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모처럼 촉촉히 내린 가을 비속을 거닐며...
무화과가 익어간다.
가을햇살에 익어가는 토종오이
가을날의 아침은 배추속에 든 벌레를 잡아주는 일로 시작한다.
배추잎은 여치와 섬서구메뚜기의 먹이감이자 놀이터
배추가 왜 안클까?
그럼 그렇지, 뿌리는 이미 땅속벌레한테 다 갉아 먹혀 있더라.
차꽃
벌개미취
야생국화
나의 할아버지는 차멀미를 심하게 하셔서
바깥 세상구경은 거의 못하시고
평생을 오로지 산청 산골에서만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생전에 워낙 말수도 적으셨고
삶과 일에도 바쁘게 서두르시는 법이 없으셨다.
초등 고학년때와 중학생, 고등학생때의 여름방학은
할머니 밥하는데 설거지라도 거들어 주고 오래서
방학내내 할아버지댁에서 지냈다.
초등생때 한번은 할아버지가
장날 암돼지를 수태시키려 간다고 하셔서
작대기 하나를 들고 산길로 돼지를 몰고가는
할아버지를 따라 장터까지 걸어갔다 온적도 있었다.
할아버지댁에도 소가 있어 그곳 동무들과
언덕으로 소풀 먹이러 갔다가
송아지를 잃어버리고 온 적도 있었는데
아침이면 송아지가 집찾아 올거라며 혼내키지도 않으셨다.
땡볕에 잔디씨 훑으려 돌아댕겨도 보고(한되에 3~4천원 준다고 했다.)
똥돼지가 있는 변소간에서 볼일 봐야하는 시절을 보냈다.
그 몇번의 여름방학 경험이 도움이 된 탓도 있겠고
나도 차 타고 다니는 것 좋아하질 않는 편이라서
삽짝 밖에도 나가지 않고서도 심심하질 않으니
내 할아버지의 유전자가
뼈속 깊숙이 들어 앉았는가 모르겠다.
나의 할아버지는
오늘 다 못하면 내일 하지! (일꾼 데리고 일하실때도)
남편의 할아버지는 그 반대였다며
해지기전에 빨리 다 끝마쳐야 한다고 서둘러!
남편은 시골일에 직접 부딫혀 일해보니
내 할아버지의 말씀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고 한다.
나도 남편한테는 오늘 다 못하면 내일 하자고
서두르지 않도록 해주니까 역시 각시가 최고야!
지난 주 면사무소에 갔다가 군에서 나눠 준
프린터족자가 입구문에 걸려있는 시한 수를 베껴 왔다.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내가 잡초 되기 싫으니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 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순간이더라!
귀가 얇은 자는…
그 입 또한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그 입 또한 바위처럼 무거운 법
그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토란줄기
가을단풍이 산중턱까지 내려왔다.
그 많던 노린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색의 달 시월도 얼마남지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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