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채운다
올해는 장독대 앞을 텅 비웠기에 시원스럽게 깊어가는 가을이 잘 들여다 보인다.
작은딸은 리더십 교육을 스리랑카에서 교육자 24명중 막내란다.
낯선 나라에서의 두려움을 버리고 모험을 감수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 6인이 한조가 되어 2주간의 교육 막바지에서...
'당신의 위대성을 찾으세요 Find Your Greatness'
- 윌리엄 폴 영·앤디 앤드루스·로버트 아우만 등 지음『버려야 보인다』에서 -
버려야만 볼 수 있는 것, 알 수 있는 것, 얻을 수 있는 것
버려야 보인다·비워야 채운다·놓아야 얻는다
세계 최고의 지성 48명에게 직접 듣는 삶에 대한 뜨거운 통찰
당신의 인생에서 버려야 할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그것을 버리고 당신은 무엇이 달라졌나요?
'소유'와 '증식'이 모든 가치가 되어가는 지금, 과학·경제·사회·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시대를 이끄는 세계적인 석학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데 꼭 필요했던 '버려야 할 한 가지'를 꼽아달라고. 그것을 버리면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해달라고, 이에 세계를 움직이는 각계각층의 지성 48명이 어디에도 발표한 적이 없는 새로운 원고를 써서 보내왔다. Talent Lab의 허병만 대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하거나 불가능하다고 여겨 실행할 염두도 내지 못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세계 각국의 석학들과 소통해 그들의 글을 받아 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로렌스 카프론
인시아드에서 파트너십과 적극적 오너십 과정의 석좌 교수직을 맡고 있는 전략 전문 교수다. 카프론은 인수 합병과 제휴,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성장 분야의 전문가로 손꼽힌다. 최근 W. 미첼 교수와 공동으로《성장하는 기업의 비밀》을 출간했다. <USA북뉴스>에서 수여하는 2013년 국제 최고 도서상을 받은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어와 불어 포르투갈어, 중국어로 번역되었다.
이런 우연의 일치가 있을까? 이 책에 내 생각을 실을 수 있는 기회를 접했을 무렵 나는 "빼는 것으로 더하기: 고군분투하는 기업과 앞서 가는 기업이 행하는 사업 분할의 본질"이라는 제목의 기업 전략에 관한 논문을 심사하기 위해 듀크대학교 박사과정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논문은 어떻게 기업이 자원 분활을 통해 경쟁적 지위를 강화하는지 고찰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은 생존을 위해 회사의 일부를 매각해야 하지만, 앞서 나가는 기업 역시 선두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부 자원을 매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출판사를 통해 출간한《성장하는 기업의 비밀》에서 나는 기업 매수에 뛰어난 회사들이 한편으로는 조직을 기민하게 유지하기 위해 쓸모가 다한 자원을 재편성하고 매각하는 일에도 능한 회사임을 보여주었다. 그에 반해 사업 분할 없이 계속 사들이기만 하는 기업은 비대해지고 분열해 결국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내가 내린 결론은 기업 분할(매각)을 긴축과 동일시하는 관습적인 시각과 대조를 이룬다. 어려움을 겪는 회사가 기업 분할을 통해 경영진의 관심과 재원을 가장 핵심적인 사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성공적인 기업들도 성장 수단의 하나로 기업 분할에 의지한다. 경영진의 관심과 자원을 보다 가치 있는 기회에 투자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아이디어를 되새기며 나는 내 연구 분야에서 얻은 교훈이 개인적인 그리고 직업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정서적, 지적, 재정적인 자원을 게속 부여받는다. 그러나 이런 자원은 갈수록 요구가 커져 급속히 남용될 수 있다. 건강, 지력, 사랑과 같은 주요 자산이 고갈되는 지점까지 사용되는 것이다.
성인이 되면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책무를 떠맡게 된다. 자녀가 늘어나서 그럴 수도 있고 승진하거나 친구, 인맥, 지역사회 활동이 확대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 가운데 이전에 관여하던 부분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지도, 전에 정기적으로 하던 일을 중단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흔히 '빼지 않고 더하기'만 하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해야 할 일이 불어날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라. 덜어내거나 제하는 것이 없으면 결국 인간관계에서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건강을 해치고 내적 동기를 약화시킬 것이다.
나의 세 아이들이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든 그들의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 내가 가장 중점을 두는 일이다. 나는 딸들이 원망하고 균형 잡힌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애쓴다. 내가 가르치는 경영자 과정 학생들에게는 경영 행위에 대해 더 심오한 사고를 하도록 돕기 위해 노력한다. 박사 학위 과정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내가 나누는 지식과 더불어 대부분의 중요한 가치는 내가 이같은 서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구축하는 관계의 품질에서 비롯된다. 나는 그런 가치를 토대로 그들이 자신의 기대를 조정하고, 불안감을 극복하고, 회복력을 발달시키도록 도울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안위는 물론이고 성과까지 지나치게 신경 쓰다 보면 큰 부담으로 작용해 내가 가진 에너지와 낙관적인 사고까지 고갈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는 내가 기대하는 만큼 노력하려하지 않았고 나는 그런 딸의 그저 그런 점수를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큰딸과 싸운 일로 나의 주말은 엉망이 되었다. 나 자신과 남편, 나머지 어린 두 딸에게 써야 할 에너지가 바닥 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다음 주에 나이 지긋한 선배 교수에게 내가 겪은 좌절에 관해 이야기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부모로서 우리의 역할은 자녀들에게 다양한 활동과 기회를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거지. 그리고 거기까지야. 그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지려고 해서는 안 돼."
무언가 본질이 밝혀지는 결정적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의 통찰력은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결과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로 했다. 과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 아이들이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든 내 의무는 그들이 과정에, 여정에 오르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배울 수 있는 기회와 함께 나의 지식과 인맥을 제공하고 그들이 그런 과정을 통해 얻는 아이디어와 인맥, 기회를 재결합하도록 도우면 되는 것이다. 큰딸은 과외를 받는 과정을 마련해주고 지켜보기로 했다. 과외 수업을 제대로 활용할지 말지는 그 애가 결정할 일이다.
내가 경영을 가르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각 강의시간의 서두에 성찰 과정을 마련했다. 강의에서 배운 것을 자신의 비즈니스 상황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느냐 마느냐는 그들에게 달렸다. 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학회에 참가하여 프로그램과 전문지식을 교환할 기회를 얻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아이디어와 조언, 연구의 맥락에서 다양한 근원으로부터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이런 인생관을 채택한 이래 나는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고 스트레스도 덜 받으며 강한 유대의 구축에 더욱 개방적이 되었다. 나는 내 아이들과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자신의 성격 특성에 학습 기회를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과정을 거치며 서로 다른 결과를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결과의 차이는 이런 학습 기회를 받아들이고 화답하고자 하는 개인의 의지에 대부분 기인하기 마련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정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능도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겠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와 에너지, 가치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