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장마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고 희안하게 지나가더니
불볕더위와 목마름에 타들어갔던 식물들이
엊저녁 잠깐 내린 소나기에 싱그런 아침을 맞아 춤춘다.
관찰은 모든 업적의 시작이다
"자네는 사물을 보기만 하고 관찰은 하지 않는군. 본다는 것과 관찰한다는 것은 크게 다른거야." 명탐정 셜록 홈스가 남긴 명대사 중 하나다.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이 다른 이유는 많겠지만 시간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얼마나 오래 끈기 있게 계속 지켜볼 수 있는가의 차이가 '관찰'의 결과를 다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 노규식,『현대인들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만족 없는 삶에 던지는 21가지 질문
- 김형철지음『 철학의 힘 』중에서 -
김형철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볼링그린주립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시카고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철학회 사무총장, 사회윤리학회 회장, 연세대 리더십센터 소장, 세계철학자대회 상임진행위원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한국철학회 부회장이자 연세대학고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Best Teacher'로 선정되었고 '대한민국 최우수 인문학 강의 교수상'을 수상했으며, '2013년 SERI CEO 최우수 강사', 한국학술진흥원 선정 '국내 강의 실력 베스트 7'에 뽑힐 만큼 명강사로 유명하다. '윤리경영 리더십'과 '변화와 혁신의 철학', 'CEO와 경영철학', '리더십 딜레마 클리닉', '인문학적 상상려과 창조경영 지혜', '이솝경영철학' 등을 주제로 LG, SK, POSCO, GS 등의 대기업과 주요 공공 기관에서 자문과 강연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인간은 불안과 불행이 깊어질수록 고뇌하기보다 회피한다. 물론 삶이 순탄하다면 고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물으며 탐구하는 과정 없이는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기 어렵다. 자신의 삶을 성찰할 기회를 통해 보다 값진 인생을 이룰 수 있다.
인생은 왜 짧은가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 존 러스킨
그 많던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겨울이 찾아오고 연말이 다가오면 문득 허탈해진다. 새해를 맞이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연말이라니…… 마치 1년 이라는 시간을 도둑맞은 것만 같다.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 40여 년간 연락이 닿지 않았던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먼발치에서도 한눈에 알아보고 달려가 얼싸안았다. 안부를 묻고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함께 뒹굴며 장난 쳤던 추억들을 떠올렸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한 기억들이다. 무정하여라, 세월이여. 정말이지 시간은 어디로 간 것일까?
네덜란드 심리학자 다우베 드라이스마는 우리가 과거를 기억할 때 '망원경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다. 망원경을 통해 사물을 보면,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고 세밀하게 보여서 그 물체까지의 거리가 실제보다 짧게 느껴진다. 과거를 돌아볼 때도 망원경으로 보듯이 지난 기억들이 확대되어 보이기 때문에 시간의 거리가 축소된다. 그날 나 역시 망원경으로 추억을 들여다보았기에, 40년 전의 일들이 엊그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간다'라는 말이 있다. 시간은 물리적으로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고 있으련만 유독 짧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인생이 짧은 세 가지 이유
인생이 왜 짧게 느껴질까?
첫째, 할 일이 많아서 인생이 짧다. 시간은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다. 할 일은 산적한데 늘 시간이 부족하다. 경제학에서는 '부족'과 '희소'를 이렇게 구별한다. 어느 주차장의 면적이 부족해서 크기를 세 배로 늘렸다. 주차난은 조금 해소됐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쉽게 차를 세우지 못하고 뱅뱅 돌아다닌다. 건물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서다. 주차장을 몇 배로 확장해도 '건물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에 대한 수요'는 늘 부족하기만 하다.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는 텅 비어 있지만 가까운 자리는 희소가치가 높아 늘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희소한 것은 값어치가 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가장 희소하고 값진 것은 바로 시간이다. 숨 쉴 수 있는 한 호흡이 모자라 인간은 숨을 거둔다.
