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부터 먹이를 얻어 먹었던 돼지는 결국 도축장으로 끌려가야 한다. 아빠는 돼지가 되기보단 자기 스스로 돌아다니면서 먹이를 구하는 야생 멧돼지가 되고자 했다. 그 덕분에 울딸들의 성장도 늘 지켜볼 수 있었고 소통하고자 애썼다.
- 윤미정 지음『부모 이노베이션』에서 -
윤미정
대학에서 수학교육학을 전공하고 6년간 중학교 수학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큰아이를 힘들게 출산하고부터 모든 열정을 자녀교육에 쏟아붓는다. 좀더 체계적이고 심도있는 교육을 위해 모교인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유아교육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부모교육 강사로 3년간 활동하였다. 그후 미래사회의 변화와 미래교육을 화두로 두 아들과 함께 미국행을 감행 TESO 과정과 아동보육학을 공부하였다.
자녀교육은 부모교육이다
토양이 되어주는 부모
아이를 둔 많은 눈빛을 딱 한 마디로 정의하면 '기대' 라는 단어가 가장 적당할 것 같다. 자녀에 대한 기대 하나로 부모들의 눈은 가득 차 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다 그럴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모의 길은 아이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꽉 채워진 마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하나씩 비워가는 과정이 아닐런지...
사실 우리가 그런 기대감이 없다면 어떻게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그 기대감 때문에 부모는 힘을 내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에 대한 기대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방법은 부모마다 너무나 다르다. 부모가 갖고 있는 아이에 대한 기대는 어떻게 하면 현실로 구현될 수 있는것일까?
똑같은 씨앗을 심어도 어떤 식물은 싹이 나면서 병이 나고 어떤 식물은 아주 잘 자란다. 씨앗의 경쟁력은 우선적으로 씨앗 안에 있다. 어떤 잠재력이나 능력은 씨앗의 내부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 씨앗이 일정한 시기에 싹을 틔우게 도와주는 것은 씨앗을 덮고 있는 흙, 토양이다. 부모가 바로 씨앗이 싹을 틔우게 할 수 있는 토양의 역할을 해야 한다. 토양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튼실한 씨앗이라도 흙 속에서 죽어버리거나 싹을 틔워도 잘 자라기 힘들다. 토양이 얼마 비옥하느냐에 따라서 씨앗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해서 자신을 채우고 가꾸어 아이에게 비옥한 토양이 되어야 한다.
흑을 너무 깊게 파고 씨앗을 묻으면 싹이 나올 수가 없다. 씨앗의 모든 것을 품어주고 받아들여주는 것은 좋지만 과잉된 양분으로 싹을 틔우려고 한다면 씨앗은 썩어서 죽고 만다. 또 너무 얕게 심으면 씨앗은 따가운 햇빛에 말라 죽고 말 것이다. 부모도 그와 같다. 과잉 보호와 방치. 둘 다 아이를 죽이는 일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는 부모다
세상에 부모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부모가 되는 것이다. 부모가 되어 내 아이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부모라는 존재는 한 생명을 자신의 몸에서 떼어내 자신의 분신으로 만들어 놓은 그 순간부터 자신의 역할을 반드시 해내야 한다. 적어도 아이가 세상으로 당당히 걸어 나갈 때까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돌부리에 부딪히고 넘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용기있게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불을 밝혀주며 끊임없이 박수를 쳐주면서 지켜봐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공부를 하지 않을 때 별의별 핑계를 만들어 둘러대곤 한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많은 부모가 자신이 부모 노릇을 잘 못하는 이유를 자신이 아닌 다른 데서 찾아서 변명하기 바쁘다. 그러나 부모라는 존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의 부모 된 역할을 포기하면 안 된다.
사람이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로 설명하는 것과 그것을 감정으로 표출해 드러내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대개의 부모들은 자기의 힘든 부분을 아이에게 말로 설명하고 대화로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귀찮아하면서 아이를 방치하기도 한다. 그럴 때 아이들은 부모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공포스럽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어른들은 어려움이 왔을 때 이렇게 하는구나'를 몸으로 느끼고 배우게 되며 자신도 어른이 되었을 때 같은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엄마 아빠는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해 있고 빨리 이번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고 있단다. 그 동안에는 여러 가지 힘든 일이 많을 거랴. 네 도움이 정말 필요하구나. 얘야, 조금은 힘들어도 우리 잘 이겨내보자. 그렇게 해줄 수 있겠니?"
