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떠들썩하게 나서지 않고 바위는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는 말이 정말인 것 같다. 우리집에서 언제나 바라만봐도 마음이 넉넉해져오는 큰바위는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서 동산처럼 흙으로 온통 뒤덮혔던 것을 남편의 눈썰미로 새천년이던 해 2000년에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고 '두꺼비 바위' 이름을 얻게 되었다. KEEP CALM AND CARRY on!
무엇이든 감사할 수 있을 때 운이 트인다
"100 감사를 쓰며 내 안에 있는 것,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기 시작하자 오늘에 만족하는 마음이 생겼다. 어제는 나를 힘들게 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던 것들도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충분히 많이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자 자신감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하루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 에 감사하며 내 삶을 사랑하게 되었고 '내일' 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면 입에서는 행복하다는 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김병완『스무 살에 읽었으면 흔들리지 않았을 책들』
- 홀름 프리베 지음『당신이 원하는 기회는 아직 오지 않았다』에서 -
완벽한 타이밍을 잡기 위한 현명한 기다림의 기술
'성급한 열정'에 휘둘리지 말고 완벽한 타이밍을 노려라!
"맘에 드는 공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노련한 타자처럼
진정한 프로는 '진짜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홀름 프리베
경제학자이며 미래학자로, 또한 저널리스트로 활발히 활동 중인 흘름 프리베는 베를린에 기반을 둔 독립 싱크탱크 및 디자인 에이전시 ZIA의 공동 창립자다. 독일 MTV에서 트렌드 연구원 겸 편집인으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취리히 예술대학과 카셀 미술 아카데미에서 디자인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일간지《타게스차이통》,《콘크리트》,《네온》등 독일의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네온》에서 선정한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세계적인 혁신 컨프런스 중의 하나인 리프트 컨퍼런스와 독일 IT 컨퍼런스인 리퍼블리카 등에 연사로 참석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사업모델 및 전략에 대해 강의하기도 했다.
대표 저서로는 사사 로보와 함께 쓴《디지털 보헤미안》이 있다. 이 책은 조직과 회사에 구애받지 않는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노동 방식을 추구하는 새로운 세대인 '디지털 보헤미안'의 탄생과 사이버 생태계의 미래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그 외에 지은 책으로는《자이언트 머신: 새로운 세계의 최고 브랜드》,《당신이 늘 알고 싶어었던 6에 대하여》등이 있다.
최고의 기회를 잡을 '결정적' 타이밍을 노려라!
…
눈앞의 유행이 아닌 더 큰 흐름을 파악하고 때를 기다린 스트브 잡스의 판단
느리지만 치밀한 개혁으로 독일을 성장시킨 메르켈 총리의 기다림의 리더십
긴 호흡의 투자 전략으로 최고의 수익을 낸 워렌 버핏의 철저한 자기통제
이젠 '무조건 빠르게'가 아닌 '전략적인 기다림'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시간'을 참지 못하는 과잉행동장애를 앓고 있다. 그러나 비즈니스의 정글에서 무작정 뛰는 것은 재앙이다. 이제는 무조건 달리는 실천력보다 전략적이고 현명한 기다림의 기술이 필요하다! 속도에 목맨 행동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완벽한 '타이밍'을 잡아 행동할 때, 흔들림 없이 진짜 기회를 기다릴 줄 아는 당신은 진정한 성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습관의 법칙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
익숙한 땅, 익숙한 음식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구멍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높은 마력을 자랑하는 '발전'이라는 자동차가 정작 도로에서는 털털대며 달리는 일이 왜 생길까? 답은 간단하다. 인간이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은 효용성이 명확하고 생활환경이 나아질 것이 확실할 때만 변화를 받아들인다. 변화 코치나 컨설턴트들이 하는 말과 달리, 인간은 자발적인 변화와 혁신으로 효용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많은 기업들이 시장 연구를 철저히 하고 신상품을 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06년에 상표협회와 소비연구회, 브랜드에이전시 서비스플랜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새로 출시된 생활용품들, 즉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상품은 3분의 2가 1년 뒤에 진열대에서 사라진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잘못된 투자가 100억 유로(약 1조 원)에 달한다. 그리고 이 수치는 독일만 계산한 것이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다. 그래서 눈에 띄는 급한 이유 없이 익숙한 것을 바꿔 다시 적응해야 한다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2010년 여름 소셜 북마크 사이트 디그Digg가 아무런 통보 없이 웹사이트의 디자인을 바꾸었다. 그리고 한 직원이 사내 블로그에 순진하게도 "산뜻하게 바뀌었다."고 적었을 때 분노의 댓글이 2,500개 이상 달렸다. 한 단골 유저는 "산뜻하다는 표현이 쓰레기 같다는 뜻이라면 산뚯한 게 맞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디그의 멸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모든 '페이스리프팅'이 이런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새 고객을 얻는 것보다 오랜 단골을 잃을 확률이 높다.
