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

삶을 향유하라

오키Oki 2013. 5. 20. 08:09

 

여행은 심리적 갈등을 치유하고 삶의 좌표를 찾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곳에 가서 같이 맛있는 음식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적당히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는 그 동안 집에서는 하지 못했던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털어놓을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요즘엔 캠핑을 떠나는 가족들이 많은데, 캠핑은 하나부터 열까지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해결해야 하므로 가족 간의 화합과 정을 돈독히 하는 데 매우 좋다.

 

큰딸은 미국으로 출장 갈 일이 있어 첫째 휴일을 택해 미리 집에 다녀갔는데 작은 딸은 학업으로 둘째 휴일을 택해 집으로 왔다. 남들은 가족 여행을 많이들 떠난다고 하지만 우리집 딸들은 집에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엄마, 아빠가 가꾼 채소 반찬으로 몸과 마음을 실컷 쉬다 가기에 녹차만들기 바쁜 오월이지만 일손을 내려놓고 함께 해줬다. 인생에 뒤바꾸는 할 수 없고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럭저럭 살아가면 되기에 이틀씩 자고 가는 딸들에게 일에 허덕이는 모습 대신 재밌고 즐겁게 사는 모습으로 참 잘 놀았다.   

작은딸이 아빠가 침침한 눈으로 찻잎따서 만드느라 고생하셨다며 눈이 밝아지게 다슬기를 잡겠단다. 맑은 개울에 다슬기가 있어 가을에는 반딧불이도 나타나 즐거움을 주기에 한번도 다슬기를 잡아 먹는 일이 없는데 아빠를 위한다는 말에 다슬기 잡는 걸 허락했다. 다슬기를 조금 삶아 국물은 아빠가 속살은 모녀가 꺼내먹고 하하 호호 웃음꽃 피웠다.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

- 이근후 지음『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중에서 -

"당신은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

 

 

지은이 이근후(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1950년대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했던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대학 시절 4·19와 5·16 반대 시위에 참가해 감옥 생활을 한 덕분에 한동안 취직이 어려워 생활이 힘들었던 적도 많았다. 취직 후에도 빚을 갚고 자식 넷을 낳고 키우느라 젊은 시절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쉽게 절망하는 법이 없었다. 몇 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며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수석 졸업하면서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은퇴 후에 다시 학생이 되어 배움의 길에 들어선 그는 그저 웃으며 '일흔 넘어 한 공부가 가장 재미있었다'라고 말할 뿐이다. 30년 넘게 네팔 의료 봉사를 하고, 40여 년 넘게 광명보육원 아이들을 돌본 이유도 별 게 없다. 봉사를 하니까 인생이 더 즐거워졌다는 게 이유의 전부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의 몸 상태를 알고 나면 깜짝 놀란다. 그는 10년 전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고 당뇨, 고혈압, 통풍, 허리디스크 등 일곱 가지 병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퇴임 후 아내와 함께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폐쇄적인 정신 병동을 개방 병동으로 바꾸고, 정신 질환 치료법으로 사이코드라마를 도입했으며, 한국 정신치료학회를 설립하는 등 우리나라 정신의학 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지만, 그는 그것 또한 필요한 일이고 하고 싶어 했을 뿐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또한 그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네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오면서 절대 자식 인생에 간섭하는 부모는 되지 말아야지 마음먹었더랬다. 현재 그는 결혼한 자녀 부부와 네 명의 손자 손녀까지 모두 삼 대 열세 명이 한집에 모여 사는 대가족을 이루고 있는데, 그 화목함의 비결은 딱 하나다.

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닌 식구 전체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시아버지로서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칠 정도로 상호 불간섭주의와 독립성 보장을 지켜오고 있다. 그랬더니 오히려 가족 간 허물없는 소통이 이루어졌다며 즐거워한다.

여든을 앞둔 지금도 그는 하루하루 사는 일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공부를 하고 청탁 원고를 쓰고 제자들에게 안부 메일을 보낸다. 찾아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그리운 이들에게 연락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앞만 보며 달렸던 젊은 시절에는 몰랐던 여유로운 즐거움이다.

누구나 즐겁고 재미있게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짜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은 재미있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재미있게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순간순간이 쌓여 진짜 재미있는 삶을 만든다. 그래서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서 '어떻게 살것인가'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말한다.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것이므로 나이 드는 것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좀 두렵더라도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겠다'는 다짐을 잃지 말라고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훨씬 풍요로울 수 있다고.

 

 

Prologue| 당신은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

물의 깊이는 알 수 있으나 사람 속마음은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다. 정신과 의사는 그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직업이다. 사람들은 50년 정신과 의사로 살아온 내가 사람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삶의 지혜를 통달한 줄 안다. 게다가 나이 들면서 적당한 주름과 은빛 머리칼까지 갖추니 원숙해 보이는 나의 풍모가 그런 오해를 더하는 듯하다.

인생을 잘사는 비결 하나쯤 기대하고 질문을 던진 이들은 아마도 나의 대답이 싱겁기조차 할 것이다. 가령 어떤 이들은 "요즘 하루를 어떻게 여십니까?"라고 묻는데, 뻔한 하루를 특별하게 시작하는 방버블 알려 달라는 속셈이다. 나는 대답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텔레비전을 켭니다. 이불 속에서 좀 더 자볼까 싶고 또 오늘 할 일에 대한 부담이 떠올라 눈을 뜨기 싫지만 뉴스를 들으며 차츰 잠에서 깨어납니다. 출근 준비를 하다 보면 어느새 무거웠던 마음은 '하루가 시작되었구나' 하는 감사와 다행감으로 가벼워지지요."

