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사는 이야기

내 복은 남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오키Oki 2006. 12. 28. 00:23
 

 

한주일동안 포근하던 날씨가 오후들어

찬바람이 부는것이 또 다시 추워질 모양이다.

 

겨울엔 급하게 서둘러야 할일이 없다보니

일이 많은 농사철보다 잠이 아무때나 깨인다.

봄 찻잎이 피기시작하면 5분만 더 자고 싶다고...

 

녹차아저씨도 겨울은 나보다 더 잠이 없다.

신새벽부터 불을 켜 놓고 책을 들거나 인터넷강의를 본다.

 

나도 눈만 뜨면 자연스럽게 책에 손이 간다.

부부는 이렇게 겨울에도 자꾸만 닮아서 가니

겨울의 긴긴 밤도 짧기만하고 하루가 총알같이 지나간다.

 

 

 

 

추운 겨울에 차꽃을 피우겠다고 하얀꽃봉우리를 맺었다.

 

 

 

 

 

밤나무의 잎은 지독하게도

겨울 찬바람이 매섭게 불고서야 떨어졌다.

 

 

 

 

찬바람이 불어도 떨어지기 싫어하는 밤송이에는

마른 밤 삼형제가 꼭 켜안고 있다.


 


 

 

속이 텅빈 밤송이도 오래오래 버틴다.

 

 

 

 

 

밤나무가 옷을 훌훌 벗자 모습을 드러낸 둥지하나

비닐끈이 뒤엉긴 새집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겨울엔 개울물이 차갑지 않아서

미나리가 얼지 않고 자라고 있었다.

 

푸른미나리를 싹둑 베었더니

반질반질한 다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녹차아저씨는 겨울에도 팔십 평생 찬물만

사용하시는 할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자랐다며

할아버지 흉내를 내겠다고 이번 겨울부터는

무조건 개울물로 한번 씻어보겠다고

바람이 덜 타는 곳을 이용해서 세면장을 만들어 두었다.

 

겨울엔 남자도 하기 힘든 냉수마찰을

나는 귀농전부터 해왔는데 12년이나 된다.

 

요즘도 일주일에 한번꼴로 냉수마찰을 하는데

개울물보다 집에 받아서 쓰는 물이 더 차갑다.

 

각시 니한테는 다른건 다 이겨도

냉수마찰만은 꼼짝없이 두손 다 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각시한테 안 뒤질려는 우리 녹차아저씨

내년부터 나이를 거꾸로 먹기 시작하는게 아닌지...

 

겉보기엔 키 크고 야위어 보였던 사람인지라

농사일을 하겠다고 했을때 모두 탐탐치않게 생각했으리라.

가느린 손도 두툼해지고 몸도 귀농전보다 아주 많이 튼튼해졌다.

 

내경험에 의하면 찬물에 세수하니까

얼굴에 땡기고 조이는게 더 없어져서

집에서 만들어 쓰는 스킨만 발라주고 있다.

 

조용한 산골의 뜨뜻한 온돌방에서

아랫배 깔고 책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작은 가마솥에 밥 지어서

매끼니마다 누룽지도 팍팍 끓여먹고

식구끼리 둘러앉아 도란도란 밥 먹으면

여기저기 마지못해서 가는 송년회도 부럽지 않고

노래방에서 한곡조 뽑는것도 부럽지 않다.

 

 

친정엄마가 혼자 돈벌어서

줄줄이 책가방 든 우리 4형제 공부시킬적엔

내나이 17살 고 1학년 겨울방학때에는 어린 소견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추운 겨울에 친구따라

봉제공장가서 시다일을 했는데 말못한 설움도 있었고

언니따라 가서 일하겠다며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가서 철야작업도 해준적이 있었다.

 

일요일도 제대로 쉬지않고 겨울방학이 끝날때까지

열심으로 일다해주고 한참만에 받아 든 월급봉투

미성년자란 이유로 박한 임금에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나 혼자만 고생하고 말았어야 했는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곁으로 먼저 간 여동생을 떠올릴때면

그해 부산에 모처럼 눈내린 겨울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어릴때부터 풍족함보다 가난함이 더 친숙했다.

검소한 생활은 자연이 몸에 베어진 습관이였다.

 

결혼해서도 검소한 습관으로 허투루 안쓰고 알뜰하게 모아서

새로운 삶을 선택했을때 명퇴한 남편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보다

가족을 위해 수고했다며 박수를 쳐주고 떠나올수 있었다.

 

지난날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분들은

현재의 모습만 보고 복(福)이 많다고들 한다.

 

내 복은 남이 만들어주지 않았으며

우리부부가 열심으로 만들어 왔다고 생각된다.

 

사랑받는 아내가 되기위해

사랑받는 남편이 되기위해

서로서로 맞춰주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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