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골에서의 귀농살이가
지난 8월말로 만12년을 넘어서고 13년차를 맞았다.
귀농전까지 흙일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기에
달랑 신랑하나만 믿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다가
녹차도 만들고 집짓기도 참여하고 돌담쌓기도 돕다보니
그동안 손바닥엔 굳은 살도 여러개 박혔다.
가상공간에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머리는 비롯 희끗해졌지만 ㅋㅋ 보람도 많았다.
어느 날 저녁, 늙은 체로키 인디언이 손자에게
사람들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얘야,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는 두 마리 '늑대'가 싸운단다.
하나는 '불행'이라는 늑대야.
두려움, 걱정, 분노, 시기, 슬픔, 자기 연민, 원한, 열등감의 늑대지.
다른 하나는 '행복'이라는 늑대야.
기쁨, 사랑, 희망, 평온, 친절, 관대함, 진실 연민의 늑대란다."
아이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 물었다.
"어떤 늑대가 이겨요?"
늙은 체로키 인디언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내가 먹이를 주는 녀석이 이기지."
딸들이 10살, 8살때에 시골살이가 시작되었기에
딸들의 커가는 모습을 엄마와 아빠가
늘 같이 지켜볼 수 있는 가운데 딸들이 성장해서 좋았다.
대학생인 딸들은 여름방학때에
아빠와의 대화도 곧잘 이루어지는데
추석날에 작은딸이 교수님이
아빠와 꼭 같은 말씀을 하시더란다.
현대 사회는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S직장에서 번 돈으로
S병원에서 출산하고
S아파트 사고
S백화점을 이용하고
마지막엔 S장례식장으로 간다고.
여름휴가때 오겠다던 남동생가족과 그이웃들을 기다리다
사정이 생겨서 못오게되자 늦어진 감자캐기는
아빠가 손가락을 다친 바람에 딸들이 도왔다.
딸들은 텃밭에서 땀흘린뒤 개울가에 퍼져앉아
자매간에 장난치는 시원함은 잊지 못할 것이다.
엄마한테 사진 찍힌 줄도 모르고ㅋㅋ
여름날에 줄창 내린 비에 그래도 호박은 영글었는데 속은 어떨지 모르겠다.
토마토는 이상하게도 죽는 현상이 일어나 실패를 맛보았지만
고추와 들깨, 가지는 비내린 날씨에 비교하면
그래도 잘지어 먹은 편이다.
약을 안치니까 붉은 고추는 처음부터 포기하고
풋고추로만 먹었더니 날마다 풋고추를 먹은 셈이다.
9월이 되면서 산에 알밤이 떨어지는게 늦어지니까
한밤중에 멧돼지가 자주 다녀간다.
텃밭에 모아둔 거름더미와 녹차밭골을 헤집고 다녔는데
우리밭들은 해로운물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멧돼지가 더 잘아서 땅속에 있는 지렁이를 파먹고 갔다.
지렁이를 맛을 한번 본 멧돼지는
알밤보다 지렁이를 먹을려고 더 자주 나타나고 있다.
속살이 빨갛게 잘 익은 여주
중간고사치고나면 또 군밤먹으러 오겠다며
추석명절을 쇠러 온 딸들이
추석연휴마지막날 느지막하게 집을 나섰다.
태풍과 잦은 비로 채소값들이 껑충 뛰었다는데
여름날 무성하게 자랄때는 잘 가꿔 먹지않는 이웃들에게
호박, 오이, 박을 나눠 줄 수 있어 좋았다.
시댁에는 올해 박이 잘 안되었다며 추석때는 우리박으로 나물을 했다.
잦은 비로 우리밭엔 배추모종을 추석이 가까워서야 50포기 심었는데
모종이 적어 적게 심으니 나중에 솎아 낼 것도 없고 잘 된것 같다.
멧돼지도 다녀가고 비도 자주 내려서 가을무 파종도 늦게 했다.
비에 녹아서 이웃들은 여러번 파종했다는데
우린 한번에 성공했으니 무가 크게되든 작게되든
날씨가 키워줄텐데 멧돼지만 훼방을 안 놓으면 좋겠다.
거제도인 시댁에는 여름에 너무 가물어서 늙은 호박도 안되었다는데
누런 보물이 네통씩이나 ㅋㅋ
차밭골에서 뻗어나온 호박넝쿨은 걷어다 다시 차밭골에 보냈다.
온사방이 뻥 뚫렸으니 멧돼지들이 어디로 들어오는지
어떤날에는 멧돼지가 얌전하게도 쪽파를 밟고만 지나가서
그나마 다행이라며 일으켜 세운다.
나와 남편은 학생때 자기만의 책상이 없었다.
남편은 신혼때부터 책상에 욕심이 있어
우린 신혼단칸방에 책상을 놓고 살았는데
지금은 우리가 사용하는 방안에 울부부의 책상이 놓여있다.
나와 함께 늘 학습하는 자세로 살겠다는 굳은 의지다.
TV 방송에서 유용한 프로그램은
우리가 시간날때 컴퓨터로 보는데
고전에서 배우는 행복론이란 강의에서
제사때 지방쓰기에 學生(학생)이라는
글자가 왜 들어가는지 알았다.
부(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지방쓰기는
顯考學生府君神位 (현고학생부군신위)로 쓴다.
조부, 증조부, 고조부의 지방쓰기에도 學生(학생)을 쓰는데
풀이하자면 평생 배우다 사셨던 분 나타나시라는 것이란다.
행복찾기의 첫걸음이 학습하는 것이고
동양에선 후손에게 가장 듣고 싶은 칭호가 학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덤벙덤벙 살아서도 안되겠고
살아가는 동안 뭘 배우고 익혀야 하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남편은 딸들한테 학생때만 배우면 되는 것이 아니고
배움은 끝이 없으니 죽을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아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지방쓰기에서도 알 수있었다.
올가을은 산에 풀베기작업은 늦게 미루고
집앞부터 풀베기를 해주니 마당이 운동장처럼 보인다.
우체부아저씨가 다녀가시면서
돌이 있을텐데 야무지게 베었다며 칭찬해주셨다.
여름날에 아빠가 예초기로 풀을 베면
작은딸이 갈고리로 긁어 모아 주었는데
뒷날 여기저기 아프다고...
엄마, 아빠도 이런저런 일들을하고나면
아플때도 많이 있는데 여간해선 서로가
아프다 소리를 안하고 파스를 붙이지 않으니까
농사일이 그리 만만한게 아니란 걸 알았을게다.
딸들이 2학기 개강을 위해 집을 떠나고
팔월말에 소낙비가 내린 뒤 3분간 뜬 무지개
높게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며 올여름은
칠월과 팔월 두차례에 무지개를 보는 행운을 얻었다.
구월의 가을밤에는 늦반딧불이들이 친구하자고 계속 나타난다.
사랑하는 울신랑과 딸들을 포함하여 모든분들이
날마다 '행복'의 늑대 한마리 잘 키우시길 바라며
귀농일기 한참을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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