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볕 좋은 가을날 뭔가를 거둘 수 있다는 기쁨에 감사할 뿐이죠.
- 이상주 지음 · 강미애 감수『공부열광』에서 -
"공부는 기술이 아니라 열정으로 하는 것이다."
저자 이상주
한국의 전통 교육과 독서법, 책쓰기에 관심이 많은 신문기자다. 20여 년 동안 신문기사를 쓰면서도 우리의 교육과 독서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해왔다. 조선황실 의례에 관련된 종묘대제. 사직대제, 왕릉제향 전승자이고, 종묘제례보존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종대왕 후손들의 모임인 영전회 멤버로 세종 사상과 리더십 교육관 전파에 노력하고 있다. 또 여러 문중의 종손, 사학자들과 교유하면서 우리의 것에 대한 정보와 흥미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감수 강미애
아동·청소년 상담센터인 나무소리연구소 수석 연구원이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뒤 미술심리치료를 공부하였으며, 대학원에서 임상심리를 전공했다. 대학과 병원, 청소년센터를 오가며 미술치료, 심리평가, 심리치료 등에서 많은 임상을 하고 있다.
"언제 사람으로 또 태어나겠어요."
언제 이 공부를 다시 하겠는가. 언제 이 청춘이 다시 오겠는가.
언제 이 선생님을 다시 만나겠는가.
――――― 코미디 작가 김재화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한 권의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가 직접 쓴 책이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습니다. 그 순간, 여는 글의 제묵에서 시선이 멈췄습니다.
'언제 사람으로 태어나겠는가. 사랑하다 죽자'
제목 아래에는 그가 죽을 뻔했던 사건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대형트럭에 치일 뻔했던 순간, 고등학교 자취방에서의 화재, 대학시절의 영양결핍, 그리고 2008년의 하반신 마비위기였습니다. 그는 그 감정들을 세세하게 풀어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병상에 누워 있었더니, 제 손으로 숟가락 들고 밥을 먹는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알겠더라, 나는 아주 거룩한 존재임도 깨달았다.'
고승 임제선사의 말을 인용한 부분도 크게 와 닿았습니다.
'기적이란 물 위를 걷는 게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다.'
김재화는 모든 사람이 땅 위를 걷지만, 상당수는 그 큰 행운과 능력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책 속의 글은 그가 아픈 뒤, 삶을 되돌아보면서 쓴 글이었습니다.
우리는 큰 혜택을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받아들입니다. 햇빛, 물 ,공기, 부모, 형제, 친구…….
주위의 사람과 주위의 모든 물질은 나를 키우는 영양분입니다. 나를 위한 많은 것이 갖추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덜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김재화의 서문, '언제 사람으로 태어나겠는가'가 다시 읽혀집니다. 현재 위치에서 제 자신을 바라봅니다.
언제 이 직장을 다시 다니겠는가.
언제 내 아내를 다시 만나겠는가.
언제 내 아이를 다시 만나겠는가.
언제 이 친구를 다시 만나겠는가.
학생의 입장에서 볼까요?
언제 이 공부를 다시 하겠는가.
언제 이 청춘이 다시 오겠는가.
언제 이 선생님을 다시 만나겠는가.
그렇습니다. 이 같은 자문을 하다 보면,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심리학자 엄마의 생각
제 남편에게 제가 우스갯소리로 "다음 세상에는 난 남자로, 당신은 여자로 태어나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저에게 "다음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날 자신이 있나 보네."라고 합니다.
문득 '정말 이번이 사람으로 사는 마지막 생이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언제 지금이 다시 오겠는가 싶어 '지금 여기(here & now)'에 집중합니다. 상담도 그렇습니다. 과거의 상처로 찾아오지만 결국에는 지금 이 순간의 생각과 느낌을 가장 중요하게 다룹니다. 이것이 상담의 시작 포인트입니다.
"누구나가 아닌 누군가가 되세요."
'나만의 것'을 찾기는 너무 어렵지만
'나만의 것'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세상입니다.
――――― 조선일보에 '이규태 칼럼' 을 오랜 기간 연재했던 이규태(1933~2006) 논설위원이 생전에 한 말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입니다. 서울 광화문 근처 설렁탕집을 찾은 그는 넥타이를 맨 많은 직장인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은 '누구나(anybody)'가 아닌 '누군가(somebody)'가 되면 좋겠네."