심리학은 이를 '단순 노출 효과'라고 설명한다. 어떤 물건에 계속 노출되고 자주 보는 것만으로도 그 물건에 더 정이가는 것이다. 웹에 있는 모든 잡동사니를 반대하는 사용자 편의 옹호론자이자 '웹 사용성' 분야의 대가로 불리는 제이콤 닐슨은 이런 효과를 진화생물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추측컨대 최초의 인류가 주변 환경에 맞춰 쉽게 잘 살아가기 위해 단순 노출 효과가 생긴 것 같다. 그들은 자기 부족을 좋아했고 다른 부족을 싫어했다. 낯선 땅보다 익숙한 땅에서 마음이 더 편했고 잘 알고 있는 익숙한 음식을 더 좋아했다. 이는 생존 본능이며, 그 덕분에 우리 세대까지 종족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석기시대 이후 인류는 아무런 발전도 없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류에게는 불과 수레바퀴, 나중에는 자동차와 아이팟을 발명할 수 있는 좋은 직관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물건의 유용성을 바로 알아볼 것이라 믿으며 이런 혁신을 자기 부족민에게 소개할 사람이 필요했다. 자동차 대량생산을 위해 컨베이어벨트를 발명한 헨리 포드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내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더라면 그들은 더 빠른 말馬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21 세기의 헨리 포드라 불리는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보여 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들은 조지프 슈페티가 말하는 영웅들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할 것 같은지, 그들도 아직 알지 못하는 그것을 맑은 감각으로 먼저 알아채고 영웅적 혁신으로 전체 시장을 고조시키는 '창조적 파괴자'들이다.
변화의 강요에 당당하게 맞서는 법
"사실 우리는
혁신의 속도가 크게 줄어든
'지루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정말로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 시대에 살고 있을까? 경영자, 정치가, 컨설턴트, 그리고 전문가와 조언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현대 세계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변화에 대한 믿음뿐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변화의 속도가 유례없이 빨라졌고 혁신의 타종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를 다르게 설명할 수도 있다. 2013년 1월 12일《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물었다. "이런 유용한 물건을 또 발명하고 싶은가?" 표지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좌변기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혁신 속도의 전반적인 감소에 대한 증폭된 논쟁'이라는 진지한 제목의 기사는 위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기록적인 발전과 진보가 전 세계에서 이루어졌지만, 최근 누구도 표지에 나온 변기의 효용성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혁신조차 가져오지 못했다. (…) 좌변기는 명확한 안내와 직관적인 사용법으로 수십억 인류의 삶을 영원히 바꿔 놓았다. 그리고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지력이 발명해 낸 것은 현대식 변기뿐만이 아니다. 자동차, 비행기, 전화기, 라디오, 항생제도 그때 생산되었다.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 시대가 실제로 내놓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곧 컴퓨터, 디지털화, 인터넷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한참을 더 궁리해도 더 이상 떠오르는 것은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온라인 결제 시스템 페이팔PayPal을 설립하고 벤처자본가로서 페이스북에 투자하여 거금을 번, 인터넷 붐의 대표적 인물 피터틸이 이 논쟁에 가담했다. 그는 2011년에 발표한 글에서 오늘날을 '미래의 종말'이라고 표현했다. 만일 누군가가 혁신이 결국은 패배할 것이라 확신하고 벽에 '미래의 종말'이라는 문구를 적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인터넷 사용자들만은 아닐 것이다.
