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

행복한 사물 감식가

오키Oki 2013. 8. 30. 18:53

 

"상도 씨! 세상에 이럴수가

여름 방학이라고 모처럼 놀러 온 초등 4학년생인 손자가 사흘을 지내다 가면서

작년까지만 해도 이 할아버지와 계곡에 물놀이를 가자고 조르곤 했는데

올해는 어찌 된 셈인지 그렇게 좋아하던 물놀이 대신 

스마트폰만 만지느라 놀지도 않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그 좋은 계곡에 물놀이 한번 안 하고 집으로 갔다며 

너무 너무 서운했다" 고 남편한테 하소연 해왔다.

 

 

 

- 장석주 지음철학자의 사물들』 중에서 -

 

 

 

서문   나는 행복한 사물 감식가

 

사람은 사물을 만들고, 사물과 더불어 산다. 사물을 만듦으로써 사람은 동물과 분별되면서 제 존엄성과 권위를 더 드높이는 존재로 거듭난다. 사람이 사물-도구의 제작자로서 갖게된 힘과 자긍심이 그 동력이다. 우리는 사물들 속에서 태어나고 결국은 사물들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인생이란 여정은 곧 사물들과 함께 하는 여정이다. 사물들은 항상 사물들로써 자명하다. 그것은 이미지의 환영이 아니라 물성으로 구현된 그 확실성 속에서 저를 드러낸다. "모든 사물에서 모호성이 확실성을 대체한다." (발터 벤야민,《일방 통행로》) 사물은 자명한 표면으로 제 안의 모호성을 무찌르고 확실성에 가닿는다. 사물의 실재성은 깊이가 아니라 그 표면의 생생함에서 나오는데, 이때 표면의 생생함과 질감은 깊이의 근원적 모호성을 대체한다. 사물은 보이지 않는 깊이가 아니라 그 표면으로 말하니, 사물의 표현이 말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여라. 깊이라는 잣대로 사물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깊이란 실로 추상과 모호함, 혹은 거짓 형이상학의 변성에 지나지 않는다. 깊이의 의미심장은 검증되지 않은 추측이고 섣부른 예단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깊이의 형이상학과 깊이의 전체주의를 경멸한다. 표면의 명석함과 명랑함을 찬양하는 철학자의 사유는 깊다. 이를테면 니체와 들뢰즈는 표면이 곧 깊이라고 말하는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표면의 가치에 대해 찬양한다. 니체와 들뢰즈는 내가 사물들에게 이끌리고, 항상 사물의 표면과 단순함을 편애한 까닭을 더 또렷하게 인식하도록 돕는다. 나는 본성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표면은 깊이와 체현이라고 믿는다.

 

 

사물을 소유한다는 것과 욕망을 실현하는 것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욕망하고 그것을 손에 넣었다 할지라도 사물은 그 자체로 욕망의 실현이 아니다. 사물은 소유하는 순간 욕망에서 멀어진다. 사물은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의 매개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욕망이 탐하는 것은 사물 그 자체이거나 그것의 매질媒質이 아니라 사물에 의해 매개되는 욕망함이다. 욕망의 안쪽에 바글거리는 것은 환상이고, 사물은 그 욕망의 안쪽에 바글거리는 환상을 빨아들인다. 어떤 사물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것은 사물 위에 덧없음이라는 아우라가 덧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은 언젠가는 사라질 덧없음의 아름다움이다. 사물에의 매혹은 실은 그 덧없음에 홀린 우리 마음의 매혹이다. 사물은 욕망의 불꽃 위에서 타올랐다가 사라진다. 타오르는 것은 사물에 내장된 짧은 시간과 긴 시간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들에 속한다. 우리는 '불꽃'이 아니라 차갑게 식은 '재'만을 가질 수 있다.

 

 