필자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이규태는 똑같이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직장인을 보면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자기만의 독특함을 의미했습니다. 누구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가 할 수도 없을뿐더러 사회 전체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죠.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세계를 열어가고, 자기만의 장점을 만들라는 뜻이었습니다.
10년 전에는 이 말이 그렇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실감하고 있습니다. '나만의 것'을 찾기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나만의 것'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세상인데 말이죠. 청소년이 사회 주역이 되는 10년, 20년 후에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카이스트 졸업생의 10% 이상이 의과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공부한 과학영재들이 의사의 길로 눈을 돌립니다.
몇 년 전 필자의 조카도 포항공대를 졸업하고 의대에 편입했습니다. 고교 졸업 때 의대를 포기하고 선택한 학교였지만, 먼길을 돌아 다시 의대로 갔습니다.
의사인 한 친구는 며칠 전 대학원에서 물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특강을 했습니다 강의의 결론은 의사에 대한 환상이나 미련을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돈 버는 의사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며, 대신 기초과학이든 응용과학이든 의학이든 자신의 것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초중고생이 진로를 선택할 때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내용입니다.
나의 관심사에 대하여, 나만의 것에 대하여.
심리학자 엄마의 생각
아이들은 과제를 할 때 고민을 많이 합니다. 무엇을 선택할지조차 정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때 흥미 있고, 관심 있는 분야를 정하면 과제를 쉽게 풀어갈 수 있습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평소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면 능률이 오릅니다.
많은 이가 선망하는 의사, 변호사 등 '사' 자 직업을 요즘은 3D직종 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마음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어느 분야든 나만의 독특함이나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느냐 보다는 나만의 향기, 나만의 독특함을 가졌는가가 관건입니다.
"내 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이에게 엄마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그렇기에 언젠가 어머니가 될 딸의 교육이 중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 프로 선수의 가장 큰 목적은 돈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꿈을 이루겠다는 목표도 분명 있지만 수입을 많이 올리기 위해 프로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프로구단의 목표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버는 게 최우선의 목적이며, 사회적 기여, 시민들의 여가선용 등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유능한 선수를 거액을 들여 스카우트하고, 투자한 금액 이상의 효과를 보려고 노력합니다.
프로축구단인 FC서울은 여자프로배구단인 GS칼텍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자 배구선수 대부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합니다. 몇 년간 후보로 뛰다가 스물둘 셋부터 주전으로 나서는 게 일반적입니다.
프로선수는 경기와 훈련으로 많은 날을 합숙합니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은 학교에 다닐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2010년에 GS칼텍스 선수 10명이 단체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당시 조혜정 감독의 건의를 받은 GS칼텍스 구단은 흔쾌히 선수들의 대학진학에 대한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선수들이 야간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훈련 시간과 합숙 시간을 조절했습니다.
구단 관계자들은 처음에 고민했지만, "내 딸이라면 대학에 안보내겠는가?"라는 정종수 대표이사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정리됐습니다. 학력거품이 심한 우리사회에서 고졸보다는 대졸에게 삶의 기회가 더 많은 것은 분명합니다.
정종수 대표가 여자 선수들에게 대학진학의 문을 열어준 것은 의미가 큽니다. 가정과 사회는 여성의 역할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이는 엄마의 영향이 절대적입니다. 엄마가 많이 알고,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면 더 바람직한 아이교육이 가능하죠.
태국 총리를 지낸 릭 파이는 1999년에 시사주간지<아시아위크>에서 아시아의 영향력 있는 인물 7위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그의 86세 어머니는 방콕의 한 시장 좌판에서 두부와 빵을 팔았습니다.
언론에서는 어머니를 칭찬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노점에서 일하는 게 좋아요. 친구가 있어 마음이 편하죠. 나는 단지 총리가 어렸을 때 성실하고 근면하고 겸손하라고 가르친 것 밖에는 없어요."
