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

'행복한 마음' = 러너스 하이

오키Oki 2012. 7. 21. 17:08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

달릴 때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지지만 삼십 분 이상 달리면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경쾌한 느낌이 드는 순간 최고조에 이르는 황홀경을 말한다. 런닝 하이 (running high)혹은 운동 하이(exercise high)라고도 한다.

 

 

 

- 동경대 출신 스님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못난 자신 버리기 』중에서 -

나도 몰랐던 못난 자신을 버리고 내 마음의 행복 찾기 연습!

 

 

 

'못난 자신=성격'에게 이별을 고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지도록 노력하면

나 혼자만 편한 게 아니라 나를 둘러싼 기운까지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것만으로도 타인에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하다.

 

희망해

 

성격 좋은 사람은 남에게 잘해 주고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욕심, 분노, 어리석음 등 스트레스의 근원이 되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비뚤어진 마음' 바로잡기

 

불도에서는 현실의 가상화가

무지, 즉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적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무지'라는 말에는 머리가 나쁘다는 뜻이 포함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한순간에 가짜 행복과 바꿔치기하고

마음을 제멋대로 일그러뜨리는, 매우 영리하고도

교활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영리한 '무지'도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신체의 감각은

속이지 못한다. 마음속에서 모종의 불쾌한 반응이 일어나며

가슴이 욱신거리거나 배가 살살 아프고

미간에 주름이 생기는 등의 신체 반응이 덩달아서 일어난다.

말하자면 '그런 불쾌한 감정은 나 자신한테 피해만 입힐 뿐이니

당장 그만둬'라는 SOS 사인이다.

 

 

사실은 남의 험담을 하고 싶어질 때

혹은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질 때,

여러분의 몸속에 나쁜 반응이 일어나면서 '그만해'라는

SOS 사인이 반드시 나타난다.

 

 

성격이 나쁜 사람일수록

몸과 마음에서 보내는

SOS 사인에 둔감하므로

자신이 피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깨닫지 못할 뿐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험담을 할 때

왠지 꺼림칙하고 마음이 괴로워야 하는데

신체 반응에 둔감하다 보니 '가슴이 후련하다'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런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 권하고 싶은 방법이 있다.

하루에 한 번 알몸이 된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며 총점검해 보는 것이다.

자신의 배, 가슴 그리고 얼굴이 어 떤 지 를…….

 

 

거울에 비친 잔뜩 찌푸린 얼굴을

그날 무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비뚤어진 마음을 조금은 교정할 수 있을 것이다.

 

 

 

소리 높여 옳은 말을 주장하는 이유

 

'밤샘은 몸에 해로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애정이야'

'인간의 마음은 변하기 쉬운 법이지'

옳은 말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듣는 사람은 '알고는 있 어 도…… 글 쎄……,

그런데 뭘 그렇게 정색을 하고……' 라며

더 기분이 가라앉기도 하고 가끔은 화가 불끈 치밀기도 한다.

 

 

그런데 왜 옳은 말을 큰 소리로

주장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아마도 뻐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대다수 사람이 이해할 만한 논리를 내세움으로써

마치 암행어사가 마패를 꺼내듯

사람들의 위에 서 있는 기분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옳은 말을 끄집어냄으로써 뭔가를 야단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이 역시 '뻐기고 싶은 마음'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런 사람은 상대에게 뭔가를 지적할 때 '옳다' 혹은 '그르다'라며

마치 객관성을 실은 듯한 말투를 즐겨 쓴다.

하지만 그 뒷면에는 '이렇게 옳은 말을 하는 나는 그런 것도

모르는 당신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그런 모습은 아무래도 주위에 불쾌한 인상을 풍기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도 뻐기고 싶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절실하게 느끼는데,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혹시

'뻐기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하는……,

그만큼 모두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고

속으로 울부짖고 있다.

 

 

큰소리로 주장하는 옳은 말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 쉬운

이유는 '나는 늘 옳고 정당하다. 당신보다 낫다'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옳은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상대를

부정하는 분노의 에너지가 움직이고 있다.

