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자기 자기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었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의 생명력을 퍼스낼리티 시장에서 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고려하여 최고의 이익을 올려야 할 투자로서 경험하고 있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동료로부터,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현대인의 주요 목표는 그의 기술, 지식, 자기 자신, 그리고 '퍼스낼리티라는 상품'을 다른 사람과 유익하게 교환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역시 공정하고 유익한 교환을 바란다. 생활에는 움직인다는 목표 말고는 아무런 원칙도 없고, 소비한다는 만족 말고는 아무런 만족도 없다. - 에리히 프름『사랑의 기술』에서
- 슈테판 클라인 지음 『 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 』중에서 -
손해 보고 사는 사람들의 숨겨진 힘
지은이 슈테판 클라인
1965년 독일 뮌헨 출생,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술저널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들며 학술논문에 갇힌 최신 연구 성과를 쉽과 재미있게 풀어 소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촉망받는 연구소에서 저널리스트로 변신한 이유를 "지식을 얻는다는 것이 어떤 스릴러보다도 더욱 짜릿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바람대로, 행복과 뇌의 상관관계를 다양한 학문의 관점에서 바라본 대표작《행복의 공식》은 1년 넘게 독일 전역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큰 화제를 모았고 그를 세계적인 저널리스트로 발돋움하게 해주었다.
남이 도우면 나도 돕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조건부 이타주의자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이타적 행동의 여부를 결정한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일이 한 집단을 협력으로 이끌 수도, 각자의 길로 흩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2007년 미국 미시간 주에서는 장기 기증 행렬이 이어졌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28세의 남성이 신장 기증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고 자신의 장기를 익명의 환자에게 전달했다. 기증된 신장은 애리조나 주에 사는 53세의 여성에게 이식되었고, 그러자 그녀의 남편이 자신의 신장을 기증했다. (그는 아내에게 신장을 떼어주고 싶었지만 의학적 이유로 그럴 수 없었다.) 이번에는 오하이오 주에 사는 젊은 여성이 그 신장을 이식받았고, 그녀의 어머니가 다시 장기를 기증했다. 그렇게 선행의 행렬은 미국 전역을 가로지르고 인종의 벽을 뛰어넘었다. 여자 형제가 기증을 받았다는 이유로 남자 형제들이 신장을 내놓는가 하면, 친구의 수혜 소직에 자기 장기를 기증한 사람도 있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엔 맞는 수혜자를 찾을 때까지, 그래서 신장을 줄 수 있을 때까지 몇 달씩 기다리기도 했다. 그들 중 누구도 개인적으로 득을 보지 않았다.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큰 선물을 받았다는 감사의 마음에서 행동한 것이다.
보상은 협력을 가로막는다
돈이 개입되었다면 이런 선행의 물결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보상은 자발적으로 혹은 의무감에서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 사람의 의지를 꺾는다. 1960년대 영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티트머스는 건강보험에서 헌혈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기로 하면서 나타난 현상에 깜짝 놀랐다. 보상이 원하는 효과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헌혈자수를 감소시켰기 때문이다.
부모 역시 아이들이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하던 집안일에 대가를 지불하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잔디를 깎아 용돈을 벌어본 딸은 돈을 주지 않으면 절대 기계를 잡지 않는다. 설사 돈을 주어도 예전보다 훨씬 성의 없이 잔디를 깎는다.
이스라엘에서 한 청소년 모임이 1년에 한 번씩 집집마다 돌며 자선모금을 했다. 물론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칭찬뿐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에서 연구 중이던 경제학자 우리 그니지가 이 청소년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모금한 금액 중 소액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랬더니 모금액이 3분의 1 이상 줄어들었다. 이타심에서 출발한 자원봉사가 형편없는 임금을 받는 노동으로 변질되었다가 때문이다. 그니지가 임금을 모금액의 10퍼센트로 올리자 모금액이 조금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돈을 주지 않았을 때보다는 훨씬 적었다. 이타적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칭찬과 인정을 기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부심을 느낀다. 그것과 비교하면 몇 푼 안 되는 돈은 너무 약한 동기 부여책이다. 그니지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듬뿍 주든가. 아니면 아예 한 푼도 주지 말든가."