여든을 바라보는 나도 여전히 인생의 이런저런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그럼에도 습관적인 하루에 지치지 않으려 애쓴다는 것, 나로서는 솔직한 고백이다. 나이 듦에 대한 물음도 비슷하다. "나이 들면 뭐가 좋은가요?" 하고 묻지만 나는 "나이 들면 뭐가 좋겠습니까?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보통의 노후라면 평생 아이들 키우느라 모아 놓은 돈도 많지 않고 건강도 예전만 못하다. 생물학적 노화와 사회적인 쇠퇴, 앞날에 대한 불안과 무기력함,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좋을 게 뭐가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그러나 나의 답은 계속된다.

"나이 든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할 생의 궤적입니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이라기보다 나이 들면서 좋은 일, 즐거운 일을 만들어 가겠다는 마음가짐이 훨씬 중요하지요."

정신과 전문의로 은퇴한 뒤 나에게 감투를 주려는 단체들이 몇 군데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은 딱 하나, 더 이상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다는 점이다. 자존심을 세워주는 그럴 듯한 자리라도 나는 명예보다는 즐거움, 책임보다는 재미를 택하면서 살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젊은 날의 나는 무엇이든 재미를 택하려고 애썼다. 재미있는 일만 골라 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재미있는 쪽으로 만들어 갔다. 서너 평 남짓한 진료실에서 하루 종일 환자들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쏟아내는 아프고 슬픈 이야기들들 듣다 보면 내 몸과 마음은 커다란 쇠공을 매단 듯 무겁고 어두워지곤 했다. 내가 그들을 완벽하게 낫게 해 줄 수 없다는데서 오는 스트레스였다. 나는 생각을 바꿨다. 환자들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해 보자고. 그러자 좋은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고,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정신과 폐쇄 병동을 개방 병동으로 바꾸고, 환자들이 속마음을 털어내는 사이코드라마를 시도하고, 정신이 아플 뿐 몸은 건강한 환자들을 위해 체력 단련실을 만들었다. 일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나는 신이 났고 즐거웠다. 한마디로 '재미있게 견디기'다. 그래서 나는 50여 년의 정신과 의사 생활에서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러셀은 말했다. "재미의 세계가 넓으면 넓을수록 행복의 기회가 많아지며, 운명의 지배를 덜 당하게 된다"고.

그런 재미를 추구한 덕분에 노년이 된 지금, 나는 심심하지 않게 잘 살고 있다. 요즘 가장 재미있는 일을 꼽으라면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것이다. 컴퓨터를 이용해 정신과에 관한 교육과 상담은 물론, 한 사이트에는 아동기 감정을 이해시키기 위한 자료로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매일 올린다. 보는 사람도 재미있다 하지만 정작 제일 재미있어 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또 컴퓨터로 젊은이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 외에도 집에서 한 시간 떨어진 북악스카이웨이 천천히 걸어서 다녀오기, 30년 동안 의료 봉사를 해 온 네팔 1년에 한 번 방문하기. 한 달에 한 번 시 낭송 모임, 40년 동안 봉사해 온 보육원에 들러 아이들과 놀아 주기, 주말마다 네 자녀 가족과 돌아가며 저녁 식사하기. 보고 싶을 사람 불쑥 방문하기 등, 지금도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나의 노년을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도 부러워하지 마시라. 누구든 재미있게 살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온통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테니 말이다.

물론 젊은 시절 느끼던 재미와는 분명 다르다. 그러나 젊어서나 나이 들어서나 똑같은 재미를 느끼는 일은 정말 재미없지 않을까. 바로 지금 나이에. 내가 가진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는 일이 진짜 재미다. 젊어서는 산 정상에 오르는 일이 재미있었다면 나이 들어서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 젊어서의 재미만 생각한다면 노년은 불행하기만 하다. 바로 지금, 자신에게 맞는 재미를 찾는 것이 진정 '나이 답게' 늙어 가는 일이다.

요즘 방송 토론에서 노인의 급격한 증가로 우리 사회가 짊어질 재정적 부담에 대한 걱정을 자주 거론한다. 돈이 없는 노후는 곧 고통이자 절망이라는 분위기다. 경제적인 풍요가 꼭 아름다운 노년을 만들어 주지는 않음을 알면서도 우선 돈부터 해결하자고 한다. 물론 경제적 준비는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에 나이 듦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젊은이부터 중장년층까지 '나는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나이 듦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런 진지한 성찰을 통해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럼으로써 현재를 더욱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다.

우리는 평생 시험, 취업, 결혼 준비 등 많은 준비를 하지만 정작 나이 듦의 준비는 소홀하다. 나이 드는 것도 반드시 '선행 학습'이 필요하다. 아무리 준비해도 막상 닥치면 당황하고 실수하기 마련인데, 나이 든 후에 시작한다면 너무 늦다.

그동안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정신 질환을 앓는 이들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 주며 내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렸다. 그들이 내 말을 듣기 시작하면 치료의 문은 조금씩 열리는 것이다. 늘 그렇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온 내가 이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었다. 특별할 것 없는 보통 할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지만, 사람들에게 내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으니 한편으로는 지난 내 삶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 덜어내는 기분이다. 나의 이야기가 인생 선행 학습의 작은 자료로 활용되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작은 불씨가 된다면 아주 기쁠 것이다.

