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

맷돌? 숫돌? 시금석?

오키Oki 2015. 7. 15. 17:47

 

나는 남편을 선택할 때나 현재 사는 땅을 구입할 때나 귀농 시점을 정할 때도 지나고보니

직관력이 발동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런 때는 손익계산을 따지지 않아도 무조건 그냥 좋더라.

이제 우리 부부는 서로의 약점을 극복하도록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시금석'과 같은 존재ㅋㅋㅋ

 

남편은 친구인 지은 아빠가 작년 전북 진안에 산 땅이(200평) 별로다고 솔직하게 얘길했더니 올봄 다시 1,000평을 구입했다. 남편이 보고 와선  이번 땅은 좋다고 한다. 지은 엄마가 한 번 실패하자 어떡하면 좋은 땅인지 알수 있냐고 하길래 땅을 둘러보고서 뱃속의 느낌(배가 살살 아픈지, 편안 한지를)을 봐야 한다고 얘기를 했다. 지은 아빠는 진안에 정착하기 위해 정년 퇴직이 아직 몇 년 남아 직장생활도 하고 새로 구입한 땅에서 일하느라 요즈음 억수로 바쁘게 지내는데 이제야 남편이 왜 일찍 귀농했는지 심정을 알 것 같단다.

 

 

 

- 엘프리다 뮐러-카인츠 박사·크리스티네 죄닝 지음『직관력은 어떻게 발휘되는가』에서 -

 

 

엘프리다 뮐러-카인츠 박사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나 미국의 존스홈킨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이후 독일로 건너와 정신의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UN 소속의 여러 대사관에서 근무하며 정치 분야에도 광범위한 지식을 축적했다.

1977년 '건강 및 인적형성 연구소'를 설립하여 30여 년간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하며 정신과 질병의 상호관계에 대해 깊은 이해를 쌓아왔다. 직관 지능의 힘과 우주의 법칙에 관한 방대한 지식, 풍부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영적 · 정신적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직관 지능의 최고 전문가로서 다양한 세미나와 강의를 진행하며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질병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집중의 힘》등이 있다.

 

 

크리스티네 죄닝

제약업체와 의학 관련 업체에서 근무하여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10여 년간 뮐러-카인츠 박사의 연구소에서 영적 · 정신적 발달과정에 대해 연구해왔다. 뮐러-카인트 박사와 함꼐 세미나 및 공동 저술활동을 하는 한편, 기업체들의 위탁을 받아 자기관리와 건강관리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우주 내의 모든 에너지 중 가장 강력한 에너지는 당연히 사랑이다. 사랑이 있어야 영적 · 정신적 우정을 맺을 수 있고, 기쁨 · 집중 · 해방감 등의 긍정적인 생각과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인간관계는 에너지를 더해줄 수도 있지만 앗아갈 수도 있다. 우리가 지닌 에너지의 양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 당신이 '충전'되는 느낌이 들고, 언제 '소모'되는 느낌이 드는지 관찰해보라. 당신의 상태와 당신이 만난 친구, 친척, 동료들 사이에서 어떤 상관관계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 모범이 되는 사람, 우리를 성장시켜주는 사람은 '숫돌'과 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우리가 '보석'이 되도록 다듬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에너지를 앗아가는 사람, 우리를 '닳게 만드는' 사람은 '맷돌'에 비유할 수 있다. 숫돌과 맷돌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주의 깊게 평가하고 검토해야 한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더할 나할 나위 없이 좋은 대화 상대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지 않은 대화 상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각자의 느낌에 따라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의 에너지를 앗아가는 것은 꼭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사람을 만나는 시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더 급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때가 그 예이다. 혹은 그 사람과 나눈 이야기가 비판이나 험담 등 부정적인 내용이었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한 둘이 만나서 한 행동이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것일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공기가 좋지 않은, 담배연기로 자욱한 술집에서 그 사람을 만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가 에너지를 빼앗길 위험은 곳곳에 숨어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사물도 우리의 영적 발전을 크게 방해하거나 너무 많은 에너지를 앗아가버리는 '맷돌'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때때로 일상생활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들은 우리를 화나게 만들고 신경을 긁으며, 우리가 지닌 약점만 골라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맷돌'인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는 우리를 돕기 위해, 우리의 약점을 극복하도록 만들기 위해 나타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시금석'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을 만날 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점검해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직장 동료들이 주로 이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친구나 가족 중에서도 이런 시금석 같은 사람이 있다.

어떤 책과 잡지를 읽고 어떤 영화를 보는가 하는 등이 대중매체를 접하는 습관도 에너지의 양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소음은 에너지를 훔쳐가는 주요 요인에 속한다. 너무 많은 정보나 동작을 끊임없이 주입하면 뇌와 신경계에 무리가 가해지고 이는 결국은 에너지 손실로 이어진다.