사물들은 인간의 내면을 비춰준다. 무엇인가를 비춘다는 점에서 거울이다. 사물은 우리 내면의 본성을 비추고, 그것의 선택과 체험 시간으로 이루어진 문화에 대해 말을 한다. 사물의 표면은 표의문자이고, 동시에 내부의 공을 기호화하는 표면이다. 더 나아가 사물은 인류의 기억들, 시간여행, 기술적 실패와 승리에 대해 말을 한다. 기억들, 시간여행, 기술적 실패와 승리 들은 사물의 물성物性 안에 주름으로 접힌 채 숨어 있다. 사물들은 시간의 압축물이다. 사물들은 인류가 수백만 년에 걸쳐 이룩한 기술적 진화의 시간들을, 그리고 "선택과 변이의 법칙에 따라 종의 체험시간과 호환되는 체험시간" (파스칼 피크, 장 다이애 뱅상, 미셸 세르.《인간이란 무엇인가》) 을 압축한다. 사물들은 대체로 신체의 여러 기능들을 확장하는 도구들이다. 이것들은 삶의 순환과 보존에 기여한다. 우리가 사물-도구들을 자유롭게 쓸수록 세계 내의 살아남음의 최적화에 한층 더 가까워진다. 우리는 기술의 압축제인 사물의 도움으로 시간을 단축하고, 시간을 간단하게 뛰어넘는다. 우리는 이 사물들을 타고 자기 진화의 길을 헤쳐 나왔다. 나는 그 사물들의 물성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물성은 우리 몸의 살을 이루는 것과 비슷한 그 무엇이다. 살은 사물의 형식화된 내용이다. 살 속에 숨은 뼈들은 사물의 내용화된 형식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물들 하나하나는 실용의 체감體感 속에서 그 의미가 새겨지는 하나의 삶일 뿐만 아니라 여러 겹으로 된 꿈이었다. 삶은 이것들과 더불어 풍요해졌으니, 그게 빈말은 아닐 테다. 여기 선택받은 서른 개의 사물들은 다섯 개의 분류지―관게: 신용카드·휴대전화· 자동판매기· 세탁기· 진공청소기, 취향: 담배·선글라스·비누·욕조·면도기·거울, 일상: 가죽소파·탁자·침대·변기·카메라·텔레비전, 기쁨: 책·화로·사과·병따개·냉장고·조간신문·, 이동: 시계·구두·여행가방·우산·활·망치·추―에 따라 배치되는데, 어떤 원칙과 규범에서가 아니라 다소 느슨한 형식으로 계열화한 것이다. 나는 이 사물들이 이끈 그 사유 안에서 삶과 죽음, 주체와 타자, 꿈과 기대, 욕망과 무의식, 기호와 교환 따위에 대해 묻고 대답하려고 했다. 나는 사물들을 오래 유심히 바라보고 사유하며 그것이 철학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사물의 물성에 대해 사유하며 여러 철학자들의 철학을 끌어다 썼다. 무엇보다도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사물의 인상과 사용 후기, 사무의 역사와 변천, 사물에서 촉발된 영감과 직관, 그리고 덧없는 상념들이 섞이고 비벼지고 발효 과정을 거쳐 사유와 인식들이 풍성해졌다. 내 사유와 인식이 촉발되는 매개가 된 철학을 제공한 철학자들을 다음과 같다. 이미 고전 반열에 오른 에피쿠로스·스피노자·데카르트·키에르케고르·루소·헤겔·니체·프로이트, 철학사에서 확고하게 자기 위상을 차지한 라캉·사르트르·하이데거·발터 벤야민·롤랑 바르트·장 보드리야르·에마뉘엘 레비나스·에밀 시오랑·가스통 바슐라르·질 들뢰즈·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수전 손택, 비교적 젊은 철학자들인 알랭 드 보통·올리비에 라작·사사키 아타루, 독자에게 낯설 수도 있는 마우리치오 라자라토·미셸 세르·막오제, 그리고 기업가인 스티브 잡스와 미디의 이론가로 명성을 얻은 마샬 맥루한, 문명 비판의 영역에서 더 돋보이는 제러미 리프킨까지를 망라한다. 혀의 미각에서 얻는 쾌락과 지적인 것의 충만감이 만드는 정신의 기쁨은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하지 않다. 주린 위장의 배고픔과 정신의 공허가 초래하는 고통이 그렇듯이, 그 둘은 하나로 포개진다. 그런 맥락에서 철학은 차고 뜨거우며 쓰고 달콤한 음식이다. 오래 전부터 참을 수 없는 정신적 탐식에의 욕망으로 온갖 철학을 삼키고, 위와 장에서 삼킨 것들을 소화시켰으며, 마침내 이 화사한 철학들은 내 살이 되고 피가 되었다.《철학자의 사물들》은 사물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사유와 철학을 즐긴 흔적이다.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여러 사물들의 이모저모를 뜯어보고 그 철학적 의미들을 반추하는 동안 나는 사물의 행복한 감식가 노릇에 만족한다. 당신을 이 자유분방한 사유의 축제에 초대하니, 여기 와서 사물의, 사물에 의한, 사물들을 위한 축제를 즐겨라!

 

 

 

신용카드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마법을 가진 사물, 불행을 치유하는 마법을 가진 이것을 소지한다면 자본주의의 천국으로 들어서고, 금융 낙원의 소비생활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은 신용카드이다. 당신의 지갑 안쪽 포켓에도 카드회사에서 발급한 얇은 카드 몇 장이 꽃혀 있다. 가로 길이가 8.5센티미터, 세로 길이는 5.4센티미터인 이것은 플라스틱 재질이고, 무게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볍다. 내가 주목한 사물 중에서 이것은 가장 얇은 것에 속한다. 이 카드의 앞쪽에는 사용자의 이름, 개별화된 카드 번호, 유효기간, 카드발급 회사 따위의 정보가 박혀 있지만 이 표면적 정보는 카드에 내장된 침에는 카드 사용자의 신원과 금융 관련 정보를 비롯한 여러 정보가 들어 있다. 우리는 이 카드를 사용하며 경제활동(대개는 소비활동)에 뛰어들고, 이것을 매개로 현대 자본주의 금융 시스템과 연결된다.  나는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 용역을 이용하고 카드로 결제를 한다. 카드 결제란 신용을 담보로 물건과 서비스 용역을 판매하는 사람에게 나 대신에 지불 약속을 하는 것이다. 물론 카드로 결제한 비용은 내 개인 계좌에서 빠져나간다. 내 계좌에 잔고가 비어서 카드사가 요구한 청구액을 지불하지 못할 때 나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이 카드로 ATM기에서 현금을 빼낼 수도 있는데, 이 현금은 내가 책임져야 할 빚이다. ATM기에서 신용카드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현금을 인출하거나 인터넷 뱅킹을 이용할 때 우리는 신용에 기반을 둔 경제의 기계화 시스템에서 부채 경제사회의 한 '부품'으로 바뀐다. 인간 '부품'은 사회기술 시스템에 접속해서 기계의 지시에 따라 정보를 입력하는 수동화된 행동을 함으로써 한 점의 고뇌도 없이 기계적 노예화에 포획되는 것이다. 이때 '돈/부채는 인간 부품에게 신용도, 합의도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주어진 지시에 따라 정확하게 기능하기만을 명령한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부채 인간》) 신용카드는 부채를 만드는 수단이자 삶을 통제하고 통화 그물망 안에서 파편화하고 기계적 노예화로 이끄는 방법이다.