 

 

분노라는 것은 모습을 감춘 채 사람의 기분을 은근히

거스르다 보니, 비록 옳은 말을 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모든 것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몰고 가 버릴 가능성이 크다.

 

 

 

"어머, 어떡하니?"의 속뜻

 

"얼마 전에 애인이랑 헤 어 졌 어……"

"아, 상사랑 잘 안 맞아서……"

이렇듯 친구에게 하소연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머, 어떡하니? 불쌍해라"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더 우울해지거나 불쾌했던 적이 없는가?

이처럼 남을 위로한다는 것이 상대의 눈엔 자칫하면

즐기는 듯 보일 때가 있다.

 

 

이는 우울해하는 상대의 얼굴에

거울을 매달고 자기 모습을 비춰 보며

'아, 나는 이 사람보다 낫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듣는 쪽은

순수하게 나를 걱정해 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우월감을 민감하게 느끼고

더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다.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상대,

예를 들면 TV 속의 '이혼한 연예인'이나 '재난을 당한 사람'에 대해

'불쌍하다'라고 말하며 과자 따위를 입에 물고

방송에 몰입하는 상태와 다를 바 없다.

불쌍한 처지의 상대에 대해 '나는 이 사람보다 행복하다'라고

느끼므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장면이라도

태연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상대를 진심으로 동정할 때도 있다. 이때 위로하는

마음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오로지 우월감밖에 없다' '우월감도 꽤 포함되어 있지만

어느정도는 상대의 처지도 생각한다'

'우월감도 조금은 있지만 상대의 처지를 더 많이 생각한다'

'우월감은 전혀 없고

상대만 생각한다' 라는 식으로.

 

 

하지만 인간은 무의식중에

상대보다 높은 위치에 서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불쌍하다'라는 말 뒷면에 '사악한 마음'이 없는지

항상 되돌아보도록 노력하자.

 

 

 

감정 조절 실패작 '화내기'

 

'모두 너를 위해 그러는 거야!'

이 말은 부모가 자녀를 꾸짖을 때 자주 쓰는 진부한 말이다.

바라건대 정말로 자녀를 위해 그러는 거면 좋겠지만

사실은 이 말에도 내막이 있다.

비교적 상대를 위한 때도 있고

상대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을 위한 때도 있고

대체로 자신을 위한 때도 있고

전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닐 때도 있다.

 

 

애당초 무엇 때문에 '너를 위해……'라고 내뱉는 걸까?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자녀가 저녁식사 시간에 놀기만 하고 잘 먹지 않아,

짜증이 나서 "왜 안 먹는 거야!"라고 화를 냈다.

분명히 들린 말은 아니지만

화를 내어 상대를 억압했으므로,

마음은 '미안하다' '내가 너무 심했다'라고 느낀다.

그래서 '너를 위해 그런 거야'라고 변명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부모의 표정을 보면 교육적 배려인지 아니면 그저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는 것인지 다 느껴지기 때문이다.

 

 

"밥 먹고 놀자~"라고 감정적이지 않으면서도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데

화를 냈다는 것은

명백히 감정 조절을 잘 못 했다는 이유밖에 없다.

그러므로 거짓말이라는 것을 금세 들켜 버리고 만다.

 

 

'너를 위해……'라며

무조건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려는 말투는

'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라는 식의

거만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런 태도를 벗어던지고

"네가 안 먹으면 엄만 슬퍼"라고

부드러운 말투로 '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상대에게 더 잘 전달되지 않을까?

 

 

 

'칭찬 교육'이 범죄 행위?

 

칭찬을 통한 교육이 요즘 유행한다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왠지 수상쩍다. 그런 교육이 정말 효과가 있다면

현대의 젊은이들은 성격이 온화해야 한다.

옛날보다 '착하구나, 똑똑하구나'라는

칭찬을 많이 들으며 성장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교육을 받은 현대의 젊은이들이

과연 인내심도 강하고 자신감에 넘치는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이다.