과로를 했을 때에는 에너지의 양이 줄어드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기진맥진할 정도로 피로해지는 원인에는 일에 대한 우리의 가치관도 포함 된다. '긍정적인 사고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피로와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다. 누구나 일이 재미있고 만족스러운 경우 아무리 오래 일해도 전혀 피로하지 않았던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일할 때의 감정과 사고는 우리의 에너지 '수위'를 조절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직관적 지능은 창조의 원천

지능이 높다 하더라도 그만큼의 의지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능만으로는 양심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 수 없기 때문이다.

-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

 

 

 

지능은 순수한 정신 에너지이다

우리 주변과 우리 내면에 각각 어떤 에너지들이 작용하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자.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칠 때 혹은 무거운 짐을 들어올릴 때에 우리는 육체 에너지를 동원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것을 결정하거나 생각할 때, 어떤 것을 느끼거나 사랑할 때는 이와 다른 종류의 에너지가 작용한다. 바로 정신 에너지다. 인간은 육체(물질적 에너지), 그리고 영혼과 정신(정신적 에너지)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물질적인 부분들, 즉 영혼과 정신은 인성을 형성한다.

한 병리학자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해부해왔지만 아직 영혼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을 듣고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물질적으로만 사고한 결과 나타나는 오류이다. 직관적 지능을 알기 위해서는 비물질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비물질적 차원 중에서도 지성보다는 '영혼으로 사고'해야 한다.

 

 

지능은 육체적 · 물질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순수한 정신적 에너지이다. 즉, 지능은 인성의 일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 영혼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가장 권위 있는 백과사전인 브로크하우스는 "지능은 인성의 주된 부분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해준다. '지능'이라는 표제어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정의들도 함께 나와 있다.

    

◆ 다양하게 정의되는 정신적 능력의 복합체. 구체적인 혹은 추상적인 문제해결 능력만으로 국한되는 경우가

   많음

◆ 추상적 사고, 이해, 기억, 그리고 창의력과 관련된 능력

 

사회학에서는 지능을 학력이나 문화적 · 에술적 소양이 높은 이들. 즉 지성인들에게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지성인은 "높은 수준의 정신적 교육을 받은 사람". 지성은 "오성(俉性, 사물에 대해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통한 인식"이라고 정의한다.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에는 이러한 지성인 계층을 '엘리트'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지식을 습득하면서 발달된 지능(intelligence), 즉 지성(intellect)에 기초하여 엘리트를 결정하는 견해로, 지능을 판단하는 매우 중요한 잣대인 마음의 수양과 우주의 지혜에 도달하는 일을 간과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잣대는 진정한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 꼭 갖추어야 할 덕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플라톤도 지능과 관련해 "인간은 지식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지능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직관적 지능이란 또 무엇인가? 지성적 지능(지능지수, IQ), 감성적 지능(감성지수,EQ), 영적인 지능, 윤리적 지능, 심리적 지능 등 오늘날 지능이라는 개념을 정의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능검사를 통해 측정되는 소위 지능지수(IQ)는 지성적 지능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측정 방식에 관해 논란과 비판이 분분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능검사를 통해 측정되는 지능은 전체 지능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교육학과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는 1983년《마음의 틀: 다중 지능 이론》이라는 책을 통해서 IQ에 대한 기존의 견고한 고정관념을 뒤흔들어 놓았다. 가드너는 다중지능이라는 개념을 내세움으로써 다양한 종류의 지능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지닌 매우 중요한 능력 중 하나로 내면적 지능을 꼽았다.

내면적 지능은 내부를 향하는 능력으로,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가드너는 내면적 지능을 활용해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내면적 지능은 감정으로 가는 통로이며 감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매개체이다. 이 이론을 통해 가드너는 감상적 지능이라는 새로운 지능 모델의 초석을 마련했고, 이후 예일 대학의 심리학 교수 피터는 샐로베이와 뉴햄프셔 대학의 존 메이어가 감성적 지능이라는 개념을 더욱 발전시켰다.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감성지능의 창시자인 대니엘 골먼은 감성적 지능을 감정의 지능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성적 지능이란 마음이 지닌 힘과 능력이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감정이입 능력과 그들을 배려하고 그들과 협동하며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감성적 지능에는 예의, 책임감, 주의력, 자제력 등도 포함된다.

또한 골먼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들도 격정과 충돌을 조절하지 못하여 실패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할 경우 심리적 갈등이 생겨 집중력과 사고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위의 견해들을 참고로 우리는 지능이라는 개념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습득 가능한 지식, 논리적 사고, 그리고 이성 등과 관련된 지성적 지능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지성적 지능만으로 판단을 하다 보면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감정, 영감, '배에서 우러나오는 메시지', 감각적 인지와 창의력 등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지 이성의 측면에만 머물러 있으면서, 모든 것을 좌뇌로만 판단해버리게 될 것이다.