틸은 특히 여행 속도가 과거에 비해 더 이상 빨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03년 콩코드 여객기가 사라진 후 초음속 여객기는 단 한번도 운행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약속한 의학적 혁신 역시 공중분해된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효과적인 암 치료의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컴퓨터 용량의 도약과 인터넷 붐도 미국의 경제성장 수치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다. 틸은 "우리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원했지만 얻은 거라곤 그림 140장뿐" 이라며 트위트의 입력글자 수 제한과 웹 혁신의 제한된 세력 범위를 슬쩍 비꼬기도 했다.
미국의 대표 싱크탱크인 '새로운 미국 재단'의 마이클 린드 역시 비숫한 내용을 지적했다. "정보 시대의 도구는 전구, 냉장고, 가스레인지, 전기오븐, 수세식 화장실만큼 삶과 경제를 크게 바꿔 놓지 못했다. 전화, 모니터, 키보드의 조합이 본래의 전화기, 텔레비전, 타자기만큼 혁신적인가?" 2013년 3월《타임 매거진》에 실린 그의 글은 '지루한 시대'라는 기발한 제목이 붙었다.
틸과 린드의 분석이 과장될 수도 있다(지루한 시대에 사는 것이 정말 그렇게 심각한지는 5장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자). 어쨌든 명심해야 할 점은 우리가 빠르고 역동적이고 흥분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기분이 사실은 사기라는 것이다. 주관적이면서도 동시에 보편적인 이런 기분은 미래연구가 마티아스 호르크스가 언급한 것처럼 꾸준히 발전하여 최정상에 도달했고 역사에서 돋보일 자리를 차지했다는 확신, 즉 '현재의 오만'에서 나온다.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은 기분, 스트레스와 부담이 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심신상관반응조차 현대에 새로 생긴 증상이 아니다. 피로와 무기력, 과민반응 증상을 보이면서 유행병처럼 번지는 번아웃 신드룸은 100년 전에도 오늘날처럼 널리 퍼져 있었다. 다만 당시에는 신경쇠약증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자신이 현대적이라고 착각했고 어느 정도 현대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유럽의 대도시 주민들 모두가 그런 병을 앓았다.
결론을 말하면 변화를 위한 변화, 변화의 명령을 비판적으로 대하라! 손에서 뜨거운 트렌드라고 해서 반드시 입에서도 뜨거운 건 아니다. 미래는 떠나지 않는다. 모든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기회를 엿보지 않아도 된다. 과도한 선전을 믿지 말라! 하던 일을 태연하게 계속 하라! 세계가 오랫동안 고대했던 혁신은 어쩌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분야에서 진행될지도 모른다.
은근하지만 강력하게,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훌륭한 브랜드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떠들썩하게 나서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린다."
극단적이지 않은 바위 전략, '약간의 희소가치 만들기'는 기업의 마케팅에서도 통한다. 시끄럽게 떠들어야 할 마케팅에서 침묵은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까?
과도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금세 다른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듯이 날 좀 봐 달라고 끊임없이 떠드는 마케팅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여러 독점 브랜드들이 약한 버전의 충격 마케팅을 이용한다. 그들은 '우리끼리'라는 비결을 유지하기 위해 'Closed shop' 기술을 이용한다. 즉, 초대받은 엄선된 특권자들만 입장하여 쇼핑을 할 수 있다. 광고 같은 건 당연히 하지 않는다. 독일의 의류 제국 C&A의 자손인 알렉산더 브렌닌크마이어가 만든, 회원들만을 위한 상표 '클레멘스 엔 어거스트'(가족 기업인 C&A에서 비롯된 일종의 언어유희) 역시 이 기술을 이용한다. 이 상표는 대도시를 돌며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회원들만을 대상으로 기성복 컬렉션을 열어 전시 판매한다.
