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춘이란 자신이 무엇을해야하는지를 알고,
늠름히 자신의 길을 가는 젊은이를 말한대요.
- 김옥림 지음『청춘, 자신을 존중하고 축복하라』에서 -
지은이 김옥림
현재 시와 소설, 동화, 동시. 교양, 자기계발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집필활동을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이다.
작가는 현재 대학과 언론 매체, 기업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멘토로 자아실현을 돕는가 하면, 전문 글쓰기 강사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시사월간지《정경뉴스》를 비롯해 《시민의 소리》,《좋은 생각》,《한국조폐공사》,《한국원자력연구소》,《교보생명》등 언론매체와 사보에 작품을 게재하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고 축복하라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자신을 사랑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도 자신에게 은총을 베풀어 줍니다. 하지만 자신을 하찮게 여기면 세상도 자신을 하찮게 여깁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입에서는 늘,
"누구는 잘 나가는데 나는 왜 요모양 요꼴이야!"
"나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좋았을 거야!"
"내 미래는 안개가 낀 것처럼 불투명해. 아, 하루하루가 왜 이리도 힘든 것일까?"
라는 불평불만이 끊이질 않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형편없는 좀팽이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반복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잘 되고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모순의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하루하루를 죽이기 때문에 오던 성공이나 행복이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매사에 최선을 다합니다. 소중한 인생을 그릇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 즉 목표를 향해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고통이 따르는데, 그것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고통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입니다.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자신을 사랑하고 축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떤 시련과 고통도 꿋꿋이 참아내야 합니다.
노력 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축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일은 땀을 흘리는 일입니다.
그냥 행복이 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요행입니다. 그것을 축복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삶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사람들의 가장 돋보이는 특징은 바로 자신을 사랑하고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축복하고 몇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첫째, 자신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게 됩니다.
둘째, 목표가 뚜렷하고 실천력이 강해집니다.
셋째,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넷째, 언제나 꿈을 잃지 않습니다.
다섯째, 자선하는 일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자기의 인생을 완성시키려면 먼저 스스로를 축복하라."
니체의 말입니다.
인생을 완성시키는 일은 곧 성공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니체의 말처럼 인생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어떤 행복이나 성공은 오지 않으니까요.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청춘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살률은 OECD(국제개발경제협력기구)에서 1위입니다. 매우 불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용기를 잃고 자신을 함부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자신이 사랑하고 축복하지 않으면 누가 자신을 사랑하고 축복해주겠는지요. 자신에 대해 사랑과 축복하는 마음을 갖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면 길은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니체는 열정과 의지로 불태우며 살다간 영원한 청춘이었습니다. 그가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말처럼 스스로를 사랑하고 축복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레드 카펫이 깔려 있는 멋진 길이 아닙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오직 자기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항상 잊지 마십시오. 잊는 순간 자신의 인생도 쓸쓸히 마침표를 찍고 말 것입니다.
삶에 감사하라
물질의 많고 적음으로, 혹은 지위의 높낮이로 성공을 기준 삼는 것은 속물들이나 하는 짓이지요. 이에 관계없이 자신의 인생에게 감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감사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생각컨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배는 더 많을 겁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에게 감사하지 않는 것은 마음속에 숨어있는 욕망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시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이 인색하지요. 왜냐하면 주변사람들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직업이 더 좋아, 저 사람은 나보다 돈이 더 많지, 저 사람은 나보다 더 예뻐, 하며 상대방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남의 떡은 더 커 보이는 법입니다 그런 심리현상을 모르고 자꾸만 자신과 남을 비교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불만을 갖습니다. 그러다보니 불평만 쌓여갑니다.
불만과 불평 속에서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문단의 독보적인 소설가 박완서.