아이로 하여금 막연한 불안감, 공포감을 갖게 하는 부모의 여과되지 않은 감정의 표출보다는 비록 어린 아이지만 부모가 힘들 때 솔직하게 알려주고 이해시키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해법이다. 오히려 아이는 그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의 일원인 자기를 자각하고 동등하게 책임을 나누며 자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부모는 왜 자기의 어려움을 아이한테 이야기 하려 하지 않을까? 부모의 권위 때문에 부모란 그런 힘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면서 아이에게는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성질을 낸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자신을 사랑받지못하는 못난 존재로 여기게 될 뿐이다.
힘들수록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 경제적 이유든 정서적 이유든 인생이 정말 힘들 때 현명한 부모는 자신의 상황을 자기 안에서 이분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그야말로 좋은 조건 속의 부모는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부모가 되기 쉽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대개의 부모는 힘들면 힘들수록, 상황이 처절하면 처절할수록 내 아이의 삶을 바꿔줘야겠다는 의지도 처절하게 가져야 한다.
"그래, 내가 힘들면 힘들수록 내 아이들은 더 잘 키워야지."
이런 의지가 아이에게 인풋(in-put) 되어야 한다.
"내가 힘드니까 부모의 노릇은 좀 못해도 이해하겠지."
이것은 핑계이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일 뿐이지 현실적으로 어떤 것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내가 힘드니까 이 정도는 용서 받을 수 있어."
이것은 용서가 되고 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의 역할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숙명이다. 삶이 힘들다고 부모로서의 역할을 등한시한다면 자신과 아이 모두의 인생을 실패로 몰아가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는 부모다.
부모는 공기와 같다
한적한 시골의 신선하고 맑은 공기를 항상 맡고 자란 사람은 도시에 올라오면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이 답답한 공기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혀와 견딜 수 없게 된 사람은 얼른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부모도 공기와 마찬가지다. 항상 새롭고 따뜻하며 늘 활기 넘치는 부모 밑에 있던 아이들을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불건전한 게임에 빠져 있고 서로를 불신하는 그런 환경에 놔둔다면 아이들이 과연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처음에는 호기심에 잠시 머물다가도 다시 자신의 부모가 있는 가정이 그리워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두 번 크고 작은 일탈을 하지 않은 아이들은 거의 없다. 부모들은 아이가 잘못된 길로 빠질까 필사적으로 아이를 막지만 아이는 부모를 속여서라도 가보고 싶으면 가본다. 그런데 아이가 되돌아갈 가정의 공기가 늘 불안하고 도망가고 싶고 혼만 나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공기라면 아이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아이가 어떤 공기 속에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부모가 매일 싸우고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그런 곳은 아닌지, 부모가 권력자가 되어 모든 일을 다 결정하고 아이를 옥죄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자. 누가 아이한테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반대로 아이가 오염된 곳으로 갔다하더라도 자신이 오랫동안 맡아왔던 냄새와 공기가 아니면 다시 돌아가고 싶어질 것이다. 부모는 그렇게 아이에게 맑은 공기, 그리운 향기가 되어야 한다.
일시적으로 흔들리는 아이를 다시 되돌리는 힘은 부모와 자녀의 굳건한 신뢰에 있다. 신뢰와 소통은 일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보여준 일관된 태도에서부터 형성된다. 아이든 어른이든 나를 안아주고 믿어주는 곳에 있기를 당연히 원한다. 아이가 방황을 끝내고 돌아올 곳이 있도록 부모는 창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가득 채우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내 아이만의 시크릿
지금 이 시각에도 이 땅의 부모들이 안테나를 세우고 아이의 성공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들이 추구하는 성공의 길이 대개 같은 방향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국내외 명문학교 졸업, 의사, 법관, 교수, 대기업 취업...