지성적 지능만으로는 복잡한 삶의 미로 속에서 쉽게 길을 잃어버리게 마련이다. 인생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삶의 모든 분야에서 장기적인 성공을 거두며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좀 더 포괄적인 지능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직관적 지능이다. 직관적 지능은 감정과 직관을 아우르는 것으로, 우리가 장기적 안목과 우주적 시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지능과 판단력은 신체의 건강상태와 두뇌의 기능수행 능력에 따라 크게 좌우되고, 인지능력 · 사고력 · 기억력은 삶의 방식에 영향을 받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삶의 방식이란 행동양식과 식습관을 합한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에너지가 존재한다. 인간의 두뇌가 물질적 에너지와 정신적 에너지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영양분을 섭취할 때도 물질적 · 정신적 영양분을 모두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

유일무이한 신경망 조직인 두뇌는 천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의 모든 인지와 반응은 신경삭(神經索)을 거쳐 대뇌에 전달된다.

고도로 복잡한 연산을 해내는 컴퓨터의 수행능력도 인간 두뇌가 지닌 잠재능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두뇌를 최첨단 컴퓨터와 비교하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두뇌는 육체의 중앙조정장치이자 중앙제어장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컴퓨터 드라이브에 정보를 저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뇌의 다양한 영역에 많은 정보를 저장했다가 나중에 이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런데 그 정보들은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인간의 사고와 감정에 영향을 끼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주어진 저장 용량을 어떤 정보로 채울 것인지는 각자가 결정한다. 부정적 사고나 부담이 되는 정보들로 하드디스크를 채울 것인가. 아니면 긍정적이고 우리의 발전을 촉진하는 정보들로 채울 것인가는 각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 정보를 잘못 입력했다 하더라도 인간이 지닌 '사고(思考)의 소프트웨어'는 다행히 다시 최신 정보로 채울 수 있다. 즉, 언제든지 업데이트가 가능하므로 근심, 고통, 공포, 실패를 불러오던 예전의 프로그램을 언제든지 새롭고 유용한 프로그램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장된 정보 전체는 '지식망'이라 부르는데, 어떤 새로운 정보가 이 지식망에 들어올 경우, 그 지식망 내에 해당 분야에 대한 얼개(연결고리)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면 그 정보는 기존의 정보에 쉽게 결합하여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새로운 정보가 지식망을 통과해 버리거나 기억 속에 강하게 자리 잡지 못할 수도 있다. 한편, 관심사가 다양할수록 더 많은 분야의 정보들이 지식망 속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다양한 주제에 대한 해석과 감정이입 그리고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결정을 할 때, 특히 직업적인 성공과 관련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절한 정보와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결정 상황에 직면했을 때 정보나 지식보다 더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바로 지능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 직관이다.

 

 

 

직관은 내면에서 나오는 메시지이다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은 "직관이란, 판단이나 추론 등의 의식적인 작용에 의존하지 않고 대상을 직접 파악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철학자들은 직관을 오성을 통한 경험으로는 얻을 수 없는 인식으로 가는 통로라고 규정한다. 플라톤은 "관념은 정신적 표출의 대상"이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은 직관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오성으로는 생(生)을 파악할 수 없다. 오성은 생을 그 자체의 틀 안으로 압박할 따름이다. 오성이 파악하는 대상의 세계는 허구이며, 참된 진실은 우리가 상황의 흐름에 동화될 때 우리를 향해 열릴 것이다"라고 기술하며 오성에서 직관으로 옮겨갈 것을 주장했다. 그는 직관을 상황의 흐름에 동의하는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직관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방향 제시자요, 삶이라는 배의 항법 장치다. 그러나 이 항법 정치는 항해자가 스위치를 쳐놓을 때에만 작동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위치를 켜는 방법'에 대해서는 제2부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영혼의 언어

내면의 목소리는 영혼의 언어다. 이 목소리는 조용하고 고요하며, 감벙을 객관적으로 나타내주는 신호기의 역할을 한다. 이 목소리는 열광적이거나 들떠 있지 않다. '직관적'이라는 말은 '충동적'이라는 말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귀 기울여'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 내면의 목소리를 최대한 잘 듣기 위해서는 모든 생각과 감정, 희망과 기대를 잠재워야 하지만 그러한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매우 드물다. 다음과 같은 상황이 자신에게도 발생한 적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약속 한 건을 해결하고 다음 약속으로 옮겨가기 바쁘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월말까지 끝내야 한다. 가족, 스포즈, 취미생활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주가의 하락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아들의 성적까지 신통치 않아 머라가 아플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신의 직관이 자리 잡을 공간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쳇바퀴'만 돌리고 있는데 어떻게 거기에서 빠져나올 것인가?

