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빛27
- 김경집 『인생의 밑줄』에서 -
나이 들어 공허하고 허탈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 농밀하게 살지 못해서
빈 구멍 숭숭 뚫린 탓이다.
은퇴한 친구가 하나둘 늘어간다. 현직에 있을 때는 서로 바빠서 기별도 자주 못 하더니 어쩌다 만나면 자리 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고상하고 여유 있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심란한 심정을 토로한다. 그렇기도 할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일하던 직장에서 분주하게 돌아가던 일상이 갑자기 멈춰섰다. 수입은 둘째 치고 삶의 리듬이 깨졌다. 처음 겪는 일이다. 예상했던 일이고 각오도 했지만 막상 닥치니 다르단다. 일하는 법만 배웠지 놀고 쉬는 법을 배운 적 없었으니 더더욱 그렇다.
퇴직할 때까지 계속 오르기만 했던 길이다. 그리고 정점에서 내려왔다. 갑자기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고 허무하다. 거기까지 도달하고 내려왔으니 고맙기도 하고 후회는 없지만 이상하게 공허하다. 매일 수십 명씩 만나 일하다가 갑자기 외톨이가 된듯하다. 불러주는 이도 없다. 은퇴자들의 비슷한 양상이다.
은퇴자만 그런 건 아니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옥죄던 일이다. 뭔가 허전하다. 밥줄이었으니 했지 좋아했던 일은 아닌 경우 더욱 그렇다. 불행히도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살아왔다.
열심히, 치열하게 산 건 분명하다. 직장에 충성을 다했고 가정에 최선을 다했다. 상 받을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내 삶'에 대한 애착과 성취는 별로 없었다. 일에는 바빴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소홀했거나 무관심했다. 그런게 무슨 소용 있냐며, 그런 생각이 밥이 되냐 떡이 되냐 자조하면서.
그건 자신에 충실하지 못한 삶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농밀한 삶은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는 것만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일은 일이고 내 삶은 별개다. 그 삶에 충실하지 못했다. 시간이 없다고, 일이 넘친다고 핑계 대면서,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그러다 막상 중년이 되면 내 삶을 저절로 성찰한다. 허무하고, 외롭고, 답답하며 상실감이 짙을 수밖에 없다. 결국 농밀한 삶이 없어서 생긴 구멍이다. 작은 구멍일 때는 못 느꼈던.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꿀 일이다. 예전의 중년은 삶의 쇠퇴기며 마감을 앞둔 시가다. 유엔에서 지정한 연령대를 따지면 이제 청년 후반기의 삶이다. 그러니 중년의 삶은 늦지 않았다. 의무의 삶은 대강 이행했다. 계속해서 의무의 삶을 찾으면 또다시 외롭고 허전하고 상실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당당하게 권리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의무도 다했는데 내 삶에 충실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중년을 넋두리로 보내기에는 남은 시간도 많고 아깝다. 숭숭 뚫린 구멍 채우며 살아가면 될 일이다. 더 늦기 전에.
꽃벌이 기분 좋게 날아들었다가
올겨울 느지막이 내린 첫눈 추위에 꼼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