이렇게 한결같아야만 하는 것일까. 자녀들의 남다른 재능이 어디에 감춰져 있는지를 일찌감치 눈여겨보고 남들이 잘 가지 않았어도 가고자 한다면 길을 먼저 닦을 용기와 도전을 꿈꾸게 해주고 박수를 쳐줄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부모는 아이의 색깔에 맞는 교육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내 아이가 어떤 에너지에 반응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아이가 어떤 일에 모른 척하고 어떤 일에 화를 내고 어떤 일에 관대한지 부모가 파악하고 있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대부분 아이들은 무슨 일을 하기 싫으면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낸다. 상관없다고 외면하기도 한다. 부모들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왜 이렇게 짜증이야!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누가 하랬어?"
이런 대응은 아이가 부모에게 요청하는 도움의 신호를 무시하는 태도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 못해내면 어쩌나 두려울 때. 누군가에게 지적받을까 겁이 날 때 아이들은 부정적인 받응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아이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지점이 바로 아이가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약점이 있는 곳이다. 그럴 땐 부모가 함께 솔루션을 찾아보고, 아이 스스로가 실천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에너지에 오히려 주목해야 한다.
또한 부모는 자녀가 어디에 이끌리는지 파악해야 한다. 관심의 에너지가 어디로 쏠려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 에너지가 아이의 강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극복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일이 부모의 역할인 것이다. 바로 그 긍정적 에너지 반응이 아이의 시크릿이다. 우리 아이만의 시크릿을 찾아야 한다.
내 아이의 시크릿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부모는 아이에게 보여줄 자기인생의 그림이 있어야 한다. 아이는 부모인생의 그림을 보고 자신의 그림을 상상하게 된다. 부모가 그려놓은 세상의 그림이 언제나 좌절하고 미리 포기하고 불만만을 내지르는 부정적인 것이라면 아이의 그림도 마찬가지로 어둡고 졸렬하고 형편업서을 것이다.
결국 부모가 먼저 잘 살아야 하낟. 부모가 먼저 세상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아이는 당연히 부모의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을 닮으려고 할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삶의 그림을 아름답게 그려나가기위한 부모의 역할을 알아야 하고 아이의 그림을 지지해주어야 한다. 그럴 때 내 아이만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 반응, 시크릿이 보일 것이다.
자녀교육은 부모성장의 과정
바야흐로 세상은 정보화시대를 지나 스마트시대로 접어들었다. 스마트폰, 스마트쇼핑, 스마트냉장고, 스마트러닝 스마트네트워크… 스마트한 신조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진다. '스마트'는 원래 '똑똑한, 지능화된, 지능형, 세련된, 멋진' 이란 뜻이지만 현실에서 '스마트'의쓰임은 셀 수 없이 많다. '스마트'란 말은 이제 뭔가 새롭고 세련된 것의 의미로 인식되고 있다.
세상은 변화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돌아가고 문화와 시장의 국경은 무너졌으며 무엇이든 하나로 뒤섞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그야말로 스마트하게 세상은 알아서 움직이고 변화하며 시시각각 진화하고 있다.
이 거대한 폭풍의 시기에 부모들은 자기 존재가 자녀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부모를 아이를 무엇으로도 될 수 있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한다.
스스로 어떤 부모인지 돌아봤을 때 자신만만한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행동양식이나 가치관, 이 모든 것들이 정말 아이에게 물려줄 만한 것인지 고민하는 부모도 많을 것이다.
부모는 이미 인격체로 만들어져 다 자라버렸다. 그래서 오랜 세월동안 굳어져버린 잘못된 습성을 버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낡고 고루한 습성을 버리지 못한 채 내 아이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심어 줄 수는 없다. 자기의 낡고 단단한 틀을 깨야 한다. 매너리즘을 버려야 한다. 전혀 새로운 틀을 모색해야 한다.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민주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다듬고 세상의 파도를 온 몸으로 타고 넘어가는 자기 혁신이 있어야 한다.