 

  

내가 웃으면 아내도 웃고, 아내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서로 다른 점을 각자의 타고난 개성으로 인정하지 않고 '틀린 점'으로 취급하는 순간, 상처가 자리잡기 시작한다. 처음 만났을 때의 마음처럼 '다르다'를 '다르다'로 기쁘게 인정하자. 세월이 흘러 '다르다'가 '틀리다'로 느껴진다면 이전보다 꼭 두배만 배려하는 마음을 갖자.

 

-최일도,《참으로 소중하기에 조금씩 놓아주기》중에서

 

 

주방에서 커피를 타며 흘깃 바라본 아내는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 아내는 눈이 잘 안 보이는지 등을 움츠려 모니터 가까이 다가간다. 결혼한 지 50년, 아내와 함께 살아온 세월이다. 그동안 아내는 이 고집불통인 남자를 어떻게 받아 주었는가! 언젠가 아내에게서 자신은 지난 30대 시절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네 명의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살림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아내의 기억 속에 남편인 나는 시국 사건으로 감옥에 가 있거나, 쥐꼬리만 한 월급을 가져다주거나, 병원 일에 정신없는 모습으로 그려질 뿐이었다. 30대가 삭제된 것 같다는 말에 나는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늘 믿음직스럽고 지혜로운 아내에게도 그늘이 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아내는 여동생의 친구였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다가 아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편지가 오갔다. 아내는 서울대학교를, 나는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아내가 선을 본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프러포즈를 했다. 편지에 아무것도 적지 않고 '나는 너와 ○○ 하고 싶다. ○○를 채워 보라'는 문제만 썼다. 에 들어갈 말은 무수히 많았지만 아내는 '결혼'이라고 생각했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프러포즈다.

둘 다 가난했던 우리는 예식장을 빌리기도 어려웠다. 신혼여행도 등산복 입고 텐트를 짊어지고 기차 타고 산으로 갔다. 깊은 산, 바람에 펄럭대는 텐트 안에서 첫날밤을 보내며 내가 말했다.

"이 다음에 돈 많이 벌면 우리 세계일주 하자."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아내와 나는 뜨거운 감정보다 오누이처럼 편하고 다정했다. 갑자기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 사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아내, 남편이기보다 동료라는 생각이 강했다. 물론 나와 아내 모두 학자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 부부가 50년 긴 세월 동안 큰 갈등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파트너십, '사랑의 열정'이 아니라 '사랑의 관리' 덕분이었다.

부부 싸움을 하게 되면 우리는 먼저 말을 멈췄다. 다음에는 존댓말을 썼다. 부부 싸움을 하는 순간 마음속에는 상대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난다. 존댓말은 그런 나쁜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적이었다. 아내와 나는 갈등을 없애는 합리적인 싸움을 하려고 애썼다. 시간이 흘러 그런 노력들이 쌓이면서 서로를 애틋해하는 결실로 맺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결혼은 한 인간과 인간이 만나, 배우자를 통해 풍부한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을 결정짓는 것은 경제력이나 학벌이 아니다. 행복은 생의 기쁨과 슬픔, 괴로움을 함께 나누면서 서로 주고받는 긍정적인 상호작용이다. 서로에 대한 불만과 갈등을 두 사람이 함께 해결해 가는 과정에 부부의 미래 모습이 담겨 있다.

내가 진료실에서 만난 문제 부부들이 공통적으로 "우리 남편(아내)은 결혼한 이후 지금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하소연한다. 40대의 중년 부인도, 70대의 노신사도 똑같이 말한다. 인간이 변하기란 정말 어렵다. 죽기 직전 눈을 감을 때까지도 철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남편도 변하지 않고 아내도 변하지 않는다. 배우자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기를 기다리고 원망하며 10년, 20년을 보내다가 결국 노년에 이르면 부부는 서로에게 원수가 되어 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불만스러운 점은 단지 조금 고쳐 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행복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런데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 봐 주는 것은 중년 이후의 부부들에게 더 필요한 일이다. 나이가 들면 남녀의 모습이 바뀐다. 남성은 중년기로 접어들면서 공격적인 성향이 관계 지향적으로 변한다. 여성은 감정 표현이 자유로워지며 거침이 없어진다. 그러니 남편은 권위적인 자세를 고집해서는 안 되며 예전의 수동적이고 온순한 아내의 모습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아내 또한 은퇴 후 남편들이 정서적으로 많이 기댄다고 해서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아야 한다. 즉 서로의 변화를 인정하고 그러한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세월이 흘러 중년 그리고 노년을 지나면서 내 몸의 에너지는 빠지고 사회적 영향력도 줄어들었다. 이 초라한(?) 시기에 내 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이자 소중한 사람은 바로 배우자다. 남편과 아내는 자녀, 친구, 이웃 등 다른 사람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자녀를 키우고 시대적 체험을 함께 나눈 인생의 공감자가 부부다. 노부부는 함께 늙어 가는 동지이자 나이 듦 자체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동반자다.

부부 관계를 증진시키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기다.

노년기가 되어 이 방법을 실천하기보다는 그 이전부터, 되도록이면 결혼 초기부터 서로 노력하고 함께 실천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부부 관계를 증진시키는 일은 실천하다고 즉각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내는 내 인생의 동료였다. 아쉬운 것은 우리 사이에 알콩달콩, 아기자기함이 없었다는 점이다. 팔순 가까운 나이에 늙은 아내에게 너스레를 떨며 온갖 아양을 부려 보지만 아내는 못 봐주겠다는 표정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부부사이에 사소한 재미가 많아야 노년이 즐겁다.