《벨트》Welt의 보도에 따르면 "네덜란드 출신의 브렌닌크마이어는 시간과 수고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방식의 독점을 만들어 낸다. 고객들은 초대를 받은 것만으로도 뭔가를 성취한 기분을 갖는다. 인위적으로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원리는 계속 통하는 것 같다. 수많은 고객들이 초대받은 첫날에 오는데, 그래야 선택의 여지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강박이 고객들로 하여금 더 많이 사도록 한다."
독일에서 최초로 브랜드 기술을 적용한 한스 도미츠라프는 미국에서 건너온 시끄러운 광고 마케팅에 맞서, 다급하게 물건을 자랑할 필요가 없었던 훌륭한 독일 상인들의 여유를 고수했다. 1939년에 발간된《대중의 신뢰가 주는 이점》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브랜드 기술은 서두르지 않는 느긋함과 해당 시장에서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핵심이다." 당시 이미 부러움을 한껏 받고 있던 판매왕과 스마트한 판매 기술이 베클린을 접수한 지 오래였지만, 작은 도시들이나 북부의 상인들 사이에서는 아직 이런 기술이 남아 있었다. "베를린은 원래 도떼기시장이다. 그래서 베를린 시민들은 그런 방식에 무뎌지거나 의심이 많아졌다."
도미츠라프의 브랜드 기술을 적용할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바위 전략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자 할 때는 확실히 그의 기술이 도움을 준다. 브랜드의 길, 장기적이고 안전한 브랜드를 형성하는 오솔길은 콜라에 취한 광고인의 길이 아니다. 새로운 마케팅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개발하고 눈에 띄는 슬로건과 광고 트릭을 끊임없이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 거친 돌을 오랜 기간에 걸쳐 깎고 다듬는 조각가나 석공의 작업처럼 브랜드와 맞지 않는 것들을 오랫동안 신중하게 거르고 다듬는 작업이다. 바위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떠들썩하게 나서지 않는다. 바위는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전략이다
"중단은 또 하나의 행동을 뜻한다.
고로 중단은
행동의 다른 말인 것이다."
이쯤에서 잠시 멈춰 행동하지 않음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숙고해야 할 것 같다. 확실히 짚고 넘어갈 것은 행동하지 않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나 게으름, 쉼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행동하지 않음은 집중적이고 의도적이며 전략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행동하지 않음은 엄연한 또 다른 행동이 아닐까? 어째서 행동하지 않음은 도덕적으로 그렇게 다른 평가를 받을까? 행동하지 않음이 그렇게 나쁜 평판을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철학자 디터 비른바하는 장기 실업의 활성화나 능동적, 수동적 안락사 같은 사회의 시사적 문제까지 폭넓게 다룬《행동과 중단》에서 이런 물음들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먼저 그는 중단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상세하게 설명한다. 비른바하에 따르면, A라는 사람에게 '중단'이라는 말을 쓸 수 있으려면 A는 특정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뿐이고 필요충분조건을 갖추려면 하나의 조건이 더 추가되어야 한다. 바로 A는 맘만 먹으면 충분히 그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가령 A가 가파른 내리막길을 속수무책으로 굴러 떨어질 때, 적어도 그는 팔다리를 쓰는 특정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는 A가 중단했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A가 이런 조건에서 팔다리를 쓰지 않는 것을 중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A가 자신의 행동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다면 A가 행동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중단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A가 행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동하지 않았을 때만 우리는 그가 중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행동하는 사람만이 또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중단할 수 있는 사람이 또한 행동할 수 있다." 400쪽에 달하는 논문을 통해 비른비허가 내린 결론에 따르면, 이런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진 '중단'은 또 하나의 '행동'을 뜻한다. 고로, 중단은 행동의 다른 말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언어적 습관에서 행동하기와 중단하기는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다. "능동적으로 뭔가를 하는 것과 그대로 두는 것 사이의 도덕적 차이가 일상적 사고 체계에 영향을 미친다."