참을성 없이 안달하는 젊은이들이 훨씬 더 많이 눈에 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조금 주의를 들었을 뿐인데

발끈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칭찬은 무조건 좋은 거야'라며 무턱대고

상대를 칭찬하는 것은 범죄 행위에 가깝다.

상대를 깎아내리며 부정하는 행위는 말할 필요도 없고

사실은 칭찬하는 것 역시 얼핏 긍정적인 행위 같아 보여도

간혹 상대를 부정하는 결과로 연결되기도 한다.

 

 

"뭐 칭찬이 나쁘다고!?"라며

혼란스러워 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자.

당신이 직장 후배의 교육 담당으로 임명되었다.

업무를 가르쳐 주면서 "일도 빨리 배우고 잘하는데?"라고

사람들 앞에서 칭찬했다고 하자.

그러면 후배는 일시적으로는 기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잘못하면 실망하겠구나'라는 불안감이 마음속 깊이 깔리게 된다.

 

 

즉 칭찬에는 대체로 '일을 빨리 배우니까'와 같은

조건이 따라붙게 마련이므로

그 조건이 사라진 상태를

부정하는 셈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얼굴이 예쁘네' '스타일이 좋네'라며

누군가의 외모를 칭찬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그 순간에는 기분이 나쁠리 없지만,

무의식 세계에서는 '나도 언젠가는 늙겠지?

십 년 정도만 지나도 이런 칭찬을 받을 수 없을 거야'라며

결핍감과 불안감을 끌어안게 된다.

 

 

그런 고통을

상대에게 주기 않기 위해서라도

무턱대고 칭찬하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질투하는 마음'의 매커니즘

 

'저 사람은 재미있는 일만 해,

나한테 돌아오는 것은 하찮은 일뿐이고……'

'사람들은 왜 ○○씨만 좋아할까?

남들과 자신을 곧잘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승려들이라면 '흥! 나보다 독경을 더 잘하다니……'라고

질투할 것이다.

 

 

질투라는 것은

자신에 대한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오만함'과 '집착'에서 생성되는 감정이다.

 

 

얼핏 상대에게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가 어떤지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친구와 식사하기로 한 날짜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약속 시간이 다 되어 취소하였다고 하자.

그리고 그 이유가 다른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면,

아마 '약속을 깨다니!'라며 괘씸해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은 다른 감정이다.

그 '다른 친구'가 누구이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선택되었다'라고 생각함으로써

'내가 지닌 가치가 다른 친구보다 더 낮으니 나는 열등하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불쾌한 것이다.

이런 감정이 바로 질투이다.

 

 

누구나 자신이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업신여김을 당하다니 정말 굴욕적이야!'라는 느낌은

될 수 있으면 느끼고 싶지 않은 법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화내는 이유를 '약속은 지켜야 한다'라는

대의명분, 즉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자기평가에 자신이 없고 불안감을 느낀다.

 

 

그럴 때에

갈기갈기 찢어진 자신감을 되돌리기 위해

대의명분을 표방하며 상대에게 공격을 퍼붓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상대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에게 내려진 부정적인 평가를

더 혹독하게 나쁘게 만드는 길이다.

 

 

만약 공격적인 성향이 드러날 것 같으면

자기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꼴사나운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고 궤도를 살짝 수정해 보면 어떨까?

 

 

 

마음속 마약은 질투

 

'아아, 그 사람은 왜 내가 아닌 그녀를 선택했을까……'라고

밤마다 베갯잇을 적시거나 ○○씨만 승진하다니 이해할 수 없어.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라며 혼자 안달하기도 하고…….

 

 

질투하는 마음은 전혀 즐겁지 않으며

가슴이 꽉 막힌 듯 괴롭기만 하다.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감정인데 인간은 왜 질투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사실은 마음이 그 상태를 즐기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파도가 전혀 없는 잔잔한 상태를

지루하다고 여기고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질투는 괴롭지만

그 감각은 강한 현실감을 동반한다.