 

누구나 다른 일을 하던 중간에 '잠시 짬을 내어' 어떤 일을 해결하려고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정신력과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활동인 경우,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스스로에게 아이디어가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결국에는 절망감과 공허감만 남게 된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 다양한 강연 주제에 대해 시선을 끌 수 있는 세 개의 광고 문안을 써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를 '잠시 짬을 내어' 해결하려 했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에는 포기했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토요일 오후, 느긋하게 발코니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 오르기 시작했고, 세 가지의 '토톡 튀는' 문구를 그 자리에서 종이에 써내려갔다.

 

직관을 발휘하는 것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물은 바로 물질주의적 사고방식과 이성에만 의존하는 사고방식이다. 그것은 내면의 감정이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뒤흔들어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다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나 직장생활에서나 직관은 중요한 결정 상황에서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판단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 원천을 계발하면 할수록 우리에게는 더 많은 문이 열릴 것이다.

 

 

배에서 우러나오는 메시지

성공적인 경영인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태도로 흔히 "배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라"라는 말을 강조한다. 이러한 조언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감정이나 느낌, 직관 등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신체 부위가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어느 나라, 어느 사람이든 몸의 중심부를 가리킬 것이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이 우리 몸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중심을 잃다' 혹은 '중심을 잡아야 한다'라는 말도 아무런 이유 없이 나온 말이 아니다.

실제로 횡격막 바로 아래, 배꼽으로부터 조금 위쪽에 신경조직이 뭉쳐져 있는 곳이 있는데, 이를 복강신경총 또는 복강신경얼기라고 부른다.

신경학자이자 컬럼비아대학 해부 및 세포 생물학과장인 마이클 거숀은 1965년에 이미 "우리의 뱃속에 뇌가 있다"는 말로 동료들을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거숀은 인간의 내장은 수억 개의 신경세포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곳에 척수 전체보다 더 많은 뉴런이 집중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감정의 변화에 따라 방출되는 수많은 신경 전달자들이 머리가 아니라 '뱃속의 뇌'에서 합성· 저장되고 이곳으로부터 방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1년에 와서야 다른 학자들은 그때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그의 연구 결과를 인정하였다. 그 후, 세계 도처의 연구팀들은 세컨드 브레인 즉, '제2의 뇌'에 대해 앞 다투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뱃속에 있는 뇌의 세포 형태, 작용물질, 수용기 등이 '두뇌'가 지닌 것들과 같다는 점이 밝혀졌다. 학계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배에서부터 두뇌까지 혹은 그 반대로 두뇌에서 배로 이어지는 신경이 여러 줄 있을 것이라고 한다. 즉,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배가 뇌와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인류가 수 천년 동안 추측해왔던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관용어구 중에는 '심장에 따른 결정'을 지지하는 것들이 많다. '마음 가는 곳으로 가라!'와 '마음의 결정을 따르라!' 등이 그 예이고, 독일어에는 간절한 바람을 뜻하는 '심장의 바람', 매우 절실한 문제를 뜻하는 '심장의 문제' 등과 같은 표현도 있다. 해부학적으로 심장은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하나의 근육 덩어리에 지나지 않지만 예로부터 심장은 애정과 감정을 상징해왔다. 심장이 이런 의미를 지니게 된 이유는 과거에는 우리 신체의 중심에 있는 복강신경총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강신경총이라는 용어를 심장이 대신한 셈이다. 즉, 우리가 흔히 감정이나 결정을 심장과 연관 지어 말하는데, 이는 실제로는 복강신경총과 관련된 것이다.

 

 

직관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보는 사람들이 같은 방법으로 직관을 감지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 즉, 시각적 인지능력이 특별히 발달된 사람들이 있는데 보통 이들을 '시각적 타입'이라고 분류한다. 그런가 하면 청각을 통해 사물을 인지하고 수용하는 능력이 탁월한 '청각적 타입'도 있다. 또한 '인지적 타입'도 존재한다. 이들은 수학적 ·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이성적인 부류이다. 이와는 반대로 감정이 발달하고 매우 감상적인 '감각적 타입'도 있다.

물론 각각의 타입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위의 타입들의 상황을 모두 조금씩 지니고 있다. 또한 각자가 지닌 성향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변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각각의 타입이 개개인의 인지 방법을 확연하게 결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시각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대체로 '내면의 그림'을 통해 직관을 수용하고, 청각적인 사람들은 '목소리', 즉 언어를 통해서 직관을 받아들인다. 즉, 누군가가 그들에게 말을 하거나, 그들을 통해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직관은 또 종종 신체적인 느낌을 통해 표출되기도 한다. 감각적인 타입의 사람들은 간지럼, 당기기, 찌르기, 가볍거나 무거움 등의 무게, 마비 혹은 특별히 더 느긋한 상태 등으로 직관을 인지한다.