<엄마의 말뚝>,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친절한 복희씨>, <그 남자네 집> 등 수없이 많은 책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가진 그녀는 세상과 이별을 하기 전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후배 작가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또한 여든의 나이에도 영감의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정감 있고 푸근한 문체의 글을 써 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지요. 그녀는 분명 우리 문단의 거목이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소설은 물론 에세이 동화 등 거의 모든 작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작품 중 특히 <그 남자네 집>을 좋아합니다. 그 소설을 읽고 지난날 그녀의 흑백사진 같은 아련하고 가슴 뭉클한 사랑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마치 그 사랑의 감정 속으로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 첫사랑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하였습니다.
박완서가 뛰어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능력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진실로 자신의 삶에 감사할 줄 아는 진정성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녀는 젊은 시절 남편과 사랑하는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고 살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고 언제나 최선을 다했기에 주옥과 같은 작품을 쓸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살기를 원한다면 삶에 눈비가 올 때나 바람이 불 때나 맑을 때나 언제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희로애락이 순환전동차처럼 번갈아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불평하고 절망한다면 어떻게 온전한 삶을 살아낼 수 있겠습니까.
감사하지 못하는 삶은 불행한 삶입니다. 불행한 삶을 원치 않는다면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언제나 자신의 삶에 감사하십시오.
산다는 것의 의미
"불안한 마음으로 사는 것보다 두려움과 걱정 없이 부족한 생활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
이는 노예 출신으로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말입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이지요. 이유는 그의 사상이 맘에 들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운명론자 같지만 생각이 그럴 뿐입니다.
지금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슬픔은 슬픔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고 거부한다면 더욱 불행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내가 아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가난한 자신의 환경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존재라고 여겼습니다. 그에게는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엔 불신과 원망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술에 취해 사소한 일로 싸움을 하게 되었고, 그와 싸우던 사람이 그만 밀려 넘어지면서 시멘트담에 부딪쳐 죽는 바람에 과실치사로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반성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었습니다. 감옥에서도 늘 불평불만만 늘어놓았습니다. 그렇게 형기를 마치고 나온 그는 또 다시 술에 취해 살았습니다. 여전히 싸움도 일삼았습니다. 때문에 수시로 감옥을 들락거리며 늙은 부모님과 형제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끝내는 약을 먹고 스물일곱의 짧은 생을 허무하게 끝내고 말았습니다.
못난 자식을 끌어안고 슬프게 울던 그의 늙은 부모님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마지막 가면서까지도 부모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아픔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삶이 가난하다고 해서, 남보다 못 배웠다고 해서, 못생겼다고 해서 실망하고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삶이라 할지라도 소중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자신에게 처한 상황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거부하다보면 분노하게 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벗어날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벼랑 끝에서도 희망은 반드시 있는 법이니까요.
투자의 천재 조지소로스.
그는 조국 헝가리가 독일에 점령을 당하자 영국으로 갔습니다. 더 이상 조국은 그에게 기대할 곳이 못 되었지요. 영국에 도착한 그는 살기 위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웨이터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목표가 있는 그에게 고달픈 생활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학비를 모은 그는 런던경제대학에 입학해 미래를 개척해 나갔습니다. 그후 그는 주식 투자에 매진했습니다. 그는 하는 일마다 긍정적인 성과를 낳았고, 투자의 귀재가 되었습니다.
그는 '게임의 룰이 바뀔 때마다 기회는 온다.'는 승자의 법칙으로 일관한 끝에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가 보통의 젊은이와 다른 것은 삶에 대처하는 마인드였습니다. 그는 절망 중에서도 희망을 보았지만, 다른 젊은이는 오직 절망만 보았습니다. 희망을 보느냐 절망을 보느냐 하는 관점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낳게 한 것이지요.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단 한번만 주어지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이런 기회를 헛되이 날려버려서는 안됩니다. 금은보화를 쌓아두고 불행을 느낀다면 그 금은보화는 행복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나한 골방에서도 행복을 느낀다면 그 골방은 행복이지요.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걱정과 두려움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자신의 환경에 맞추어 나가십시오.
다음은 이런 깨달음으로 내가 쓴 시 <산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살아보니 알겠다.