어머니의 바른 교육이 있었기에 가난한 집의 아들이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어머니도 아들에게 하대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 전 총리가 어렸을 때 "자네, 정승이 되시게."라며 꿈을 심어주었답니다. 아들을 귀하게 대접하고 꿈을 꾸도록 이끈 것이죠.
족보 연구가인 이병창 가승미디어대표는 모계유전을 주장합니다. 그는 머리 좋고 뛰어난 인물이 난 집안을 남자 쪽으로 추적했는데 큰 특징은 찾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훌륭하고, 할아버지가 뛰어나면 아들과 손자도 업적을 남겨야 하는데 특정적인 상관관계를 도출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모계로 추적한 결과, 부계보다 의미 있는 관계를 찾았습니다. 한 예로, 정치인 L의 집안을 들었습니다. 머리 좋은 집으로 소문난 이 집안에는《동문선》의 저자인 서거정의 누이 등 대대로 뛰어난 인물이 많이 시집왔다는 것입니다.
이병창 대표의 주장은 유전법칙의 맞고 그름을 떠나 최소한 환경적인 측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가정교육은 어머니에게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보다 딸을 더 많이 가르쳐야 사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조건을 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간절하게 전해주려고 하기 때문에 더 큰 능력을 발휘합니다. 어머니가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사고를 지녔다면 아이를 더 잘 교육시킬 것입니다.
PC서울 정종수 대표는 선수들이 몇 년 후에는 어머니가 될 것을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될 딸의 교육이 필요함을 안 것입니다.
조선시대 유학자인 송시열은 "딸 교육을 잘못시키면 남의 집도 망하게 한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현명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현명한 어머니는 단순한 학력보다는 많은 독서와 사회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풍부한 실전 학력 속에서 탄생합니다.
내 딸이라면, 내 가족이라면, 이런 전제는 병원 현장에 있는 저에게도 항상 해당되는 일입니다. 병원에 온 환자는 절박하지만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일상이다 보니 의도치 않게 긴박감이나 절실함이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 늘 내 앞의 저 어른이 나의 부모라면, 내 앞에 있는 저 아이가 내 자식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생각하며 말과 행동에 신중함을 더합니다.
"청소년 때 세 가지 선택을 고민하세요."
청소년 때 직업, 배우자, 가치관의 선택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인생설계가 가능합니다.
――――― 십여 년 전입니다. 안병욱 숭실대 명예교수와 통화를 했습니다. 필자는 3의 철학에 대해 물었습니다. 서양에서는 '럭키세븐lucky seven'이라는 말이 있듯이 숫자 7을 좋아합니다. 이에 비해 한국인은 숫자 3에 대해 애착을 보입니다. 3권 분립, 삼세판, 삼각 정립 등 3과 관련된 게 아주 많습니다. 3을 이야기하면서 안 교수는 사는 것을 세 가지 선택으로 설명했습니다. 직업, 배우자, 가치관의 선택입니다.
직업 선택은 대개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밑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래서 학교와 학과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외고나 국제고에 간다면 그 분야에 목표까지는 아니어도 흥미는 있어야 합니다. 과학고를 생각하면 수학과 물리를 좋아해야겠죠. 단순하게 공부를 잘하니까 특목고에 간다는 생각은 잘못 된 직업 선택을 부를 수 있습니다.
배우자 선택은 직업 선택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가정이 편안하고 안정돼야 꿈을 이룰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는 '전쟁터에 갈 때는 한 번 기도하라. 바다로 갈 때는 두 번 기도하라. 결혼식장에 갈 때는 세 번 기도하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배우자 선택 시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뜻이겠죠.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정립되지 않습니다.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책에서 본 좋은 문구나 이야기,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 가훈, 친구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서 서서히 형성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입니다.
가치관을 세운다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림을 그려가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의 행동을 보면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라고 다짐하고, 모범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면 '나는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죠.
청소년 때 직업, 배우자, 가치관의 선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인생설계가 가능하고, 멋진 인생그림을 그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심리학자 엄마의 생각
정신분석적 상징과 관련해서도 3은 완벽을 의미하는 숫자입니다. 하늘, 땅 그리고 인간을 뜻하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우주적 의미를 가지고 있죠. 인생에서 부모의 품을 떠나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 직업과 결혼이며, 이를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에 기초가 되는 것이 가치관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중요한 선택이겠습니까. 여러분도 이 중요한 갈림길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좋은 책은 가족과 함께 읽으세요."