지금, 내가 웃으면 아내도 웃고 아내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참 감사한 일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남겨 있는 최고의 재산

 

모든 도시와 건축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세운 자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아무리 튼튼하게 지었다고 해도, 중력의 힘에 의해 반드시 건축과 도시는 무너지고 만다. (중략) 영원한 것은 우리가 같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며 그 기억만이 진실한 것이다.

 

-송효상.《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중에서

 

 

내가 공부하는 사이버 대학 게시판에 어린 시절 이야기를 올리자 반응이 좋았다. 동네에 부랑아로 떠돌던 '미친 여자'를 집으로 불러 밥상을 차려 준 어머니, 초등학교 보건 체조 시간에 허리를 뒤로 젖힐 때마다 눈이 마주치던 여학생, 병원 침대에 누워 보고 싶어 자동차에 치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철없던 이야기 등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다. 누구나 어머니에 관한 따뜻한 에피소드가 있고, 어느 동네에나 미친 사람이 있었으며,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첫사랑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내 이야기가 스위치가 되어 그들의 뇌 어딘가에 잠자고 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생각났던 것이리라. 안톤 슈낙의 수필집《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나오듯, 어린 시절의 모든 이야기는 별처럼 인생에서 빛난다. 잡을 수는 없지만 반짝이는, 보는 것만으로 따뜻해지는 무엇.

옛날 생각이 자주 나는 걸 보면 나도 늙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문득 용수철처럼 튀어나온 기억들은 웃음을 짓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그로 인해 내 주위를 훈훈하게 만든다. 삶은 작은 이야기의 연속이다. 시시껄렁해 보이는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인생의 큰 무늬를 이룬다. 그러니가 매 순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면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좋은 기억이란 무엇인가. 기쁜 일이나 행운, 성공, 잘된 일을 말하는 걸까? 아니다. 좋은 기억은 내가 순간순간 만나는 어떤 상황에서 좋은 쪽, 긍정적인 쪽으로 선택하려는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순간순간을 즐거운 쪽으로  생각하고 만들어 가려 했다. 일이든  공부든, 취미나 봉사든, 모두 내가 즐겁게 살기 위한 쪽을 선택했다.

마흔 살 넘어 재형저축 적금을 탔다. 1973년 이화여대로 이직한 뒤 월급에서 의무적으로 불입금이 빠져나갔는데, 그동안 죽 잊고 있다가 만기가 된 것이다. 1983년 천만 원이란 공돈이 생긴 셈이었다. 돈을 들고 찾아간 곳은 여행사였다. 그리고 천만 원어치 여행 계획을 짜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결혼할 때 예식장 빌리기도 어려울 만큼 돈이 없었다. 그래서 텐트 안에서 첫날밤을 지내며 아내에게 말했다. "돈 벌면 우리 세계 일주하자!" 두 사람 다 가난했으니 무슨 말인들 못할까. 나로서는 아내를 즐겁게 해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그 막연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 신기하고 놀라웠다.

나는 아내와는 상의도 없이 일을 저질렀다. 부동산 투기가 붐을 이루던 당시, 천만 원은 변두리에 소형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을 만큼 큰돈이었다. 집을 사서 세를 놓으면 부수입도 괜찮을테고 노후 보장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즐거운 상상으로 가득했다. 나는 아내 모르게 여행 계획을 세웠다. 당시 딸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어서, 아내는 나를 기막히다는 듯한 눈빛으로 쏘아보았지만 결국 따라나섰다. 그렇게 우리는 40일 동안 온 유럽을 돌아다녔다. 근사한 호텔에서 잠을 잤고 사진으로만 보던 명화들을 감상했다. 파리 개선문 앞에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 나눈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다. 그렇게 천만 원을 다 썼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돈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아내와 나에게는 여행의 즐거움과 기억들이 남았다. 가끔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아파트 투자해서 얼마 더 버는 게 낫나? 지금 이 즐거운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 게 낫나?"

그때마다 아내는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아이들에게도 나름대로 즐거운 기억을 심어 주려 애썼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갖게 된 내 집, 작은 집이었지만 나는 아이들방을 손수 꾸며 주었다. 잠수함 모양으로 꾸미고 천장을 뚫어 지붕으로 연결하는 봉을 세웠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대구의 우리집 마당에는 큰 감나무가 있었다.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대구 시내가 훤히 보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신기했다. 막힌 가슴이 탁 트였다. 감나무는 어머니의 과보호 속에 오로지 집과 학교만 오가던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다. 아마도 내 아이들 방에 천장을 뚫어 하늘을 볼 수 있게 한 것은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봉을 잡고 올라가면 먼 곳까지 보였고 밤에는 별이 방안으로 쏟아졌다. 장남이 천문학자가 된 것도 어찌 보면 우연은 아니었던 듯하다. 부모로서 풍족하게 해 주지는 못했지만 자식들에게 행복한 기억을 남겨 주려 애썼던 것만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테니 다행이다.

일본의 자녀교육 전문가 가나모리 우라코가 말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최고의 재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부모는 정말로 행복하고즐거운 삶을 살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삶의 좋은 기억은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이제 나는 내 삶의 마지막 모습이 나쁘게 기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노화로 인한 아픔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게으르지 않으려 노력하며 즐거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로 기억되었으면 해서 말이다.