삶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진다는 것을,
제 아무리 잘 살아보려고 애를 써도
그러면 그럴수록
삶은 저만치 비켜서서 자꾸만 멀어지고
내가 온몸을 쥐어짜며 몸부림에 젖지 않아도
삶은 내게 기쁨을 준다는 것을,
삶을 살아보니 알겠다.
못 견디게 삶이 고달파도 피해 갈 수 없다면 그냥,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는 것이다.
넘치면 넘치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삶을 억지로 살려고 하지 마라.
삶에게 너를 맡겨라.
삶이 너의 손을 잡아줄 때까지
그렇게 그렇게 꾸준히 너의 길을 가라.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려니
주어진 너의 길을 묵묵히 때론 열정적으로
그렇게 그렇게 가는 것이다.
인생은 그자체가 배움이다
조 카를로스는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날마다 한 가지씩 새로운 것을 배우면 경쟁자의 99%를 극복할 수 있다."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결과는 배움으로부터 시작하고 배움으로 끝을 맺습니다.
평생을 배워도 모자라는 게 배움의 길입니다. 그 만큼 깊고, 높습니다. 배움을 단기간적으로 생각하거나 정해진 기간만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의미을 잘 모르는 것이지요.
배움은 광야를 달리는 무적의 전차와 같아서 열정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일정한 기간만 지나면 다 배웠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지요.
동양의 공자나 서양의 소크라테스, 우리나라의 김종직, 이황, 이이 같은 분들은 배움을 중시하여 제자들을 배출해내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들이 생애를 모두 가르치는 일에 바칠 수 있었던 것은 배움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겼기에 가능했습니다.
날마다 한 가지씩 새로운 것을 배우면 경쟁자의 99%를 극복할 수 있다는 카를로스의 이 말은 배움의 효율성과 가치에 대한 말입니다.
배움에 대해 누구보다도 목소리 높여 강조한 사람은 공자입니다. 그는
"내가 일찍이 종일 먹지 아니하고, 잠자지 아니하고, 생각하여도 유익함이 없으니, 배움만 같지 못하였다."
고 했습니다.
배우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평생을 바쳐도 다 못 이루는 게 배움입니다. 또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도, 부족함이 있는 사람에게도, 배울 게 있으면 배워야 한다는 말이지요.
탈무드에는,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모르는 것을 묻지 않는 것은 쓸데없는 오만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움의 가치와 중효함을 나타낸 말입니다.
사람들은 학교만 졸업하면 배움이 다 끝난 걸로 여깁니다. 배움의 진실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본시 배움은 시작은 있되 끝은 없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배움을 소홀히 하고 우습게 아는 사람을 야만족이라고 낮춰 불렀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고, 그 깨달음을 통해 새로운 진리와 참 행복을 느끼게 되는데 야만족은 그러지 못하지요.
배움이 강물처럼 흐르는 사람에겐 꿈이 있고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하지만 배움이 지지부지한 사람에겐 꿈도 희미하고 어두운 미래가 넘실거릴 뿐입니다.
배움을 멈추지 마세요. 배움은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날마다 자신을 혁신하라
세계적인 고전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 그는 56세 때 <돈키호테> 집필을 시작하여 2년 후인 58세에 탈고하고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의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며 세계 고전 중에서도 대표적인 고전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였지요.
세르반테스는,
"불가능한 것을 성취하려면 불가능한 것도 실행해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매우 의미 있는 말이지요.
상식을 벗어나는 일을 시도하는 사람을 보면 흔히,
"저 사람 정신이 잘못된 거 아냐?"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말을 듣는 사람들 중엔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뛰어넘어 가능한 것으로 끌어냈기 때문이지요.
세르반테스는 군인의 길을 가다가 부상으로 인해 세금을 걷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억울하게 옥살이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갈고 닦았습니다. 생각이 낡고 마음에 때가 끼면 삶이 쳐 놓은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다분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이 추악해지지 않도록 마인드를 혁신시켰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르반테스가 좋은 환경에서 글을 썼기 때문에 <돈키호테>와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있었다고 얘기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잘 모르는 말입니다. 세르반테스는 고통과 울분을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킨 끝에 위대한 작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진정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입니다.