일상생활에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 까닭은 설명하기 까다로운 문제로 사회적, 도덕적 행동편향을 새롭게 지적함으로써 답할 수 있다.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그의 행동이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 더 강한 도덕적 평가(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를 받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여기서 바위 전략의 어두운 측면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바로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부작위' ('부작위'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을 뜻하는 말로, 부작위 편향은 행동했을 때 발생하는 개인적 손실이 행동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보다 크다면 행동하지 않으려 하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말한다 ㅡ 편집자)이다. 우리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예상되는 손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일이 제 페이스로 진행되도록 그대로 두면 감시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 미래의 목표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독의 초대 총리였던 콘라트 아데나워는 1957년 성공적인 선거 슬로건 '모험하지 마시오!'를 이용해, 국민들이 불확실한 결과의 사회 개혁보다 현재의 안주를 선호하게 하여 선거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롤프 도벨리는《스마트한 생각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부작위 편향의 상황은 명료하다. 오늘의 행동으로 미래의 손해를 막을 수 있지만,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욕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한 동기를 주지 못한다. 부작위 편향은 인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행동을 중단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보다 덜 눈에 띈다. 68운동(1968년을 정점으로 서유럽과 미국, 동유럽, 남미,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확산된 대규모의 사회 변혁 운동 ㅡ 편집자)은 이런 피할 수 없는 부작위 편향을 꿰뚫어 보고 다음과 같이 함축적인 슬로건을 내걸었다. '해결책의 일부가 되지 않으면, 문제의 일부가 된다!'" 이는 사회적 부정에 침묵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사람 역시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부작위 편향'에 도덕적 돌팔매를 던짐으로써, 적극적인 상징 정치를 통해 행동주의를 생산한다.
그러나 서문에서 이야기했다시피 바위 전략에서 말하는 '행동하지 않음'은 게으름뱅이 혹은 수동형 인간들의 그것이 아니다. 바위전략의 '행동하지 않음'에는 커다란 행동 욕구가 들어 있다. 최근 쉼과 달콤한 휴식을 주제롤 한 책 제목들을 보면, 지금의 트렌드는 행동하기가 아니라 행동의 포기이며 행동주의가 부차적 피해와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톰 호지킨슨의 《언제나 일요일처럼》, 마르틴 프리쉬크네히트의《아무것도 하지 않기》, 미하엘 할레스의《무행동의 기술》, 울리히 슈나벨의《휴식: 행복의 중심》, 만프레드 코흐의《게으름: 힘든 훈련》, 베른트 브룬너의《복지부동의 기술》, 존 페리의《미루기의 기술》등 목록은 얼마든지 더 길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방점을 약간 다른 곳에 찍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 이 책은 바쁜 현대사회에서 상실된 '진정한 쉼'의 의미를 다시 찾는다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자'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행동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행동하지 않음'을 지혜의 돌로 선전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적합한 때를 위한 머뭇거림과 정지, 물러남과 침묵의 단계가 생산성의 필수 조건이자 구성 요소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문제는 부족할 때가 아니라 넘칠 때 생긴다
문화비관주의의 나팔을 불지 않더라도, 지난 몇십 년간 우리 사회는 어지러운 과속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르트무트 로자는 그 이유로 "시간당 처리해야 할 일의 증가"를 들었다. 현대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는 그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신경쇠약증을 동반한 일반적인 권태, 과민, 긴장 같은 증상이 속출하고 있다. 이에 프랭크 파트노이는《속도의 배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현대 생활의 빠른 박자 탓에 우리는 너무 빨리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충분한 시간을 누리려 하지 않고 점점 복합성을 띠는 타이밍에 대해 숙고할 줄 모른다. 테크놀로지는 우리를 포위하고 속도를 높이라고 부추긴다. 우리는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매일매일 압박을 느낀다."
