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사는 이야기

2012년 여름이야기, 셋

오키Oki 2012. 8. 22. 18:27

남편은 아무런 준비도 없던 때에 비를 맞고도 기분좋을 때도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대부분은 일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소요한다. 일은 점차 우리를 녹초가 되게 하고 우리 영혼의 진을 빼 먼지처럼 만들고 만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쓰러지고 무너지는 이유는 거대한 도덕적 재앙이 아니라 일상의 고된 일때문이다. 충분히 잠도 못 자고 출퇴근길 러시아워에 시달려야 한다. 그렇다고 눈의 피로를 풀어 줄 상쾌한 풍경이 눈에 쉽게 띄는 것도 아니다.

카프카의『변신』에서 그레고르는 잠자는 어느 날 깨어나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여기서 카프카는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이유를 일 때문이라고 암시한다. 일이 그의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어 결국 파괴하기에 이르렀다고 넌지시 말하는 것이다.

 

세상에나… 정말 내가 기진맥진 힘들고 숨 가쁜 일을 택했구나.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되는 아침저녁 출퇴근, 어떻게 된 게 일과 관련된 골칫거리가 일 자체보다 훨씬 많다. 거기다 출퇴근길에 견뎌 내야 하는 그 고문 같은 시간은 어떤가. 언제나 기차 연결 편을 걱정해야 할 팔자다. 되는대로 나오는 형편없는 음식도 내가 감수해야 할 몫이다. 하물며 데면데면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건사해야 한다. 영원이라는 말과 좀체 어울리지 않으며 불확실하고 절대 친밀해지지 않을 관계, … 항상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건 사람을 완전히 미치게 한다. 사람에게는 잠이 필요하다.

 

- 크리스토퍼 해밀턴『일생에 한 번 내게 물어야 할 것들』에서

 

 

 

 

작은딸은 교육봉사일정을 다 소화시키고

백두산천지를 보기위해 새벽3시에 나섰다고 한다.

중국으로 떠나기전 작은딸이 한말이 떠오른다.

엄마 아빠!

친구들이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으려면

3대가 적선을 해야 한다고 그러던데요?

 

작은딸은 날씨가 잘 따라줘야 볼수 있다던 

백두산 천지를 선명하게 볼수 있었단다.

 

엄마 아빠는 3대 적선의 힘이 아니라.

너희들이 교육봉사라는 좋은 목적으로 가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조선족 아이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합심하여 아낌없이 도와주고

일정 마지막코스로 백두산에 올랐으니

최선을 다해 동포애를 발휘한 교육봉사단원들의

마음을 하늘도 알고 땅도 알아 주었기에 

백두산 천지를 작은딸의 눈앞에 펼쳐준 것이라 생각된다.

 

2주가 금방 가더라며 20일 저녁 부산으로 돌아와

밝은 모습을 보여줘서 반가웠다.

 

 

 

 

 

남편과 나는 무더위도 물러가고

앞으로 비가 잦아진다는 소식에 

돌담쌓기에 또 다시 땀방울을 흘렸다.

 

 

 

 

한달전 임시방편으로 쌓아둔 큰돌은 모두 덜어내고

적당한 크기의 돌들만 사용하자고 한다.

 

 

 

 

돌담 폭이 한자나 돼서 돌담 속이 채워져야 

돌담의 높이가 올라갈 수 있기에

각시야~~  밥좀 채워줘라.

(다른 사람은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울남편은 밥이라고 부른다.)

 

 

 

 

이런 돌담은 중장비기계(포크레인)가 할 수 없어서

 

 

 

 

사람손으로 쌓아야 튼튼하단다.

 

 

 

 

각시야~~

우리가 이 땡볕에 땀을 흘리며 돌담을 쌓지만

사람이 영원히 산다면

이런 돌담은 아무도 쌓지 않을 것이다.

니캉 내캉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이렇게도 해보는 것 아니가.

 

어릴적부터 남편의 할머니께서는

"섞어지면 문드러질 육신 애끼면 뭐하노"

할머니는 마을분들이 돌아가시면

그분들의 몸을 다 닦아 드리곤 하셔서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자주 보셨다며

"사람이 착하게 살면

땅바닥에 튀어나온 돌에 걸려 넘어질라카면

돌멩이가 싹 비켜 간다"

엄마를 일찍 여윈 불쌍한 손주의 손을 잡고서 늘 당부하셨단다.

 

 

 

 

남편의 할아버지께서는

마을공동묘지 근처에 논이 있어서

비가 부슬거리는 날에도 논일을 하러 가시면

어린 손자가 무섭지 않느냐고 여쭤봤더니

"이놈아 남자는 간이 대덕석이 돼야 한다" 며

위험이 따르는 일을 무서워해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행동과 위험이 적절히 뒤섞인 삶은 죽음의 두려움을 완화시킨다. 이는 고통을 견디는 인내를 줄 뿐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붙잡고 위태로운 유지 상태를 조목조목 깨닫게 한다."  - 윌리엄 해즐릿「죽음의 공포에 대하여」

 

 

 

 

 

이곳에 있었던 흙더미에서도 돌들을 다 골라내어

 

 

 

 

 

작은 돌들은 밥채우는데 보탰더니 이쁜 돌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돌담은 남편과 나의 합작품이지만

현재 큰항아리 주변의 돌담은

딸들이 초등생이였을때

돌담 속(밥)채우기를 거들어 만들어졌다.