새로운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세르반테스가 그랬듯이 어떤 상황에서도 새로운 생각, 새로운 마인드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늘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현실은 디지털 인간형을 요구하는데 자신은 아날로그 인간형에 머물러 있다면 빨리 디지털 인간형 모드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관광을 즐기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풍경을 보며 즐기는 것이고, 둘째는 그에서 더 나아가 본 것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첫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유희적인 관광이라면 둘째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자신을 보다 새롭게 가꾸는 창조적인 관광이라고 하겠습니다.
삶도 관광을 하는 거와 같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삶을 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소모적인 삶을 살고, 어떤 사람은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삽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은 지금 당장은 잘 모르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놀라울 만큼 격차가 벌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유형의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당연히 보는 것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새로운 진로를 찾는 생산적인 길을 가야 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새로운 눈을 갖는 인생의 여행자가 되어야 하지요.
아프지 않은 청춘은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 풍요하지만 청년들의 실업률은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고 힘들게 공부를 해도 취업이 안 돼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신용불량자로 낙인이 찍힙니다.
어렵고 가난하던 시절에도 꿈이 있고, 낭만이 흐르던 대학은 어디로 가고 각 대학 도서관마다 불을 밝히고 공부하는 취업준비생들로 가득합니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해버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지금은 단지 취업 사관학교일 뿐입니다.
나는 우리 청춘들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학비와 생활비, 거기에 대출 받은 학자금 이자를 갚기 위해 두 개의 아르바이트는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해도 늘 주머니는 텅 비기 일쑤입니다. 누가 우리의 청춘들을 그렇게 힘들게 했나요. 모두가 기성세대의 잘못인 것 같아 나도 미안해집니다.
그러나 청춘들이여, 비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젊고 힘이 있습니다.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꿈은 언제나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시대고 아픔과 고통과 눈물은 다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아버지 어머니들의 학창시절에도 그랬습니다. 공단의 희미한 불빛 밑에서 하루에 15시간씩 힘들게 일을 해야 했던 사람도 많습니다. 그분들이 흘린 땀방울이 희망의 씨앗이 되어 오늘날의 우리 경제를 일군 것입니다. 그분들은 여러분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이며 삼촌이며 이모입니다.
"집에서는 등록금만 대주고 생활비는 제가 벌기로 부모님과 약속했어요. 고등학생 동생도 둘이나 있어 생활비까지 부모님이 대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피로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미소를 잃지 않는 여대생의 모습에서 나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공부가 목적이기 때문에 공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시켜만 준다면 해낼 수 있어요."
무거운 벽돌을 져 나르며 씩씩하게 말하던 남학생의 당당함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교수이자 탁월한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인생을 바꾸려면 지금 당장 시작하여 눈부시게 실행하라. 결코 예외는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저명한 자기계발 전문가인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사람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라야 가장 비범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성공의 첫 번째 비결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두 사람의 말처럼 어려움을 견디고 자신의 꿈을 위해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나 역시 청춘의 시절을 힘들게 보냈습니다. 너무 힘들어 울기도 했습니다. 갈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내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한번도 꿈을 포기한 적은 없었습니다. 힘들면 더욱 이를 악물었습니다. 내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나를 대신해서 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상상하고, 꿈을 키웠습니다. 그때 겪었던 아픔과 고통은 소중한 경험이 되어 지금 작가가 되어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시, 소설, 동화, 에세이, 교양서, 자기계발서 등을 총망라한 여러 분야의 글을 쓰는 멀티라이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젊은 날 축적해두었던 다양한 경험들 덕입니다.
양지에서 자란 식물은 음지를 만나면 야위어 죽고 맙니다. 하지만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 식물은 어디에서나 잘 자랍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부자 친구들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환경이 좋은 친구를 보며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아프지 않은 청춘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은 희망을 위한 아픔이라는 걸 한시도 잊지 마십시오.
