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

내 마음 나도 몰라

오키Oki 2013. 3. 1. 15:41

2012년 오월 송화가루에 날려와 뿌리를 내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한 아기소나무 개울가로 자주 왕래하다보면 눈에 잘 띄지도 않아 모르고 밟게 되는데 돌맹이의 보호를 받는다.

 

정신과에서는 환자들의 개인력을 기술하는 난의 첫 줄에 '출생시 환영받지 못한 아기(unwanted baby)' 였는지 '환영받은 아기(wanted baby)' 였는지의 여부를 기록하게 되어 있다. 한 인간이 받은 심리적 상처의 근원을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아들을 간절히 원하는 집의 넷째 딸로 태어나는 경우처럼 출생시부터 '환영받지 못한 아기'들은 살아가는 내내 부모의 뒤틀린 감정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미움을 받을 만한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삼가하는 노력으로 미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존재 자체가 상대에게 불쾌감을 일으킨다면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얼마나 난감하겠는가. - 정혜신『삼색 공감』

 

 

 

- 박용철(정신과 전문의) 지음『감정연습』중에서 -

 

 

 

도대체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지금 처한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거겠지'라고 생각하기엔 감정이 좀 과도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별일이 없는데도 불안하고 무슨 일이 생길 것같은 불길한 기분과 함께 쫓기는 것 같은 초조함이 들기도 합니다.

주변 사람에게 한 별것 아닌 실수에도 큰 죄책감이 들고 점점 더 괴로워져 밤늦게 사과 문자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다음 날 아침 '내가 왜 오버했지?'하고 후회를 합니다. 정말이지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되면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는 밀려오는 자괴감과 자책감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은 대부분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나타납니다. 그런 생각과 감정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스스로도 참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내 마음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충동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나와 타인에게 상처를 준 날에는 나의 일부인 내 마음이 참으로 다루기 어렵고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내리는 판단이나 느끼는 감정은 단지 우리가 인식하는 요소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게 확실합니댜. 나의 사고방식과 감정에는 내가 모르는 요소들이 영향을 크게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 무의식적인 요소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그저 무기력하게 감정에 휘둘릴 뿐입니다.

 

 

 

과거의 나 들여다보기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조종하는 첫 번째 요소는 각자의 과거 경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과 비슷한 상황이 되면 그때의 감정이 다시 살아납니다. 가령 어린 시절 사나운 개에게 물린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오랜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후에도 작은 강아지만 봐도 강렬한 공포심과 불안감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원래 개 공포증이 있나 봐' 하며 영문도 모른 채 평생 동안 개를 피해 다니며 살지도 모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 경험의 흔적이 영향을 준 것입니다. 즉, 각자의 독특한 과거 경험들이 현재의 감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과거 경험은 개개인마다 천차만별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정신분석이라는 도구가 그 과정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내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긴 이릅니다. 외래 진료를 하면서 비합리적인 생각과 조절되지 않는 감정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비슷한 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이라면 공통적으로 거치는 어린 시절의 과정들이 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나 강렬한 감정이 그 시기에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됩니다.

예컨대 유아는 눈앞에 있던 사물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으면, 실제로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물이 눈에 띄면, 세상에 다시 나타난 것으로 믿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물체는 존재하고 있다는 '대상 항상성'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어른의 눈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유아 시기의 사고방식은 성장하는 동안 여러 단계를 거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뀌어 갑니다. 한 발달 과정이 끝나고 다음 단계의 발달 과정에 진입하면 이전 단계에서 마음을 지배했던 원시적 사고방식은 필요가 없게 되고 보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그 왕좌를 내주고 쫓겨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의식이라는 어둠의 세계로 쫓겨나서 다시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억압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억압된 과거의 사고방식은 때때로 다시 나타날 수 있습나다. 평소에는 합리적인 생각을 하다가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급한 상황이 되면 나도 모르게 미신 같은 징크스를 믿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무의식에 잠겨 있던 원시적 사고방식이 억압을 뚫고 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누구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과거 어린 시절의 경험과 유사한 상황에 놓이면 이런 일들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과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스트레스 상황이 지나가면 과거의 세력들은 진압됩니다. 어린 시절의 원시적 사고방식과 감정은 억압되고,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성인의 사고방식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의 원시적인 생각과 감정이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스트레스가 심했거나 해소되지 못한 괴로운 경험이 있는 경우, 몸은 컸지만 사고방식이나 감정이 바뀌지 못하고 계속해서 유아적 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되었어도 마음속엔 여전히 어린아이가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지배하는 네 가지 요소