둘째, 과거를 망각하기 때문에 인생이 짧다. 살아온 날들은 길지만 기억의 용량이 적어, 지난 시간이 한순간처럼 느껴진다. 돌아보면 강렬한 사건들만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고 소소한 일상들은 지워진다. 그렇게 선별적인 기억만으로 이어져 있는 시간은 실제보다 짧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2006년, 뇌과학 분야의 유력 학술지 <뉴로케이스>에「비상한 자서전적 기억의 사례」라는 논물이 실렸다. 살아온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여성에 대한 놀라운 보고서였다. 질 프라이스라는 이 여성은 평생 경험한 것에 대한 기억을 언제나 생생하게 지니고 있었다. 어떤 날짜를 제시하면 그날 벌어진 역사적인 사건과 사고를 상세히 떠올릴 뿐만 아니라, 그날 먹은 음식들과 만났던 사람들까지 완벽하게 기억해냈다. 이 증상은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학계에 보고된다. 그녀의 놀라운 기억력은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지만 정작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 남편을 잃은 기억, 잊고 싶은 모든 기억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녀 늘 괴로움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인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살아가야만 하는 그녀는, 망각이야말로 커다란 축복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기억 저편으로 날려버린 시간 속에는 불행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과거를 모두 기억한다면 불행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망각이란 일종의 생존을 위한 기술이다. 우리는 선택적인 기억을 통해 부정적인 기억을 지우고 미래를 향해 새롭게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과거는 잊어야 한다. 과거의 실패를 잊어야하고 마찬가지로 과거의 성공 또한 잊어야 한다. 실패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못하다. 사람은 한번 성공한 것을 답습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왜 잘됐는지 그 원인을 생각하지 않은 채 무조건 과거의 방식만 반복하려 한다. 그러나 과겅의 성공도 잊어야 한다. 과거를 잊어버리되 성공적으로 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훈을 얻는 것이다. 비록 인생이 짧게 느껴질지언정 덧없게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교훈을 얻고 나머지는 잊어야 한다.
셋째, 시간을 낭비하기에 인생이 짧다. 과거를 재차 돌아보면 그만큼 나의 현재가 멈추고 시간이 낭비된다. 실해한 기억이나 서운했던 마음, 인정받지 못해 서글펐던 일들을 끝없이 떠올리며 분노하거나 좌절한 채 주저앉곤 한다. 회상을 반복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행동하지 않은 채 그 안에 갇히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 여전히 서운함이나 화가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을 대면하고 쏟아내 정리하면 된다.
나이 든 사람들은 자주 '그때가 참 좋았다'라고 말한다. 물론 소중한 추억이겠지만, 과거를 돌아보며 향수에 젖는 데 황금같이 아까운 현재를 소진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회상한 것을 회상하는 데 다시 시간을 쓴다. "당신하고 나하고 작년에 강릉에 갔을 때 말이야,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 얘기 했잖아. 밤차 타고 처음 바닷가에 놀러갔던 얘기 말이야." 사건은 하나인데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반복된다. 새로운 경험을 해야 할 시간에 과거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현재가 시들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을 때, 사람들은 과거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러면서 짧은 인생을 더 짧게 쓴다.
세네카는 인생이 짧은 이유를 '낭비'에서 찾는다.『인생이 왜 짧은가』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수면이 짧은 것은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충분히 길다. 잘 쓰기만 한다면 수면은 큰 일을 해내기에도 중분하다. 하지만 방탕과 무관심 속에서 인생을 흘러보내면, 좋지 못한 일에 인생을 다 소모하고 나면, 그때는 마침내 죽음이라는 마지막 강요에 못 이겨 인생이 가는 줄도 모르게 지나가버렸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네카는 사치와 향락을 좇아 바쁘게 살면서 정작 행복은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인간의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수명을 짧게 만들었고, 수명이 넉넉지 못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명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천수를 누린다면 인생이 길다고 느껴질까? 그렇지 않다. 얼마를 살더라도 죽음의 순간이 되면 우리는 인생사 일장춘몽이구나, 하고 탄식할 것이다.