훗날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주들이 나의 기일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인 내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란다. 다들 바빠서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세상인데, 나의 죽음을 계기로 자녀들이 모인다면 얼마나 좋은가. 그날 인간 이근후에 대한 기억을 자식들 나름대로 퍼즐 조각처럼 맞춰 보고 웃음을 터뜨리면 좋겠다. 나의 좋은 면이나 재미난 추억거리를 말해도 좋고 험담을 해도 좋으리라. 이야기가 깊어지면 각자가 처한 삶의 어려움을 형제들과 나눌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따뜻한 힘이 되지 않을까. 상상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쉬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마라

 

마음을 닦는다고 하지만, 사실 마음은 닦을 것이 없습니다. 실체가 없는 것을 닥을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허공을 닦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마음은 다만 쉬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쉬는 것이 깨달음'인 것입니다.

 

 

-월호,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당신을 사랑합니다》중에서

 

 

요즘 영화는 화면 전개 속도가 무척 빠르다. 아직도 가끔 '벤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같은 오래된 영화를 즐겨 보는 나로서는 전체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옛날 영화들은 주인공의 다음 행동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느리다. 느리다는 것은 요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영화만이 아니다. 길거리를 나서면 바쁜 사람으로 가득하다. 하나같이 잰걸음으로 걷는다. 식사도 빨리, 공부도 빨리, 연애도 빨리……. 남보다 빠르게, 앞서 나가는 것이 성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뚜렷한 목표가 없어도 '남들이 그러니 나도' 하는 생각으로 뛰기도 한다. 사회가 그렇게 뛰도록 다그친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손 놓고 있으면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 불안하다. 정말 피곤한 삶이다.

전문가들은 쉬면서 일할 것과 여가를 선용하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쉼이나 여가조차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여름휴가 때는 동해안과 남해안 해변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겨울에는 스키장에 몰린다. 펜션이 유행하여 산속과 바닷가에 그림 같은 집들이 우후죽순 들어선다. 뭐니뭐니 해도 요즘 대세는 캠핑이다. 외국 영화에나 등장하는 캠핑카를 빌려 휴가를 보내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얼마 전엔 캠핑 장비가 꽤 비싼 것을 알고 놀랐다. 게다가 그걸 마련하려고 몇 달치씩 할부를 끊기도 한단다. 텐트 한 장으로도 야영이 충분한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숟가락, 젓가락까지 완벽하고 갖추고 떠난다. 휴식 준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은 탓에 푹 쉬고 난 뒤에도 피곤은 여전하다. 휴식이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된 격이다.

휴식마저 사람들이 이리저리 쏠리며 비슷한 형태를 띠는 것은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거나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생각만 버리면 보이는 것도 많고 즐길 수 있는 것도 많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장 편하고 즐겁게 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나만의 진짜 휴식이다. 휴식(休息)의 한자를 풀이하면 '사람이 나무 옆에 앉아(休)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보고 숨 쉬는 것(息)이다. 이 글자 풀이만으로도 휴식은 아주 단순하고 쉽고 편안하다.

박완서 선생이 쓴 휴가에 대한 글이 떠오른다. 여름휴가를 맞아 바다로 산으로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 텅 빈 서울, 홀로 남은 듯한 느낌이지만 선생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거리를 쏜살같이 달리던 자동차도, 북적이던 사람도 드문드문 오갈 뿐, 선생은 남들이 모두 휴가를 떠난 빈 도시에서 역설적으로 휴가를 즐긴 셈이었다.

내가 즐겨하는 휴식의 방법은 명상이다. 고요한 공간에 앉아 눈을 감고 호흡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다독인다. 그런데 명상에 대한 편견이 깨진 일이 있다. 네팔 오지에서 한 명상가의 제안으로 명상 체험을 했다. 나는 바위를 마주하고 앉은 채 두 눈을 감는 명상, 그야말로 교과서적 명상을 상상했다. 그러나 4천 미터가 넘는 고산에서 명상가는 펄쩍펄쩍 뛰게 하고 숨을 크게 쉬는 호흡법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익히 알던 고요한 좌선이 아니었다. 하늘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에서 온몸을 자유롭게 흔들어대는 명상을 하면서 속이 어찌나 후련하던지, 좌선만 명상법으로 알았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유로움이란 다음을 위한 저축이요, 생채 리듬을 북돋우는 영양제 역할을 한다. 남들이 하는 휴식법에서 벗어나 보자. 무엇보다 일 따로 휴식 따로 하겠다는 생각을 바꿔 보자. 에디슨이 많은 발명을 했던 비결도 "앉을 수 있는 곳에 앉고 누울 수 있는 곳에서는 누워 쉬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조용한 시간을 틈타 크게 숨을 골라 보자.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이런 여유를 가진다면 굳이 요란한 휴가를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개보다 행복할까?》의 저자 매트 와인스타인은 개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은 "앉아!"와 "가만있어!"라고 말한다. 개들도 배우는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평생 배우지 못한다. 그들은 "바빠"와 "급해"를 입에 달고 정신없이 달려간다. 가끔 앉아서 가만히 있는 것은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히말라야에서 함께 명상을 했던 네팔인이 말했다.

"세계인들이 명상을 한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입니다."

맞다. 물론 세계 평화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쉬고 싶을 때 제대로 잘 쉬는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잘 쉬는 법을 알아야 인생 후반기에 후회가 적다. '일을 더할 것을……' 하고 후회하는 사람보다 '일보다 나를 위한 여유를 가져 볼 것을……' 하고 후회하는 사람이 더 많다.

