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에는 내면의 준비와 외부의 기회가 모두 필요하대요. 이 둘이 딱 맞아떨어져 '옳거니, 이거다! 무릎을 칠 만한 만남이란 일년에 그렇게 몇 번씩이나 찾아오는 게 아니래요. 사람들의 반응에 영향을 받고 그 연장선상에서 찾게 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내 뜻에도 맞고 다른 사람과도 연결되며 나아가 사회와도 이어진대요. 사슬처럼 탄탄히 엮어져 나간대요.
- 야마다 즈니 지음 『 청춘의 진로교실 』-
일과 삶을 고민하는 젊음을 위한 생각 테라피30
지은이 야마다 즈니
1961년 일본 초카야마현 출생. 여성 글쓰기 커뮤니케이션 지도자.
학생과 직장인을 상대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지도해온 저자가. 16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방황하면서 새로운 직업 정체성을 찾기까지의 힘들었지만 의미 있었던 과정을 재미있고 때로 감동적인 이야기 형식으로 전한다.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요즘은 아무래도 희망의 양이 줄어들고 있는 기분이다.
6년 전 처음 독립했을 때, 나는 어떻게 다시 사회에 나서야 할지 모른 채 거의 4년이나 수입 없는 적자 상태로 막막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뭐라도 해볼라치면 매번 어그러지기 일쑤라 하루하루가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뭔지 모를 희망이 있었다. 그 희망 덕분인지 지금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헌데 이상하다. 6년 전보다 지금, 오히려 희망이 훨씬 줄어든 것 같으니 말이다.
中中中
희망이라고 하면 학생들의 발표 가운데 무척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다.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조금 각색해서 소개한다.
그는 스물아홉 살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사를 갔었는데 그 지역이 공업 폐수로 오염되어 있던 탓에 심한 피부병에 걸리고 말았다. 학교를 장기간 결석할 수 밖에 없었고 잠깐 병세가 나아지면 등교했다가 쉬기를 반복하는 형편이었다. 간신히 학교에 다닐 수 있을 만큼 체력을 회복했을 때는 이미 친구도 한 명 없었고, 반에도 적응하지 못했으며, 그 탓에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따돌림 때문에 학교에 못 갔다. 공부하는 방법도 배우지 못했고 단체생활에 적응하는 법도 몰랐다. 아무것도 익히지 못한 채 그는 대입시험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인간관계나 사회에 소속되지 못한 채 이십대 후반까지 와버렸다고 한다. 그는 그간의 인생이 아무런 경험도 쌓지 못하고 아무런 기술도 익히지 못한, 그야말로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나날이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이십대가 끝나는가.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에 단단히 마음먹고 취직에 도전했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정신없이 떨어져 거의 150군데에나 떨어졌단다.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어느 회사에 사원으로 채용되었지만 비극은 여기서부터였다.
도무지 일을 배울 수가 없었다. 아무튼 학창 시절부터 단체 생활의 경험이 없었고 그 이후의 사회 경험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일들을 그는 할 수가 없었다. 사회 경험이 없다는 게 이런 건가. 아무런 기술도 익히지 못한다는 게 이런 건가. 매일 뼈저리게 실감했다. 끝까지 필사적으로 적응하려고 애썼지만 지난 시간의 공백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을 스스로 그만두어야 했다.
그런데 이토록 기구한 자기 인생을 소개하는 그의 발표가 이상하게도 상쾌했다. '이제부터는 소통하며 살고 싶다던 그의 마지막 말이 듣는 이에게 왠지 모를 용기를 불어넣었다. 희망의 여운을 강하게 남긴 발표였다. 이 청년보다 훨씬 좋은 상황에서도 어두운 분위기를 내는 사람이 그리도 많건만 이 처절한 인생사에 마음이 개운해지는 이유는 뭘까?
中中中
'가장 밑바닥을 겪어본 사람은 밝다'고 동료 H선생이 말했었다. 그러니까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아직 바닥을 쳐보지 않은 거다. '어디까지 떨어질까. 어디가 바닥일까'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거란다. H선생은 소위 니트족(NEET: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상담사다. 니트족이 되는 원인은 다양한데, 자기가 순조롭게 해오던 일이 어떤 계기로 돌연 실패하게 되면서 그로 인해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를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H선생은 진로를 발견하는 방법에 대해 이런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장래 진로를 결정할 때는 다음 세 가지 요소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다.
해야 하는 일(MUST)
할 수 있는 일(CAN)
하고 싶은 일(WANT)
해야 하는 일(MUST)이란, 이를테면 수험생이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든지, 부모님이 쓰러지셨을 때 간호를 해야 한다든지,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든지 하는, 인생의 기로에서 싫어도 맞닥뜨리는 자명한 의무이다. 할 수 있는 일(CAN)이란, 나를 예로 들자면 나는 논술, 편집 일을 해왔기 때문에 논술 지도와 분야의 일을 말한다. 하고 싶은 일(WANT)은 파일럿이 되고 싶다든지 해외에서 살고 싶다든지 좀 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든지 하는, 말 그대로 꿈이나 동경, 바라는 일을 가리킨다.
'CAN은 과거, WANT는 미래'라는 말을 선생님에게 들었을 때 나는 'MUST는 당장 해결해야 하는 과제니까 현재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아무튼 여러 번 들은 얘기인데도 새삼 마음에 와닿는 이유는 지금 내가 진로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H선생님에게
"저는 6년 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직장인에서 프리랜서로, 편집자에서 작가로 정체성을 바꾸어왔어요. 다시는 그런 불안한 도전은 안 할 거라고, 그런 경험은 참으로 끔찍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또 이렇게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하고 흔들리네요. 다음번 정체성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르겠어요."
하고 말했더니
"그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예요.'라며 칭찬해주었다.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흔들리는 일도 없는 거라나.
해야 하는 일(MUST)
할 수 있는 일(CAN)
하고 싶은 일(WANT)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가지를 어떻게 조화롭게 수행해나가야 할까?