"아무도 그대에게 세월을 되찾아주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그대를 다시 한 번 그대에게 돌려주지 않을 것이오. 인생은 처음 시작한 그대로 흘러갈 것이고, 진로를 되돌리거나 멈추지 않을 것이오. 인생은 소란도 피우지 않고, 자신의 속도를 상기시키지도 않은 채 소리 없이 흘러갈 것이오. 인생은 왕의 명령에 의해서도 백성의 호의에 의해서도 더 길어지지 않는다오. 인생은 첫날 출발한 그대로 계속해서 달릴 것이며, 어디서도 방향을 틀거나 머물지 않는다오. 하지만 그대는 분주하고 인생은 달려가고 있소. 그사이 죽음이 다가오면 그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죽음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할 것이오." 세네카의 이 말처럼, 인생을 돌이킬 수는 없다. 이렇게 살아도 짧고, 저렇게 살아도 짧은 것이 인생일지 모른다.
내일이 궁금해지는 순간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다. 짧게 느낀다는 것은 곧 좋은 인생을 살고 있음을 뜻할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선배는 5년 단위로 인생을 계획하라고 말한다. 그 선배가 '5년'으로 인생의 단위를 정하게 된 계기가 있다. 그가 한창 젊었을 때, 65세를 맞아 은퇴를 한 교수님을 뵙게 되었다고 한다. 안부 인사를 드리자 교수님은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 한 5,6년 더 살겠지"라며 특별한 일 없이 지냈다고 하셨다. 환갑을 맞으면 장수했다고 축하연을 하던 시절이였으니, 일흔 살쯤 살게 되리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그로부터 5년 정도 시간이 흘러 그분을 다시 뵙게 되었다. 고희가 된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 그리고 역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신다고 했다. 그런데 그분은 그로부터 15년을 더 사셨고 85세에 돌아가셨다. 은퇴 후 거의 20년간 건강하게 지냈지만 그동안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으셨다. 그전까지는 괄목할 만한 업적도 이룬 분인데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며 긴 세월을 그냥 흘려보낸 것이다.
그 교수님의 노년을 생각하며 선배는 인생의 단위를 5년으로 정했다. "5년 단위로 계획을 해라. 은퇴까지가 아니라 120살까지 계획을 해. 아니, 그냥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을 해라." 계획이 있으면 내일이 궁금해진다. 니체는 "이 순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고, 내가 해낼 일이 궁금해진다. 그렇게 궁금해지는 순간 우리는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호기심이 있다는 건 인생에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다.
내일이 궁금하고, 내년이 궁금하고, 앞으로의 시간이 궁금하면 인생은 짧게 느껴진다. 한 치 앞도 궁금하지 않은 시간, 또는 가치없는 영겁의 시간보다 호기심에 차 있는 한 줌의 삶이 더 소중하다. 다가오는 시간은 늘 새로운 순간들이다. 우리는 그 시간을 몰입으로 꽉 채워서 살아야 한다.
죽음 앞에서 '지겨운 인생을 지금까지 이어왔구나' 하고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즐기기에도 짧은 생이었노라'라며 여한 없이 눈을 감을 것인가. 시간이 빨리 흐르고 인생이 짧게 느껴진다면 축복으로 여겨도 좋다. 당신은 지금 밀도 있는 삶을 살아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삶은 왜 불공평한가
인생이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이 사실에 익숙해져라.
-빌 게이츠
불평등의 핵심, 가족
삶은 왜 불공평한가? 불평등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하는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보기에 삶이 불공평해지는 주요 원인은 놀랍게도 가족이었다. 첫째, 가족은 구성원마다 각기 다른 재능을 지닌 채 태어난다. 둘째,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다르다. 셋째, 가정교육을 포함해서 교육 수준이 다르다. DNA, 재산, 교육의 불평등을 유발하는 이 세 가지가 나오는 곳이 바로 가족이다. 결국 인간의 불평등은 가족이라는 제도에 기인한다. 엥겔스는 불평등을 유발하는 조건을 없애기 위해서는 가족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삶은 구조적으로 불공평하다. 가족은 가장 불평등한 조직이며 불평등한 관계다. 부모, 자식, 형, 동생 등 가족 구성원은 위계질서에 놓여 있다. 서양의 가족도 그렇지만 동양, 특히 유교에서는 가족간 위계질서를 심화시킨다. 공자는『논어』에서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살아가라고 했다. 이것이 정명正名 사상이다.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해야 하므로, 왕은 왕으로서의 역할, 신하는 신하로서의 역할, 부모는 부모로서의 역할,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정명사상에 따르면 부모와 자식의 역할은 각각 다르다. 엥겔스는 불평등을 유발하는 가족을 해체해야 한다고 했지만, 유교는 가족 내의 불평등을 사회로 연장했다. 사회와 공동체도 가족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임금은 부모와 같고 신하는 자식과 같다고 말한다.