나는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필립 테틀록의 주장처럼 나 자신을 고슴도치로 만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감히 미래 진단을 단행하려 한다. 현재 뜨거운 주제로 다루어지는 '번아웃'도 결국에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인간은 특유의 적응력을 발휘하여 '정보 청소'라는 기술을 사용할 것이다. 병균의 침투를 막기 위해 자주 씻고 부엌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처럼, 우리는 정보 청소를 통해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홍수에 대처하는 합리적이고 건강하고 보편타당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영국의 미디어 이론가 클레이 셔키에 따르면 "쩡보의 홍수가 아니라 필터가 고장 난 것"이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 라이프스타일은 너무 많은 긍정적인 것들이 언젠가는 부정적인 것으로 급변하리라는 통찰에서 시작된다. 국민질환이 되어버린 번아웃은 그럴듯하게 포장된 과도한 근면성실의 필연적 뒷면이자 어두운 면일 뿐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적응기의 곤경 한복판에 갇혀 너무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너무 많은 새로운 가능성의 홍수를 만난다. 2012년10월《쥐드도이체 차이통》에 정신이 번쩍 드는 기사 하나가 실렸다. "인터넷과 칩의 변혁이론이 사실은 다른 것의 도움으로 유지된다는 말이 정말일까? 많은 이들이 깊은 믿음 덕분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성장 추진력은 인터넷을 통해 생기지 않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는 1987년에 이미 생산성 패러독스를 목격했으며 오늘날까지 수많은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생산성 패러독스는 1970~1980년대 기술 진보, 가격 하락, IT 기기 발달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향상 정도는 오히려 낮아진 현상을 가리킨다 ㅡ 편집자), 그의 불길한 예언은 적중했다. "도처에 컴퓨터가 널려 있지만 생산성이 향상되었다는 통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오늘날 당신이 일하는 방법과 기업들이 소통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여기에 덧붙일 말이 많아질 것이다.
정신분석학자이자 경제분석학자인 코린느 마이어는 오늘날 중간관리자의 '지식노동'이 얼마나 심하게 시간낭비에 물들어 있는지 통찰했다. 그녀는 거대 석유기업에서 일하는 동안 이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단적인 책《게으름아, 안녕?》을 썼다. 2004년 책이 출간되자마자 그녀는 해고되었다. 그러나 책이 나오기전까지, 그녀가 다른 직원처럼 일하는 척하면서 그 시간을 더 의미있고 생산적인 일, 이를테면 책을 쓰는 일에 투자하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창의성과 커뮤니케이션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늘날의 지식노동에는 테일러주의의 산업노동과 달리 인풋과 아웃풋의 직선적 관계가 없다. 하루에 처리해야 할 일이 없을 때 진짜 가치 있는 노동이 이루어진다. 그 밖의 노동은 모두 부수적인 일, 꾸며 낸 일, 관습적인 일, 그리고 속닥거리는 잡담이다. 자유롭고 청의적인 사람은 이것을 잘 안다. 하지만 시대착오적인 출퇴근 시간과 출석 문화를 고집하는 노동 시스템은 적절한 변화를 이루어 내지 못한다. 그래서 직원들은 얌전히 '파킨슨 법칙'에 순응하고 정해진 근무 시간을 채운다. 프로젝트를 계획하거나 회의를 하거나 혹은 소일거리로 '참조: 전제'로 온 이메일을 읽으면서 시간을 죽이는 것이다.
창의적인 기업들은 폭스바겐처럼 퇴근 후 회사가 지급한 업무용 휴대폰, 속칭 매니저 베이비폰을 끄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근무시간중에 '침묵 시간'을 두기 시작했다. 침묵 시간에는 이메일을 확인할 수 없고 전화 통화도 할 수 없다. 발표에 따르면 이런 제도가 확실히 스트레스나 번아웃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직원들은 하루에 한 시간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당당하게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업무에 몰두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도 딱 한 시간만!