일단 CAN(할 수 있는 일)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자란다고 H선생님이 말했다. 과연 그 말이 맞다. 능력이나 경험이 있는 일은 굳이 따로 파고들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람들의 의뢰를 받고, 나설 일도 많아지며, 실력도 붙게 된다. 나의 경우도 글쓰기 지도와 편집의 경험이 있는 까닭에 논술이나 작문, 커뮤니케이션 관련 일이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다시 사회에 소속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던 것도 CAN(과거의 경험과 기술)덕분이었다.
당시 나는 16년이나 직장생활을 한 터라 그때까지 못 해봤던 것,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WANT에만 목을 맸더랬다. 그러니 번번이 좌절하고 기운을 잃었다. 당연하다. ,WANT(하고 샆은 일)는 '미래'다. 미래의 일은 누구든지 아직 경험이 없다. 기술도 없다. 좌충우돌 하면서도 나는 악착같이 WANT에 손을 댔고, 실패와 좌절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를 희망이 떠나지 않았던 건 왜일까?
'나에게 있어 희망 있는 날들이란 WANT가 있는 날들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문득 깨달았다. 150개 회사에 떨어진 그 청년은 취직 시험에 한창 미끄러지는 동안에는 아직 고통의 밑바닥에 도달하지 않았던 것다. 취직될 때까지는 아직도 '나는 능력이 있는데 기회를 잡지 못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었는지 모른다. 자기에 대한 환상이 있는 동안은 아직 '바닥'이 아니다.
하지만 웬걸, 취직하고 보니 자기는 눈곱만큼도 남들을 따라 갈 수 없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바닥을 맛봄으로써 오히려 희망을 찾았다. 자기에게는 CAN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심전력으로 취직에 도전했던 그는 이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CAN이 없다면 자명하다. MUST와 WANT만 남아 있다. WANT에 다가가는 하루하루는 그에게 희망이 있는 날들이었다.
만약 내가 사회에 설 자리를 못 찾고 헤매던 시기에 과거의 경험과 기술(CAN)에 또 의지했다면 훨씬 빠르고 한결 순조롭게 사회에 다시 진입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그때 나는 그러지않았다. 넘어지고 부서져도 자꾸 WANT에 손을 뻗쳐댔다. 그러는 게 좋았다. 그때가 오히려 재미있었다고 할까? 그래서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中中中
제 독립생활 6년을 지나면서 새로운 일들도 점차 CAN이 되어간다. 문득 되돌아보면 지금의 나 역시 수많은 할 수 있는 날들(CAN)로 벅차다 그러니 이미 있는 경험이나 기술을 불려가기만 한다면 희망은 오히려 줄어드는 게 아닐까. 지금은 새삼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중년, 노년이 되어도 계속 전진하고 싶다. 즐거운 일, 재미있는 일을 자꾸자꾸 더 하고 싶다. 또다시 정체성 위기가 찾아와도 지혜롭게 이겨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CAN은 가만 두어도 성장한다. MUST는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인생의 기로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친다. WANT야말로 우리의 미래와 관계된다. 미래에 대한 경험도 기술도 아직은 없기 때문에 WANT를 좇는 삶이란 실패가 많은 삶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 그것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자아실현 난민
요즘, 취직 자체를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무엇이 취직을 이토록 대대적인 자아실현 이벤트로 만들어버린 걸까?
크리스마스도 그렇다. 대체 무엇이 이날을 본래의 기독교 정신과는 무관한 연인들의 일대 이벤트로 만들어버린 걸까? 연애하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의 힘을 빌려 분위기를 낸다. 뭐, 그야 나쁜 일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다고 해서 애인이 없는 사람까지 불안해지거나 침울해 할 필요는 없어야 할 터이다. 크리스마스에 애인이 없으면 바깥에 나다닐 수 없다든가, 그래서 별안간 애인을 만들려고 기를 쓰는 사람까지 나타나면 이미 한참 궤도 이탈이다. 스스로 만들어 낸 콘셉트(개념)에 스스로 빠져 옴짝달싹 못하게 된 꼴이다.
비슷한 경우를 구직활동에서도 본다. 취직은 언제부터 대대적으로 '하고 싶은 일, 일대 이벤트'가 된 것일까? 취직을 앞둔 젊은이에게는 먼저 당연하단 듯이 '너는 무슨 일을 하고 싶니?' 하는 질문이 던져진다. '하고싶은 일을 해라!' '너의 꿈을 실현해!' 같은 말들로 격려를 받는다. 나아가 자기분석이니 적성검사니 하는 것이 뒤따르는데, 검사지에는 '어떤 일이 내 적성에 맞는가' 하는 식의 자아 찾기를 위한 질문이 있다. '이 질문 너머에는 분명 나에게 맞는 일이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장식되어 있다. 면접관들도 지당하신 질문을 한다. '자네는 우리 회사에 와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고 싶은 일'을 기준으로 취직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바람직하다. 본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목적을 향해 노력해서 멋지게 원하는 직업에 취직해 기뻐하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기분이 상쾌하다. 주변까지 상쾌해진다. '나도 그러고 싶다', '다들 저렇게 되어라' 하고 바라는 마음도 백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불안하고 의기소침해지는게 당연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못 찾아서' 구직활동에 적극적일 수 없다는 건 상당히 무책임한 태도이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다고 불안을 호소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왜 그토록 이 질문에 발목들이 잡히는 것인지, 그리고 왜 이 질문이 곧장 '나는 안 된다'는 자책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한 친구들을 보면서 열등감을 느끼고, 집에서는 '그래서, 뭐가 하고 싶은 거니?' 하는 추궁에 위축되고, 면접관의 '우리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가?' 하는 질문에 지친다. 무엇보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으니까. 그래서 안 되는 거야' 하는 자기혐오에 낙담하여 추직 자체에서 도망가고 만다. 이런 젊은이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하고 싶은 일'이라는 질문에 내몰린 '자아실현 난민'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시달림 끝에 취직하여 '하고 싶은 일'의 저주에서 벗어나보지만 유감스럽게도 회사는 자아실현의 장이 아니다. 자칫하면, 취직 후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이상적인 회사가 어딘가 있으리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짧은 기간 급격히 이직을 반복하는 '자아실현 집시' 같은 사람도 생긴다.