 

 

늦기 전에 노년의 삶그려 보라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는 향기가 없으나 사과를 칼로 깎을 때 비로소 진한 향기가 코끝을 스며드는 것처럼 (중략) 누구든 죽음을 목전에 두면 지울 수 없는 향기와 냄새를 남긴다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는 것. 그리하여 나의 맨 마지막 향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

 

-안도현,《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중에서

 

 

언젠가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봤다. 영화에서 외계인은 흡혈귀처럼 인간의 몸에서 수분을 빼앗아 에너지를 얻어 연명한다. 재미있는 점은 외계인들이 나이 든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육체적 노화로 인해 젊은 사람보다 몸속 수분 함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외계인은 노인을 쳐다만 볼 뿐 공격하지 않는다. 그 장면을 보면서 노인은 외계인들에게도 홀대를 받는 존재이구나 싶어 실소가 났다.

사람들이 노인을 보면서 "늙으면 다 그래? 나이 들면 다 저렇게 되나 봐"라고 할 때가 있다. 대개는 나이 든 이들이 행동이 느리거나 말귀를 못 알아들을 때, 고집을 부릴 때 등이다. 노인의 이런 특징이 노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젊은이들은 자신만큼은 영원히 늙지 않을 것처럼 말한다. 언젠가는 나도 늙고 죽는다는 사실을 평소에는 망각하고 사는 인간은, 그래서 축복 받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세상에 늙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오늘 아침 택시를 타고 오면서 차창 밖으로 마주쳤던 싱그러움이 풀풀 풍기는 대학생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된다. 인생의 시간은 어떤 일이든 나에게 닥치는 순간 너무 빨리 흘렀다고 느낀다. 어느 날 들여다본 거울속에서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얼굴을 발견하고 당황하듯 갑작스럽게 나의 늙음과 마주칠 것이다.

늙음이 머지않아 닥쳐올 일이라면 그날을 위해 늙음을 공부해 둘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설계를 세우는 것이다. 계획하고 가꾸지 않는 노인의 삶은 당사자만 힘든 게 아니라 자녀와 이웃 등 주위사람을 피곤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도대체 나이 듦이란 무엇인가'를 미리미리 음미해 보는 일은 무엇보다 지금 나의 삶을 잘 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미래의 모습은 지금 나의 모습이라고 하지 않은가.

먼저 늙는다는 과정이 의학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따져보자. 우선 생물학적인 신체 변화다. 주름이 많아지고 키도 작아지고 몸무게도 줄어든다. 기력도 젊을 때 같지 않다. 한마디로 생체 조직이 무기력해지고 쇠퇴한다. 뇌의 기능이 감소하여 판단력이 흐려지고 기억력도 떨어진다. 그런데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노화로 인한 몸의 불편함을 알기는 쉽지 않다. 나도 예순살이 넘어서야 내 어머니가 나이 들어 겪으셨을 이런저런 통증과 몸이 따라주지 않아 발생되는 일상의 불편함을 느꼈다. 내색않고 묵묵히 참아내셨던 어머니에게 혹 '나이 들면 다 저런가?' 하는 생각으로 서운하게 해 드린 적은 없었는지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또 노년에는 정신적인 변화도 크다. 성격이 젊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속담이 여기서 나왔다. 내향적, 수동적 성격으로 변하여 겁이 많아지고 고집이 세진다. 지나간 일들을 자주 회상하며 우울감에 빠질 때도 많다. 의존성이 높아지고 친숙한 대상에 대한 애착심이 생기고 질투와 의심이 증가하기도 한다.

이런 성격의 변화는 노인이 되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노인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특징도 아니다. 성격은 일생 동안 발달하고 성숙한다. 어느 순간에 성격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경과 속에서 죽을 때까지 발달한다. 청·장년기에 어떤 태도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았는지에 따라 노년의 시기에 드러나는 성격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정신분석가인 에릭슨은 인생의 단계적 과정을 건강하게 적응하며 지나온 노인은 타인과 융화하는 인격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건강한 적응에 실패한 노인은 외로움을 겪기도 한다고 했다. 건강한 적응이란 인생에서 수많은 일에 부딪히면서 긍정적으로 단련되는 것을 말한다.

노인의 삶은 크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회 활동을 중지하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은둔형이다. 젊었을 때의 화려했던 모습에 비하면 늙어 버린 나는 너무 초라하다. 이런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 실망을 주느니 말없이 사라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여배우들이 나이가 든 뒤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재 않으려는 심리와 비슷하다.

둘째,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분노하는 사람들이다. 사사건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울분을 삭이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자기가 하면 그렇게 하지 않을 텐데, 젊은 사람들이 세상을 망쳐 놓는 것 같아 울분이 터진다. 분노형이다.

반대로 모두 내 탓이라고 자학하는 사람도 있다. 셋째, 자학형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모두 부정적으로 생각되고 사는 것이 치욕스럽다며 스스로를 학대한다. 젊었을 때는 한가락 했는데 늙고 병든 지금은 세상에 폐를 끼칠 뿐, 아무런 소용도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다. 자식들이 못사는 것도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등 모든 잘못을 자기에게 돌린다.

넷째, 무장형의 노인도 있다. 젊었을 때보다 더 열정을 쏟으면서 살아가는 노익장들이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이들이지만 간혹 의욕이 지나쳐 주위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몸은 비록 늙었지만 마음은 인격적으로 성숙한 노인들이다. 이들은 인생의 경과를 정직하게 바라보며 자연스러운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바로 이상적인 노인의 삶이다. 성숙형 노인들은 서양 속담처럼 마치 앙금이 없는 포도주와 같다. 좋은 포도주는 오랜 숙성을 통해 앙금마저 녹아 버려 투명한 빛을 띤다. 이들은 표정부터 편안해 보인다. 자기중심을 잃지 않지만 부드러운 중재자로서의 모습도 갖추었다. 우리가 소망하는 '곱게 나이 든다'는 것은 성숙한 유형의 노인일 것이다.