우리 자신의 경우는 어떠한지 한번 주의 깊게 관찰해보자. 직관을 의식적으로 감지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내면의 목소리에 대한 주의력 또한 깊어질 것이다. 자신이 지닌 인지 방법을 그대로 수용하고, 거기에 주의를 기울여라. 다른 이지 방법으로 옮겨가려고 억지로 애를 쓸 필요는 없다.

인지적인 타입의 사람들은 감정보다는 사고에 대해 더욱 잘 반응한다. 따라서 이 부류의 사람들은 직관을 받아들이기가 가장 어렵다. 이 경우 직관은 종종 설명이나 서술의 형태를 띠고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직관과 오성과의 경계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할 수 있다. "영혼의 언어인 직관은 언제나 지혜 혹은 진리의 목소리인가?" 하는 것이다.

답부터 말하자면, 직관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물론 내면의 목소리가 지혜와 일맥상통할 때도 있다. 이 경우, 직관은 우리의 지능을 더욱 발달시키고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분명 내면의 목소리를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도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랐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는 자아와 직관을 혼동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물질주의가 만연하는 이 시대에 오성으로 뒤덮인 자아(ego)와 직관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생각이 많은 이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구분이 더욱 힘들 것이다. 그들은 직관을 오성과 자주 혼동하곤 한다.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더라도 항상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는 또 있다. 직관의 도움으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옳으며,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가능할 때도 있다. 하지만 때론 영혼의 목소리가 우리를 착각에 빠뜨리기도 한다. 영혼의 목소리는 각자가 지닌 영적 특성에 의해 각인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적 특성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서 말했듯이, 영혼과 정신으로 이루어지는 인성은 비물질적인 에너지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감정 그리고 태도들은 우리의 인성에서 비롯되며, 직관을 포함해 인간의 지능, 재능, 취향 그리고 성격은 모두 영혼을 구성하는 부분들이다.

즉, 영적 특성이란 성격적 특성, 재능 그리고 전체적인 지능을 의미한다. 그리고 개인이 이러한 특성을 어떻게 발달시키느냐에 따라 직관의 발달 방향도 달라진다.

용기가 부족한 사람의 내면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것이고, 그러한 점은 그 사람이 내리는 결정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낙관론자의 직관은 비관론자의 직관보다는 훨씬 더 도전을 부추길 것이다.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은 단지 직관이 시키는 대로 타인들에게 쓴소리를 했을 따름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직관이 항상 지혜나 진실의 목소리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오성이 직관의 탈을 쓰고 나타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직관이 각자의 영적 특성들을 통과하면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자아의 융합

여기에서 말하는 정신은 우주의 정신 혹은 우주의 지혜를 의미한다. 우주라는 거대한 도서관의 서고에는 모든 종류의 지식과 지혜가 보관되어 있다. 그것은 신의 지혜이자 우주의 법칙, 즉 자연법칙의 지혜다. 우리는 이러한 지헤, 즉 우주의 정신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이 도서관의 문에 맞는 열쇠를 각자의 내부에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제 막 이 도서관에 들어서려 하고 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내면의 목소리, 바로 직관이다. 직관은 인간이 신 그리고 자연의 법칙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정신적 에너지이다. 인간은 직관을 통해 지혜를 습득할 수 있자만, 직관이 항상 우주의 지혜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의 정신에 반대되는 개념은 자아(ego)이고, 자아의 언어는 오성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아란 보잘 것 없는 '나-나-나'를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대변하는 자기(ego)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말하는 자아란 자기중심적인 자아, 오성의 지배를 받는 자아를 의마한다. 자아가 우위를 점령하고 있으면 완전한 지식을 얻기가 힘들다.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은 오성의 영향을 많이 받고 거기에 따라 행동하는데, 그 배경에는 두려움, 불안, 자신감이나 신에 대한 믿음의 결여 등이 숨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오성의 중요성을 완전히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성 또한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것이다. 아무런 까닭 없이 인간에게 오성이 주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오성은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해주고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가 하면, 너무 감정적으로 치닫지 않도록 정신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즉, 오성은 우리가 현실감을 잃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아와 정신을 조화롭게 발달시키고 오성과 직관을 융합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오성과 직관이 융합된 형태를 정화된 오성 혹은 이성이라 부른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성과 오성을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성은 우주의 지혜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결정한다는 말은 곧 '현명하게, 직관에 따라, 그리고 지능적으로' 결정한다는 말이다.

이렇듯 양 극단에 놓여 있는 이성과 오성은 성별이나 연령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발달한다. 대체로 남성들은 오성에 따라 행동하며, 무슨 일이든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든다. 그런데 이러한 좌뇌 위주의 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논리적 사고에 집착하는 경향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무엇보다 사업을 할 때 '배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결정하는 남성은 거의 없다. "안 되는 것은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럴 때에는 시간에 쫓기지 말고 여유 있게 결정하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자신의 내면에 질문을 던져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감정에 따른 결정은 오랫동안 경시되어왔고, 내면의 목소리와 직관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권장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감정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직관으로 이어지는 더 강력한 연결선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내면에 질문을 더 많이 던지는 것도 여성들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한 남녀의 특성은 일반론일 뿐, 반대의 특성을 가진 경우도 있다.

