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프로젝트를 꿈꾸며
- 스웨이『인생은 지름길이 없다』에서 -
신념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아라
신념은 태양과 같다. 우리가 그것을 향해 나아갈 때 그림자는 뒤에 올 것이다. 우리는 불행과 고난에 직면해서도 신념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신념은 어떤 순간에도 삶을 지탱할 힘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우편배달부 히왈라는 매일 마을 곳곳을 누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험준한 산길에서 바위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를 넘어뜨린 바위는 아주 독특하게 생긴 바위였다. 바위를 들어 이리저리 살피던 그는 시선을 떼지 못하고 바위를 우편물 가방에 넣은 채 길을 떠났다. 마을에서 그를 본 사람들은 가방 안의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위를 버리세요. 갈 길도 먼데 그렇게 무거운 걸 들고 다니면 힘들어요."
히왈라가 바위를 꺼내며 말했다.
"이것 좀 보세요. 정말 아름답지 않아요?"
그의 반응에 사람들은 웃으며 답했다.
"그런 바위는 산에 널리고 널렸어요. 평생 주워도 충분할 정도예요."
집으로 돌아온 히왈라는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위로 성을 짓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는 매일 우편배달을 하면서 바위를 조금씩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을 지으려면 엄청난 양의 바위가 필요했다. 그때부터 히왈라는 손수레에 우편물을 싣고 다니며 괜찮은 바위를 발견할 때마다 실어 날랐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성을 짓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바위를 나르는 데 열중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꿈이 불가능하다며 혀를 찼고, 심지어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20년 뒤, 그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성을 여러 개 지었다. 성들은 각각 이슬람 사원, 인도 다신교. 기독교의 풍격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 보스턴의 한 신문사 기자가 마을을 지나다가 우연히 성을 발견했는데, 이곳의 풍경과 성의 구조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즉시 히왈라에 관한 기사를 작성했다. 신문에 이름이 실린 히왈라는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되었고, 그의 명성을 듣고 성을 찾아오는 방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방문객 중에는 당시 천재 화가로 알려진 파블로 피카소도 있었다.
히왈라는 성 입구를 장식한 바위 위에 이런 문구를 새겼다.
'나는 이 희망의 바위가 얼마나 먼 곳까지 갈 수 있을지 알고 싶다.'
그것은 산속에서 그를 넘어뜨린 첫 번째 바위였다.
지난 2018년은 2월에도 눈이 내렸다.
그해 겨울은 추운 날들이 많았고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바람에
차나무의 냉해가 가장 심하기도 했다.
2016년 늦가을부터
길가 옆에는 농막이 한채 들어섰는데
외지인으로 뜸하게 다녀간다.
이 모습으로 찍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되었는데
마을에서 꼭대기 집으로 살다가
현재 뒷집이 들어섰는데
6월부터 외지인의 집 짓기 공사를 시작했다.
봄의 전령사 매화꽃이 필 때도 눈이 내리기도...
2018년 1월에 찍힌 다음 지도 로드맵
길가 담장의 허술한 모습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기에
아주 고마운 자료여서 옮겨 봤다.
그동안 마을에서 끝 집으로 살다가
뒷집이 들어설 낌새를 알아채고
울타리 돌담 쌓기 100일 프로젝트라 불렀다.
길가여서 큰 차들이 많이 오르락내리락하기 전에
끝을 봐야 한다며 봄꽃 필 때부터 서둘렀다.
12년 전쯤에 돌과 흙이 섞여있는 것을
10트럭 사다가 세 곳에 하차했다.
흙더미 두 곳은 개울 근처 쉼터들을 만들 때
모두 정리해서 다 썼고
이곳의 흙더미가 마지막 남은 곳이어서
이번 기회로 모두 정리하기로 하였다.
남편 도키 나이가 60이고
오키도 55살로 완경이 되었으니
서로가 앞으로 더 힘이 부치기 전에 하자고.
3월에 집에 다니러 온 딸들과
화장실 앞 천장에 도배 한지를 몇 장 발랐다.
기차를 타고 갈 딸들과 하동읍내로 가면서
매화마을 먹점골에 들렀다.
아빠, 엄마 이제 위험한 돌작업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아빠, 엄마가 마지막으로 해야 될 일이라며
100일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고 다짐을
작은 딸이 입었던 옷을 물려받아서ㅋㅋ
JUST DO IT!
오키는 도키를 대신해 몸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