 

 

우리나라 신용카드의 효시는 1970년에 신세계백화점에서 내놓은 카드인데, 이 카드는 백화점에서만 쓸 수 있었다. 1978년 외환은행에서 비자카드 발급을 시작하고, 이어서 1982년에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 등이 뭉쳐 은행신용카드협회를 설립하면서 신용카드 시대의 초석이 놓인다. 1987년 신용카드법이 입법화되면서 신용카드 시대가 활성화되는 국면을 맞는다. 카드 거래의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카드 거래의 두 축은 카드 발급사Issuer와 전표를 사들이는 회사Acquirer이다.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먹은 뒤 구매자가 신용카드를 제시하면 가맹점포에서 카드의 마그네틱 띠를 신용카드 단말기에서 읽힌 뒤 결제 금액이나 할부 기간 등을 입력한다. 이것이 전화나 인터넷 회선으로 카드사에 전송되면 카드사에서는 카드의 사용 여부와 결제 한도를 회신한다. 이때 부가정보망VAN 사업자가 카드의 조회를 대신하는데, 카드의 앞자리 여섯 개의 숫자, 즉 BIN Bank Identification Number으로 카드사를 구분하여 조회하고 승인 여부를 알린다. 그 회신 결과에 따라 가맹점에서 거래 전표를 출력하는 것으로 거래가 성립한다.

 

 

카드는 카드 소지자의 금융거래에 대한 보증이다. 단순화하자면 신용카드는 내가 카드로 쓴 일체의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카드사의 약속과 보증의 수표이다.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그 순간 모든 신용카드는 정지된다. 아울러 신용불량자는 모든 합법적인 경제활동 바깥으로 추방당한다. 카드로 결제한 시점과 내 은행계좌에서 그 금액이 빠져나갈 때까지 나는 불가피하게 '부채'를 지는 셈이다. 누군가의 이 부채를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걸 카드회사에서 떠맡는 것이다. 채권자는 물건이나 서비스 용역을 판매한 자가 아니라 그 결제에 대해 지불 약속을 한 카드사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 소비행위에 대해 지불 약속을 한 카드회사의 고객이고, '부채인간'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부채인간, 곧 '호모 데비토르Homo Debitor'의 탄생에는 부채를 경제적 장치에 국한시키지 않고 피통치자 행동의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통치의 안전기술로 바꾼 정치적 전략이 우선한다.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부채를 갚겠다는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미래를 담보로 잡는다. 채권-채무 관계를 윤리-정치적 과정에 연동시킴으로써 채권자는 채무자의 "현재의 행동과 미래의 행동 사이의 균형을 예측, 계산, 측정"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앞의 책)하고, 편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 Home Economicus 이자 동시에 부채와 채무이행 사이의 시스템에 포획된 사람이다. 부채는 그것을 갚든 갚지 못하든 간에 이미 "사용자의 실존을 생산·통제하는 기술을 형성·배치"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앞의 책)함으로써 주체를 장악한다. 부채는 그 밑바닥에서 희미하게 죄라는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부채가 근본에서 죄이기 때문이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다. 그의《부채 인간》이란 책을 흥미있게 읽고 신자유주의 금융 시스템이 내 삶을 어떻게 장악하고 통제하는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새삼스럽게 지갑 안에 있는 카드들을 꺼내 골똘하게 들여다본다. 이 카드가 말해주는 것은 부채가 사회경제적 기반으로 공고하게 다져지는 동안 자유시장주의 경제 체제 아래서 패러다임이 '교환'에서 '신용'으로, 그리고 금융 경제에서 부채 경제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신용카드를 쓰는 것은 "영구적 부채를 확립하는 신용 관계의 자동적 개설"이고, 신용카드의 소지자를 "영구적 채무자, 곧 평생 '채무자'로 변형시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 속으로 들어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앞의 책) 부채는 채무자의 빚일 뿐만 아니라 부채 상환의 한도 안에서 채무자의 자산이자 능력이다. 부채 사회에서는 부채가 없는 자가 아니라 부채를 더 많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부자다. 부채는 포획의 장치들이고, 또한 생산의 장치들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채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부채는 사회 전체에 대한 '공제控除, Ponction' 기계 혹은 '포식捕食, Predation' 기계, 포획 기계이자. 거시 경제의 규정을 만들고 관리하는 도구인 동시에, 하나의 소득 재분배 장치Dispositif이다. 부채는 또한 집단적·개인적 주체성Subjectivite의 '통치Gouvernement' 및 생산Production의 장치로서 기능한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앞의 책) 과거의 부채가 갚을 수 있는 유한 부채였다면, 오늘의 부채는 도대체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무한 부채이다.

 

 

현금을 쓰는 자와 카드를 쓰는 자의 정체성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금을 지불 방식으로 선택한 사람은 부채인간을 낳는 부채 경제 시스템에 기대지 않고 소비생활을 해나가는 사람이다. 아무도 그의 신용 상태를 알려고 사생활을 염탐하거나 금융자산을 조회하지 않을 것이고, 어느 기관에서도 그의 신용을 판단하거나 등급을 매기지도 않을 것이다. 현금을 사용하는 사람이 부채 경제 시스템 밖에서 움직이는 자유로운 인간이라면 상대적으로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은 기계적 노예화라는 시스템에 딸린 인간 '부품'이다. 그는 장치 속의 톱니바퀴이고, 사회-기술적 기계의 명령에 따르는 시스템의 하부구조이다. "신용카드는 하나의 장치이며, '인간' 부품은 이 장치의 톱니바퀴 안에서 기능한다. '인간적' 요소는 은행 시스템을 통해 사회-기술적 기계의 '비인간적' 요소와 결합된다. 사회적 예속화는 개인을 움직이지만, 기계적 노예화는 인간을 부채 경제의 '부품'으로 만든다. 개인적 '주체'는 수표에 서명을 하고 담보를 제시하고 약속을 하지만, 신용카드 지불은 인간 부품에 의해 행해진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앞의 책) 우리는 신용카드라는 장치를 통해 이미 금융 자본주의 시스템에 '장악'당하고, '부품'으로 전락한다. 내가 신용카드를 쓰는 한 내 주체적 의지나 선택과 상관없이 나는 부채인간이고, 기계적 금융 시스템에 예속된 노예이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Maurizlo Sazzarato, 1955~