우리의 마음은 바로 그 자극을 원하고 있다.

 

 

생명에 '살아 있다'는 실감을 주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주면서

지루함을 한 방에 날려 버린다.

그 결과 '질투는 즐겁다'라고 마음이 착각하는 것이다.

이는 '뇌의 구조'라고 단언해 버리는 편이

더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인간의 표면적인 의식은 제쳐 놓고

무의식 세계의 정보 처리 구조를 분석해 보면

어떤 일에는 '자극을 얻어 좀 더 흥분하고 싶다'라는 소망을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마음은 '잡식'이므로 자극에 대해 '편식'도 하지 않는다.

경마에서 대박을 터뜨려 흥분하는 상황이든,

연애 초기에 가슴이 두근거려 쉽게 잠들 수 없는 상황이든

아니먄 마약이나 질투라도 인간의 마음은 즐겁게 받아들인다.

마음을 강하게 꾹 눌러 주는 것이라면 뭐든지 OK인 셈이다.

그 중 하나가 우연히 버릇으로 자리 잡으면

중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악영향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질투가 마약보다 더 성가신 존재일 것이다.

정신이 들어었을 때는 이미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 한 상태까지 가지 않도록

질투의 무시무시함을 늘 마음에 새겨 두자.

 

 

남의 불행은 꿀맛?

 

'질투하지 않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친한 친구의 결혼이 정해져서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 주고 싶은데

'좋겠다. 나는 아직 애인도 없는데……'라며

너무 부러운 나머지

마음이 초조해지거나 우울해진 경험,

다들 있지 않은가?

 

 

풍족한 상태나 행복한 모습을 보면

자신과 비교하며 '열등한 나'를 의식하므로

사람들은 종종 불쾌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반대로 풍족했던 것이 사라지거나

행복의 절정에 도달했던 사람이

갑작스레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쩌면 내가 더 나을지도 몰라……,

그래, 나는 가치 있는 인간이야'라고 생각하며

안심하므로 큰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라고 여겼던 친구의 행복조차도

순수한 마음으로 기뻐할 수 없게 된다. '친구가 행복해지는 길이니

기뻐해줘야지'라며 억지 미소를 지을 수는 있다.

그러나 '남의 불행은 꿀맛'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그 꿀을 맛보지 못하는 상태가 괴로워서

결국 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만날 때마다

나쁜 에너지를 쌓아 뒀다가

뜻밖의 상황에서 폭발시켜 버리곤 한다.

 

 

우선

친구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에 의식을 집중시켜 보자.

초조하면서 우울한 마음을 끌어안고 있기란 무척 괴로운 일이다.

 

 

그 괴로움을 끝까지 맛을 본 마음은

'상대의 행복을 기뻐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상대의 행복을 기뻐할 때의

'온화하고도 평화로운 기분'에

또 의식을 집중해 보자.

그러면 당신의 마음이 '남의 불행은 꿀맛'이 아니라

'남의 행복이야말로 꿀맛'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저절로 남의 행복을 기뻐할 수 있게 된다.

 

 

 

흑마술의 주문, 뒷담화

 

퇴근길에 동료 직원과 술을 마시러 가서

마음에 안 드는 상사의 험담을 하며

스트레스를 실컷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돌아갈 때가 되면 왠지 기분이 우울해지는……

이런 경험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무심코

'그 사람,

이치에 맞는 이야기를 하는 건 좋은데

버럭버럭 화를 잘 내서 탈이야'라며

나도 모르게 험담을 하는 경우가 있다.

 

 

열심히 수행한다는 사람도 이러하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선반 위에 올리고

남을 내려다보며 험담하고 싶어지는 성질을

가지고 태어나나 보다.

 

 

우리는 왜 험담을 하는 걸까?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뻐기거나 자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자기 자랑은 창피하지만

'비판'이라는 이름의 험담은 술술 잘도 나오는 법이다.