마음이란 것은 감정과 생각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즉, 내 마음에 영향을 주고 있는 요소들을 알아본다는 것은 현재 내 감정과 생각에 어떤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일단 감정과 생각도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방금 전 좋은 일이 있어서 기분이 좋은 상태라면 같은 일이라도 좋은쪽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가령 우리는 망쳐 버린 시험 성적표는 부모님의 기분이 좋은 순간에 보여 드려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부모님이 보다 좋게 생각하고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즉 부모님이 나의 성적을 평가할 때 당시의 기분이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기분이 생각에 영향을 준 것이지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방금 전 내가 한 생각이 큰 영향을 줍니다. 내가 현재 어떤 생각을 했느냐에 따라서 내 감정도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옛날 어떤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 부부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아들은 우산 장수를 하고 있었고, 둘째 아들은 소금 장수를 하고 있었답니다 이들 부부 중 남편은 항상 걱정을 했습니다. 비가 오면 둘째 아들 걱정을 했고, 날씨가 맑으면 첫째 아들 걱정을 했습니다. 반면 부인은 항상 기분이 좋았습니다. 날씨가 맑으면 둘째 아들 생각을 했고, 비가 오면 큰아들을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같은 현상을 두고 부부가 서로 다른 감정 상태를 갖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생각 때문입니다. 방금 전 내가 한 생각이 거기에 맞는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생각과 감정은 서로에게 실시간으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감정과 생각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소는 현재 나의 신체 상태입니다. 다소 극단적인 예로 몸이 심하게 아픈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몸이 아픈 경우에는 기분 좋은 생각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짜증이 나고 우울해집니다. 즉, 같은 상황이라도 현재 내 몸 상태에 따라 기분과 생각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예가 아니라도 미묘한 신체 증상의 변화에 의해서도 내 마음에 큰 변화가 올 수 있음을 이제부터 살펴볼 것입니다.

현재 나의 감정과 생각에 영향을 주는 마지막 요소는 나의 행동입니다. 어떤 방송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봉사 활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힘들게 봉사 활동을 한 사람들은 인터뷰에서 몸은 힘들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여러 실험에서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즉, 내가 현재 한 행동에 따라 나의 마음 상태가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봉사라는 행동이 기분을 좋게 만든 것이지요.

 

 

현재의 생각, 감정, 신체 상태, 행동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신체 상태와 행동이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주고, 반대로 생각과 감정이 신체 상태와 행동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네가지 요소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 네 가지 요소를 통일성 있게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생각을 했다면 거기에 맞는 감정, 즉 불안이나 공포감이 들고, 거기에 맞는 신체 상태인 땀이 나고 심장이 뛰는 증상이 나타날 것이며, 또한 즉시 도망가려는 행동이 나타날 것입니다. 반대로 편하게 누워서 쉬고 있는 생각을 했다면 기분이 편안해질 것이며, 신체 상태와 행동도 이완되고 안정될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요소들은 다른 요소에 맞게 조절되고 변형됩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을 신체 상태와 행동으로 보고 '마음'을 생각과 감정으로 본다면 이 말은 신체 상태, 행동, 생각, 감정이 하나로 통일성을 이룬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내 마음을 지배하는 이 네 가지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면 감정 조절에 대한 큰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생각에 변화를 주어 감정을 조절한다

인지, 즉 우리의 생각은 감정, 행동, 신체 상태와 통일성을 이루려 하기 때문에, 이런 특성을 이용하며 현재 내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특히 현재 가자 각광받고 있으며 정신과 영역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지고 온 감정과 인지의 연관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려 합니다.

인지와 감정의 관계에서 다루고 싶은 핵심은 생각을 조절하면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생각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 보자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에 앞서 잠시 반대 방향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거꾸로 감정이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 말입니다.

기분 상태가 우리의 생각에 주는 영향은 꽤나 큽니다. 사랑에 빠지면 갑자기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지요. 반대로 우울할 때는 생각이 점점 부정적인 쪽으로 향합니다. 우울증이 깊어지면, 즉 마음속에 슬픈 감정이 극도로 심해지면 망상이란 것이 생겨납니다. 망상이란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엉뚱한 생각을 확신하며 믿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병원에서 모든 검사를 해서 이상이 없다고 나왔는데도 자신은 죽을병에 걸렸고 서서히 내장이 썩어 가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지요. 우울증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을 보면 '감정이 생각을 이렇게까지 바꿀 수 있을까?' 하며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럻다면 감정을 직접 조절하여 생각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불길한 생각이나 쓸데없는 걱정으로 괴로울 때는 기분 좋은 음악을 듣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즐거웠던 추억이나 장소를 미리 생각해 두었다가 부정적인 생각이 들때 즉각적으로 떠올리는 연습을 해 두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방법이며 효과가 강력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까지 기분을 직접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약물뿐입니다. 실제로 항우울제나 기분 안정제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안정시켜 줄 뿐만 아니라 생각도 변화시켜 줍니다. 하지만 약을 복용하지 않고 개인의 노력만으로 감정을 직접 조절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감정에 영향을 주는 방식을 활용해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 보자는 것입니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바꾸긴 어려워도 생각을 통해 간접적으로 감정을 조절한다! 이것이 아론 벡(Aaron T. Beck)이라는 정신희학자가 발견하고 체계화시킨 인지치료입니다.

 

 

 

감정 뒤에는 의식하지 못한 생각이 있다

최근에 인지치료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생각, 즉 인지라는 요소는 우리가 직접 다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약물 이외에는 거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은 감정을 조절하려는 시도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만 했습니다. 감정 자체를 바로 조절하려고만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감정도 바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감정 조절의 가능성이 활짝 열렸습니다. 생각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며, 교육을 통해서 생각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또하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해 볼 수도 있고, 글로 적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내 생각이 맞는이 틀리는지 평가해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정 조절에 있어서 우리의 일차적 목표를 감정 자체가 아닌 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정말 유용합니다. 생각이 합리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뀐다면 감정도 변화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