돈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돈은 공동체의 규칙을 바꾼다. 돈이 오가는 곳의 사람들은 다른 구성원들도 무보수로는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자발적 협력이 사라진다. 그 자리를 많건 적건 이익이 남는 거래가 차지한다. 이런 세 기준에서 발을 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정의감은 다른 사람은 돈을 버는데 우리만 빈손인 경우를 배제한다. 나아가 노동의 위상이 달라진다. 자발적으로 떠 맡은 일에서 의무로 바뀐다. 우리가 즐거운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하는 일에 왜 누군가가 돈을 지불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이기주의자로 취급하면 그들은 그렇게 될 것이다. 똑똑한 유대인 재단사의 일화는 좀 기괴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주 실감 나게 보여준다. 재단사는 도시의 광신도들을 추방하려고 했다. 그랬더니 광신도들이 매일 아침 그의 가게 앞에 모여 욕설을 퍼부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재단사가 아이디어를 냈다. 가게 밖으로 나가 욕을 하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적으나마 수고한 대가로' 1탈러씩을 쥐어주었던 것이다. 다음 날 그들이 다시 모여들어 돈을 요구했다. 재단사가 말했다. "애석하게도 재정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군요. 오늘은 1인당 1헬러밖에 못 주겠어요." 사람들은 약간 실망하여 푼돈을 손에 들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날 다시 그들이 찾아오자 재단사가 오늘은 1크로이처밖에 못 주겠다고 했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벌컥 화를 냈다. "이런 푼돈을 받고 우리 목청을 괴롭힐 수는 없지!" 이들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다르지 않다
이타적 인성이 존재할까? 지금까지 이 주제를 가장 철저하게 연구한 사람은 캘리포니아의 사회학자 새뮤얼 올리너다. 그는 어떤 성격과 인생사가 구원자를 만드는지 밝혀냈다. 그가 이 주제에 매달린 데에는 그의 인생사도 한몫했다. 올리버 역시 폴란드에서 홀로코스트를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이다. 나치 수용소에서 죽은 부모의 친구들이 그를 숨겨주었다.
아내 펄과 함께 올리너는 매우 조직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몇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구출해낸 230명을 찾아내 그들의 이력을 상세하게 캐물었다. 또 도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동시대인의 이력을 철저하게 분석한 후 그 두 정보를 비교했다.
올리너 부부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았지만, 그들이 발견한 건 설문 대상자만큼이나 많은 행동 원인이었다. 어떤 사람은 잔혹한 나치의 박해 소식에 괴로워했고, 또 어떤 사람은 희생자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나치의 정치적 견해에 반대한 경우도 있었고 종교적, 도덕적 신념 때문에 유대인을 도운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동기만큼이나 이력과 인성도 달랐다.
도움을 주지 않았던 사람들의 자료와 비교 분석한 결과는 더 혼란스러워 보인다. 왜 다른 종교인은 무관심했는데 기독교인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을까? 왜 이 무시무시한 장면을 보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걸까? 도움을 준 사람이라고 해서 성격이 특별하거나 눈에 띄는 인생사가 있지는 않았다. 특별히 공감이 뛰어나거나 지능이 높았던 것도 아니었다. 올리너 부부가 좇은 것은 신기루였다. 구원자의 인성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새뮤얼 올리너의 논문 한 편은 이런 제목을 달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행동>. 딱 두 가지 점에서 예외를 확인했다. 첫 번째, 도움을 준 사람 중에는 도덕심이 투철한 부모 한쪽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일찍부터 주변의 의견에 관계없이 윤리적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두 번째는 일부 첫 번째 원인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더 확실하게 드러나는 차이점이다. 도움을 준 사람은 조금 더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행동하지 않은 사람은 유대인이 자기와 다르다고 강조했지만, 구원자들은 그들과 자신의 유사성에 더 주목했다.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차이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겐 도움을 주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공동체에 속하느냐를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만인을 향한 원칙의 탄생
