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다 아름답고 좋은 계절이지만
여름은 우리에겐 더 특별한 계절이 된다.
갑작스런 발언에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농 이삿짐을 챙겨서 풀어놓은 것도 늦여름에 했다.
우리 부부가 같이 참여한 작은 한옥짓기로
생애 처음으로 우리집이 생겨 여름에 입주했으며
해마다 봄철 녹차수확을 끝내고 주변에
놀이공간을 하나씩 꾸민것도 여름이였다.
풀 깎아 낸 마당에 촌사람이 다 되어 서있기까지
땀방울을 다른 계절보다 더 많이 흘렸던 것도 여름이다.
그동안 우리 두 사람이 다 이룬것처럼 보여도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커다란 힘의 작용도 있었던 것 같다.
푸른 은행잎에서 매미가 허물을 벗어내고
어느 큰나무에 달라붙어 목청껏 울어대는 것도 여름이다.
작년 말벌집을 이용하여 집을 짓던 말벌집이
장마때 먹을 것이 부족했던 벌에게
침범당해 훼손된채 집짓기는 중단됐다.
처마밑엔 2년 간격으로 말벌집이 세동 짓어졌는데
멍청하게 횟수도 모르고 1년만에 벌집을 짓어 댄다고
벌들이 화를 냈던 것 같은데 내년을 다시 기대해본다.
작은딸은 다니는 대학교에서 여름방학때 16명이 15일간
중국 연변 오지마을로 가는 교육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요즘은 봉사활동을 해외에서 하고 와야한다며
몸소 체험으로 경험하면 살아가는데 작은 힘이 되라고
참가비는 제언니가 부담해 주었는데
중국으로 봉사활동 떠나기전 집에 다니러 왔다.
장마 막바지에 지나간 태풍으로 개울물이 불어나
집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딸들이 외지에서 나름대로 살다보면
세월이 가면 갈수록 집에 오는 횟수는 줄어들 것이여서
이제는 딸들이 집에 오면 하던 일들은 중지하고
부모와 자식이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을 갖자고 했다.
작은딸은 학교생활이 힘들지는 않은지,
큰딸은 회사생활이 힘들지는 않은지
딸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함께 고민도 해준다.
가마솥 더위에 돌과 흙일을 하느라 힘들었지만
땀과 흙투성이가 된 몸을 폭포로 안마를 받고서
다음날이면 피로가 좀 풀려져 있어 다시 힘을 낼수 있었다.
비가 3주간 내리지 않아 폭포물이 갈수록 줄어들긴 했지만
흙일 다 마칠때까지 폭포 덕을 많이 봐서 여느해보다 고마웠다.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봉사활동팀과 결연해서
장애우가 많은 오지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게됐단다.
"엄마, 여긴 샤워시설도 없고요,
화장실 문은 아래로 반쪽만 있어요.
우리가 손수 밥해서 세끼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서 그런지 대신 살은 찐것 같다고...
거긴 와이파이도 안돼서 주말에 연변과학기술대봉사팀과
체육행사가 있어 나왔다가 비싼 카페에
일부러 들어왔다며 소식전하고 사진을 보내왔다.
큰딸이 쓰던 아이팟을 인터넷공유기만 있으면
무선인터넷도 되고 영상통화도 가능해서
딸들이 다 스마트폰으로 바꾼 뒤
이젠 우리가 사용하여 통신비를 아낀다.
작은딸의 말을 대충 들어보니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댁에서
여름방학때 지냈왔던 풍경이랑 비슷한 것 같았다.
변소에 볼일보러 가면 똥돼지가 턱 버티고 있어서 황당했는데
부엌벽은 위로 반쯤 뻥뻥 뚫렸고 설겆이를 하였던 물은 버리지않고
돼지에게 먹일 구정물통에 모아서 부엌바닥에 물을 버리지 못하여
부엌에서 목욕도 못하고 여자라서 마당에서 등목도 할수없고
우물가에서 세수하고 손과 발만 대충 씻을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이 귀농 선택지를 산골오지로 가자고 하는 걸
여름방학때 할머니댁에서 지냈던 고충을 얘기하며
아들이라면 생각해보겠지만 우린 딸이라서 결사코 반대했다.
지금 생각해도 산골오지로 가는 걸 반대하길 잘했는데
이곳에서 남편은 말없는 바위와 돌을 갖고 노는 일이
옛날에도 많이 해봤던 것처럼 몸에 잘 맞다고 한다.
찻물에 사포닌이 풍부한 인디언 감자꽃을 띄웠다.
이 무더운 여름에도 땀 흘린뒤에 따끈하게 우린차를 마셨다.
오전9시쯤은 아침부터 땀을 흘린뒤여서 피부는 따뜻해도
반대로 몸속은 냉해져있어 따뜻한게 들어가면 속이 개운하다.
차따는 봄날에 고령에서 한 분이 일명 인디언감자인데
땅콩크기만한 감자가 있다며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오래 안돼서
멧돼지가 아직 모른다며 감자를 좀 쪄서 먹어보고 심어란다.