꿈을 위해 스스로의 힘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청춘들이 하나같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기만의 철학을 가져라
이 세상이 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면 어떨까요? 모르긴 해도 사는 재미가 없을 겁니다. 누구나 생각이 똑 같은데 무슨 새로움이 있겠는지요. 새로움이 없다는 것은 날마다 그 나물에 그 밥만 먹는 꼴이지요. 날마다 같은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지긋지긋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찾게 될 겁니다.
새로움이 없는 삶은 죽음과 같습니다. 아무리 먹고 마시는 것이 풍족하다고 해도 날마다 똑같은 삶은 산다면 좀이 쑤시고 견딜 수가 없을 겁니다.
왜 그럴까요? 흥미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삶을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으로 이끌어나가야 합니다.
새로운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은 혁신적이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이어서 항상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구하고, 두드리고, 발 빠르게 움직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하는 걸까요?
자기만의 철학입니다. 자기만의 철학을 가져야만 주관이 분명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철학이 없는 사람은 늘 물가에 있는 어린아이 같이 위태위태합니다. 철학이 없다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아 작은 시련에도 쉽게 넘어지고 포기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사람은 남들이 뭐라 하든 간에 자신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은 목숨을 걸고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철학은 인생의 빛이며 꿈을 주는 나침반입니다.
KBS 8부작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출한 김용수 PD.
그는 18년 동안 드라마를 제작해왔습니다. 18년이면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만큼 긴 세월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만든 드라마는 단막극 13편이 고작입니다. 시간에 비하면 너무 적습니다.
또, 그 흔한 일일연속극은 물론 미니시리즈조차 없습니다.
나는 솔직히 이에 대해 의구심이 일었습니다.
아니, 18년차의 드라마 PD가 일일연속극은 물론 미니시리즈조차 없다니!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력이 없거나 아니면 밉보였거나.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이 매우 잘못됐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이야말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실력파였던 것입니다. 그는 2005년의 <황금숲 토끼>, 2007년의 <은둔하는 북의 사람> 등 시청자들에게 자기만의 메시지를 제시하는 좋은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는 단막극만 고집하는 걸까요? 그리고 지나치게 과작寡作일까요? 그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라고 왜 유명해지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미니시리즈를 하려면 시청률을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할 부분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드라마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와 안맞습니다. 그래서일 뿐입니다."
그는 자기만이 추구하는 색깔과 의식으로 살아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덧붙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시대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선배나 후배 PD들에게 4차원 같은 사람입니다.
자기만의 고집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내고 싶은 김용수 PD. 그가 자기만의 것을 추구하는 것은 그만의 철학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자기만의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청춘들 중엔 철학이 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그건 철학이 없는 공허한 사람이라는 뜻이 되니까요.
김용수 PD가 오랜 세월을 견뎌내고 지금은 개성 있는 PD로서 주목을 받는 것은 자기만의 철학을 품고 인기와 돈, 명예 등 누구나 꿈꾸는 것들을 마음으로부터 비워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다면 자기만의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습니다.
탐욕을 경계하라
사람을 위험에 빠트리는 것엔 여러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을 욕심 낼 때, 남의 것을 탐할 때, 남을 시기하고 모함할 때, 주체성을 잃고 방황할 때, 남의 것을 무조건 따라 할 때, 지나친 경쟁으로 이성異性을 무시하는 행동을 할 때, 겉모습을 보고 현혹될 때가 바로 그러합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했습니다.
인간은 본시 물질에 약한 존재입니다. 좋은 것을 보면 본능적으로 갖고 싶어 합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불행은 대부분 분수를 모르는 탐욕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릅니다. 아니, 알아도 모르는 척합니다.