예전에 이 칼럼에 기고해주었던 과학자 수련생 하루노 초초 씨에게서 진로 때문에 고민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들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초초 씨는 대입 시험의 진로를 결정할 때 큰고민에 빠졌었다. 이과 계열과 문과 계열 모두 진학이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그건 고등학생에게는 심각한 선택의 문제다. 초초 씨는 고민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일도 수두룩한 세상이지만, 이때는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굉장히 명쾌한 답이 나왔다고 한다. 바로 '나는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초초 씨에게 흥미를 가진 이유는 그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낑낑대거나 멈춰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초 씨는 '나는 답을 내릴 수 없다'는 대답을 실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내가 결정 못한다면 수험 결과가 결정하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시험을 봐서 합격하는 쪽으로 진학한다.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받아들였다. 결과가 어찌 되든 내 선택이고 내 책임이다. 그런 다음부터는 더 이상 고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이과와 문과 양쪽의 목표를 설정해서 두 분야의 공부를 모두 성실하게 해냈다. 결과는 현재, 새내기 과학자로 수련을 쌓고 있다.
中中中
하고 싶은 일을 못 찾겠다고 할 때,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 사회에 나와 일해보지도 않은 젊은이들 모두에게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만해도 구직 활동 때에는, 내 필생의 과업인 '교육'에 대해서는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내면을 뒤집어 파보아도 싹조차 보이지 않았다. 취직에 실패하고 3년 동안 일당제 편집 조수로 일하다가 교육 분야의 기획부에 채용되어 16년 동안 출근하던 중에 서서히 내 속에서 자라났던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못 찾겠다고 할 때 진짜 문제는, 그 대답을 거부하거나 언제까지고 그 앞에 웅크리고 앉아 대체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하며 허망한 질문을 꽉 움켜쥐고 스스로를 농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초초 씨도 어쨌든 고등학생이었으니 '나는 결정 못해……' 하면서 질질 끌며 헤맨다거나 우물쭈물 상담을 하러 돌아다닌다거나. 그러다 공부가 힘들어지면 '진로가 정해지지 않아서 그래……' 하고 문제를 회피한다든지,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통해 취직에 대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의욕이 솟는 사람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그 질문에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일을 한다는 건 과연 무엇인가?'하는 질문에서부터 취업을 생각해나가도 좋을 것이다.
사회에 나와 노동을 하고 생산을 하고 그 결과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돈이 지불되어 수중에 들어온다. 사람이 돈을 지불할 때는 무언가 공감이 발생한다. 돈이 사회를 돌면서 그 흐름과 함께 생산, 노동,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도 함께 세상을 순환하고 있다. 이 순환 속에 몸을 맡기고 일을 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나란 사람은 어디까지 통할 수 잇는가. 이 세상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보편성이란 무엇인가.' 등등. 이 순환은 지금까지 학습을 목표로 했던 학교라는 세계와도, 놀이의 세계와도 전혀 다른 역동적인 순환이다. 처음으로 '사회'를 경험하는 것이다. 사회의 순환에 가담함으로써 내가 다시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혹은 '어떻게 앞으로 나의 생계를 꾸려 나갈까?' 하는 질문에서부터 취업에 임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집이 부유하든지 가난하든지 상관없다. 일단 학교를 졸업하면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생계를 꾸리기로 결정한 뒤, 그 결심을 염두에 두고 할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바람직한 사고방식이 아닐까. 스스로 생계를 꾸릴 때에만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이라는 질문에 발이 걸려 넘어졌을 때, 그 질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거기서 찾을 것은 '내'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사회에 나올 길을 찾기 바란다, 지금 당장엔 하고 싶은 일이 아니어도, 그래도 일을 하고 스스로 생계를 꾸리며 사회에 충분히 영향을 미치며 살아갈 수 있다.
어떻게 사회에 발을 들여놓을지, 어떻게 사회에서 신뢰를 얻어 살아갈 수 있을지 우선 그 길을 찾기 바란다. 여러분이 당당하게 사회에 나와주기를 바란다.
선택을 내리는 '나'는 어디에
구직 활동 중인 학생들을 격려하는 칼럼을 쓸 때 편집자 분에게 지금 학생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물었었다. 즉각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하여간 많이들 지쳐 있어요."
학생들은 아무튼 회사의 자료라도 받아두자 해서 백 군데, 2백 군데 자료를 요청한다. 그렇게 받은 산더미 같은 자료를 앞에두고 또 지쳐버린다. 그 얘기를 들으니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선택지는 늘었는데, 선택을 내리는 '나'는 어디에 있나?"
中中中
오늘날 취직에 관한 정보와 자료는 매우 충실해졌다. 확실히 취직의 선택지는 늘었다. 그렇다면 선택의 자유도 늘었을까? 풍부한 선택지를 선택하는 '나'도 그만큼 성장한 것일까? 아니, 그전에 엄청나게 많은 선택지와 정보에 휘둘려 대체 뭘 어떻게 선택해야 좋을지 몰라 답답한 사람도 많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를 테면 <취직 가이드>뿐 아니라 <좋은 취직 가이드를 고르기 위한 가이드> 같은 책이 또 필요하게 된 것은 아닐까? 취직뿐아니라 여행을 할 때도 학교를 정할 때도 우리는 '선택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카탈로그'와 '카탈로그를 잘 고르기 위한 지침서' 이 두 가지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
"선택을 내리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을 받고 주춤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만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다면,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회사 소개 책자도 잘 골라서 후회 없는 선택을 내릴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왜일까? 프리랜서로 독립해 어떻게든 홀로 사회에 발 디딜 자리를 만들어 살 길을 찾아야 했던 그때, 내가 다양한 일을 선택해온 기준은 아무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뭔가 좀 더 치열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프리랜서 초기에는 일 하나를 맡을지 말지로 왜 그렇게까지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일거리가 거의 없었을 때, 오랜만에 간신히 들어온 의뢰마저 거절한 적도 있다. 그런 날은 "한 번 거절하면 다음엔 안 들어온다." 하는 선배의 말에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가족들한테 전화를 걸곤 했다. 프리랜서 생활 초보인 나는 직함도 실적도 없었고, 그래서 '난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하고 존재 자체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아주 사소한 일로도 와르를 무너지곤 했다.