봄까지 보관해서 그런지 수분이 좀 빠져 있었지만
그중에서 조금 굵은 걸 쪄서 먹어보니
인삼맛 같기도 하고 밤맛 같기도 했다.
인디언 감자는 넝쿨로 뻗어가는 작물로
올여름 날씨가 가물어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
큰딸 휴가때에 작은딸이 중국에 가게되어
동생을 배웅하고서 휴가차 집에 왔다.
큰딸이 휴가면 엄마 아빠도 휴가를 해야겠다며
전번부터 가족 모두 한번 가고 싶다던
여수엑스포를 8월 6일에 관람하게 되었다.
여수엑스포 폐장일이 얼마남지 않아서
야간권을 구매하면 입장료가 할인되어 만원이란다.
(폐장3일전 마을방송에는 면민들은
무료입장할 수 있다고 많이들 놀러가란다.)
점심먹고 출발하여 야간개장시간에 맞춰 입장했다.
맨얼굴에 썬크림을 안바르고 돌아다닐려니
작년에 큰딸이 미국교환학생을 마치고 오면서
사온 썬글라스를 선물로 받아놓고 이번 기회에
울부부는 난생 처음으로 썬글라스를 한번
껴보니 땀나는 여름철에 안경 쓴 사람들의
고충을 피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이색적으로 썬글라스에 하얀고무신을 신고서
쉴곳도 마땅찮아 발이 아프도록 걸어다녔다.ㅋㅋㅋ
우리 트럭안에는 부채가 있다.
냉난방장치가 되는 트럭이지만 10년이 다 되도록
장거리로 자주 이동하질 않다보니 그동안 사용안했던
냉난방을 켜면 오히려 쌓인 먼지가 나와서 더 해롭다며
여름에는 창문을 열고 부채질하고
겨울에는 무릎담요를 덥고서 이동한다.
(남편이 트럭을 살땐 냉난방이 필수사양이라서 어쩔수 없었단다.)
겨울철 이동보다는 여름철 이동이 더 고역이여서
되도록이면 장거리이동은 자제하는데
회사생활을 하는 큰딸을 위해 우리는 땀을 흘리면서도
이순신대교를 보고 여수에 온 보람을 잠시 느꼈다.
야간에는 여수시민의 무료입장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려서
아쿠아리움도 관람 못하고 가는 곳마다
한참을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국내관 한곳 국제관 한곳만 관람하고
여수엑스포의 하일라이트 빅오쇼만 보고
셔틀버스를 타기위해 바쁘게 나와야했다.
왜 여수엑스포 관람을 마치고 화개골로 오기
힘들었는지 직접 갔다와보니 알수 있었는데
관람도 제대로 못하고 지치고 피곤해서
만사가 다 귀찮아질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큰딸은 휴가를 마친후 이틀 출근을 하고
다시 주말에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밤에 모닥불을 지펴주었더니
통기타를 가져온 친구는
별빛아래서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
친구들을 위해 분위기를 한껏 띄워줬다.
하동 화개골에는 처음 온 큰딸의 대학 스터디친구들이다.
포항, 진주에 집이 있는 친구도 있고
배내골에서 펜션을 하는 부모님을 둔 친구도 있었다.
큰딸의 안내로 친구들과 쌍계사, 화개계곡에서 놀다가
악양 최참판댁을 구경하고 갔단다.
베이비 부머의 자식들을 에코세대라고 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격려'이고, 또 하나는 '위로'입니다.
인간은 아직 회복할 여려과 기력이 있을 때
격려를 받으면 한번 더 힘차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일어설 수 없다.
나는 이제 끝장이다.라고 각오를 굳힌 인간에게
격려의 말 같은 건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입니다.
우리는 최근 몇십년간 쭉 '힘내'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힘내라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괴로워지는 상황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격려'가 아나리 '위로'이며,
우리의 바싹 말라붙은 마음에 윤기가 되살아날 것입니다.
- 이츠키 히로유키『타력他力』에서
이 에코세대들이 자기답게 살아가면서
화개골을 생각만 해도 즐거워지길 바라며...
쌍계사
화개계곡 세이암
악양 최참판댁
사람은 모두 울면서 태어난다
세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인『리어왕』의 등장인물 대사 중에 "사람은 모두 울면서 태어난다"라는 인상적인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사람은 스스로 자기가 태어나는 방식을 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누구의 집에 태어나는가, 어느 민족으로 , 어떤 직업의 부모 밑에 태어나는가, 체격이나 재능, 개성, 유전자도 스스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인생의 첫걸음에서부터 자신의 의지를 초월하는 어떤 힘에 의해 본인의 노력과 관계없이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의 일생은 매일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결국 죽음 이외의 선택지는 없습니다. 인간은 슬프지만 죽음을 향해 매일 한 걸음씩 다가가는, 덧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생에는 기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100세 이상 사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200세까지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권력을 갖고 있어도 불로불사(不老不死)는 불가능합니다.
- 이츠키 히로유키『타력他力』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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