 

이탈리아 사람으로, 비물질적 노동, 노동의 본질, 인지자본주의에 관해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회학자 겸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글쓰기는 안토니오 네그리와 연결된 '자율적 마르크스' 운동의 한 부분에 속한다. 그는 니체와 마르크스, 푸코와 들뢰즈 및 가타리를 끌어들여와 현대사회가 '부채 사회'라는 걸 밝히는데,《부채인간》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 포박되어 있는 한국사회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부채 경제'사회다.

그는 니체의《도덕의 계보학》의 틀에 기대어 빚은 진다는 것의 심층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너도 나도 신용카드가 빛의 덫을 만들어내는 도구라는 걸 "영구적 부채를 확립하는 신용 관계의 자동적 개설"이라고 말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채무자로 살아가는 '부채 사회'는 자연스럽게 '부채인간'들을 양산해낸다. 대출이 정치 경제가 한 인간의 도덕성에 간섭하는 판단이라는 지적에는 허를 찔린 느낌이다. '부채 경제'에서는 개인 부채를 채무자의 내면화된 고통으로, 부채에 대한 책임감은 도덕적 죄의식으로 바꾼다. "대졸 시스템에 속하는 인간 안에서 철폐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인간은 돈으로 변화한다. 즉 다시 말해 돈이 인간으로 육화된다." 대졸 시스템의 사회 안에서 돈은 인간을 삼켜버린다. 개별자의 인격과 도덕성은 한낱 '상품'에 지나지 않고, 돈과 맞교환될 수 있는 한에서 가치를 부여받는다. 돈의 영혼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파고든다. "돈의 영혼이 소유하는 육체, 재료는―이제 돈과 종이가 아니라―나의 인격적 실존, 나의 살과 나의 피, 나의 사회적 덕성, 나의 사회적 평판이다." 우리는 신용카드 사용자가 됨으로써 자진하여 대출 시스템에 들어간다. '부채 경제'로 가동되는 사회에서 대출은 우리의 살과 영혼 속으로 스며들고, 마침내 우리는 '부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휴대전화  미셸 세르

누군가 나를 호명할 때 이것은 벨소리를 내거나 진동음을 울린다. 나는 이것을 통해 얼굴을 모르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누군가와 음성과 문자로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이것을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은 불특정 다수와 항상적 연결 상태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시공을 뛰어넘는 전자문명의 네트위크에 참여한다. 우리는 휴대전화의 액정 화면을 통해 최근 뉴스, 날씨, 사진, 영화, 전자게임, 증시 시황, 스포츠, 오락과 유행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들여다본다. 안부, 조문, 감사, 새해 덕담, 이별, 해고 의사 타진 따위도 휴대전화의 문자질로 이루어진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늦게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는 이것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내가 국수집에서 국수를 먹고 있을 때, 책상 앞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있을 때,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을 때, 일을 끝낸 두 피로한 몸을 가죽소파에 뉘인 채 쉬고 있을 때, 불쑥불쑥 휴대전화가 울린다. 나는 휴대전화가 내 사생활에 불쑥 끼어드는 이 불시 침범이 끔찍하다. 휴대전화는 생각을 끊고, 일을 중단시키고, 생활의 질서를 헤쳐 놓는다. 그 행태가 매우 난폭하다. 나는 번번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긴다. 그럼에도 휴대전화를 없애지 못하는 것은 이것으로 타자들과 사회, 즉 '일'의 세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기고가, 전업작가, 문장노동자다. 매체에서 일을 맡기려고 나를 찾을 때 휴대전화는 매우 용의주도한 역할을 한다.

 

 

휴대전화는 점점 더 작아지고 고성능화한다. 휴대전화는 기술적인 진화를 거듭하면서 손 안에서 논다. 휴대전화는 손의 구조와 그 기능의 한계 속에서 진화하는 사물이다.

 

 

우리 손을 다양한 모양으로 변화시켜 요청하고, 약속하고, 부르고,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위협하고, 기도하고, 애걸복걸하고, 부정하고, 거절하고, 심문하고, 찬미하고, 셈을 세고, 고백하고, 뉘우치고, 겁을 내고, 부끄러워하고, 의심하고, 지시하고, 명령하고, 선동하고, 격려하고, 맹세하고, 증언하고, 비난하고, 저주하고, 용서하고, 모욕하고, 경멸하고, 아첨하고, 칭찬하고, 축복하고, 창피를 주고, 비웃고, 화해하고, 권고하고, 찬양하고, 축하하고, 기뻐하고, 불평하고, 한탄하고, 체념하고, 기를 꺾고, 깜짝 놀라고, 외치고, 침묵을 지키기도 한다. 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다양해서 혀가 질투를 느낄 지경이다.