남의 행동에 대해 비판하는 척하며 거기 나타난 거울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이 나쁜 거야, 나는 그 사람보다 나아, 내가

최고야! 나는 아직 쓸 만해!'라고 주문을 거는 것이다.

 

 

둘 이상이 모인 자리에서의 뒷담화는

모두 함께 거울을 들고 즐기는 흑마술 파티와 같다.

"그 정치가는 틀렸어."

"그 상사, 능력도 안 되면서 지시를 내린다고?"

"그 배우가 TV에 나오면 채널을 돌리고 싶다니까"…….

 

 

얼핏 상대가 지닌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스스로 주문을 외우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보단 괜찮지'

'우리는 그만한 능력이 돼!'

'우리는 아직 쓸 만해!'라고…….

자신이 마법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이렇듯 뒤에서 험담을 즐기는 사람들뿐,

분별 있는 사람들의 눈엔

우스꽝스럽고 꼴사나운 모습으로 비친다.

 

 

그러므로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 주위에는

'멋진 사람'을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고

질 나쁜 패거리들만 득실거리는 것이다.

 

 

 

행복은 남남

 

부자를 보며 '좋겠다. 돈이 저렇게 많으니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돈이 많으면 오히려 더 불행해'라고

거만한 표정으로 단정하는 사람도 있다.

양쪽 다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사실은 둘 다 틀렸다.

분명히 돈이 있으면 안심이 되고

마음의 여유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행복의 한 가지 요소로서 '부족함 없는 환경'은

어느 정도 중요하다.

게다가 돈 때문에 느끼는 조바심이나 초조감 없는 상태는

좋은 성격을 형성하기에도 유리하다.

 

 

그런데 돈이 많다는 사실 때문에 '결핍감'이 증가할 때가 있다.

'돈'에 대한 '욕심'이 때때로 마약과 같은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돈'과 '욕심'의 연결은

'모두가 원하는 것을 많이 갖고 있으면 내 가치가

올라간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온갖 명품으로 몸을 치장하는 데에 열중하지 않던가?

'돈'은 사람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것이니

가지 기준으로 삼기 쉽다.

연봉이 1억 원인 사람은 '더 이상의 돈은 필요 없다'라고

생각할 것 같지만,

예를 들어 야구 선수의 연봉이 1억 2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떨어진다면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내 가치가 2천만 원 분 떨어졌다'라고 인식하고 불쾌감을 느낀다.

 

 

'행복'이라는 것은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고

불쾌감에 시달리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돈을 둘러싼 '욕심'으로 마음이 괴롭다면

그런 상태를 '행복'이라 할 수 없다.

 

 

'돈'과 '행복'은

매우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돈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는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행복'은 '욕심'의 많고 적음에 달렸다.

 

 

 

'돈 욕심' 버리기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나쁜 걸까요?"

이런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돈을 버는 일'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벌고 싶다'라는 생각에 집착하다 보면

부자가 아닌 '지금 이 상태'가 괴로우므로 하루하루가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까?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 '욕심' 때문에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벌이게 되므로, 보통 사람들은 마음이

더욱 불안정해질 위험이 있다.

 

 

가장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아무래도 투자겠지만

투자는 일단 '고위험 고수익'이 기본이다.

그래서 주식에 투자해 볼까 생각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주가의 오르내림에 마음이 휘둘리고

초조감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한다.

운 좋게 이익을 내어 '아, 다행이다'라고 안심했다 하더라도

그때까지 줄곧 마음이 어지러웠을 테고

만약 실패하여 대출에 손을 대기라도 했다면

초조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은 자극을 즐긴다.

그 상태가 습관이 되면 자꾸자꾸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되고

또 자극이라는 것은 주가의 변화폭이 클수록 강해지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50만 원이 100만 원으로 불었다!'라며 기뻐했는데

나중에 부자가 되면 30억 원에서 100만 원 늘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고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돈벌이 외에는 아무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분수에 맞지 않은 거액을 벌기 위해

부정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지름길로 달려가다 보면

그 과정에서 좋지 않은 습관이 마음에 정착되어

인간관계 등 생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러면 행복이 자신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게 마련이므로

'돈'에 대해서는 늘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행복한 부자'

 

'돈에 대한 욕심으로 마음이 어지럽다'는 이야기를 듣고

'맞아, 행복한 부자는 없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마음의 훈련이 잘되어 있다면

'행복과 돈'은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다.