자기만큼만, 혹은 자기보다 못한 아이로 키우려면 지금 당신의 생각과 방식대로 실행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나보다는 잘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보다 멋진 생을 경영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내가 아닌, 세상이 원하는 아이로 키워라, 내가 원하는 아이와 세상이 원하는 아이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교육은 필연적으로 부모성장의 과정이자 부모교육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부모혁신-나를 끊는 일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자녀가 세상에 나갈 때 좀 더 세련되고 좀더 여유있고 좀더 자신있는 사람으로 첫발을 내딛길 간절히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자녀들을 세상에 내보내기 전까지 아이를 성숙하게 하고 단련시켜서 어떤 강펀치가 와도 유연하게 피하고 또 정면으로 맞서 대응할 수 있도록 곁에서 방법을 일러주고 트레이닝 해주어야 한다.
일류 스포츠 선수들의 트레이너나 감독들도 훈련 과정에서 견해 차이로 선수와 갈등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프로인 그들은 자기의 선수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은 승리하게 만든다.
자녀교육도 마찬가지다. 부모도 때로는 아이들과 갈등하고 문제를 겪게 되지만 부모가 자녀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은 세상과 당당히 한 판 붙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부모는 용기를 내야 한다. 낡은 자신을 과감히 버리고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부모는 아이의 투영이며 삶의 멘토다. 부모 스스로으 삶을 가꾸지 않으면 당연히 아이의 삶도 가꿔지지 않는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모든 못된 버릇과 게으름 이기심 무지함을 던져버리고 새로워져야 한다.
한동안은 금단현상도 올 것이다. 한 두 해도 아니고 수십 년 동안 몸과 마음에 찌든 독을 제거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을 끌수록 고통은 길어지고 무엇보다 내 아이에게 마따히 주어져야 할 자기 계발의 기회가 줄어든다.
당장 시작하자. 다시 말하지만 부모의 혁신 없이는 자녀가 성공하기 어렵다. 부모는 세상의 변화의 바람에 아이보다 먼저 정면으로 부딪혀야 한다. 부딪혀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는 풍향계가 되주어야 한다.
당신의 '부모 나이' 는 몇 살인가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또 학원에서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배운 지식들은 머릿속에 꽉 차 있는데 이것을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쓸 줄은 모른다.
자신이 배우고 익힌 지식을 통합적으로 자기화하는 방법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모가 함께 찾아줄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날마다 아이와 이야기 하고 끊임없이 들어주면서 관계해야 한다. 무엇인가 해보려 할 때 기대해주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해줘야 한다. 그러다 다른 결과가 나오면 무엇이 부족하고 미숙했는지 실패의 원인을 함께 찾아볼 줄 알아야 한다.
아이가 무엇을 하고싶어 하는지 모르고 어떤 일을 계획할 때 필요한 힘이 무엇인지 아무런 힌트도 주지 못하는 그런 부모는 아이가 실패할 때마다, 비뚤어진 행동을 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크면 나아져, 걱정할 것 없어."
아이를 위로하고자 하는 말이든 부모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든 이것은 무책임한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경험만큼 어느 정도 자신의 행동이나 일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가만히 둬도 나아진다는 것은 어떤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일 뿐이지 가만히 두어서 문제가 해결되고 상황이 올바르게 바뀐다는 말이 아니다.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후에 또 똑같은 상황을 반복할 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늘 새로운 문제와 부딪친다. 그때마다 고민하고 갈등한다. 수많은 문제와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 하는 아이가 있고, 침착하게 자신의 경험을 되씹어 분석해 해결하는 아이가 있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다르게 만들었을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고 아이를 가만 두는 부모와 그 상황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와 미리 들여다보고 예측하고 많은 간접경험을 통해 분석해보는 부모의 차이가 두 아이의 차이일 것이다. 어느 아이가 더 풍요롭고 큰 삶을 살 수 있을까.
"아, 괜찮아. 뭘 그래? 크면 다 나아져. 놔둬."
실제로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으로 크면 나아진다고 믿는 어리석은 부모도 있고 아이의 문제에 대해 신경 쓰고 싶지 않고 그냥 귀찮아서 그러는 이기적인 부모도 있다. 이런 태도는 적극적으로 아이를 도와주고 싶은 부모의 태도가 아니다.