적어도 15만 년은 될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를 생각하면 도덕적 원칙이 만인에게 미친다는 사상의 출현은 정말 최근의 사건이다. 그 사상을 대표하는 최초의 인물들 중에 중국의 철학자 공자가 꼽힌다. 기원전 5세기 초 그는 인(仁)을 학설의 핵심으로 삼았다. 사람 인(人)에 두 이(二)를 합친 이 글자를 공자는 '이웃 사랑'을 의미하는 사랑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왜 이웃 사랑이냐는 질문에 공자는 실용적인 답을 던진다. 한 제자가 '인'이 통치자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문밖에 나가면 만나는 모든 사람을 큰손님 만나듯이 하라. 내가 백성을 부릴 때는 마치 큰 제사를 받들듯이 하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 그러면 나라에서든 집안에서든 어느 누구도 그 자도자를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그로부터 약 200년 후 철학자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한걸음 더 발전시켰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는 똑같은 기본권이 있다는 점을 명백하게 밝혔다. "인간성과 정의가 우리 모두의 가슴에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공자의 시대, 서아시아에서도 비슷한 사상이 기록되었다. 기원전 5세기에 탄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모세 3경의 저자들은 모든 인간이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데 추호의 의심이 없었다. 세상의 지배자 스스로가 그렇게 요구했다고 한다. "너에게 몸 붙여 사는 외국인을 네 나라 사람처럼 대접하고 네 몸처럼 아껴라. 너희도 이집트 나라에 몸 붙이고 살지 않았느냐?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이다."(레위기 19장 34절), 신의 자비심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것임은 바빌로니아 망명 후 탄생한 시편이 설명한다. "모든 임금이 그에게 경배하고 모든 민족이 그를 섬기게 하소서.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합니다."
불과 얼마 후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들이 서양 윤리학의 기초를 닦았다. 소피스트인 리코프론은 모든 인간에겐 자연적으로 동등한 권리가 주어지며 국가는 강자에게서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동료 알키다마스는 더 대담한 사상을 펼쳤다. "신은 모든 인간을 해방했다. 자연은 그 누구도 노예로 만들지 않았다." 마침내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여 덕목을 철학적 인식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는 관습이 결정할 수 없다. 선은 세상에 대한 지식에서만 나온다. 이런 주장으로 그는 도덕적 원칙이 통용되어야 하는 이유를 앞선 철학자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으로 해석했다. 올바른 행동의 추구는 곧 진리를 향한 접근이다. 기원전 399년, 재판을 받던 그가 펼친 논리도 이런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도망치라는 친구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독배를 받았다.
인도에서도 모든 인간을 포괄하는 도덕이 설파되었다. 인도에서 비폭력 사상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8세기에 탄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베다경에서다. 공통의 영혼이 모든 생명체를 연결하기 때문에, 즉 인간뿐 아니라 동물, 식물까지도 같은 본성을 나누기 때문에 남을 해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모든 존재가 자기 안에 있고 자기가 모든 존재 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 힌두교의 경전 중 하나인《아샤 우파니샤드》에 쓰인 말이다.
초기에는 힌두교도도 그런 구절을 형이상학적으로만 이해했다. 그래서 동물은 정해진 의식 이외의 방법으로는 잡지 못하게 하면서 전쟁은 인간 존재의 정상적인 현상으로 보았다. 하지만 기원전 450년 공자가 죽자마자 등장한 부처와 북인도의 왕자 마하비라 바르다마나는 힌두교의 교리를 더 급진화했다. 이들은 베다교의 교리에서 인간이든 동물이든 어던 생명체에게도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절대적 계명을 끌어냈다. 부처는 제자들에게 모든 생명체를 사랑과 연민으로 대하라고 설파했다. 거의 500만 명에 이르는 자이나교 신자들이 지금도 숭배하는 마하비라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자이나교 신자들은 평화를 사랑하고 채식을 해야 하며 벌레 한 마리도 해치지 않도록 모든 예방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마하비라의 서원을 엄격하게 따르는 사람은 (벌에게 식량을 뺏는 것은 폭력이므로) 꿀도 먹지 않고 (경작을 하면 작은 생명체들이 죽게 되므로) 땅을 갈지도 않으며 (모기가 불길 속으로 뛰어들 수 있으므로) 불도 피우지 않는다.