모두 탐욕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지구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하도 상처를 내어 드디어 곪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을 마구 파헤치고, 더럽히고, 오염시켰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먹을 것과 땔 것을 비롯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던 자연이 배신을 당하자 분노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지구 곳곳에서 이상 현상으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주변 국가에 밀어닥친 쓰나미로 수만 명이 죽거나 다치고, 천문학적인 재산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또한 중국, 남아메리카의 아이티와 칠레, 뉴질랜드를 강타한 지진, 아이슬란드를 공포에 빠트린 화산 분출,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본을 흔들어 놓은 지진과 해일이 그것입니다. 특히 일본의 지진은 상상의 한계를 뛰어 넘을 만큼 막대헤서 만 명 넘게 죽고, 실종된 이들도 만 명이 넘습니다. 거기에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되면서 분출하는 방사능 물질로 전 세계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같은 선진국의 일인당 GNP는 4만에서 5만 달러입니다. 우리나라는 2010년 말 기준으로 2만 달러를 약간 상회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그동안 사람들은 많은 것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영토를 차지하려고 전쟁을 하고, 경제적으로 이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 모두 더 잘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그런데 지구는 더 이상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것 같습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한다면 그만큼 더 큰 재앙이 덮쳐올지 모릅니다.
방사능에 오염된 땅과 바다에서 길러지는 채소와 잡아올린 수산물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땅과 바다가 오염되면 식량난으로 먹을 게 없어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빼앗는 험악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나 개인적으로는 지금보다 더 잘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이 지경인데 계속해서 자연을 해친다면 그건 분명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더 잘 사는 것을 목적으로 정책을 세울 것이 아니라 그동안 인간들이 망가트려놓은 자연을 회복시키기 위해 매진할 때입니다. 지구를 침탈하는 외계인들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지구방위사령부를 창설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본래의 무결점 상태로 만들기 위한 지구복구사령부를 만들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경제성장만을 고집부린다면 지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근심과 불행의 원인은 탐욕에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청춘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좀 더 현명한 판단력으로 미래를 위해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고.
무엇이 되기 위해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인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지금의 청춘들이 훗날 이 나라의 중심축이 되었을 때엔 더 큰 환란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는 우리의 청춘들을 믿고 싶습니다. 아니, 믿겠습니다. 더 이상 지금의 삶의 방식을 이대로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자신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생각하고, 힘을 모으는 현명한 삶을 살아가길 희망합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풍부하게 사는 것보다는 두려움과 걱정 없이 부족한 생활을 하는 것이 오히려 행복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말입니다.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우쳐주는 말입니다.
많은 재물을 쌓아놓고 불안한 삶을 산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조금은 모자라도 마음 편히 행복을 누리는 삶이 진실로 행복한 삶입니다.
돈을 보고 일하지 말고 꿈을 위해 일하라
돈만을 위해 일한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돈벌레입니다. 벌레가 되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겠지요.
돈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돈은 먹고, 입고, 마시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방편에 그쳐야지 그 이상의 목적이 된다면 참된 삶의 가치를 잃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돈은 삶을 윤택하게 해주지만 반대로 타락하게 만드는 이중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없으면 불편하고, 넘치면 올바른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됩니다. 더 많은 것을 바라니까 허황된 길로 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돈에 있지 않습니다.
로또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돈을 날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되려 노숙자로 전락하여 구걸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돈이 사람을 허영에 물들게 했고, 결국 피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요?
돈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여 진정성을 잃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사람을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또 돈이면 무슨 일이든지 다 된다는 배금사상에 물들게 하고,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을 길러주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돈은 사람을 현혹시켜 본래의 존재가치를 망각하게 만듭니다. 물론 돈을 제대로 쓰면 참 좋은 것이지요. 하지만 잘 쓰는 사람에 비해 잘못 쓰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데니얼 카너먼은 돈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했는데, 그 중심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러합니다.
'돈이 인간에게 기쁨을 준다고 믿지만 그것은 환상이고, 단지 일시적으로 기쁨을 줄 뿐이다. 오히려 부를 쌓게 되면 우울해진다. 왜냐하면 자신이 바라던 부를 얻었지만 완전한 행복이 되지 않음으로 해서 행복한 미래로 이끌어 줄 대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좌절하고 절망하기 때문이다.'