부모도 자녀와 똑같이 나이 먹는다. 부모는 세월의 나이뿐만 아니라 내 아이의 나이만큼 부로라는 나이도 먹게 된다. 부모가 된지 10년이 지나고 20년 30년이 지나도 아직 한두 살인 부모가 너무나 많다. 이들은 부모도 나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냥 어느 때부턴가 부모의 자격을 갖게 된 것이지 아이가 발달하는 시기에 맞추어 아이에게 제대로 된 부모의 역할을 해주지는 못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함께 나이를 먹고 성숙해져야 한다. 자녀에게만 좋은 성적표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부모로서 자신의 성적표도 만들어봐야 한다. 부모로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스스로 부모 되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자신의 부모 역할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지 점수도 매겨봐야 한다. 부모의 나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모 스스로가 성장시켜 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모는 퇴근이 없다
언젠가 학원으로 건물 상해보험을 담당하는 설계사가 찾아왔다. 맞벌이를 하는 설계사 부부에게는 아이가 둘 있었는데 아이를 키우는 일이 참 힘들다며 어떻게 하면 자기 부부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부부는 전날도 힘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새벽에 아이가 우는데 잠이 부족한 부부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부부는 서로에게 아이를 미루다가 결국 다투고 말았다는 것이다. 내가 말했다.
"한 가지만 얘기할까요? 부모는 퇴근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맞벌이 부모들이 자기 직업이 두 개인 것을 잘 모르고 있다. 사회에서 일하는 직장만을 자신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 쉬고 싶어 한다.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오면서 '아, 퇴근이다.' 하고 생각하고 휴식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부모가 된 순간 그것은 포기해야 한다. 부모라는 직업은 24시간 계속 되고 있고 집에 돌아와서는 퇴근이 아니라 부모라는 직업이 새로 시작되는 것이다.
부모라는 직업은 하루 종일 지속된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자신이 인식하는 순간에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부모의 머릿속에는 늘 아이로 차 있다. 직장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목적의식적으로 가는 곳이지 가족 행복의 장이 아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부모가 더 집중해야 하고 투자해야 할 곳은 바로 부모로서 일을 시작하는 가정이다.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행복한 삶을 꾸리기위해 부모는 자신의 안락한 휴식도, 개인적인 욕구도 잠시 접어들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맞벌이 부모를 둔 자녀는 부모가 퇴근해있는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부모가 퇴근해서 돌아온 순간이 자녀에게는 부모와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이때 부모는 피곤함을 무릅쓰고 합리적인 부모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해서 부모로서의 개인적인 욕구를 억누르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부모로서의 역할과 자신의 욕구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어야 현명한 부모이다.
특히 한국의 아버지들은 자녀교육을 아내에게만 맡겨두려고 한다. 하룰 종일 힘들게 일하고 들어왔는데 다시 아이를 봐야 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을 억울하게 여긴다. 내가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집에서 노는 아내가 당연히 아이를 봐야한다고 생색을 낸다.
이런 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21세기 다변화된 정보사회에서 역할을 나누고 주어진 임무만을 고집하는 일은 시대를 거꾸로 사는 일이다. 부부의 불협화음도 사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가정 안에서 부부는 더 이상 분업화된 관계도 주종의 관계도 아닌 평등한 동지적 관계다.
돈을 벌어오는 일만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무지한 아버지가 없기를 바람다. 아이들은 돈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의 오랜 정서적 교감과 사랑을 표현하는 부모의 행동을 기억하며 자란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실질적으로 자신은 투잡(tow job)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아, 지금은 퇴근 했으니까 쉬어야지" 하면서 소파에 눕기 보다는 "자 이제부터 부모로서 어떤 일을 할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면 TV가 꺼지고 부부가 함께 음식을 만들고 집안일을 나누며 아이에게 집중하려고 할 것이다. 부부가 서로를 도와가며 시간을 줄여 자녀와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진실로 함께하면 그 부모가 바로 좋은 부모다.