 

머리와 배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잘 결합해야 진정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결정을 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아무런 장애물 없이 직관을 발휘할 수 있다. 아이들은 종종 깜짝 놀랄 만큼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한다. 이런 말들은 주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만 여섯 살 이하의 아이들에게서 들을 수 있다. 이후엔 이런 능력이 거의 사라지는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오성에 따라 생각하는 것부터 교육받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우리의 교육체제는 아직까지도 합리적인 것에만 방향을 맞추고 있다. 더 늦기 전에 학생들이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비록 정해진 규범에 맞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자신에게 떠오른 발상을 따라가 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어떤 사물의 바탕에 대해 파악하고 사건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보려고 할 때 제동을 걸 것이 아니라, 이를 향상 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 아이들은 아직 자연의 법칙과의 연결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게 직관을 발휘할 수 있다. 아이들은 주위 세계를 조건 없이 신뢰하고, 실수를 할까 두려워하거나, 강제로 주입된 고정관념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는다.

- 아이들은 아직까지 완전히 어느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만약 어떤 아이가 놀이에 깊이 빠져 있다면, 그 아이에게는 그 놀이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때로는 바지에 실례를 하고도 알아채지 못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 아이들은 스스로 어떤 것을 평가하거나 심판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개방적이고 중립적이다.

- 아이들은 항상 "왜?"라는 질문을 한다.

- "아이들과 바보들은 항상 진실만을 말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아들은 원래 개방적이고 솔직하며 진실을 찾는 존재들이다.

 

 

우리 중에는 아이들처럼 자연과의 연결고리를 강하게 느끼고 있는 행운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느낌에 자신을 맡기고 행동해보라. 성공적인 삶을 위해 그 목소리를 듣고 그 능력을 활용하라.

물론 지금까지는 '오성적 인간'에 가까웠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내면에서 진실에 이르는 통로를 찾을 수 있다. 그 길은 강한 염원과 다름에 열거한 자세를 지닌 사람 모두에게 열려 있다.

 

 

- 영적 특성을 게발하려는 자세

- 참된 자기를 찾기 위해 자아의 비중을 낮추려는 자세

- 자신을 열어 보이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국복할 자세

-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할 자세, 즉 집중력을 단련시킬 자세

 

 

 

직관적 지능은 지혜와의 연결고리이다

우주의 정신과 인성의 연결고리를 활성화시키고자 할 때에 꼭 필요한 것이 직관적 지능이다. 먼저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자신이 직관적 지능의 계발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알아보자. 반드시 테스트를 해본 다음, 내용을 계속해서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다음의 항목 중 자신에세 해당하는 것을 고르시오. (그렇다| 아니다|부분적으로 그렇다)

1. 일상생활 중 나는 내 행동(반복적인 행동도 포함)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집중해서 어떤 일을 실행하는 편이다.   

2. 나는 어떤 사건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는 편이며, 인생이라는 연극을 점점 더 잘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3.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나를 인식하는 직업은 내 스스로를 영적 · 정신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4. 나는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며, 근심과 두려움이 거의 없는 편이다.

5. 나는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다.

6. 나는 화, 흥분, 성급함, 스트레스, 일중독 혹은 건강상으로나 금전적 손실을 야기할 확률이 높은 과속운전, 부상의 위험이 큰 스포츠 종목과 취미 등을 멀리함으로써 걱정거리를 미연에 방지하는 편이다.

7. 나는 매일 계획을 세우고 각각의 계획에 우선순위를 매기기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한다.

8.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있으며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즐긴다.

9. 내 직업은 곧 내게 주어진 소명이다.

10. 나는 내 존재의 의미를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사명감에서 찾기를 바란다.

11. "자신이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라는 말은 나으 주요 생활규칙에 포함된다.

12. 나는 행복하고 안정적이며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이 자주 든다.

13. a) 나는 섭취할 영양소를 의식적으로 고르는 편이며 식사시간도 신중하게 결정한다.

     b) 나는 어떤 영양분이 내 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

     c) 나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식사한다.

 

위의 몇 가지 항목과 직관적 지능의 관계가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리 밝혀두자면, '아니다'라는 대답을 한 항목에 대해서는 언제나 직관적 지능을 개선할 여지가 남아 있고, '그렇다'라는 대답은 직관적 지능을 이미 계발해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떤 대답을 했든, 여기에서 소개하는 방법들은 직관적 지능을 계발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직관적 지능은 일종의 기술이다. 다른 어떤 기술을 배울 때와 마찬가지로 직관적 지능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이론과 실제, 두 가지 모두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직관적 지능이라는 기술적 달인이 되어 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직관적 지능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먼저, 몸을 정갈하게, 정신을 맑게 갈고 닦아야 한다.