돌담쌓기를 통해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딸들의 마음에 오래동안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남편 혼자서 들수 없는 큰돌은

내가 도와줘야 하는데

내가 무슨 큰힘이 될까만은

앗차! 하는 순간

손이나 손가락이 치어서 다칠수 있다.

 

남편이 요~시~땅! 하고 외치면

서로가 젖먹던 힘까지 다 내줘야 한다.

나는 남편을 위하고

남편은 나를 위하면서

그러면 꿈적도 않을것 같은 돌들이 넘어가줘서

한번 넘기고 두번 넘기고~~~

길가 돌담쌓기 재료에 보태어 놓는다.

 

 

 

 

 

 

 

 

 

 

21일 정오때

이쁜돌담 주변도 다 정리되니 시원한 소낙비가 퍼붓는다.

 

 

 

 

 

빨래감으로 다 벗어내야 할 옷이기에

 

 

 

 

 

땀흘린 뒤 찾아온 시원함에 옷이 다 젖어도 좋다. 하하하 

 

 

 

 

 

낡은 리어카여!

녹차부부와 더불어 그동안 무거운 돌들을

운반하느라 참으로 고마웠어요.

 

 

 

 

 

어떤날에는 하루 두 번 빨래감이 나올때도 있었다.

남편과 내가 벗어낸 흙투성이 옷들을 빨아내는데

수동세탁기 역할을 도맡아해준 넓다란 바위빨래터다.

 

 

 

 

 

간밤에 내린 비가 소강상태일때

호박잎쌈으로 보양하자고 밭에 나섰다가

 

 

 

 

 

또다시 후둑후둑 빗방울이 떨어지자

걸음아 날 살려라~~    자기짱

 

 

 

 

 

 

 

 

 

 

 

누군가에겐 쓸모 없다고 여긴 돌들일지라도

우리 부부는 저렇게 쌓인 돌만 쳐다봐도 배가 부르다.

 

돈 주고 사다 재어 놓은 돌들이라면

그냥 무심코 볼테지만

땡볕에서 힘들여 골라낸 돌이고

땡볕에서 힘들여 옮겨 놓은 돌이기에.

 

 

 

 

흙이 묻었던 돌들을 깨끗이 씻겨지는 빗줄기에 감사한다.

몇년간은 허연 돌담으로 있겠지만 세월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운치를 더해주는 돌담이 될 것이다.

 

터닦기 공사를 할때 마을분들에게

앞쪽 대신 뒷쪽을 손댄다고 비난을 받았는데

집이 한번 앉혀지면 뒷쪽은 영원히 손을 댈수 없다며

남들이 뭐라고하던 남편은 소신대로 밀고 나갔다.

 

앞쪽은 돈을 들여서 포크레인의 힘을 빌리면

쉽게 손 댈수는 있다면서

우리는 그동안 앞쪽을 신경쓰기 보다는

포크레인이 들어갈 수 없는 구석진 곳들을

먼저 다듬어 왔던 것이다.

올여름 아직은 우리고장에 집중호우가 없었기에

자연의 응원이 참으로 고마웠다.

 

 

독일의 빔 벤더스 감독 작품《베를린 천사의 시》이 영화에 등장하는 천사 가운데 한 명은 인간처럼 죽을 운명이 되기로 결심한다. 순수한 영적 존재로 살아가는 데 싫증이 났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천사는 진짜로 밤을 먹어 보고, 걸을 때 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끼고,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 주고 싶어 한다. 신문을 넘기며 읽다가 손가락이 까매지는 것도 경험하고, 머리에 열도 나 보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 다리를 쭉 펴며 기지개도 켜고 싶어 한다. … 그는 이 모든 걸 하고 싶다. 원하는 대로 이 모든 경험을 한다는 건 다시 말해 언젠가 죽게 된다는 뜻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천사의 소망을 두고 이렇게 말할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죽게 된다는 게 '불구하고'의 의미가 아니라 '때문에'라는 의미를 지니므로 천사를 벗고 인간을 입으려 한다고. 우리는 웬만해선 존재의 구체성이나 유형성에 놀라워할 수 없다. 만약 그 유형적 상태를 우리의 죽을 운명, 즉 유한성으로 값을 치르지 않는다면 손에 잡히는 물질세계에 놀랄 일이 없다. 유형성과 유한성은 결국 한 가지 경험에서 비롯된 일부분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의 영혼이 어떤 물건이나 동물에게 갇혀 있다는 생각 덕분에 우리는 존재의 특징을 일깨워 볼 수 있다. 만약 운이 좋다면 우리의 유한성에 대해 얼마간의 위로를 받는 게 가능하다.

 

- 크리스토퍼 해밀턴『일생에 한 번 내게 물어야 할 것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