힘든 일이다. 방금 일하고 왔는데 또 아이를 돌봐야 하고 집안일을 해야 하고, 그러나 용기를 가져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나 혼자가 아니라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부부 사이의 골도 해소가 되고 믿음도 깊어질 것이다.
맞벌이 부부들은 맞벌이라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갖지 말아야 한다. 맞벌이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위한 좋은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것이 수단이어야지 가족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자신의 인생이 두 배로 힘들어 질 것이라는 각오로 해야 한다. 내가 잠자는 시간이 8시간이 아니라 4시간이라는 각오로 맞벌이를 해야 한다.
직업도 자기 인생이지만 자녀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자기 인생이다. 물론 자신의 인생을 가꾸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좋은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중요하다.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고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해가면서 동시에 좋은 부모가 되어 훌륭한 자식을 키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개인적인 삶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가끔 부모에게 허망함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내가 짊어진 짐을 너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부모는 어느 시기에는 자신의 인생마저 희생해가면서까지 자식의 발전을 위해 에너지를 집중해주어야 할 때도 있다. 이것을 자기 인생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한다면 공허한 삶의 피해의식은 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직업은 그만 둘 수 있다. 그런데 부모는 그만 둘 수가 없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내게서 부모라는 이름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그 설계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당장 가서 저녁에 부인보다 먼저 퇴근했으면 청소해놓고 기다리세요. 부부가 같이 밥하고 설거지 하세요. 그리고 부부가 함께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일의 가치를 서로에게 일깨우며 아이를 키우는 일을 즐기세요. 클래식 음악도 틀어주고 노래도 함께 불러주세요. 아이를 재울 때는 그림책도 읽어주세요. 부모가 함께 전달해준 행복을 먹은 당신 아이들은 나중에 살다가 힘이 들때도 그 향기 그 공기를 기억하고 절대로 외롭거나 불행하지 않을 겁니다."
핑계를 대자면 우리 인생은 끝이 없다. 아이 낳은 것도 핑계가 되면 그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내가 힘들고 귀찮은 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문제인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부모는 출근 시간도 없고 퇴근 시간도 없다. 특히 맞벌이 부부에게는 아주 절실한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두 부부가 사랑을 확인하고 신뢰를 쌓는 일이기도 하다
그 설계사인 남편은 돌아가면서 웃으며 한 마디 하였다.
"그럼 전 이제 실천만 하면 되네요."
새 시대 아버지의 역할
나는 거의 매주 학부로를 상대로 세미나를 연다. 엄마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학원을 찾고 강연을 듣는 것이 보통인데 요사이 달라진 것은 전보다 훨씬 많은 아버지가 참석한다는 것이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자녀교육에 엄마 아빠가 따로 있을 수없다. 아버지도 부모로서의 자기 역할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그런데 세미나에서 미래교육과 자녀교육에 대한 강연을 들은 아버지는 어머니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공감하며 아이교육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어떤 일을 자신있게 추진하고 서두르면 가족 구성원의 생각이 바뀌기 때문이다.
많은 민주적인 아버지는 가족 전체의 정서적인 흐름을 콘트롤하고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해주고 아내의 의견에 동조해주면서 신나게 옆에서 박자를 맞춰준다. 그런데 대부분 아버지들의 단점은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지속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의 흐름은 대부분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훨씬 먼저 읽게 된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족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돛을 올리고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읽은 세상의 흐름을 놓쳐선 안 된다.
아버지가 가장인 이유는 가족 안에서 권위를 높여 지배하기 때문이 아니다. 과거 조선시대, 봉건시대 사회에서는 가장이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있어도 권위만 있으면 됐다. 그러면 모든 가족들은 가장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나서서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가장은 가족의 손을 잡고 세상의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세상의 변화의 흐름을 보고 내 가족들이 이 세상에 동떨어지지 않도록 이끌어야 한다. 가족들이 세상으로 나아갈 때 넘어지지 않도록 보다 단단한 디딤돌을 놓아주는 것이 가장인 아버지가 해야 할 일이다.