 

―― 몽테뉴,《에세(솔 프램튼,《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에서 재인용)

 

 

블랙베리의 반짝이는 화면 속으로 세계가 들어오고, 이 세계는 한 손에 쥘 수 있는 블랙베리 안에 들어 있다. 손과 블랙베리, 즉 손과 전자기술의 집약체가 하나로 포개지는 순간이다. 휴대전화가 실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손과 결합하면서 기적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지하철이건 카페건 어디서나 이것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휴대전화 안에서 보고, 듣고, 만지고, 즐길 수 있는 모든 것, 즉 인터넷, 사전, 지도, 카메라, 앱, 게임 들이 내장되어 있다. 이메일을 체크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단어를 검색하고, 건반을 만들어 연주를 한다. 우리는 휴대전화 사용자로 길들여진다. 수첩, 전화번호부, 사전, 지도, 이메일, 검색, 카메라, 텔레비전, CD, 화상전화, 'T서비스', '소셜 허브', 수백 가지의 애플리케이션 따위의 기능을 담은 휴대전화는 인간의 거의 모든 욕구에 응답한다. 휴대전화는 인류 진화의 사물적 측면이 아니라 종교적 측면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휴대전화 사용자는 감각적 쾌락을 좇는 미적 실존과 윤리적 실존을 넘어서서, 그것에 맹신하면서 전적으로 의존하는 종교적 실존으로 달려간다.

 

 

1983년에 모토로라에서 세계 최초의 상용 이동통신 단말기인 다이나택DynaTAC 8000X는 무게게 1킬로그램이나 나가고, 값은 지금 돈으로 치자면 1000만 원이나 되었다. (김지룡 · 갈릴레오 SNC지음,《사물의 민낯》) 일반인들이 쓰기에는 턱없이 무겁고 값도 비쌌다. 모토로라가 더 가볍고 값이 싼 휴대저화를 내놓자 경쟁업체인 노키아는 더 작고 더 감각적인 디자인을 가진 휴대전화를 시장에 내놓는다. 노키아이 2100 시리즈는 단번에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무려 2000만 대나 팔렸다. 1998년 노키아는 모토로라를 제치고 업계 1위로 뛰어오른다. 2007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IPhone'을 선보인다. 아이폰은 터치 스크린 기반의 아이팟, 휴대전화, 모바일 인터넷이라는 세 가지 기능을 담은 스마트폰이다. 아이폰의 디자인은 이음새가 없이 매끈하고, 숫자나 버튼도 보이지 않게 감춘 그야말로 심플 그 자체다. 아이폰은 폴더형이나 슬라이드형과는 달리 화면 위에서 터치 스크린으로 작동하는데, 이것이 나오자 개인컴퓨터와 모바일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생산에 뛰어든 것은 1987년이다. 일본 도시바에서 기술을 들여온 삼성전자는 선발 업체들과 기술적 격차도 컸고, 원천 기술도 갖고 있지 않았다.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공장에서 불량이 잦은 자사의 휴대전화 15만 대를 스스로 불태웠다. 삼성전자가 후발주자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들인 노력은 눈물겨운바가 있다. 마침내 삼성전자는 2004년 쯤에 이르러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2위로 뛰어오른다. 삼성전자의 2012년도 휴대전화 판매량은 1억 대를 넘어서고 그 누적 판매 대수가 무려 16억 대에 이르렀다. 전세계 SNS Social Network Service 이용자 수는 10억만 명을 넘어선다. 휴대전화는 시공을 추월한 '나'의 확장이다. 이것을 가짐으로써 사람들은 '나'의 시공을 무한대로 확장하고, 그 대신에 '나'의 핵심이라고 할 자아가 자아로써 있도록 단단한 지지대 역할을 하는 고독의 온전함과 자유는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스마트폰을 잘 다루는 것은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키우는 중요한 삶의 기술 목록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한 원로 비평가는 스마트폰의 사용 후기를 이렇게 진솔하게 고백한다.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몇 주 동안 혼란을 거듭하면서 나의 즉흥적인 전화기 개비를 후회도 여러 차례 했다. 익숙지 않아 전화를 받는다는 게 거절하는 쪽으로 밀기도 하고 문자를 보내는 데도 손가락은 둔하고 자판은 매우 예민해서 숱하게 고치고 지우고 다시 써야 했다. 통화는 많이 하지 않았는데 그 요금은 두어 배로 뛰었고 기본 아이콘을 표시된 100여 개의 앱 중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열 개도 못 미쳤다. 그러면서도 그 사용 폭이 상당히 넓어지고 내 신기술 수용 수준도 '진화'한 것은 인정해야 했다. 맨 처음 휴대전화를 가지던 10여 년 전에는 송수화만 했는데 두 번째 바꾼 전화에서는 문자판을 읽고 음성 사서함을 열기도 했으며 세 번째 개비에서는 비로소 문자를 보낼 수 있어 환호성을 올렸는데 이번의 스마트폰에서는 인터넷에 들어가가도 하고 구글도 검색하며 이메일을 체크하기도 했다.

 

―― 김병익,《이해와 공감》

 

 

이 원로 비평가는 스마트폰을 쓰면서 이 작은 기기에 구현된 디지털 기술의 성과에 찬탄을 한다. 그는 기술의 혁신이 곧 인간 진화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에 미치면서 케빈 켈리가 말한 "생명, 진화, 마음, 테크늄의 끊임없는 자기 조직적 가변성은 신의 전성轉成의 한 반영" (케빈 켈리,《기술의 충격》)이라는 데 흔쾌하게 동의한다. 사람들은 정말 '강철 외투'를 벗고 '가벼운 외투'를 걸치게 된 것일까? 인터넷의 확산과 더불어 진화된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온라인 세상은 빠르게 무한히 증대된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의 만남과 상호작용은 오프라인의 현실세계에서 신체적 접촉으로보다는 온라인의 가상세계에서 더 자주 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끊임없이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는 삶에서는 가상적인 관계들이 '현실적인 관계의 가장 실질적인 부분'을 마구 휘저어버린다." (지그문트 바우만,《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말한다.