유교에서 말하는 '인仁'이란 차별적 사랑이다. 보편적 사랑을 말한 묵자는 "길을 가는 노인도 내 할아버지와 똑같이 대하라"라고 했다. 이에 대해 맹자는 "친할아버지도 길에 있는 노인처럼 대하라는 것인가?"라며 반박했다.
일찍이 플라톤 역시 가족이 불평등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그는『국가』에서 인간은 세 가지 계급으로 나뉜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지배자 계급인 철인왕, 그는 지혜라는 덕목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는 전사 계급, 이들은 용맹이라는 덕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는 노동자 계급, 이들은 근면·절제라는 덕목을 가지고 있다. 그중 전사 계급은 다부다처제를 이루도록 했다. 일부일처제라면 자기 가족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게 된다. 국가를 방어해야 할 전사 계급이 국가보다 가족을 먼저 지키려는 마음이 앞선다면 국가의 존립에 난황을 겪게 된다. 하지만 다부다처제는 애착의 정도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개별적 가족보다는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싸울 수 있다.
이처럼 플라톤은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가족에서 찾았다. 가족을 사유재산 등 모든 개인적 이익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라고 보았다.
공평·불공평에 대한 여러 입장들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포도원의 주인이 아침에 거리에 나가서 일꾼들을 모은다. "오늘 포도원에서 일하면 한 네나리온을 주겠소" 그렇게 만난 일꾼들이 포도원에 가서 일을 시작한다. 점심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일손이 모자라자 주인은 다시 나가 일꾼을 모은다. "일할 사람 모이시오." 점심에 모인 사람들도 포도원에서 일을 한다. 늦은 오후, 주인은 다시 거리로 나가 일꾼을 부른다. 뒤늦게 모인 이들도 포도원에서 일을 한다. 저녁이 되어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주인은 품삯을 나눠준다.
그런데 아침, 점심, 늦은 오후에 모인 이들이 똑같이 한 테나리온씩을 받은 것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불공평합니다. 난 아침부터 일했고, 저 사람은 겨우 저녁이 다 되어 일을 시작했는데, 어떻게 똑같이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포도원 주인은 말한다. "여보게, 나는 자네에게 잘못한 것이 없네. 자네는 하루 품삯으로 한 테나리온을 받기로 처음부터 정하지 않았는가? 자네 품삯이나 가지고 가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준 것은 내 마음에 달린 것일세." 그러면서 그 유명한 말을 남긴다. "처음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된다."
예수는 남과 비교하지 말라. 불공평하다고 불평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공평과 불공평을 따지기 위해서는 비교 대상이 필요하다. 이에 예수는 비교하지 않으면 불공평도 없다고 말했다.
존 롤스는 일한 만큼 가져가는 것이 공평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지닌 능력, 집안 배경, 학력 등은 고스란히 내 노력에 의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는 부모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 또한 전 세대가 물려준 유산을 기반으로 한다. 뉴턴이 발견한 중력으 법칙은 그의 독창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선대부터 축적된 지적 재산의 결과물이다. 뉴턴은 이와 같이 말했다.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롤스는 사회 협동에서는 개인적 재산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단지 공동적 재산만이 있을 뿐이고, 그 전체가 협상의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사회 구조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 '그래도 이 정도면 나는 살 만하다'라고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도록 분배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했다. 바로 '차등의 원칙'이다.
