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접어드니 추위도 왔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지난달엔 지인의 결혼이 있어 부산엘 갔더니
우린 신랑측 하객으로 갔는데 울집 방문객 한 분은
함양에서 신부측 하객으로 왔다며 반갑게 만났다.
그날은 또 한분을 만났는데 화개골로 귀촌하셨단다.
한번은 귀촌한 분이 부산에 살면서 블로그를 한참보고
녹차아지매집을 찾으러 갔다가 집을 못찾아 허탕치고 왔다고
친분있는 사람한테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녹차아지매를 잘 알고 있다며(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분)
그려준 약도로 찾아 온 분이 신랑측 하객으로 오셨길래 우연히 만났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사는 곳이 다른 사람들이 다른 장소에서 만나는 일도 있기에
인연의 소중함을 더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올겨울 김장배추
가을무
왜감 두접 깍아 곶감으로 말린다.
올해 친정엄마가 칠순이셔서
잔치를 하자던 자식들의 권유를 뿌리쳤다.
친정아버지는 친정할아버지와 생일이 같은 날이여서
고향에 계신 할아버지와 생일상을 받으셨단다.
엄마는 아버지와 동갑내기로 만나 사시는 17년동안
아버지의 생일상을 차려주지 못한걸 미안해 하시며
부산, 수원, 하동으로 흩어져 사는 삼형제가 모여서
밥 한끼 먹는 것으로 번거로움을 피했다.
바람은 잠자고 햇볕이 좋은 날에 콩한말을 삶아 메주쑤기를 했다.
6~7시간 콩을 삶아내면서 불길앞에
같이 앉아 말동무를 해주고 있는데 신랑은
지난밤의 꿈이야기를 할까말까 망설이다가 끄내었다.
돌아오라고 선옥아~~
애타게 부르다가 잠이 깨었다며
비록 꿈이지만 상상만 해도 너무 큼찍하단다.
아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나오면서 어쩐지
날더러 고맙습니다를 하더라... ㅎㅎ
아빠하고 엄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그저께 작은딸의 꿈에서도 아빠가 각시만 찾더란다.
딸의 꿈은 개꿈이라치더라도 신랑꿈은 고맙게 받아 넘겼다.
두사람 매일같이 붙어 있어도 뭐가 그리 좋은지
딸 눈에 금슬좋은 부부로 사는 게 더없이 좋은 일인것 같다.
부부의 정을 늙어 죽을 나이 다되어서 깨우치기보다
이나이에라도 깨우치고 살수 있음에 고마워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가까운 사람한테는
더욱 더 잘 해줘야 하는데 부부이니까 가족이니까라며
너무 가까우니까 만만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고들 있는듯 하다.
우리도 조금은 그렇게 하지않았었나 반성하며
옆사람 한테도 그렇지만 딸한테도 더 조심하기로 했는데
귀농하여 살면서 가장 큰 소득을 건진 셈인것 같다.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늘 좋은 생각을 하고
남을 기쁘게 하며
세상에 보탬이 되고
행복에 겨워야 한다고 하네요.
작은딸과 함께 김장무 뽑기를 하던 도중에
근처에 오셨다가 들렀다 가신 사천고읍단감정보화마을 어르신들은
추위에 말벌들이 거의 다 떠나고 없어진 말벌집아래에 섰다.
처음엔 회사를 그만 두는 신랑한테 케익축하를... ㅋㅋ
굳이 농촌으로 들어와 사는 게 이해가 안되었는데
9년간 지켜보아오신 어르신들은 우리처럼 사는게
현명하다며 모처럼 오셔서 칭찬을 해주셨다.
뒷날 비소식이 있으니 손님 접대는 아빠한테
맡기고 올가을의 무수확은 딸과 함께 거두었다.
겨울의 아침은 온통 서리가 하얗게 내린 모습으로 맞는다.
잎이 마르지 않고 붙은 쑥은 다시 서리꽃으로 피어났다.
잘 키운 무와 배추를 일부 뽑아 친정엄마 김장감으로 보냈다.
꾸덕 꾸덕 잘 말린 메주를 달아 놓으니 곶감도 친구와서 반갑단다.
처마밑엔 무청 시래기감도 매달렸다.
서리가 내리지 않은 아침을 맞이하던 날에
지난 주말은 우리집도 일찌감치 김장을 했다.
12월 3일부턴 말벌이 한마리도 날아들지 않았다.
말벌집 입구에는 이로운 영양성분이 모여있다는 걸 새들도 잘 안다.
겨울에 배고픈 새들이 말벌집의 입구를 쪼아 파먹는 걸 알았기에
이번에는 예방차원에서 말벌집 입구를 막았다.
아름다운 말벌집을 얻기까지는
어떤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떼내야한고도 했지만
벌들을 위해주고 불편하여도 사람이 조심하고
이른 추위도 참고 견딜수 밖에 없었다.
벌들이 추위에 약해질 무렵
겨울은 늦게 맞이하고 봄을 일찍 맞이하자며
12월이 다되어서야 온돌방에 불길을 넣었다.
공부든 세상일이든 모든 일은 수월하게
그냥 공짜로 얻어지는 법이 없다는 걸 가르쳐 준 셈이다.
시댁에서 부쳐 온 고구마를 굽는다.
- 김홍신의 인생사용설명서 中에서 -
저는 주례를 잘 서지 않는 편입니다.
고귀한 두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는 그 존엄한 인연의
주관자가 되기 위해서 쉽지 않은 과정을 겪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례를 서기 전에 먼저 목욕재계하고 두 남녀를 위해 정성으로 기도합니다.
또한 주례사를 두 사람과 두 집안에 걸맞게 쓰고,
가능하면 축복의 시를 전주의 부채 명장이 만든 합죽선에 붓으로 써줍니다.
그런저런 과정이 힘겨워서 주례 서기를 꺼리기도 하고
진정 나 자신이 두 남녀의 본보기가 될 만큼 바르게 살았나를 되짚어봅니다.
그러다 마음먹고 주례를 서면 두 남녀에게
한 3년 정도는 부부싸움을 제법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이 다르고 성장 과정과 생각도 다르며
행동이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누구나 결혼하면
두 사람이 같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내가 상대와 같아지려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나와 같아져야 한다고 우깁니다.
연애할 때는 서로 좋은 점만 보여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한집에 살다 보면
서로의 약점이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단점을 아무리 잘 감추려 해도
몇 달쯤 지나면 다 들키게 됩니다.
결혼하면 근본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짜고 싱겁게 먹는 것,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 정돈을 잘하고 어질러놓는 것
따위의 사소한 일들로 다투어야 합니다.
그렇게 2, 3년쯤 지나다 보면 얼추 반반쯤 양보하게 되고
서로 참을 수 있으며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됩니다.
신혼 시절의 부부싸움은 서로 비슷해지기 위한
숙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투쟁'이자 '충돌의 미학'을 발굴하는 과정 말입니다.
돌산에서 깨트린 돌은 칼날이나 송곳처럼 뽀족하고 날이 서 있습니다.
수만 년을 파도에 씻겨온 조약돌처럼 변하려면
돌과 돌끼리 쉼없이 부딪어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모난 곳이 모두 닳아 구슬처럼 둥글어집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고 사람과 세상이 어울려 살려면 어찌
부딪히지 않고 어찌 충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상대가 내 수준에, 내가 원하는 만큼, 내 생각대로
존재하기를 기대하면 갈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상대가 내 생각과 내 방식과 내 뜻에 따르기만을 바라면
반드시 갈등이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 갈등의 골이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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