2013년 2월《뉴욕 타임스》에 '릴렉스! 생산성이 높아질 겁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시간 컨설팅 회사 에너지프로젝트의 설립자이자 작가인 토니 슈워츠가 이 칼럼에서 생산성에 대한 최근 연구 결과를 전했다. "역설적이게도 업무 시간이 짧을수록 더 많은 일을 처리한다. 다양한 분야의 최신 연구들이 점점 더 확실하게 이것을 증명한다. 근무시간 중에 운동하기, 오후에 잠깐 낮잠 자기, 늦잠 자기, 사무실 밖에서 보낸 시간 늘리기, 길고 잦은 휴가 갖기 등을 포함하는 전략적 기분 전환은 생산성을 높이고 업무 진행을 도우며 당연히 건강에도 이롭다."
언젠가는 경영자들도 많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것과, 적은 게 때로는 많은 것일 수 있음을 이해하리라. 그리고 노동조합은 근무시간 축소를 좌파 정당에게만 미루지 않고 다시 주요 주제로 삼게 되리라.
기회는 반드시 돌아온다
한마디로, 우리는 일을 너무 많이 한다. 문화학자 카트린 부쉬가《기분의 지도 전집》시리즈 중 가장 돋보이는《수동성》에서 제안한 것처럼, 이제 수동성을 생산적인 원천으로 되살릴 시간이다. 만연한 분주함과 과잉 활동을 막기 위해 단순히 쉼, 휴식, 멈춤을 선전하는 것이 아니다. "수동적인 사람의 태만을 바라보는 시선을 완전히 바꾸고 능동성과 수동성의 비율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수동성이 행동 안에 포함되어 있고 아직 발굴해야 할 직원들의 영향력과 힘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동성의 이론에서 보면 아직 할 일이 많다. 때를 기다리자.
이 원리는 유행과 스타일에도 통한다. 고집은 패션의 러닝머신을 이긴다. 남들보다 앞설 필요가 없다. 내 스타일이 복고풍으로 다시 유행할 때까지 고슴도치처럼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 최신 정보통의 대부라 불리는 앤디 워홀조차 가만히 기다리는 전략이 유행의 경주에서 쓸 만한 전략임을 인정했다.《앤디 워홀의 철학》에서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시기에 정말 아름답고 그의 패션이 정말 유행에 맞으면, 그리고 시간이 지나 취향이 바뀌고 10년이 지난 다음에도 여전히 외모와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는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이다."
워홀이 덧붙였듯이 이는 개인의 스타일뿐 아니라 사업에도 적용된다. "슈라프는 시대를 대표하는 멋진 식당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개조하고 또 개조하여 결국에는 매력을 모두 잃고 거대 체인에 먹히고 말았다. 외양과 스타일을 유지했더라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멋진 명소가 되었을 것이다." 워홀은 한마디로 요약한다. "당신의 스타일이 더는 유행하지 않더라도 말뚝처럼 기다려야 한다. 좋은 스타일이면 반드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신은 다시 멋져진다."
약 10년 전쯤에 영국 북부 노섬버랜드 앨른위크의 작은 서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때의 포스터가 발견되었다. "Keep calm and carry on." 이 문장은 소문과 달리 윈스턴 처칠이 고안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공식적으로 포스터가 배포되지도 않았다. 이 포스터는 독일이 실제로 영국으로 밀고 들어왔을 때 국민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대비책으로 영국 정부가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
포스터가 발견된 이후 이 문장은 전 세계적으로 재생되고 패러디 되었다. 이 문장의 큰 인기는 격동의 시대에 침착함을 유지하며 하던 일을 계속하는 태도에 대한 그리움과 부러움이 널리 확산되었다는 반증이리라. 사실 바위 전략의 메시지를 이보다 더 잘 전달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을 이 책의 마지막 문장으로 쓰고자 한다.
KEEP CALM AND CARRY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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