 

 

농경시대의 인간과 디지털 기술이 상용화되는 시대의 인간은 분명 다를 것이다. 철학자 미셸 세르는 자연이라는 합집합에서 갈라져 나온 부분집합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 도구들, 이를테면 휴대전화와 같은 첨단 기술을 집약해서 "시간의 압축물"을 만들어낸 다음, "기술이 외부에 요청한 변화의 반작용체" (파스칼 피크·장 디디에 뱅상·미셸 세르,《인간이란 무엇인가》)가 된다고 지적한다. 사람은 점점 더 많은 '스마트'한 도구-사물을 만들고 이 '스마트'한 도구-사물들은 우리에게 돌아와 '스마트'한 진화를 이끈다. 인간이 시간을 압축하고 조작하는 기술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셸 세르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체험시간을 조작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다. 엄청나게 긴 시간을 자신에게 굴복시킬 힘을 가진 존재다. 무생물의 형성, 생물의 진화로부터 획득한 권위를 지닌 존재이자, 기호의 순환으로부터 얻어낸 권위를 지닌 존재요. 호미니언의 시간, 존재의 시간, 계통발생의 시간에서 얻은 권위를 존재다." (파스칼 피크·장 디디에 뱅상·미셸 세르, 앞의 책) '스마트'한 도구-사물들을 만든 것은 기술이고, 이 기술의 핵심은 곧 시간의 압축이다. 인류가 이 시간의 압축제를 써서 창조적 진화물에서 진화의 창조자로 나서고 있다. 내가 스마트폰 쓰기를 거부할 때 나는 진화되는 것을 멈춘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란 무엇이겠는가? 자가 진화의 길을 가는 생물이다." (파스칼 피크·장 디디에 뱅상·미셸 세르, 앞의 책) 나는 구식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꾸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 스마트폰을 쓴다고 해서 인격이 더 화사해지거나 인생이 화창해진다고 확신할 수 없다. 나는 삶을 스마트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는 온갖 전자기기들에 대해 아무런 확신이 없다. 나는 전자기술에 기반을 두지 않는 자연-도구들에 더 마음이 끌린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무수한 첨단 기능들을 써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새로이 배우고 익힌다는 생각만으로도 피로감이 덮친다. 그게 내가 새로운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이유다.

 

 

미셸 세르

Milchel Serres, 1930.9.1~

 

프랑스 아장에서 태어났다. 미셸 세르는 철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많은 책들을 썼다. 그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프랑스 인식론계의 거두로 꼽히는데, 그의 철학 세계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헤르메스다. 그리스신화에서 신들의 사자(使者) 노릇을 하는 헤르메스는 부업으로 지식과 교역을 관장한다. 세르는 다섯 권의 '헤르메스' 시리즈를 냈는데, 출간순으로《의사소통》(1969),《간섭》(1972),《번역》(1973),《배분》(1977),《북서 항해》(1980)가 그것이다. '헤르메스'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북서 항해》는 그가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기 전 잠시 해군학교에 다녔고 사범학교 졸업 뒤에는 해군장교로 복무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북서 항해》는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세르가 철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난 뱃길을 따라가며 두 학문의 지적회통을 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라이프니츠 체계와 수학 모델들>(1968)이었는데, 그가 학자로 출발하는 지점에서부터 자연과학에 대한 거대한 관심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분과 학문으로 갈라져 있는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이에서 서로를 잇는 헤르메스 노릇을 하고자 했다. 고종석은 세르를 소개하는 짧은 글에서 세르의 학문이 필연적이고 폐쇄적인 체계가 아니라 "불가역적이고 우연적이고 개방적인 열역학체계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적는다.

 

 

 

 

 

자동판매기 르네 데카르트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할 때 심지가 깊다. 혹은 얕다고 한다. 심지가 깊다는 것은 좋은 사람이라는 뜻을, 심지가 얕다는 것은 좋은 사람이 못 된다는 의미를 품는다. 이때 사람의 됨됨이를 재는 '깊이'란 무엇일까? 깊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렵다. 모든 사물과 존재는 항상 깊이에 의해 정의된다. 한 철학자는 이렇게 쓴다. "따라서 깊이는 정의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며, 삶이 품은 무한의 내면에서 말을 한다."(베르트랑 베르줄리,《무거움과 가벼움에 관한 철학》) 깊이는 숨어 있는 것이고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의 깊이란 자연 발생으로 얻어지는 것이기보다는 학습과 수련의 결과이자. 교양의 내면 수용이고 확장과 관련이 있다. 교양은 밀교密敎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보편적 열림과 범속한 트임을 돕는다. 생득적인 게 아니라 학습과 수련이 결과물인 이것을 획득하는 데 오랜 수고와 인내가 따른다는 것은 상식이다. 깊이는 곧 인간 됨됨이이고, 인격(내면에 숨은 사람)의 내용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깊이란 훌륭한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도덕적 품성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심지가 깊은 사람은 허물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제 허물을 부끄러워하고 얼른 고치려고 하는 사람이 심지가 깊은 사람이다. 그 반대의 사람은 허물이 있어도 고칠 생각을 하지 못한다. 허물이 허물이라는 생각에 미처 못 미치기 때문이다. 심지가 깊은 사람은 예, 타자에 대한 감정이입, 배려, 심사숙고, 무거움, 지혜를 머금은 침묵을 가진 사람이다. 자기 말보다 남의 말을 경청하기를 즐겨 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그 지혜로써 자신의 내면 깊이를 드러낸다. 귀기울임은 먼저 자신의 입을 닫고 침묵해야 한다. 침묵은 말을 아낀다는 뜻과 말을 가려서 한다는 뜻이 겹치고, 그것은 교양과 지혜의 증거이다.