내가 한 일이 곧 나라는 사람을 규정해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렇게 일 하나하나를 혼자서 바들바들 기도하는 심정으로 선택해왔다. 우연히 그런 고독에 대해 예전 회서 동료에게 이야기했을 때 '그냥 야마다 씨가 즐거운 일을 고르면 되는 거 아네요?' 하는 천연스런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면 나 또한 그런 말을,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뻔뻔스럽게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리에서 너무 멀고도 긴장된 곳으로 흘러와버렸기에 더 이상 그 마음에 공감할 수가 없다.
프리랜서 경력도 4년을 채워가며, 경험이 늘어난 만큼 의뢰도 늘었다. 하지만 그래서 생긴 새로운 고민도 있다. 선택지는 늘었지만, 선택을 내리는 '나'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나도 이 질문의 공격을 받았다. 다음 책을 내자는 의뢰가 출판사 열두 군데에서나 들어온 것이다. 나는 '책에는 생각과 시간을 담고 싶다. 전력투구하고 싶다. 그러니 다작도 못하고 몇 권을 동시에 쓸 수도 없다. 한 곳을 선택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회사, 사람, 주제'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출판사를 보고 고를까? 아니, 그보다는 편집자를 보고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출판계는 인력 이동이 잦아서 편집자들도 여기저기 출판사를 옮기니 정신이 없다. 그렇다면 그 '편집자'는 무슨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 편집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다 다르다. 누가 제일 실적이 좋은지, 누가 가장 일처리가 깔끔한지 부분적으로 비교하려고 하면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작가에게 무엇을 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종합적인 능력은 비교가 어렵다. 함께 일을 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주제로 선택해야 하나? 마침 지금 쓰고 싶은 주제가 그중에 있었다. 그렇지만 왜일까. 한 걸음 결단이 서질 않는다. 상담할 수 있는 선배가 있으면 좋겠다. 출판계에 빠삭하고 프리랜서 경험도 풍부한 그런 선배에게 조언을 받으면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긴 하지만, 상담도 또한 선택지를 늘리는 일이 아닐까? 상담을 하고 나면 거기서부터 또 나의 선택이 요구되지 않겠는가?
마침 그때 외부에서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겼다. 잡지 <편집회의>에서 주최하는 전문 기고가를 대상으로 한 강의를 모 대학에서 진행했다. 강의는 매주 이어졌다. 전문 기고가들과 함께한 수업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여하간 수강생들은 프로라서 언어능력이 대단했다. 무슨 과제든지 만능척척. 이따금 꽤 까다로운 과제를 내줘도 출제 의도를 완벽히 파악할 뿐 아니라 그것만 가지고는 시사하다며 과제와 직접 관련이 없는 재미난 소품까지 곁들여온다. 사람이 언어 능력을 갈고 닦아 자기 생각을 능숙하게 표현하는 자유란 바로 이런 거구나. 수강생들을 통해 여실히 확인했다.
한편 요즘 대학생들도 내면에 매우 좋은 자질을 지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일에 상당히 진지하고 끈기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생들은 생각하고, 쓰고, 말하는 지극히 초보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술에서 문제를 겪고 있었다. 제대로 기회를 얻어 훈련만 잘 받으면 쑥쑥 성장할 학생들이건만, 대부분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해 자기를 표현하는 일이 몹시 서툴었다. 나는 이 점이 안타까웠고, 동시에 학생들의 아주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부족이 이들의 취업에도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에 강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강의가 끝날 무렵, 내 속에는 일체의 망설임이 사라졌다. 이 젊은이들을 향한 책을 쓰리라고 굳게 결심했다. 이 심정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기대감과도 다르고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의무감과도 다르다. 그저 내가 그 일을 한다는 사실만이 뚜렷이 거기에 존재했다. 결국 나는 출판사. 그보다는 편집자, 그보다는 주제, 그보다는 '독자'를 우선해서 이번 선택을 내렸다. 선택의 옳고 그름을 떠나, 독자들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독자들의 인도를 받아 오늘까지 살아온 나였다. 그것은 그런 나에게 어울리는 선택이었고 그랬기에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中中中
선텍을 내리는 데 '내'가 필요할까? 필요하다고도, 필요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이번과 같은 경우, 내가 아무리 홀로 내면을 이리저리 분석해보았어도 아마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제아무리 대단한 선배에게 상담을 받은들, 그 어떤 훌륭한 지침서를 읽은들 이번과 같은 선택을 내릴 수는 없었다. 실제로 몸을 움직여 세상과 부딪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기에 비로소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이었다.
선택을 내릴 때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업무 인생에서 '독자'의 존재를 깨달은 것이 이 문제를 푸는 가장 큰 실마리가 되었다. 기업에게는 고객, 의사에게는 환자와도 같은 그런 타인(나의 일을 기대하는 상대방)을 발견한 사람은 강하다. 나는 나에게 있어서 독자를 자각하기까지, 일을 시작하고 나서 10년이 걸렸다. 그 전까지는 고민도 망설임도 많았지만 독자를 발견하고 나서 훨씬 자유로워졌다. 아마 끝까지 독자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이 일을 하면서 상당히 지루했을 것이다. 아마 나는 이번 일을 통해 '훌륭한 선택'이 아니라 '선택하는 너 자신'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 같다.
과연 그토록 수많은 선택지 속에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항목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지난번 칼럼 <자아실현 난민> 앞으로 도착한 독자 메일 한 통을 소개하고 마칠까 한다
선택
저는 스물여덟 살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6년 전의 저는 정말이지 지난 칼럼에 등장했던 '취직 자체를 포기한 젊은이'였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취직이라는 것에 회의를 느껴 구직 활동 자체를 포기하고 그냥 졸업했는데 나중에 스물다섯쯤 되어서 크게 후회했습니다. 일단 졸업하고 나서 시작하는 취직, 이직 활동은 엄청나게 힘들잖아요.