시대의 새로운 흐름이 자신의 가족과는 무관하다고 치부하는 아버지들은 대개 가장의 권위만 내세우는 사람들이다. 그런 권위적인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서 하는 일은 오직 가족이 자기 위주로 움직이길 기대하며 자기 편할 대로 TV나 보고 어디든 상관없이 담배를 피우고 명령을 대화로 착각한다. 또 아이가 초등학교 때는 교육에 관심도 없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성적의 결과만 가지고 판단하며 책임 추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런 아버지들의 행동 특성이다.
요즘에는 아버지들이 직접 교육에 참여하는 경우가 아주 많아졌다. 직접 아버지와 소통하고 의논하는 아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물론 사회적으로 한 부모 아이들이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아버지들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이 교육에 참여해야 아이들도 좌뇌 우뇌를 동시에 사용하는 아이로 클 수가 있다. 어떻게 보면 어머니는 감수성으로, 아버지는 논리로 아이의 뇌에 작용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또 아버지의 논릴와 어머니의 감성이 조화로운 하모니가 되면 충분히 효과적으로 아이와 소통할 수 있다. 그래서 아버지는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아도 아이에게 한 번 얘기하면 무척 큰 반응을 일으키기 쉽다. 그런 부분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아버지들은 가족에게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바깥일에 대해 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보자.
"사실 아빠가 요즘 이런 일로, 이런 사람과의 관계에서 참 힘든데, 너희들도 세상을 살다보면 친구 관계나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힘든 일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아빠가 이 직원하고 이렇게 힘든데 너는 이런 비슷한 것이 있을 때 학교에서 어떻게 해? 너라면 어떻게 하겠어?"
오히려 이런 것들을 생활에서 대화의 소재로 풀어놓츠면 아이들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부딪히게 될 문제를 먼저 들여다보게 되고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의 일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르리 갖게 된다. 그와 동시에 어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아버지도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자신의 가족이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또한 그 때의 대화가 사회에 나가서 자신에게 비슷한 문제로 다가올 때 훌륭한 해결책으로 작용할 것이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배운다.
일관성 있는 부모가 되라
자녀의 올바른 생활습관, 규칙적인 학습태도, 약속을 지키는 일, 그리고 책임감 등을 배우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모의 태도는 일관성이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민주저거인 부모가 되고자 하는 노력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일관성을 지키는 일이었다. 똑같은 행동인데도 어제는 괜찮다고 허용했던 것을 오늘은 혼내고 호통치는 나 자신과 싸우는 데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내 기분이나 남의 이목, 주변 여건들에 따라 아이의 가타은 행동을 다르게 반응하면서 혼자서 많이 부끄러워하고 후회했다.
자녀의 가치관이나 행동적 습관은 성장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보고 듣고 행동하느 과정에서 길러진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길들여진 아이의 문제행동이나 습관은 하루아침에 고쳐지기 힘들다. 아이에게 올바른 행동이나 습관을 길러주고 싶다면 자녀가 어릴 때부터 부모는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때그때 부모의 사정이나 일시적인 감정의 변화 때문에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일관성을 잃는다면 아이는 혼란을 겪게 된다. 아이가 이해할 만한 이유가 없는데 어제는 허용되지 않았던 일이 오늘은 허용이 된다면 아이는 부모와 함께 정한 원칙의 가치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때때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 원칙을 깨려고 하게 된다. 누치를 보거나 거짓말을 하는 아이,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참을성이 없는 아이, 약속을 잘 안 지키고 책임감이 약한 아이들 상당수가 부모의 일관되지 못한 행동과 상호작용 때문에 그렇다. 아이와 함께 규칙을 정했다면 그것을 지켜내는 일은 아이만의 노력뿐만 아니라 부모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부모들은 자기 사정이나 기분에 따라 쉽게 원칙을 깨면서도 자녀가 어떤 사정이나 기분에 따라 원칙을 깨는 것을 용납하지는 못 한다. 내가 만난 학생들이 말하는, 자신의 부모를 믿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를 '부모가 이랬다 저랬다 하는 태도'로 꼽는다.
"우리 엄마는 아줌마들 있을 때는 내가 공부 잘 하는 것보다 인성이 좋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하고는 집에 와서는 무조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을 들어가야 사람구실 한대요."