우리의 지능은 무한대로 높아질 수 있다. 그리고 직관적 지능은 창의성과 천재성을 계발하기 위한 역동적인 기반을 마련해준다. 역동성이란 힘, 운동, 그리고 활기를 의미하는데, 이 단어들에는 전진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우리는 지능을 계속해서 발달시킬 수 있다. 최근의 연구실험에 따르면 심지어 뇌세포를 새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앞서 지능은 영혼의 일부라고 했다. 영혼이 불멸한 것, 즉 영원히 사는 것이라면 우리는 노년에 이를 때까지 지능을 더욱 계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사람은 나이가 듦에 따라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해 더 자세히 평가를 해보게 되는데, 이것만으로도 지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육체, 그중에서서도 건강한 두뇌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베토벤, 괴테, 실러,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특성은 창조력과 직관적 지능이 힘이었다!

직관적 지능은 수많은 에너지들 중 최상의 에너지이자 극도로 섬세한 우주의 에너지다. 직관적 지능은 인간을 신과 자연의 법칙으로 이어주는 '탯줄'이다. 위에 언급한 천재들처럼 고도로 발달한 영혼들은 그들이 지닌 직관적 지능을 활용하여 우주의 지식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위대한 영혼들의 비밀인 것이다!

수많은 유명한 시인과작곡가들은 우주와 신으로부터 그들의 영감을 받았음을 스스로 시인했다. 아르투어 M, 아벨의《유명 작곡가들과의 대화》라는 책에는 브람스, 브루흐, 바그너, 슈트라우스, 푸치니 등의 작곡자들과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인터뷰에서 이들은 자신이 영감을 얻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했다.

바그너는 "우주적인 힘, 진동의 힘이 인간의 영혼을 전능한 중심력(中心力)과 이어줍니다. 삶의 모든 원칙이 그 중심력에서 기인하고, 우리는 거 삶의 원칙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이 우주적 진동의 힘은 우주 최고의 권능과 우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형성하는데. 우리가 그 연결고리의 일부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우주 최고의 권능과 연결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권능과 자신을 성공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자에게는 영감이 주어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분야의 천재들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그렇다면 천재들은 이런 능력을 어떻게 습득하였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몇몇 위인들은 어린 나이에 어떻게 불후의 명작들을 창작할 수 있었을까? 모짜르트가 좋은 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러한 천재성을 획득했을까? 그와 같은 천재들이 위대한 창의력과 직관을 무(無)에서 갑자기 얻어낸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위대한 영혼들은 생을 몇 번  거치면서 이어져온 창조력과의 연결고리를 강화시켜온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보는 것이 더 옳다.

이런 의문과 함께 우리는 근본적이면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의문들을 함께 떠올려보게 된다. '죽음 뒤에 또 다른 삶이 있는 것일까? 죽음은 다음 생(生)으로 가는 관문일까? 그렇다면 그 다음 생을 사는 것은 누구 혹은 무엇일까? 하는 상상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또 하나의 질문, 즉 "그렇다면 지능과 재능, 기쁨과 고통은 어떻게 분배되는 것일까?"라는 질문도 던져보게 된다. 이런 일들이 우연히 일어난다고 믿기는 어렵다. 신이나 어떤 권력자가 인간의 운명을 '주사위를 던져서' 결정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정의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아마도 그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은 정신적 에너지로 구성된 비물질적 존재이기 때문에 위의 질문들에 대한 증거 또한 정신적인 차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오성만으로는 그 증거들을 이해할 수 없다. 위에 여럭한 주요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차관, 우리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찾으려는 노력은 수천 년 전부터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어왔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이론과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대부분의 종교와 철학은, 영혼은 계속 살아간다고 가르치고 있다. 사람의 일생은 지구의 존재기간, 우주의 생성기간과 비교해볼 때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은 비단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 정신적으로 자기를 계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능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만약, 인간으로서의 삶이 끝난 다음에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그 능력이 사라져버린다면 모든 것이 에너지 낭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는 육체적 사망이 영혼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 명제는 자신을 영적으로 계속해서 계발해야 한다는 삶의 고차원적 목적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직관적 지능의 계발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몇 시간 동안이고 완전히 몰입하는 천재들의 집중력은 창조력과 더불어 그들의 전재성을 입증해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이다. 브루흐는 아벨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은 일정한 법칙을 지켜야 하는데, 그중 중요한 두 가지가 고독과 집중입니다. 작곡가는 주변의 고요한 가운데, 자신의 오성보다 고차원에 놓여 있는 힘이 내리는 지시를 기다려야 합니다. 위대한 작곡가는 지상에 나타난 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곡가는 자신이 이해한 만큼의 심오한 진리를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바깥 세상에 보여주게 되는데, 이는 곧 자기 내부에 있는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고요한 가운데 자신의 의식을 전부 한 곳에 모아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완전한 집중이다. 그리고 집중이야말로 변하지않은 순수한 직관을 받아들이기 위한 열쇠이다.