로버트 노직은 이에 반대하며 각자의 자유에 의해 맺은 계약으로 발생하는 불평등은 정당하다고 말한다. 노직은 자유지상의자다. 그는 사유재산의 획득 방식과 교홤 방식이 정당하다면 그 분배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노직은 저서『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소유에 대해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면 그 분배는 정의로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소유권 이론을 통해 국가가 개인의 소유권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것이 정의라고 말했다. 최초의 사유재산권은 자원에 대한 노동력 투입에 의해 창출된 가치를 소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노직에 의하면 각 개인이 노동에 따른 결과물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고, 그것을 자발적인 합의를 통해 타인과 교환할 수 있다.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정의를 자연적인 덕목이 아닌 인위적인 덕목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제한된 범위 내에서먼 이타심을 발휘하는 존재다. 따라서 개인 간의 갈등를 해결함으로써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원칙을 적용하는 인위적 기준, 제도를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흄에게 정의란 타인의 재산에 대한 존중과 계약의 준수 등 재산 및 계약을 보호하는 데 있다. 그는 타인의 재산권 침해, 사기, 기만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 한 누구나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지는 공평하게 주어졌다
불공평을 확장하거나 증폭하는 사회적 제도들이 있다. 제일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로또다. 1등에 당첨되면 하루아침에 수십억대 부자가다 된다. 로또뿐 아니라 경마를 비롯한 각종 도빅들 역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이 사람에게 빼앗아 저 사람한테 채워주는 제로섬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이의 삶을 반드시 공평하게 만들어야 하는가? 올림픽 시즌이면 모두 가슴을 졸이며 경기를 지켜본다. 금메달이 확정되면 큰 소리로 환호한다. 이렇게 우리는 자발적으로 1등에 박수를 보내고 선망하며 승자가 부와 명예를 독식하는 구조를 만든다. 선수들은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4년 동안 모든 것을 걸고 연습에 몰두한다. 1등, 2등 구분 없이 모든 결과가 공평하게 평가된다면 그 누구도 노력과 열정을 그만큼 쏟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공평하기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평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기와 질투가 존재한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공평하기를 원하면서 원하지 않는 본성을 충실히 따른다. 누구든지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공립교육이 존재한다. 또 한편으로는 '더 배우기 위해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사람들을 위해 사립교육이 존재한다. 공립학교는 국가 보조금이 지원되므로 누구든 무상으로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립학교는 국가 보조금이 없다.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더 좋은 교육을 받겠다는 사람에 대해서 선택의 자유를 열어둔다. 현실적으로 결과가 평등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고, 기회의 평등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은 그다지 공평하지 않다. 타고난 재능과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회를 얻어야 하며 능력만으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같은 출발선상에 서 있지만 운이 좋아서 성과를 얻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학연, 혈연, 지연 같은 소위 연고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불공평을 느낄 때가 더 많다. 세상에는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엘리베이터에 먼저 탄 사람은 먼저 내리는가? 제일 먼저 타면 제일 늦게 내린다. 비행기 수하물도 안쪽부터 채워 넣기 때문에 제일 늦게 짐을 실은 사람이 제일 먼저 찾는다. 공평하려면 먼저 탄 사람이 먼저 내리고, 짐을 늦게 실은 사람이 늦게 찾아야 될 텐데. 그렇지가 않다.
세상이 공명정대하려면 불공평한 것을 바로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서 말한 대로 앵겔스는 불공평의 산실이 가족을 해체하자고 주장했다. 롤스 역스 공평을 추구하지만 가족까지 해체한다는 극단적인 방법을 강구하지는 않았다. 노직은 평등이 오히려 더 큰 폐해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질투와 시기라는 본성을 지니고 끝없이 남과 비교를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특성상 완벽한 공평함이란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할지도 모른다. 작가 조지 오웰은 "모든 동물이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라고 말한다. 현실의 삶은 불공평하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질투와 시기, 비교라는 한계와 싸우며 공평함을 추구하기 위한 의지가 주어져 있음은 분명하다. 모든 인간이 한계를 지니고 태어난 것처럼, 의지 또한 공평하게 주어졌다.
'사랑과 행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꼰대' 탈출 (0) | 2016.09.04 |
---|---|
여보, 나와 살아줘서 고마워 (0) | 2016.09.02 |
하늘이 주는 귀한 선물 (0) | 2016.07.29 |
인생 참 맛있대요 (0) | 2016.07.12 |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0) | 2015.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