자라 꽃피고 결실할 때까지 비를 맞고, 찬이슬, 태양, 바람, 땅의 기운과 함께 전 우주가 참여한 귀중한 생명체입니다.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윽고 식탁이 마련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가을 수확에서 식탁에 오르기까지에도 많은 사람의 손길을 거쳐야 합니다. 아내의 따뜻한 정성, 막내딸의 엉성한 상차림 손길까지, 식탁은 그야말로 '시간의 교향고'입니다. 이들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천천히 씹으면서 그 맛을 음미해가며 즐겁게 먹어야 하는 게 먹을거리의 예의입니다.

식탁은 즐거운 분위기로 넘쳐나야 합니다. 편안과 휴식, 부교감 신경의 향연이요, 행복과 즐거움, 세로토닌의 향연이어야 합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가 먹을거리, 생명체에 대한 예의를 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으로 돌아갑니다

70년 전후로 해서 도시화, 산업화 물결과 함께 도시로 몰려오면서 한국의 도 · 농 인구는 순식간에 역전되어 버렸습니다. 산골 학교만인가요. 시골 간이역도 하나둘 문을 닫습니다. 도시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자본주의, 산업주의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자연으로부터 쫓아냅니다. 농촌은 피폐일로, 개발이란 이름으로 산도 자연도 성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요? 이건 환경론자의 사치스런 걱정이 아닙니다.

더욱 문제는 자본주의 경쟁 논리는 끝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더, 더, More 신화에 빠져 있습니다. 더 큰 것, 더 좋은 것, 더 빨리, 더 많이…… 끝이 없습니다. 큰 집을 사면 잔디 깎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풀장 관리, 세금…… 결론은 돈을 더 벌어야 하고, 그러자니 일을 더 해야 하고 시간에 쫓겨 친구 한 번 만날 여유가 없습니다. 고독한 성지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느라 건강이나 해치지 않으면 그건 기적입니다. 고혈압, 당뇨병…… 결국 공기 좋은 산속으로 집을 옮겨야 합니다. 외딴집이라 불안해 높은 담장, 철책에 CCTV까지 그래도 밤이면 바스락 소리에 잠이 깹니다. 잃은 게 어디 건강뿐입니까, 자본주의 시장 논리라는 이 괴물은 인간으로부터 삶다운 삶을 뺏어갔습니다. 우리는 시를 잃었고 음악, 예술, 인문학까지 실종되어버렸습니다.

처음부터 자연에 묻혀 작고 소박하게 살았다면 최소한 건강만은 지킬 수 있었을 텐데, 부도날 걱정도, 은퇴, 정년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 자연과의 삶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어떤 기업이 80, 90세 노파를 고용해줍니까. 그러나 흙은 당신이 움직일 수 있는 한 언제나 반갑게 맞아줍니다. 대지에 발을 딛고 사는 삶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우리 조상은 자연 속에 묻혀 자연과 함께 살았습니다. 큰 욕심을 낼 것도 없거니와 욕심 낸다고 뾰족한 수가 나는 것도 아닙니다. 하늘이 시키는 대로 분수대로 살아갑니다.

자본주의는 다투는 세계, 경쟁논리가 주체입니다. 하지만 자연에 묻혀 사는 우리 조상의 자연주의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와 나누고 베풀고 삽니다. 돈을 풍요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돈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고, 이 아름다운 자연이 다 사라진다면 그때 돈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자연주의로 돌아갑니다. 그 큰 철학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산은 위대한 자연치유자

이젠 사람들도 '유기농, 자연산' 건강식에 관한 한 웬만한 전문가 수준을 능가합니다. 화학비료, 농약, 유전자 변형……얼마나 매스컴에서 떠들어댔던지 가히 공포증에 빠져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안심하고 먹을 수 없다고들 난리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오 농촌에 가보면 밭이 아니라 채소공장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농약을 썼으면 포장이나 깨끗이 치울 것이지 그대로 널부러진 걸 보노라면 솔직히 소름이 끼칩니다. 그게 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몸에 처음 들어오는 화학제품이라 뇌가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혼란에 빠집니다.