대학을 졸업하고서 저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나 계약직으로 일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거기서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어떤 일이 적성에 맞나?' '하고 싶은 일이란 게 대체 뭘까?'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애당초 적성이니 뭐니 하는 게 과연 일해보지도 않고서 알 수 있는 문젠가?' 하고요.
올해 4월부터 저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졸업하고도 훨씬 지나서 자격증을 따서 때마침 채용시험을 봤는데 운 좋게 합격한 겁니다. 물론 불안하기도 합니다. 이게 내 적성에 맞는 일일지 어떨지 생각해보면 속 시원한 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초등학교 교사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 하면 글쎄요. 어떨지요.
저는 자아실현을 위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려고 했던 게 아닙니다. 이 길을 선택하게 되기까지 그저 여러 가지 우연이 겹쳤을 뿐이지, 딱히 옛날부터 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어느 날 학부 때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거기서 '아무개 제자가 직장을 다니면서 초등학교 교서 자격증을 땄다'는 이야기를 언뜻 듣고 관심이 생긴 것이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시작하다 보니 어느새 교사에 대한 뜻이 자라난 거지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리고 대학 시절의 나라면 생각도 못했던 선택입니다.
사회에 나와 일을 하면서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다양한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며 몰랐던 것을 깨닫기도 하고, 실수를 저지르면서 배우기도 하고,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만큰 부끄러웠던 일도 있었고요. 일을 하기 시작하고부터는 매일 매일 이런 경험의 연속이었던 것 같군요. 바쁜 하루하루 속에 사회의 현실과 맞딱뜨리며, 내가 그려온 모습과 너무 다른 생활에 좌절한 적도 있습니다.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했고요.
그래도 지금 되돌아보면 스물두 살 때 비록 취직 활동은 그만두었어도 아르바이트든 뭐든 사회에 나와 일을 했던 게, 혼자 틀어박히지 않았던 게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에 나와서 새로 보게 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책상 앞에서 머리만 굴리고 있어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었던 것들입니다.
사회 속에서 지난 6년간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 나이가 되어 그럭저럭 '한번 해보자!' 하느 마음이 드는 직업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나한테 정말 맞을지, 내가 과연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솔직히 모릅니다. 앞으로 이 새로운 직장에서 또 다시 힘든 일을 겪거나 자기혐오에 빠지게 될 수도 있겠죠. 그래도 그런 일들을 이겨나가면 분명 그 너머로 무언가 보이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자신의 미래에 불안을 느끼고 있거나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서지 말고, 아니면 자기의 이상과 다르다고 그만두지 말고, 일단 밀고나가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사회에 나와서 직접 현실의 어려움에 부딫쳐본 뒤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깨닫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좀 더 나은 다른 길은 없을까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때 가서 진지하게 고민하면 됩니다.
불안과 기대를 안고 저도 4월부터는 다시 새 직장에서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독자 K씨의 메일)
일과 공부
"일하다가 뭐가 잘 안 풀리거나 하면 무조건 ' 더 공부해야 하는데, 더 배워야 하는데……' 하는 사람 있죠? 그게 마뜩잖은 거예요. 전, '그게 아니잖아, 공부가 아닐 걸?' 하고 말해주고 싶다니까요."
일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편집자 분이 불쑥 내뱉은 말이다. 나는 공감과 함께 내심 움찔했다. 이유는 바로 내가 요즘 맞닥뜨린 업무상의 장애물을 공부 부족 탓으로 돌려 '공부하는 것'으로 은근슬쩍 넘어볼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럴 때 누가 옆에서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슨 공부를 할 건데?' 하고 묻기라도 한다면 난감하다.
한편으로 편집자의 말에 공감한 이유는 나도 업무 현장에서 종종 '공부'라는 말에 위화감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프로젝트 멤버를 모아서 비싼 돈을 내고 전문가를 잔뜩 초빙해 대대적인 스터디를 벌인다. 그런데 나중에 아무리 봐도 그 스터디가 업무 현장이나 고객 서비스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아리송하기만 할 때가 있다. '설마, 그거 그냥 직원들 공부하는 걸로 끝난 건가?' 하고 생각하면 씁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 회사에서는 도저히 빨아들일 게(배울 게) 없다'면서 업무도 채 익히지 않은 새파란 신입사원이 회사를 떠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어이어이, 뭐 빨아들인다고? 첫 월급은 이미 잘도 빨아먹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일을 한다는 게 뭘까?
이 질문에 대해깊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소위 말하는 어느 엘리트 샐러리맨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여 살짝 각색해 이야기한다.
中中中
일 때문에 알게 된 R씨는 이름난 대학을 나와 유명 매스컴에 근무하던, 당시 3년차 직장인이었다. 입사 동기 중에서도 실력이 있는 편이어서 유망한 부서에 배치 받았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당시 R씨는 일을 썩 잘 한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주변에서 전혀 인정해주지 않는다며 본인도 걱정하고 있었다.
R씨는 성실한 노력가 타입이다. 확실히, 입사했을 때는 눈에 띄였을 것이다. 지적으로도 세련되고 정보처리 능력도 뛰어나 보였다. 책도 많이 읽었다. 그 탓인지 자존심이 세고 주변을 내려다보는 듯한 변모도 없지 않았다. 나는 그런 R씨가 싫지는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순수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말투라든가, 어떤 면에서는 가끔 나이에 비해 유치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유가 뭘까? 나는 신경이 쓰였다.
그런 R씨가 마치사람이 변한 것처럼 생기 넘치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유명인을 만나러 갈 때였다. R씨는 사회에 나오기 전에 책을 통해 동경해왔던 지식인, 문화인들과 업무 관계로 만날 수 있는 게 너무 기쁘다며 그런 만남에 지나칠 정도로 열정을 쏟고 있었다. '이번에는 ○○선생' '다음에는 △△선생' 하면서 의뢰에도 열심이고, 만나고 돌아오면 한껏 들떠 당시의 상황을 주변 사람들에게 웅변했다. 그 반면에 책상에서 하는 일은 좀처럼 집중이 안 되는지 부탁받은 작업을 까먹거나 실수하는 일이 부쩍 늘고 있는 모양이였다.