 

 

자동판매기에는 깊이가 아예 없다. 교양과 지혜가 없고, 그것을 만들 생각도 없다. 내면으로의 여행, 사유, 멜랑콜리,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관습화된 동작만을 반복하는 노동자, 게놈도 없고 가변성도 없는 무정물無情物, 피조물의 피조물, 욕망이나 무의식의 생산이 없는 딱딱한 고형물이다. 사무실들이 입주해 있는 현대식 빌딩의 복도 한 켠에 서 있는 이것은 커다란 깡통이다. 무사고無思考의 풍조와 취향의 획일화를 세상에 퍼뜨리는 금속 상자일 뿐이다. 자동판매기는 오로지 제가 가진 것을 판다. 한 시인은 이것을 매음녀라고 했다. 제 몸뚱이가 유일한 자산이라는 점과 그것을 판다는 점에서 자동판매기와 매음녀는 닮아 있다. "유방이 여섯 개 달린 매음녀 젖을 빨듯이, 그는 자동판매기를 오래도록 애용해 왔다. 이제 그 자동판매기와 이별한다. 이별이랄 것도 없지만, 빌딩 한구석에 혼자 서 있는 자동판매기를, 다시 한번 그는 뒤돌아본다. 무정물無情物과의 사랑, 자동판매기는 피조물의 피조물로써, 유정물有情物들을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최승호, <자동판매기와의 이별>) 자동판매기는 하나의 장치이고, 고안물이라는 맥락에서 단순한 형태의 기계machine-도구tool이다. 교환 경제의 수호자, 투입구에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냉각된 캔음료를 덜컹, 하고 토해낸다. 투입과 산출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이루어진다.

 

 

자동판매기가 서 있는 곳은 임시 장소들이다. 이 뜨내기들! 그것들은 임시 장소에서 생각함이 필요 없는, 감정과 정념이 없는 표면의 삶을 산다. 표면은 깊이의 부재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유나 인격이 깊이를 머금지 못할 때 말과 행동은 들뜸, 허장성세, 수박 겉핥기, 경박함으로 흘러간다. 우리 사회는 때때로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볍고 들뜬 분위기에 감싸여 있는 듯하다. 감정이 들떠 있는 사람은 사물이건 무엇이건 고요히 응시하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느끼고 판단함으로써 자주 실수하고 낭패를 본다. 심지가 깊지 않은 사람은 값비싼 명품이 곧 자신의 인격이라고 착각을 한다. 명품 치장은 내면의 공허를 화려하게 꾸민 외면으로 가리려는 무의식의 발로일 수 있다. 그것은 허장성세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가 깊으면 외면이 아니라 내면을 먼저 돌아본다. 깊이를 모호함이나 거짓 형이상학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일을 도모하며 남을 속이는 사술詐術을 쓰는 사람이 내면의 깊이를 가질 리 없다. 그들의 내면은 음흉함과 감춰진 모호함, 자기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 무엇보다도 깊이는 내면에 있는 것이어서 겉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알수가 없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그 사람 됨됨이의 깊이를 파악한다. 깊이 있음을 겉으로 드러내는 한 가지는 '예'이다. 그 '예'에 대하여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의 기능은 화합이 귀중한 것이다. 옛 왕들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다고 여겨서 작고 큰일들에서 모두 이러한 이치를 따랐다. 그렇게 해도 세상에서 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화합을 이루는 것이 좋은 줄 알고 화합을 이루려 하되 이를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세상에서 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공자,<학이>12,《논어》

 

 

'예'는 공동체 사회에 작동하는 화합과 질서의 논리이다. 깊이 있는 심지는 예를 품고, 예는 깊이 있는 심지를 머금는다. 생각이건 삶이건 그 안에 품은 깊이는 적조의 품위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인문적 교양에 대한 수련 없이는 불가능하다. 교양은 인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교양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두루 책을 읽고 많이 사유하면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절제할 때 가능한 것이다.

 

 