요즈음 선마을은 고성군의 생명환경농법으로 재배된 농산물을 쓰고 있습니다. 완벽한 유기농 무공해산입니다. 우리 텃밭도 그 농법에 쓰인 발효비료를 사용하여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농산물 유통업체에서도 이 문제에 관한 한 통제를 철저히 해주고 있어 다소 마음이 놓이긴 하지만 생산자 의식은 아직도 옛날 그대로가 많아 걱정입니다. 제초제 한번 뿌리면 잡초가 싹 없어집니다. 쉽고 편한 방법이 있는데 왜 달리하겠습니까? 이젠 좀 비싸도 좋은 품질을 고르는 소비자의 안목과 각오가 있어야 생산자 의식이 바뀝니다.

여기서 다시 자본주의의 자연주의 희구론이 대두합니다. 농산물을 못 믿겠거든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바니다. 깊은 산골에 작은 농장이라도 마련, 내 손으로 직접 짓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아예 산골로 들어가 내 눈으로 확인한 농산품을 구입하면 됩니다. 내가 못 지어도 뒷집 할매가 텃밭에서 키운 상추, 산에서 뜯어온 산나물이면 안심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숲에서 암을 이겨낸 사람들』이라는 저서를 감수했습니다. 선마을 암환우들의 이야기를 참고하여 감수한 책이지만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암 말기라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게 없다고 밀려나온 환자들입니다. 모든 걸 체념하고 '죽으러' 산에 들어갔습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소박한 산중생활이 시작됩니다. 한데 이게 웬걸, 죽질 않는 것입니다. 한 해, 두 해, 이젠 10년, 20년 끄덕없이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뷰한 나도 놀랐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살려냈을까. 모든 걸 체념한 편안한 마음이 첫째일 것입니다. 그리고 맑은 물과 공기, 완전 유기농, 무공해의 소박한 밥상이 이들을 살려냈습니다. 산의 위대한 치유력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된 것입니다. 산이 위대한 자연 치유자입니다.

 

 

 

산은 생명 그 자체

산의 치유력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세계적으로 붐입니다. 잘 알려진 피톤치드, 음이온, 맑은 공기에 대한 의학적 검증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실제로 면역세포 즉 항암기능이 큰 NK세포가 증식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산에 오면 머리가 사뿐해지는 것도 온갖 방향제와 맑은 공기 탓입니다. 산에 오면 누구나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도,여기가 쾌적, 평화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보고라는 사실도 여러 차례 언급되었습니다.

새소리, 물소리, 산들바람, 풀벌레 울음, 학자들은 이런 자연의 소리를 1/f 리듬으로 표현합니다. 이 리듬은 자연에서 들리는 파동으로서 클래식 음악이나 태교음악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자연계의 생명적 파동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릴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뇌파엔 알파파, 뇌에는 엔도르핀까지 분비됩니다. 이 리듬의 특징은 일정한 듯하면서 일정하지 않은 묘한 파장입니다. 새들의 지저귐도 얼른 듣기에 규칙적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높은 음, 낮은 음, 긴 놈, 짧은 놈 아주 불규칙적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사람 마음을 그지없이 편안하게 해줍니다.

자연계는 같은 것 같으면서 같은 게 없습니다. 멀리서 보면 푸른색 수풀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지만 산속에 들어가보면 나무 하나 같은 게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가 다른 것들이 모여 '나무'라는 전체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나무'라 부릅니다. 나무를 잘라보면 나이테가 동심원을 이루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하지만 굵기며 간격이 다 다릅니다. 이런 불규칙성이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사람이 그린, 일정 규격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자세히 보노라면 바람 한 점 없는 이 순간에도 나뭇잎은 조용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역시 1/f 흔들림입니다. 자연계는 그야말로 1/f 파동, 진동, 리듬, 흔들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편안감을 주는 건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산도 멀리서 보면 그냥 산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바위 모양에서 배치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구석 같은 곳이 없습니다. 모퉁이 돌면 전혀 다른 산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높은 산, 낮은 산이 있고 생김새가 다 다릅니다. 그리고 계절마다 산은 완전히 새로운 산으로 바뀝니다.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또 다릅니다. 한국인의 감성적이고 다양한 개성은 산을 닮아서입니다. 맑은 공기가 두뇌발달에 결정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등 뒤로 들리는 절의 저녁 종소리는 또 얼마나 그윽한가요. 영적인 공감이 절로 일어납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약용으로 쓰이는 고산식물의 생약 연구도 단연 한국이 선두주자입니다. 산나물, 버섯, 맑은 계곡물…… 끝이 없습니다. 산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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