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사는 이야기

쬐매난 사랑

오키Oki 2004. 10. 25. 17:31

 

이른 봄에 고구마 모종을 묻어 두었는데

그자리에 돌깨(저절로 올라온 들깨)가 먼저 올라와 돌깨밭이 되었다.

 

돌깨들 때문에 고구마 모종들은 햇빛도 못보고

어두운 곳에서 지내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

그래도 몇가닥 고구마순이 보여 살았구나 싶었는데

집짓기일로 바빠서

여름에 고구마밭을 일구지 못해 그냥 놔두고 말았었다.

시금치밭을 일군다고 혹시 고구마가 있는지 파보라고해서

오전에 녹차아저씨는 산으로 난 밭에서...

비가 온지 오래되어 마른땅을 파헤치니 먼지만 풀풀 날렸다.

 

 

고구마순이 있어 고구마가 어디 있을텐데...

어둠의 자식들이 나타났을때 반가움이란 말로 형언할수 없었다.

빨간고구마, 노란고구마, 밤고구마, 물고구마,호박고구마

다섯종류의 모종에서 살아남은 고구마가 전부 이것이라니?

고구마를 캐면서 많이 배웠다.

어둠속의 자식이라고 사랑을 주지않고 키우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돌깨에 치이지 않도록 쬐매만 사랑을 쏟았어도 종자는 건질수 있었것이다.

4년전 빨간고구마, 노란고구마를 일부러 한박스씩 사다 심어 종자를 지켰는데

올해 종자를 몽땅 잃어 버린 해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말못하는 식물도 사랑을 받고 싶다는 아우성을 이젠 귀담아 들어야 겠다.

 

올해의 고구마는 고구마라 생각지 말고 산삼뿌리라고 생각하고 먹어야 겠다.

밭에서 얻은 몇개의 고구마

흔하면 고구마고

귀하니까 그댈 올해 녹차네의 산삼이라 부른다.

 

고구마순은 삶아 말렸다.

 

고구마의 쬐매난 사랑으로 미안해하며 부추밭에 김을 매었다.

신선초도 삶아 말리고

 

어제 겨울초를 뿌려둔곳에

싹이 빨리 틔라고 비닐을 덮어 씌었는데 싹이 나올려나 모르겠다.

겨울초씨앗이 몇년 묵은 것이였기에...

 

그래도 우리마을 뒷산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내려오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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