지식과 나눔의 시대
공동 사냥은 집단 구성원들의 상호 의존도를 높였을 뿐 아니라 새로운 경제 기반을 마련했다. 이 역시 그때의 상황이 지금과 비슷한 지점이다. 우리는 경제 혁명의 와중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의 다양성과 네트워크화에 이어) 이타적 행동을 부추길 세 번째 요인이다.
지난 몇십 년 동안 돈을 버는 방법은 많이 변했다. 이제는 손으로 일하는 사람보다 머리로 일하는 사람이 더 많다. 독일 기업들의 매출액 절반 이상이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생산품, 다시 말해 직원들의 머릿속에 저장된 지식으로 벌어들인 돈이다. 고급 자동차처럼 구체적인 제품의 경우에도 가치의 3분의 1은 전자 조절 장치에 있다. 차에 숨어 있는 수많은 컴퓨터 프로그램은 날로 중요성을 더해간다. 자동차 기업의 선도적인 개발자적인 향후 생산 공정의 90퍼센트가 전자 및 소프트웨어 부문일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정보 자원의 승전 행렬은 2006년 구글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으로 부상했고, 그 이후 코카콜라나 맥도날드 같은 전통 기업에 비해 전혀 입지가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앞으로는 더더욱 최종 공개자한테서 한 푼도 안 받는 기업이 가장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구글에 접속한 사람은 정보를 정보와 교환한다. 개인의 관심을 주고 인터넷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받는 것이다.
정보 거래엔 상품이나 서비스 판매와는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 자동차나 집은 말할 것도 없고 유전도 개인이 소유할 수 있고, 따라서 아무문제 없이 돈이나 다른 소유물과 교환할 수 있다. 합리적인 미용사라면 돈을 받아야만 가위를 손에 쥘 것이다. 가위질을 할 때마다 그의 노동력이 투자될 테니 말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자원은 애덤 스미스의 시장 법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분배될 수 있다.
하지만 지식을 가진 사람은 그 지식을 나눠주어도 잃지 않는다. 그래서 자원보다는 정보에 가치를 두는 경제를 두고 '무중력 경제'라고도 부른다. 정보는 나눠주기 쉽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돈을 내는 고객에게만 지식의 열매를 나누어주려 한다면 네트워크에서 불법으로 복사하는 범인을 색출하고 처벌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미국의 인류학자 새뮤얼 볼스의 말대로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은 석기시대의 사냥꾼 무리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함께 노력해야만 들소를 잡을 수 있듯 함께 노력해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인간의 유전자를 해독할 수 있다. 하지만 한번 개봉한 성과는 아무리 혼자 간직하려 애써봤자 소용없다. 들소는 사냥꾼 혼자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고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의 속성은 나눔의 문화를 장려한다. 지난 200년 동안 세상을 바꾼 과학은 처음부터 이런 원칙에 기반을 두었다. 인정받고 싶고 대우받고 싶은 학자는 자신의 지식을 공개해야 하고, 비판과 추가 사용을 허락해야 한다. 구성원들이 사냥한 들소의 고기나 지식의 열매를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허락하는 공동체는 큰 비용을 들여 울타리를 두르는 공동체보다 거의 모든 관점에서 뛰어나다. 미래의 무중력 경제에선 나눔 정신과 이타심의 재능이 주목받을 것이다.
현재 우리 인류는 세계적 차원의 협력을 이룩해야 한다는 엄청안 도전에 직면했다. 개인, 기업, 국가가 제 잇속을 차리기 위해 내놓는 해결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별로 없다. 실패의 대가는 가속화되는 지구 온난화와 통제 불가능한 난민의 물결, 자원 전쟁 같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런데도 조심스럽게 낙관할 이유는 많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국경을 넘어 서로 나누며 살고 있다. 여러 문화와 대륙이 함께 성장하기에, 먼 거리는 이미 의미를 잃었기에, 지식이 가장 값진 생산재가 될 것이기에 그러하다. 그런 세상에서 제 잇속 차리기에 바쁜 사람은 분명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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