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춘년의 대길일(大吉日)
아침햇살이 좋은 어느 날
차씨를 따러 산에는 녹차아저씨 혼자 보낸다.
밭에 자질구레한 일은 내가 하기로 하고...
올 가을 산에선 도란도란 얘기도 못하고 침묵으로 일하였다.
난 위험이 적고 낮은 곳에서 밤을 줍거나 차씨를 따면
녹차아저씨는 산꼭대기로 올라가고 따로 흩어져서 일하다보니
산에서 뭔일이 생기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도 잘 안들리는데
불안해서 이젠 못하겠다고 내뻗었다.
차씨도 적어서 혼자 따온다고 하여 시켜 놓은 일을 해놓곤 한다.
콩은 거름을 안하고 키워도 되기 때문에
콩밭에서 봄부터 자란 풀들이 썩어 거름이 되었다.
빈콩밭에 갈고리로 긁었더니 생각보다 거름이 많이 나왔다.
콩밭들이 억수로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단물은 다 빼간다고...
산에 가기전에 밭으로 날라다 놓는다.
녹차아저씨가 어디에 쓸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데다
내가 아무데나 갖다 놓을수도 없어서 쌓아 놓기만 했었다.
박새가 허전한 콩밭을 부지런히 날아든다.
빈콩밭에서 거름을 모을려고보니
뱀(독사)이 한마리 죽어 반쯤말라 있었다.
녹차아저씨도 안죽였다고 하는데
도대체 누가 죽였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고무신 신고 아무렇게 돌아다닌다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할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조카도 대길일(大吉日)에 결혼식을 했다.
시누님의 큰딸이 결혼식을 하는 날
신부대기실로 찾아 간 딸들과 기념으로 한컷 찍혀져 있다.
올해가 음력으로 입춘이 두번 든다는
쌍춘년으로 더 없이 좋은 해라는 소문과
내년은 600년만에 한번 찾아온다는 '황금돼지’해여서
태어난 아이들은 재물복을 타고 난다는 속설로
10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29일이 쌍춘년에음양오행상 대길일(大吉日)이 겹친 날로 알려지면서
결혼식과 이사로 전국이 떠들썩할 전망이라고...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엔
결혼식장 가는 관광버스가 휴게소에서
판을 벌려 아침을 먹는 관광버스들이 많았다.
난 결혼식장에도 못가보고 이쁜 신부의 모습은 사진으로 구경했다.
부산을 떨며 모두가 예식장으로 빠져나간 텅빈
결혼잔치집에 나홀로 남아 뒷정리를 해놓고 있자니
모처럼 도시의 아파트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자연의 소리에 익숙한 내가 윗층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입주하는 곳이 있어 바깥의 소란이 내귀의 평화를 깨트렸다.
3년만에 부산에 갔는데 친정엄마는 내가 식장에도 못오자
사돈잔치집이 불편한줄 알면서도 딸을 보러 오셨다.
나도 이젠 조카사위가 생겼다.
두사람의 앞날에 큰 축복이 있기를...
오늘 아침은 감이 달랑 한개만 보인다.
시월의 마지막 휴일날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감 두개가 힘없이 떨어졌는가 보다.
거제도에 사시는 시고모님 두분이
우리가 사는 모습을 하도 보고싶어 하셔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분을 모시고 왔다.
우리가 화개에 귀농하기전 얻어 놓은 셋방에서
녹차아저씨와 시누님들하고 여름날 하룻밤 놀다 가셨는데
그때 집터와 산을 구경하고 가신 이후로는 처음이다.
억수로 변해버린 땅모습에 조카부부가 그동안
얼매나 욕을 많이 봤냐고 미안토록 칭찬만한다.
어젯밤 늦게 도착해서 아궁이에 불도 지피지 못하고
때마침 얻어 놓은 전기장판을 사용했다.
뜨뜻하게 하룻밤 더 주무시고 가시도록
녹차아저씨가 아침부터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주니
날씨도 따뜻해서 방안은 덥기만한데
고모님들은 집짓고 사는 모습을 보고
이제 소원풀이 했다며 두분이 함께 손잡고 가셨다.
하동에서 거제도까진 아직도 대중교통이 불편한데
너댓시간 걸려서 가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단다.
오래전에 쌍계사, 칠불사 구경은 하셨다고하여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차문화센터구경을 하고오시라고 했다.
2층 녹차만들기체험장
녹차만들기체험장
빈가마솥에서 차를 덖는 모습
3층 다도체험장에선 마침 우리차사랑 강연을 하고 있어서
뒷편에 한자리 차지하여 우려주는 차를 얻어 마실수 있었단다.
집에 오셔서도 염치없이 얻어 마시기만 했는데
영(너무) 미안해서 안되겠단다.
컴퓨터로 사진을 볼수 있는게 신기하다며
오늘 찍은 사진을 다 구경하고 가셨다.
큰고모님은 맞이로 태어나서 공부를 안시켜주더라며
그동안 까막눈으로 살으셨다.
나이가 들어도 한글은 꼭 알아야 하겠더라며
요새 한글을 배우셨단다.
차속에서도 아는 글자가 보이면
간판에 씌여진 글자를 소리내서 읽으셨는데
큰고모님께 박수를 쳐 드리고 싶다.
손주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귀농일기도 이젠 소리내어 읽으실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린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사촌시아제들이 모시고 같이 놀러오면 더 좋을텐데
버스를 타고 가시는 모습에 우리마음도 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