'R씨는 권위적이다'라는 말을 관계자로부터 들은 것이 그 무렵이다. 사회적으로 지명도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영 딴판이라며 측근들은 불평하고 있었다. 확실히 R씨는 사람에 따라 눈에 띄게 태도가 달랐다. 하지만 거기에는 권위라고 하기보다 좀 더 '순수한' 면이 있었다. 권위 때문이라면 직장 상사라든가 높은 사람에게 좀 더 싹싹해야 할 터이다. 권력에 아첨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강한 자에게 고개 숙이고 약한 사람은 짓밟으며, 그렇게 조직 속을 교활하게 헤쳐 나가는 사람 말이다. 그러나 R씨는 별로 조직의 권위에 굽실거리는 모습도 없고 출세에 그다지 집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내 인간관계에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할까, 술자리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래도 R씨에게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는 듯했다. R씨가 보기에는 존경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분되어서, 자기 기준에 존경스럽지 못한 사람이라면 동료, 선배, 상사 불문하고 무시해버리는 듯했다. 그런 태도가 어린아이처럼 솔직해서 얼굴이나 태도에 금방 드러나니까 상사와도 관계가 완만치 않은 모양잉였다. 즉, R씨는 권위라기보다는 약간 다른 별도의 기준에 따라 사람을 서열화하고 선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R씨는 회사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 머릿속에 이런 가설이 떠올랐다.
'바보 같기는, 회사는 일을 하러 가는 덴 줄 모르나, 3년차나되는 직원이면 더욱이 일과 공부쯤은 구분할 테지.' 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내내 줄곧 공부만 해온 사람이, 공부가 아니라 일을 한다는 게 어떤 건지 대체 어디서 배워 안단 말인가? '시험 성적을 올리는 노력과 업무 실적을 올리는 노력은 그 방식이 매우 다르다'는 말을 듣고 감히 확 오는 사람은 사회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뿐이다. 일을 해본 적 없는 학생들은 상상이 잘 안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취직하고 나서야 비로소 일이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직종에 따라서는 공부에서 일로 전환되는 과정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러니 시험공부에 매진하는 방식 그래로 일에 매진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눈에 보이는 물건을 만드는 업무도 아니고 직원 개개인에게 엄격한 이윤을 할당시키는 업무도 아니라면, 더욱이 지적인 활동이 주가 되는 업무에서는 특히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돈에도 출세에도 관심 없는 사람이 고객과 얼굴을 마추질 일도 없는 직장에서 일한다면, 자기를 성장시키는 것(예컨대 공부 같은)이 유일한 목표가 되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을까?
"R씨가 오랫동안 회사를 쉬고 있는 모양이야."
얼마 후에 관계자에게서 이런 소식을 들었다. 동기들이 차차 실적을 높여가는 와중에 아마 자기보다 실력 없다고 여겼던 동기한테 추월당하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게 아닐까 하고 그분은 추측했다.
간혹 업무 사이사이에 사담을 나누게 되면 R씨는 약간 사투리 섞인 억양으로 자주 이렇게 말했다.
"완전히 공부에만 매달려 살았죠!"
부모님이 성적에 굉장히 엄하셨다며, 대학 들어갈 때까지는 정말로 공부 말고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합격해서 부모님도 정말 기쁘셨겠네요."
하고 말해주면 R씨는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린다. 어쩌면 이건 R씨의 스무 해 인생에 이뤄낸 최고의 일이었는지 모른다.
R씨는 어쩌면 그런 '성적 올리기'를 직장에서도 계속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지적(知的 ) 영역이나 기술에도 수직적인 상승 방향이 있어서, 시험공부를 하는 것처럼 좋은 점수를 목표로 더 효과적으로 실력을 키우다보면 일도 자연히 잘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믿으면서 사내 회식시간조차 아껴가며 노력했던 건 아닐까? 아니, 하지만 R씨가 생각한 업무상 과제는 그런 고상한 목적보다는 좀 더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경영자라면 '회사에 가져다주는 이익'이라는 잣대로 직원을 서열화하고, 고객제일주의를 중시하는 경영자라면 '고객을 기쁘게 하는직원'이라는 잣대로 사람을 평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R씨는 '나를 성장시켜주는 사람'이라는 잣대로 주변인들을 줄 세우고 있었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자기를 지적으로 끌어올려주는 유명인을 존경하고, 자기 기준에서 배울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설령 상사나 파트너라도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태도 역시 설명이 된다. 하지만 일이랑 시험공부처럼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팀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R씨는 귀를 기울여야 할 상대를 지금껏 잘못 짚어온 것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中中中
공부가 아닌 일을 한다는 게 대체 뭘까?
'공부해야 하는데……' 하고, 솔직히 나도 자주 말한다. 업무에서 맞닥뜨린 벽을 공부로 뛰어넘어보려고 쉽게 생각한다. 특히 조금 새로운 영역에 들어섰을 때는 그 방면의 지식이나 능력이 내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몹시 조바심이 난다. 그럴 때 성급하게 공부를 하거나 섣불리 자기계발에 뛰어들려고 하면 R씨처럼 시야가 좁아져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놓치기 십상이다. 공부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일을 하는 것'이라는, 도입부에 나온 편집자의 말이 경종을 울린다.
'빨리 공부해야 되는데……'
초조한 마음이 들 때, 그전에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지금 업무에 닥친 과제가 무엇인가? 고객의 소리를 듣고, 팀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요구에 하나하나 답해나가는 것이 먼저라고 나를 타이른다. 여러분은 일에 필요한 공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한 사람의 타인을 기쁘게
만약 "지금부터 밖에 나가 5만 원을 벌어오세요."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벌어오기 전에는 집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친구나 지인, 친분 있는 조직에 부탁해도 안 됩니다. 오로지 모르는 살마 가운데서 얻어내야 합니다. 거저 받거나 빌리는 것도 안 됩니다. 도박도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맨몸 하나로, 일을 해서 5만 원을 벌어오는 겁니다.
나라면 주변의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글쓰기 개인지도 해 드립니다!" 하고 돌아다니겠지요, 수요가 금방 있을까요?