아주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어느 날 갑자기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그는 도시 변두리에 약간의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수십억 원을 손에 쥔 것입니다. 그는 하던 일을 접어두고 매일 포커를 하고, 술을 마시는 등 흥청망청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돈은 다 날아가고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돈은 착실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게으름뱅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돈을 너무 믿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믿으면 사정없이 배신을 하고 파멸로 내몹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잘사는 것일까요?
돈을 보고 일하지 말고, 꿈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꿈은 사람을 나쁜 길로 가게 하지 않습니다. 진정성을 갖게 하고, 땀방울의 소중함을 가르쳐줍니다. 또한 기쁨을 주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소중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3월 봄빛처럼 환합니다. 마음은 부드럽고 온화합니다.
꿈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또 능동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용기를 주고, 보람을 갖게 하며, 마르지 않는 샘처럼 기쁨을 줍니다.
청춘들이여, 돈을 보고 일하지 말고 꿈을 위해 즐겁게 일하기 바랍니다.
영원한 동심童心
동화작가 권정생이 쓴 <강아지똥>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강아지똥이 빗물에 흘러내려 예쁜 민들레를 피운다는 이야기입니다. 똥 하면 더럽고 냄새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는 이 동화를 통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도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다 쓸모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게도 따뜻한 눈길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높고, 멋지고, 보기 좋은 것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모두가 잘나고, 잘살기 위한 일에만 골몰합니다. 작고 낮아서 눈에 잘 뛰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있는 것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모두가 우뚝하고 빛나는 것만 원한다면 이 사회는 기형적인 사회가 되어 잘못 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권정생은 이점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그는 작은 것이 있어야 큰 것도 있고, 별것 아닌 것이 있어야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일깨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작고 하찮은 것들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강아지똥>은 이러한 그의 생각을 유감없이 보여준 우리나라 최고의 명작동화입니다.
나는 평소 그의 작품을 좋아함은 물론, 그를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찾아뵈려고 했는데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가 자신이 믿고 섬기던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나는 나의 게으름을 자책하며 그가 살았던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그의 옛집을 찾아갔습니다. 집이라기보다는 움막에 가까운 낡고 허름한 거처였습니다. 그곳에서 평생을 병마와 싸우며 글을 썼을 그를 생각하자 가슴이 저며왔습니다.
그는 10억이 넘는 재산을 두고도 먹는 것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옷도 기워 입으며, 검정고무신을 신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은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그는 어린이 마음으로, 어린이 눈빛으로, 어린이의 해맑은 숨결로 동화를 썼습니다. 한번도 어린이의 마음을 버린 적이 없어 그가 쓴 동화는 어린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순결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영원한 동심으로 살았던 동화작가 권정생.
그는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 이 시대의 참 사람이었습니다.
동심으로 살면 인생을 보다 더 맑고 깨끗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삶의 가치를 한껏 드높일 수 있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돈의 부자가 되기보단 마음의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돈은 일시적인 행복을 주지만 마음은 영원한 행복을 줍니다.
동심을 품고 사십시오.
동심은 가장 인간다운 본연의 마음입니다.
아픔도 지나면 희망이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많은 일을 겪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꿈같은 시절을 보내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슬픔도 당하게 됩니다. 가슴 벅찬 기쁨과 살을 에는 고통도 만나게 되고, 온몸을 쥐어짜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세상을 온통 다 가진 듯한 기쁜 일도 경험합니다.
아픔 역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손님입니다.
이러한 일은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누구나 반갑고 기쁜 손님만 만나길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사랑과 행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에 오면... (0) | 2012.02.01 |
---|---|
죽는 그날까지 품격 있게 살고 싶다 (0) | 2012.01.31 |
자신을 '행복한 VIP' 로... (0) | 2012.01.28 |
주눅 들었을 때... (0) | 2012.01.17 |
지금 외롭다면... (0) | 2012.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