 

집중은 신 그리고 자연법칙과 연결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집중한다는 것은 지금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사고력을 전부 한 곳에 모으는 일이다.

그러나 위대한 창작이들과 발명가들이 보여준 것은 비단 직관과 집중력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부지런한 태도, 배우고자 하는 자세, 학구열 그리고 끈기를 지니고 있었다. 브루흐는 "이러한 내면의 힘을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영감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떠오른 착상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술을 갖추고 있어야 하지요"라고 말했다. 즉, 직관과 집중력에 필요한 기술 습득과 부지런한 훈련 그리고 끈기가 더해져야 위대한 창작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수천 번의 실험을 거듭하지 않았더라면 에디슨도 전구를 발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에디슨은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위대한 발명을 위해서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에디슨의 이 말은 영감이 지닌 가치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이기는 하다.

참된 대가들에게 나타나는 특성을 두 가지만 더 꼽으라고 하면 바로 용기와 겸손이다. 직관적 기능을 완전하게 펼치기 위해서는 영혼을 계발하고 우주의 지혜를 배워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소한 자아쯤은 무시해버려야 한다.

 

천재를 만드는 원동력은 창조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이다.

 

신과 그의 피조물 전체에 대해 경외심과 애정을 지닐 때만이 우리는 우주와 우주의 법칙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 창조적이며 독창적인 결정들을 내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직관적 지능이다!

칼릴 지브란은 "사랑은 이 세상이 유일한 자유다. 사랑은 인간의 영혼을 승화시켜 어떠한 인간의 법이나 자연 현상으로는 그 사랑의 행로를 변경시키지 못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직관적 지능을 계발한다는 것은 영적 특성을 고도로 발달시켜 영적 특성이 '위'로부터의 메시지 수신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우주의 주파수는 우주의 목소리에 맞춰지게 되고, 이에 따라 아무런 방해 없이 그 목소리를 수신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신과 자연법칙의 언어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별히 어떤 의식상태로 옮겨가지 않더라도 항상 우주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고, 신과 그의 법칙은 어느 곳에는 존재할 것이다.

또 직관적 지능이 발달함에 따라 우주 내의 고차원적인 권능과의 의사소통 능력도 향상될 것이다.

 

직관적 지능은, 신, 자연의 법칙, 우주의 지혜와 사랑 그리고 진리와의 연결고리다! 직관적 지능은 우리의 영혼과 우주의 창조력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즉, 지능을 끊임없이 발달시킬 수 있다는 말은 우주의 지혜와의 연결고리를 계속해서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우주의 한 부분이므로 우리도 진리로 가는 문을 통과할 수 있다.

 

직관적 지능이란 사물이나 사건의 연관성에 대해 지능적, 감정적 그리고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한편에는 지능, 오성, 이성, 논리. 습득한 지식 등이 자리하고 있고, 다른 편에는 감정, 직관, 내면의 목소리, 창조력, 착상, 영감 등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둘을 결합시킨 것이 바로 직관적 지능이다.

이와 동시에 직관적 지능은 일상생활에서의 경험을 실제 학습과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직관적 지능은 정신적· 영적 학습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잣대가 되며, 우리가 지닌 감각들을 열어주고 인지능력을 상승시켜준다. 또한 직관적 지능은 성공적인 인성 계발의 속도를 크게 앞당겨준다.

직관적 지능은 삶의 지능이다! 직관적 지능은 변화를 감지하고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며 믿음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도록 도와준다. 직관적 지능을 계발하면 할수록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신은 더욱 커진다. 직관적 지능은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도록 도와준다. 직관적 지능이 바로 현명함이다.

직관적 지능은 성숙한 정신을 뜻한다. 생텍쥐베리의 말을 빌리자면 직관적 지능은 '마음으로 볼 수 있게' 해주며, 감정과 느낌을 활용하여 우리가 건설적인 삶을 만들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성숙한 정신은 우리가 삶의 과제들을 인식하고 삶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성숙한 정신은 창조력에 날개를 달아주며 명석한 해결책을 찾도록 해준다. 직관적 지능을 발달시킬수록 우리는 삶이 제시하는 새로운 과제들을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도전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길을 받아들일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영혼이 성숙해감에 따라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확신을 얻게 된다. 또한 성숙한 영혼은 우리에게 일치감, 행복, 안정 그리고 애정 등의 감정도 선물해준다.

직관적 지능의 도움으로 우리는 조화롭고 평화롭게 우주의 흐름을 따라 헤엄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되며,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헤엄치며 고통을 느낄 필요가 없게 된다.

 

직관적 지능은 우리를 시련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바위로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