글쎄 어렵겠지 싶군요. 몇 시간 만에 5만 원, 아니 그 이상 벌어오는 사람, 아니면 그날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사람, 희비가 엇갈리겠지요? 좌우지간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해서 돈을 벌어오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그 노력이나 긴장감을 기억해두길 바랍니다.
이번에는 만약 "5만 원어치 공부를 해오세요."라고 하면 어떨까요? 내가 생각하기엔 이번이 훨씬 쉽습니다. 참가비 5만 원이 넘는 강연을 듣던가, 5만 원어치 책을 사서 읽던가, 내가 원하는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분에게, '사례는 5만 원뿐이지만 부디 가르침을 들을 수 없을까요?'하고 실례되지 않게 부탁해본다던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해서 공부해오시겠습니까?
생각해보았으면, 이제 5만 원을 버는 일과 비교해봅시다. 5만 원을 벌 때와 5만 원어치 공부를 할 때는 머리, 몸, 감정을 사용하는 방식이 상당히 다를 것입니다. 이런 신체감각의 차이는 지금 내가 하는 행위가 일이라고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체크할 때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예외는 있겠습니다만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볼 때 '일' 이라는 행위의 기준은 '그 행위로 돈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될 것입니다. 돈이라고 하면 웬지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일은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는 주장에 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이를테면 어였한 성인이 일을 통해 합당한 이익을 얻고 나서도 조금이라도 더 이익으 얹고자 아득바득 기를 쓸 때에나 해당하는 얘깁니다. 지금 저는 훨씬 더 원점에 다가가서 애초에 어떤 행위로부터를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돈은 반드시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결국 '한 사람의 타인'을 기쁘게 하거나 또는 그에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에게는 1원 한 푼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단순히 기쁘게 하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기분은 좋았지만 돈까지 내고 싶지는 않은 정도의 행위. 즉 일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수준의 행위라면 세상에 널렸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입으로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습니다만 '지갑의 입'은 정직합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中中中
어느 회의 현장에 외부 관계자로 참여했을 때의 일입니다.
신선한 의견들이 오고간 생산적인 회의였습니다만, 유독 그 회사의 젊은 사워 P씨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입도 뻥긋 안하고 수동적으로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의 리더였습니다. 과연, 보다 못한 P씨의 상사가 회의 후에 사람들 앞에서 주의를 주었습니다.
"P군은 좀 더 발언을 하는 게 어떤가?"
그때 P씨는 아마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회의에서 꼭 발표를 해야 하는 건가요?"
젊은 시절, 일에 대해 아예 개념이 없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겸연쩍어지더군요. 그런 나를 이끌어주셨던 여러 선배님들이 생각났습니다.
"여러분의 발언을 듣는 것만으로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P씨가 그때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만약 그런 말을 했다면 이 리더 밑에서 일하는 멤버들은 퍽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똑같은 시간 분의 급료를 받으면서 저만 공부를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라든가 "리더로서 쓸모 있는 발언을 하나도 못해서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제가 먼저 여러분께 유익한 정보나 의견을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자세를 표하는 편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시간이나 노력의 짐을 팀원들에게 지우지 않고 제 몫의 '일'을 다 해 낸 다음에야 '좋은 공부를 했다'는 말을 해도 문제가 없는 겁니다.
단돈 10원이라도 좋습니다. 일이란 타인으로 하여금 '이 사람한테는 돈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도움이나 기쁨을 게공하는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에는 아무래도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회의에서 돈이 오가는 일은 없습니다만 만일 그 회의에 참여한 멤버 전원의 시급을 일일이 계산해서 미래의 고객이나 경영자에게 베팅을 하듯이 돈으로 주게 한다면 어떨까요?
"지금 A씨 의견에 만 원!"
"지금 B씨, 훌륭한 제안에 2만 원!"
오늘도 회의실에 보이지 않는 판돈이 마구 날아다니고 있는 듯합니다. 과연 나에게는 시급만큼의 베팅(즉 타인에게 준 이익, 기쁨의 대가)이 들어올까요?
출근 첫날 엄마는 제게 처음에는 선배 책상 닦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제가 있던 회사에서는 이미 청소도 아웃소싱이 되어 있어 실제로 신입사원이 청소를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 발상은 고리타분하지 않습니다. 형식적인 도덕도 아닙니다. 오히려 학생에서 사회인으로서의 위치 변화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발상입니다. '먼저 나서서 노동을 제공하라'는 말이지요. 사회인이 된 첫 아침에 취하는 행동이, 학생 기분으로 멍하니 앉아 '오늘은 선배가 무슨 좋은 말씀을 해주실까? 하는 수동적인 자세여서는 안 된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필요가 있거나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어라. 사회인이 된 아침에 제일 처음으로 단 백 원어치라도 좋으니 네가 뭔가를 제공해서 상대방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어봐라. 곧 '스스로 먼저 일을 찾아서 해나가라'고 엄마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삶의 목적을 바꾸자
친구가 부서를 옮기게 되었다. '강등' 당했다며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있다.지금 사십대인 그녀는 입사 이래 여태껏 몸 담아왔던 간판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시즌도 지난 인사이동이였다. 그러나 내가 전에 있던 회사의 서열로 보면 오히려 더 높은 자리였고, 새로 옮길 부서는 요즘 한창인 신규사업을 벌이는 곳이었다. 그래서 딱히 위로하려는 것도 아니고 진심으로 그런 말들을 해주었지만, 이미 식어버린 열정과 피어나는 불안으로 위축된 친구의 모습은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였다.
"삶의 목적을 바꾸라는 거군요."
옆에 있던 H선생님이 말했다. H선생님은 학교에서 상담을 하는 분이라서인지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다. 나는 일 관계로 H선생님을 만나는 일이 항상 즐겁다. '이번 인사이동은 삶의 목적을 바꾸라는 의미네요.' H선생님이 그렇게 정의를 내려주었을 때도 '아, 이사람은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있구나' 하고 친구보다도 내가 더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中中中
나도 회사에 다녔을 때, 16년 가까이 일했던 부서에서 이동을 선고 받았었다. 그때의 슬픔이란 마치 겉껍데기만 남고 몸속의 모든 것이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스르르륵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 슬픔은 나날이 커져가 이윽고 격심한 통증으로 바뀌었다. 이런 마음은 버려야 한다고 수도 없이 나를 타일렀다.