내가 읽어 좋은 책은 아내에게 권하고, 아이들에게 권하세요.
좋은 책을 가족이 다 읽으면 소통이 돼 비로소 독서의 완성이 됩니다.
―――――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은 자신이 나고 자란 섬진강변에서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노래했습니다. 또한 농촌에서도 벽지인 임실의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에서 교편을 잡았죠.
그가 어린 시절부터 화려한 문재를 보인 것은 아닙니다. 그는 책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에게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자연을 보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1948년 전북 임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순창농고를 졸업한 뒤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다음해 교사시험을 보러 가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고향의 작은 분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 그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농촌 분교학교의 젊은 선생님은 딱히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때 책장수가 학교를 방문했고, 그는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샀습니다. 시골에서 책을 거의 접하지 못했던 그는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졌죠.
토요일 오후에는 전주로 나가 헌책방을 뒤지는 게 일과가 되었습니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독서한 그는 문학적 소양을 발산하게 됩니다.
마침애 1982년, 그의 시가 창작과비평사에서 낸 단행본 시집에 소개되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립니다. 그리고 책읽기의 힘을 발휘라도 하듯 김용택은 문단의 핵이 되었습니다.
필자의 선배인 시인 백학기는 1988년 쓴 글에서 '당대의 문사인 김용택과…….'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시인이라는 칭호까지 얻은 김용택은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책은 가족과 함께 읽으세요. 내가 읽어 좋은 책은 아내에게 권하세요.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읽고 좋은 책은 아이들에게 전해야죠. 이것은 아이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아이들이 좋은 책을 읽으면 부모에게 추천해줄 수도 있는 겁니다. 좋은 책을 가족이 다 읽으면 소통이 돼 비로소 독서의 완성이 됩니다."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한 김용택은《섬진강》을 비롯하여《누이야 날이 저문다》,《그 여자네 집》등을 남겼습니다.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도 받았습니다.
심리학자 엄마의 생각
제가 좋아하는 김용택 선생님이 계신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특히 둘째 아이가 입학할 무렵 그런 생각들을 했었죠. 그런데 선생님이 섬진강 학교에서 정년퇴임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포기했습니다. 좋은 선생님이 있는 곳이라면, 좋은 환경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열정과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 그런 열정과 용기를 가졌는데, 선생님과의 인연이 닿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네요.
"책읽기는 돈이 적게 들 뿐 아니라
계속적인 즐거움을 줍니다."
지금은 좋은 도서관들이 곳곳에 있어 한 푼도 지불하지 않고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몽테뉴(1533~1592)는 르네상스 시대의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필가입니다.《수상록》이라는 유명한 책을 남겼죠. 마음을 올곧게 하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인간성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관찰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런 어려운 말을 벗어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겠죠.
몽테뉴는 독서에 대해 예찬한 바 있습니다. 책읽기는 돈이 적게 들고, 계속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귀족집안에서 태어난 몽테뉴는 부족할 게 없는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릴 때는 당시 상류층이 배우던 라틴어를 익혔고, 청년기에는 법관으로 일했습니다.
궁중에서는 국왕인 프랑스와 2세, 샤를 9세를 만나 신임을 얻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몽테뉴 영주가 된 그는 앙리 4세의 보좌관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간간이 쓴 수필을 정리해 말년까지《수상록》3권을 완성했습니다.
몽테뉴는 37세 때 법원에 사표를 내고 독서와 글쓰기에 매진하고 싶었습니다. 당시에는 정치 환경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독서가 즐거움을 얻는 좋은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독서와 사유의 결과물인《수상록》을 쓸 수 있었죠.
요즘은 책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 수 있죠. 돈이 적게 드는 게 아니라 한 푼도 지불하지 않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한번 책을 읽는 재미에 빠지면 다시 책을 읽게 됩니다. 그래서 책 읽는 즐거움은 영구적인 것입니다.