'노인'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나이 들어가기를 바라는가? 지난 삶의 태도로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경향이 짙다. 이것이 바로 젊었을 때부터 '나는 어떤 노인의 유형으로 살고 싶은가' 를 가늠해 봐야 하는 이유다.

아름다운 노년 만들기의 핵심은 자기에 대한 성찰과 변화에 있다. 오늘날의 사회는 지난 60년의 인생을 가지고 그 이후 10~20년의 세월을 살아갈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노년의 시기는 과거의 정리도 중요하지만 정리만 하고 살기에는 너무 길다. 그러므로 노인도 미래지향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 변화는 바로 '내가 어떤 모습으로 노년을 살아갈까' 젊었을 때부터 머릿속에 그려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신혼부부에게 건네는 가지 당부 

 

두 사람이 가족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든 겁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둘이 힘을 합쳐 만든 거예요.

 

-법륜,《스님의 주례사》중에서

 

 

요즘에는 이혼이 별스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아가씨처럼 보이는 여성도 벌써 이혼을 경험하고, 남편에게 눌러 살던 아내가 "늙어서 보자"며 농담처럼 던진 말이 황혼 이혼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주례를 서면서 신랑 신부에게 딱 세 가지를 당부해 왔다. 하고 싶은 말이야 많지만 세 가지 정도가 적당하다. '내가 살아보니 이렇더라' 라는 식의 말이 젊은이들의 공감을 일으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들은 너무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주례사 끝에 물음표를 달아 놓았다.

"정말 이렇게 사는 삶이 어렵겠습니까?"

좋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걸 무시하고 불행을 예약하며 살겠느냐는 뜻이다. 인생 선배의 당부를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부부는 함께 끝까지 삶을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행복한 레이스를 바라는 기원이 담긴 세 가지 당부는 이렇다.

첫째, 신나게 살되 창의적으로 살아라. 결혼은 완성이 아니라 출발이다. 젊은 부부에게 가장 큰 재산은 시간이다. 무언가를 빨리 이루려고 조급해하지 마라. 그보다 부부간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잠재력을 찾아 주고, 키워 주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서로 도우라.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규격화된 삶은 당장 안정되고 편안할지 모르지만 도무지 재미가 없다. 보람도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예를 들어, 혼수가 적으니 많으니 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 처음 하는 살림인데 왜 아파트는 몇 평 정도 되어야 하고 자동차는 중형차 이상이어야 하고 전자제품은 최신으로 사야 하는가. 왜 모든 걸 갖춰 놓고 시작하려는가. 완벽한 시작은 삶을 재미없게 만든다. 우리 세대는 단칸방에서 방 두 개짜리로 넓혀 가고, 전셋집을 전전하다 마침내 집을 사는 감격을 누렸다. 하나씩 채워 나갈 때의 기쁨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갖고 싶으나 형편이 여의치 않아 참고 있던 살림살이 하나를 마침내 구입했을 때 그 기쁨! 그것은 신기하게도 아주 오랫동안,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게 한다. 아마도 그 소소한 행복이쌓여 우리 부부와 가정을 지켜 준 것이리라.

둘째, 부부가 함께 하나의 가치관을 추구하라. 부부의 공통된 가치관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결혼 전, 늦어도 결혼 직후까지는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충분해 얘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같은 목표를 위해 힘껏 뛸 수 있다.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가치를 품고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본질을 좀먹는 허례와 허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래야 쓸데없이 비교하고 낙심하고 분별없이 모방하는 일도 없게 된다.

어떤 소설가가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좋은 소설만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소설가에게 최선의 가치란 좋은 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소설 말고 어떠한 것도 의미가 없었다. 호사스러운 음식도 재미난 일도 그에겐 하찮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호호롭고 사치스럽게 변해 가는 것도 삶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의 가치 기준에 휩쓸려 다니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가치 기준이 확실하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스스로 정한 가치를 좇아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혼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축하를 해 준다. 요즘처럼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일일이 남의 결혼식 찾아다니며 축하하는 일은 여간한 정성으로 되는 게 아니다. 예식장 오가는 데만도 서너 시간이 걸린다. 축의금 품앗이 때문이라고 비약하지 말라. 어떤 하객도 꽃처럼 아름다운 신혼부부를 바라보면 행복하기를 바라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축하를 받는 때가 결혼식이다. 결혼은 이 고마움을 갚으며 살아야 하는 과정이다.

또 평생 살아가다 보면 불특정 다수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그 신세를 그냥 감사하다고 말하는 정도로 스쳐 지나갈 것이 아니라 베풀어야 한다. 감사한 사람들에게 혹은 타인에게 무언가를 베풀면 신세 갚음이 된다. 이 고마움의 사슬은 끊임없이 이어지게 되어 이 세상은 보다 많은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보이지 않는 원칙이다.

지난 연말 우리 부부는 평소 다니던 보육원에 가서 그림을 바꿔 달아 주며 그곳 아이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눠 가졌다. 연말이라 얼굴 한번 보자는 모임도 많았고, 이런저런 행사도 많았지만 대부분 사양했다. 우리 부부에겐 아이들의 정서를 다독거려 줄 그림을 거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 집 자녀들이 무사히 잘 자라 주고 사회에서 제몫을 하는 걸 보면 우리 부부의 작은 봉사와 나눔의 덕이 아닌가 싶다.

세 가지 당부를 하고 그래도 뭔가 아쉬운 나는 주례사 마지막에 '부부가 사랑하는 법' 을 사족으로 붙인다.