"우리 엄마는 기분 좋으면 내가 컴퓨터 게임해도 뭐라 안 하고 아빠랑 싸우고 나면 동생이랑 나한테 소리만 질러요."
"우리 아빠는 술 먹고 들어오면 뭐든지 사준다고 하고는 다음날 다 잊어버려요."
벌써 초등학교 5,6학년만 되어도 아이들은 부모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모가 일관성 있는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전제 되어야 한다.
우선 아이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이며 아이의 느낌과 감정도 존중되어져야 한다는 생가가을 가져야 한다. 자녀를 소유물처럼 생각하고 아이의 모든 것을 부모가 조정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나와 다른 하나의 인격체다. 아이의 인생은 부모 인생이 아니다. 아이의 감정도 욕구도 모두 부모가 느끼는 것과 다르다. 따라서 아이를 구속하고 조종하기보다는 아이 스스로 자기 인생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인식해야 한다.
일관성 있는 부모가 되는 또 다른 조건의 하나는 부모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기의 욕구를 억누르며 참기만 하면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속에는 강한 분노가 쌓이게 된다. 이러한 분노가 무의식중에 느닷없이 아이에게 표출되고 이러한 부모의 감정표출로 인해 아이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진다. 따라서 아이는 그런 부모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들을 학습하게 되는데 거짓말하기, 눈치 보기, 과잉 행동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부모 스스로가 자기의 감정과 욕구를 정확히 이해하고, 무조건 억누르기보다는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들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부모가 일관성을 유기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함께 원칙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녀의 교육문제로 내가 만난 많은 어머니들은 자식교육을 남편이 다 망친다고 말한다. 특히 엄마 주도로 이끌어 온 자녀교육의 방향을 평소에는 귀찮아하며 관심도 갖지 않고 알아서 하라던 남편이 가끔 한 번씩 불쑥 엄마와 아이 사이에 끼어들어 참견하고 간섭하면서 엄마를 악역으로 만들고, 남편은 좋은 아빠 또는 권위 있는 아빠가 되려 한다는 것이다.
부모의 생각과 뜻이 서로 다르게 보이면 아이들은 혼란스럽게 되고 심리적 갈등까지 겪을 수도 있다. 그리고 부모 사이의 권력과 힘을 저울질하며 눈치보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붙는다.
비록 부부의 생각이 서로 다를지라도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부모의 갈등을 보여서는 안 된다. 자녀교육에서 서로 상충된 의견이 있다면, 부부가 서로 충분한 의소통의 시간을 갖고 합리적인 대안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자녀교육을 주되게 담당하는 부모가 교육의 방향을 이끌고 다른 한 부모는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부모가 한 마음으로 자신을 격려하고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이는 심리적 안정감과 자신감을 갖게 되고 공부나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변덕쟁이 부모가 자녀를 원칙 없는 아이로, 세상의 눈치만 보는 비겁한 아이로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함께 도전하는 부모
흔히 미래교육을 생각하거나 이야기할 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나도 내 아이들과 함께 21세기를 살아가는 세계인이라는 사실이다.
나이가 40이든 50이든 부모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한하게 열려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분투하는 부모의 모습과 눈빛에서 이이들도 자기 인생에 대한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도전의 과정에서 보여준 부모의 열정을 통해 아이들은 미래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부모 또한 도전의 과정에서 아이의 도전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 부모는 아이를 시시콜콜 감시해야 하는 대상이나 주의깊게봐야 할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동지로 이해하게 된다. 아이들도 그 속에서 생겨나는 작은 감성들을 주고받으며 부모를 이해할 것이다.
아이에게 계속 공부하라고 채근하는 것보다는 틈틈이 자기를 계발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비록 당장은 근사한 목표를 향한 도전이 아닐지라도 그 도전은 언젠가 반드시 필요한 경험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 사회에서는 아이게게 헌신하는 부모의 삶만이 아니라 당당한 세계인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느낌없이 변화하고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21세기는, 미래는 아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부모에게도 똑같이 주어지는 삶의 기회이다. 아이들에게 삶과 꿈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부모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 미래는 나와 내 아이가 함께 꿈꾸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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