심리학자 엄마의 생각
예전에 독서는 돈과 시간이 많은 사람들의 특권 같았지만 요즘은 학교는 물론이고 각 자치기관마다 훌륭한 도서관들이 있어 부지런만하다면 어떤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갖가지의 맛난 책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화려한 진수성찬이 차려진 도서관이 가족 모두가 정기적으로 나들이하는 일상의 공간이 된다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하고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기회는 매일 찾아옵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기회가 와도 기회를 잡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이 기회인지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 "'노(NO)'쓰면 전진을 의미하는 '온(ON)이 됩니다.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문제를 푸는 열쇠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찾아내야 합니다."
저술가인 노먼 빈센트 필 박사가 한 긍정의 말입니다. 발행부수 1,600만 부에 이르는〈가이드포스트〉를 창간하기도 한 그는 60여 년간 목사로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말을 했습니다. 그의 강연과 책의 핵심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와 실천입니다.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성급해 하지 마세요. 기회는 매일 찾아옵니다. 다만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먼저 행동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낙심할 때가 많죠. 중간고사 성적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고교나 대학입시에서 뜻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잡고 새롭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적극적 사고방식》이라는 책에서 실천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실천할 내용을 메모지에 적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읽으라고 권유하죠.
결국 학습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작은 실천을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작은 실천은 공격과 같습니다. 적극적 사과와 적극적 행동이죠. 축구에서는 공격이 최선의 수비입니다. 뉴턴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선배들이 이룬 학문의 깊이를 꾸준히 연구하다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사과나무를 무작정 바라본 게 아니라 계속 공부를 한 것입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놓칩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기회를 잡을 방법을 모르고, 방법을 안다고 해도 잡을 힘이 없습니다.
매일 계속되는 학교에서의 수업과 공부를 지겨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매일 기회를 만드는 중입니다. 이것을 소홀하게 댜하면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리는 겁니다.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겠죠. 이는 재수와 삼수로 가는 길입니다. 물론 다음에도 준비하지 못해 기회를 놓치면 또 다시 다음 기회를 기다리게 될 겁니다.
노먼 빈센트 필 박사의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위한 제언을 소개 합니다.
"먼저, 어떤 문제에 대해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일주일 내내 계속합니다. 다음으로 성경이나 좋은 문구 등을 암기하고, 매일매일 마음속에 다집니다. 또 적극적인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 자주 이야기합니다."
심리학자 엄마의 생각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기회가 와도 기회를 잡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이 기회인지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그 준비라는 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죠. 매일을 얼마나 성실하게 보냈느냐, 알차고 보람되게 보냈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야 즐겁고 신나게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 많은 직장인이 마흔을 넘어서면 회사를 떠납니다. 하지만 인생 이모작은 생각만큼 쉽지 않아 언제나 큰 고민이 따릅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현실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고민을 합니다.
된 되는 것을 할 것인가. 좋아하는 것을 할 것인가.
거리로 내몰리는 상당수의 직장인은 젊은 시절에 좋아하는 것이 아닌 돈 되는 것을 선택한 경우입니다. 기성세대가 취업할 당시에는 이것저것 따지기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죠.
그럼 돈 되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경제여건과 사회변화에 따라 달라집니다.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삼성전자처럼 계속 잘나가는 기업도 있지만 대우그룹처럼 공중분해된 사례도 있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것을 해도 돈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면 즐겁고 신나게 일할 수 있겠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일로 생각하고 억지로 하는 것과 좋아서 하는 것은 생산성과 능률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진로선택도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과목과 연관된 학과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습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재즈계를 휩쓴 루이 암스트롱(1901~1971)은 매춘부의 아들로 길거리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열세 살 때 소년원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트럼펫 연주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트럼펫을 불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뛰어난 연주자가 되었습니다.
출소한 루이 암스트롱은 킹 올리버(185~1938)라는 스승을 만나 더욱 실력이 늘었고, 마침내 당대 제일의 재즈 보컬 리스트가 됩니다.
그가 영향을 받은 말이 있습니다. 음악 선배가 루이 암스트롱에게 한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리석게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애쓰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바친다네. 이것이 실패와 성공으로 갈리는 법이지."
루이 암스트롱은 좋아하는 것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임을 알았고,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했기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심리학자 엄마의 생각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즐겁게 일하면서 능력을 더 많이 발휘할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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