'부서 이동을 싫어한다니 직장인 실격이다.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된다. 애초에 이런 감정조차 생기면 안 되는 거다.'
그때 내가 느낀 슬픔은 주위의 어느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조차 용납되지 못했다. 그때 H선생님처럼 내 슬픔을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했을까.
인사이동, 이직, 퇴직, 은퇴 이후의 새로운 생활……, 이런 일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을 바꾸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 같은 일벌레에게도, 달리 할 게 없어서 시나브로 일이 삶의 이유가 되고 말았다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니트족, 프리터, 상당수의 신규 구직자들에게도 '직장을 가지라'는 말은 곧 '삶의 목적을 만들라'는 울림과도 같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홀로 서기까지 느꼈던 중압감을 뭐라 이름 붙여야 좋을지 몰랐었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 나는 삶의 이유를 재구축하는 지난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 식대로 말하면 '정체성 재편'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듯하다. 정체성이라고 하면 친구가 카를로스 곤(닛산자동차 CEO)의 강연회에서 들었다던 가르침, '회사에 중요한 것은 아이덴티티와 모티베이션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이덴티티와 모티베이션, 이 말을 우리에게 확 다가오도록 바꾸면 어떻게 될까? 문자적으로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삶의 목적과 열정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요 몇 년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정년퇴직을 하고 그중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체성 재편의 위기를 맞았다. 나 역시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 자격으로 다시 사회에 진입하기까지, 즉 정체성 재편하기까지 일찍이 겪어본 적 없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그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그때 나는 몰랐다. 예상 못한 불운과 예상 못한 행운이 나에게 함께 닥친 줄을,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말해보겠다.
먼저 나는 회사를 그만둠으로써 일을 잃고 삶의 목적을 잃으며 말하자면 정체성 위기랄 것을 맞았다. 여기까지는 좋다. 각오한 바다. 더 나아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잃었고 그러자 서서히 의욕도 사그라졌다. 거기까지도 아직 괜찮다. 문제는 내가 어느새 점점 마이너리티(소수파)가 되어갔다는 것이다. 예상 못했던 불운이란 바로 이거다. 태어날 때부터 이 사회의 '다수파'로 살아왔기에 너무도 당연히 내가 다수파였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었다. 아무데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란, 인간사회에서는 마이너리티다. 그리고 마이너리티가 되어보니 확실히 알겠다. 이 사회는 절대적으로 다수파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소위 다수파들도 물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할 필요는 없다. 나도 초등학교, 중고교, 대학교, 회사…… 마치 소라게가 소라껍지리을 바꾸듯 정체성을 갈아타왔다. 다수파를 걷는 이의 정체성이란 이렇다. 그들은 학교라든가 회사처럼 이미 마련되 '상자'에 시험을 쳐서, 어떻게든 어떤 상자에라도 들어가기만 하면 그 안에 자기 '자리'가 준비되어 있다. 최소한은 보장된다. 이 '준비된 상자'의 정체성이 곧 다수파라는 증거는, 다수파의 정점인 엘리트들이 정년퇴직 후에도 고문으로 회사에 남아 이중 삼중의 안전망을 마련하며 자신들의 상자를 확보해두는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느닷없이 상자를 벗어나 '개별적 존재'가 된 내가 개인 자격으로 사회에 다시 소속되기 위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려고 발버둥 칠 때, 그때 나는 아무런 지침도 없고 사회적으로 받아줄 곳도 없는, 말 그대로 내버려진 상태였다. 준비된 상자에 진입하는 식의 정체성 구축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했을 터인데, 해본적이 없으니 도통 알 수가 없었다.
中中中
애초에 정체성이란 게 뭘까?
궁지에 몰린 사람의 동물적인 감에서인지 나는 정체성이란 건 아무래도 내 속에는 없는 것 같다고 느꼈다. 오히려 그건 우편함이나 전화소리, 휴대폰 문자나 이메일 수신음 같은, 사람들과의 교류와 커뮤니케이션에서 찾아야 했다.
그때로부터 '기초공사 3년, 완성 2년' 하는 식으로 5년이 걸려 나는 다시 사회에 들어왔다. 정체성 재편은 그럭저럭 이루어져 있었다. 그때 나는 소라게가 아닌 거미, 곧 스파이더가 되어 있었다. 거미처럼 배에서 실을 뽑아서, 그걸 자아서, 먼저 한 가닥 다른 사람에게 걸쳤다. 맨 처음 한 가닥이 걸쳐지기까지 까무러칠 만큼 고독한 나날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닥, 다음 또 한 가닥……, 이게 또 어찌나 무시무시한 인고의 세월이었는지……, 이 실들이 차츰 거미집 형태를 갖추어나가며 5년이 지났을 때는 변변찮으나마 나라는 개인을 기점으로 한 네트워크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정체성이란 이 네트워크 자체라고 생각했다. '자아찾기'가 아니다. 자기를 찾으니까 미로에 빠지는 것이다. 자아찾기가 아니라 '관계 만들기'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닥친 예상 밖의 행운이란 이것이었다. 내 방식대로나마 개인을 기점으로 한 정체성을 구축해낸 것에 마음이 든든하다. 나를 기점으로 언제나 시작할 수 있다. 그런 자유로움이 있다. 게다가 이 거미집은 퍽 주거감이 좋다.
인사이동을 당하거나, 퇴직이 닥치거나, 내가 들어앉았던 상자와 나의 정체성이 어긋나 삐거덕거릴 때, 이것은 삶의 목적을 바꾸라는 신호다. 이 신호가 울리면 곧 기회다. 이번에야말로 나 자신을 기점으로 은퇴 없는 정체성을 재구축하자. '사람으로서 사는 삶'에 정년은 오지 않는다. '나'로 살아가는 일은 평생 현역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한 사람의 타인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삶의 목적을 바꾸는 작업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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