"살다가 사랑이 좀 시든자 싶거든 한번 곰곰이 따져 보십시오. 저 사람은 나의 어떤 점을 좋아할까. 나는 저 사람의 어떤 점이 좋은가. 그것을 파악하여 상대의 좋은 점을 사랑하고, 그가 좋아하도록 나를 가꾸십시오. 그런 삶이 어렵겠습니까?"

 

 

 

즐거운 인생을 위한 tip

 

'여태 살아 준 내가 바보다'라며 배우자를 원망하는 사람들에게

나이가 들면 바쁘게 살아온 지난날과 달리 신체적으로 약해지고 생활세계가 축소되어 가며 활동력이 감소된다. 이 시기의 부부관계는 새롭게 부각되어야 한다. 젊은 부부처럼 살아서는 곤란한 일을 겪게 된다.

생각해 보면 노년기에 접어든 아내나 남편만큼 내 삶을 공감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부부는 오랫동안 한 집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며 비슷한 경험을 하며 살아왔다. 자녀가 모두 성장하고 나면, 부부는 앞으로 남은 시간을 함께 늙어 가는 동지이자 늙음이라는 현상을 즐기는 친구다. 상대가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서로 격려하며 인정해 주어야 한다.

옛날에 왜 그랬느냐, 당신 버릇은 평생 고치지 못한다. 여태 살아 준 내가 바보다 등 노년의 부부는 과거를 곱씹으며 마치 이날을 기다렷다는 듯 서로에게 상처 주기 쉽다. 그러나 그런 원망 속에 부부의 남은 삶은 과거보다 더 불행해진다. 그때 내 마음은 이랬노라. 이렇게 해 주길 바랐었다는 말로 상대의 공감을 이끌고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또 나이가 들면 성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 젊었을 때는 남편은 일 때문에 밤늦게 들어오고 아내는 가사와 양육을 맡았다면, 노년기에는 성별이 아니라 관심, 능력, 육체적인 힘 등을 따져 가사를 분담하는 것이다.

방송에서 황혼의 남편이 외출한 아내를 기다리며 빨래를 걷고 화분에 물을 주고 쌀을 씨어 안치면서 이렇게 말한 게 생각난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아내의 노동, 아내의 수고, 아내의 시간을 이해하게 된 남편이다.

 

 

'긍정'이란 말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좀 강한 인상이다. 큰 키에 눈썹은 짙고 입술은 굳데 다물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부드러워지더니 이젠 흰 수염만 붙이면 영락없는 산타클로스다. 나이 들면서 찍은 사진 속의 나는 눈과 입에 늘 웃음이 묻어 있다.

긍정하고 만족하고 감사하면 자연스럽게 편안한 얼굴이 만들어진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보통 '긍정' 이라 하면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으로 오해한다. 긍정이 나쁜 것도 무조건 좋게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긍정은 모든 걸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진정한 긍정은 일단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수긍하고 그 다음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삶이 좋은 쪽으로 흐르도록 하는 에너지다. 나에게도 늘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런 자세가 있다면 나쁜 일이라도 최악으로 흐르지 않도록 내 마음과 행동을 움직일 수 있다.

누구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무겁다. 습관적으로 출근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면 잠깐,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 보라. 긍정적인 사람은 오늘 좋은 일이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러나 진정한 긍정의 고수는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나든 잘 견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하루를 결정할 것이다. 그 하루가 모여 평생이 된다.

 

 

말실수를 하고 후회한 적이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속마음이야 어떻든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을 더 믿는 경향이 있다. 말을 조심하고 아껴야 하는 이유다. 평생 진료실에서 수많은 인생을 지켜본 나는 삶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도구로서의 '말'을 강조해 왔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말만 조심히 해도 인생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말 잘하는 법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별로 어렵지 않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면 된다. 적어도 하지 말아야 할 말만 안 해도 성공이다. 나는 과연 말을 조심히 잘 쓰고 있는 것일까? 말을 할 때는 다음의 열 가지를 명심하라.

 

첫째, 상스러운 말은 하지 마라. 욕이나 비하하느 말은 말 가운데 가장 낮은 하수下手다.

둘째, 상대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절대 하지 마라. 누구나 정말 듣기 싫은 말이 있다. 그 말은 뇌관이다. 건드리면 폭발한다.

셋째, 남과 비교하는 말은 피하자. 세 살 먹은 아이부터 팔십 살 먹은 노인까지, 남과 비교하면 정말 기분 나쁘다.

넷째, 인격을 무시하는 말로 공격하지 마라. 자존심을 건드리면 관계를 회복하기 어렵다. 두고두고 원망만 들을 뿐이다.

다섯째, 상대 가족을 헐뜯지 마라. 본질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상대의 가족은 어떤 상황에서도 건드리지 마라.

여섯째, 폭탄선언은 제발 참아라. '우리 헤어져', '이혼하자', '사표 내야지' 등 이런 이야기는 정말 마지막에 하는 말이다.

일곱째, 유머 있는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무슨 이야기든 심각할 필요는 없다.

여덟째, 분명한 말은 오해를 남기지 않는다. 확실한 '예스'와 확실한 '노'는 연습해야 잘할 수 있다.

아홉째, 비비 꼬는 꽈배기 말은 하지 마라. 마음이 꼬여 있을 때는 침묵하는 게 낫다.

열째, 사람을 죽이는 독 있는 말도 있다. 말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독이 되기도 하고 명약이 되기도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평소 쓰는 말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얼마나 잘 살았는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지금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