심지가 깊은 사람은 선택이나 행동이 신중하다. 신중함은 곧 무거움이다. 삶이 항상 무거울 필요는 없고, 더러는 발랄함과 가벼움도 필요한 법이다. 삶의 무거움이 사라지고 온통 발랄함과 가벼움만이 남을 때 사회는 경박해진다. 먹고 마시고 웃는 것과 같은 표피적 감각의 즐거움만이 권장되는 사회에서는 경박이 득세를 하고 신중함은 굼뜬 것으로 내쳐진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더 많은 자동판매기들이 나타나 외친다. 무사고無思考의 천국이 펼쳐진다. 그 천국은 도덕성, 의식, 기억이 없는 뜨내기들로 넘쳐난다. 자동판매기와 같은 유형의 인간들은 영원한 임시 장소들을 떠돌며 하루의 생존에 매달린다. 그들은 먼 앞날을 내다봄 없이 당장의 필요의 욕구를 채우는 데 급급하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전통의 기품이나 인문적 수양에서 우러나오는 품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제난에 직면하고 실직과 청년백수의 증가로 인해 실존의 다급함 쪽으로 내몰리자 사회 전체가 '뜨내기화'라는 사회 현상을 거쳐 경박함으로 쏠렸다. 곤경에 빠진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나 한쪽으로의 쏠림은 사회적 병폐를 낳는다. 깊이 생각하지 않음을 발랄함으로 오해하고 그것에 쏠린다 해도 깊이 있게 생각하기, 깊이 있는 삶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삶의 여러 부면에서 깊이를 찾아보기 힘들 때 깊이는 더욱 더 참다운 삶의 당위로 떠오른다. 깊은 심지가 없이는 삶의 큰 보람과 의미가 쌓이지 않는 까닭이다. 우선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풍부한 의미들을 놓친다. 참다운 인생도, 그것이 품고 있는 그 진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오로지 깊이 있게 사유하는 사람만이 참다운 인생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쌓아나갈 수 있다. 공자는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두우며,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공자,〈위정〉15,《논어》)고 했다. 깊이 생각하려면 먼저 널리 배워야 하고, 널리 배움은 읽는 데서 시작한다. 심지가 깊어야먄 마음에 간사함을 떨쳐낼 수가 있다. 마음에 간사함을 떨쳐내야만 억측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고루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들이 바로 공자가 말한 군자가 취해야 할 도리가 아닐까? 심지가 깊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제 본성을 돌아보고 하늘의 이치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코키토'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가 주창한 철학의 제1원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에서 나온 것이다. 추운 겨울날 데카르트느 화덕 가에 앉아 있다가 불현듯 절대적 회의에 잠긴다. 그 회의는 화덕 가에 앉아 불을 쬐던 자기 존재 자체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은 허위라는 생각에 도달했지만, 그런 결론은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수반한다. 이를 볼 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것은 명확하며, 가장 강력한 회의주의자의 가설조차 이 진리를 흔들 수 없음이 분명하다. 나는 이것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가 찾고 있는 철학의 제1원리로 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데카르트《방법서해설》) '나'는 생각하는 나인데 그것은 내가 생각의 한 부분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을 장악하는 주체라는 뜻이다. 즉 '나'의 '나-됨'으로 나아가는 주체화의 한 과정이다. 데카르트는 생각함이 존재의 토대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불변하는 철학의 제1원리로 삼았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생각함이 없을 수 없다. 생각함에는 여러 차원이 있다. 너저분한 생각, 피상적 생각, 진부한 생각은 데카르트가 존재함의 토대라고 인식한 생각함의 범주에는 미달한다. 인습에 갇힌 생각, 욕망함에 종속당하는 생각, 본질에 대한 지각 탐지가 배제된 느른한 생각들 역시 마찬가지다. 생각함은 깨어 있는 내면에 역동하는 운동이고 생명에 파동치는 리듬이다. 생각함은 현재 이 순간을 강렬한 의미의 시간으로 바꾸고, 생각의 주체를 의미의 존재로 바꾼다. 그러므로 생각의 고양은 곧 존재의 고양이다. 한밤중 아무도 없는 빌딩의 텅 빈 복도에 홀로 서 있을 자동판매기를 상상하면서, 나는 이렇게 쓴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2.11

 

프랑스의 투렌 라에에서 태어난 철학자다. 데카르트는 어릴 때 몸은 약했지만 지적 능력이 뛰어난 소년이었다. 예수회 학교에서 프랑스어, 란틴어 문법, 그리스-로마의 수사학, 논리학, 윤리학, 자연철학, 수학, 형이상학 등을 공부했다. 대학에서는 법학을 공부했는데, 대학을 나오자마자 세상으로 나갔고, 다시는 제도권 교육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학교를 떠난 뒤 약 3년 동안 네덜란드와 독일 지역에서 군대 생활을 하고, 이때 북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도 했다. 이 무렵에 세 가지 기묘한 꿈을 꾸고, 이를 계기로 이성의 빛에 따라 진리를 탐구하는 데 헌신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방법론을 비판하고 자신의 새로운 방법론을 내세운 프랑스의 저작《방법서설》을 내놓으며 철학사에서 사유와 혁명을 일으킨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꼽히는 사람이다. 이 방법이 기대는 제일원리로 '생각하는 자아'를 제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모든 지식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해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학문을 토대를 찾는 데 매진해서 마침내 '생각하는 자아'를 철학의 제일원리이자 근대적 주체로서 발견해냈다. 저 유명한 에피그램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은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철학적 사유의 혁신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다. 데카르트는 인간 내면을 성찰했을 뿐만 아니라 동물을 해부하고 생리학을 연구하면서 육체의 각 부분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가를 밝히려고 했다.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체계는 이성에 의해 본질을 꿰뚫는 사유에 기댄다는 점에서 직관주의적이고 동시에 물리학이나 생리학에 바탕을 둔 경험감각적 지식에 기초를 둔다는 점에서는 경험주의적이다.

데카르트는 1641년에 '생각하는 자아'를 정립한《성찰》을 펴내고, 1644년에는 철학·수학·역사 의학·도덕 등 모든 지식의 연구에 매달린 끝에 물리학과 형이상학에서 거둔 학문적 성과를 한데 모은《철학의 원리》를 펴냈다. 그러나 철학 대 신학, 구교 대 신교, 구교 내부에서도 개혁과 보수로 맞서던 시대에 사상의 전위에 서 있던 데카르트의 철학은 반발을 낳는다. 데카르트는 칼뱅주의 및 예수회의 가르침과는 달리 신의 은총이 구원에 따른 필수 요소는 아니고, 오히려 인간 이성의 능력으로 진리를 발견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때 덕이 쌓이고 그에 따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새로운 철학'이 네덜란드의 대학들에서조차 거부당하자 스웨덴 왕실의 초대를 받아들여 스웨덴으로 이주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폐렴을 얻어 1650년 2월 11일에 스톡홀름에서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