 

 

'마음의 훈련'을 위한 아주 간단한 방법 한 가지를 소개하겠다.

'돈을 벌고 싶다'는 집착을 버리고

그저 눈앞의 일에 열심히 임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부하직원이 있다면

'돈을 벌고 싶다'는 말을 늘 입에 담는 사람과

그저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예쁠까?

아마 후자일 것이다.

 

 

상사에게 귀여움을 받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업무를 맡게 된다면

틀림없이 일하는 것이 더 즐겁다.

그러면 더 열심히 하게 되므로 성과로도

쉽게 연결될 테고 봉급이 오를 가능성도 더 커진다.

'부자'에다 '일을 즐기는 행복'까지 덤으로 얻는 셈이기 때문이다.

 

 

즉, 눈앞의 일에 열심히 임하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부자'가 되는 가장 바람직한 지름길이다.

 

 

 

누구나 구두쇠를 싫어한다. 왜?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부자가 되고 싶다!'

이 말은 왠지 저급한 것 같아서 잘 입에 담지 않는 사람도

"세일 기간이 언제야?"라거나

"30퍼센트 할인해서 샀어!"라는 말은 쉽게 내뱉곤 한다.

이런 말도 사실은 '돈을 모으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다.

 

 

'싸게 사려는 태도'는

얼핏 상품에 관련된 문제로 보이지만

그 상품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관여한 사람들의 노동을

헐값으로 취하려는 행위이다.

 

 

이건 여담인데, 우수한 상품을 만드는 생산자가 도태되거나

생산량은 증가해도 생산력이 쇠퇴하는 현상은

'돈을 모으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사람이 많아졌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의 인색한 성격이 내 앞에서 드러나는 것은 참으로

불괘한 일이다. 예를 들어 애인에게 반지를 선물 받았는데

그 반지를 3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왠지 실망스럽지 않겠는가? 자신의 가치가 30퍼센트 낮아진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매사에 구두쇠 같은 성향을 드러내는 사람과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법이다. 인색한 사람은 자신의 '욕망'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대다수 서민은 그렇다 하더라도

왜 부자들까지 돈으 쓰려 하지 않는 걸까?

그건 '돈으로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불안하기 때문'이다.

 

 

돈이 아주 많으면서도 구두쇠 짓을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돈을 잃으면 자신의 지위나 평판 등 현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내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무서운 것이다.

그 공포감에 대항하기 위해 '내 돈만 소중해!'라는 엉큼한 분노를

마음속에서 불태우고 있으므로, 인색한 사람에게서는 왠지

음흉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러니 옆에 있는 것만으로 불쾌해지는 것이다.

 

 

 

할인인색의 상관관계

 

당신의 애인이 할인상품이라면 무조건 좋아해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살 때에도 영양가나 기호는 고려하지 않고

'50퍼센트 할인'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상품만 고른다면?

'알뜰하니까 장래의 신붓감으로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보다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 도움이 되는 것,

자기 마음에 쏙 드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사려던 상품이 우연히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된다면

분명히 기쁜 일이다.

 

 

그런 게 아니라 단지 '싸다'라는 이유만으로 물건을 사는 행위는

그저 '싸서 댜행이다'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겠다'라는

감각을 얻고 싶어서일 뿐이다.

즉, 인색한 것이다.

 

 

우선 할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알뜰하다는 의견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할인된 가격으로 샀다는 사실이 기쁜 것'이라면

그 물건이 정말로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만 원짜리 캐시미어 스웨터를

1,000원에 팔고 있어서

'색깔이 조금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그냥 살까? 싸니까'라며

냉큼 사 들고 집에 돌아왔다고 하자.

그런데 역시 색깔이 마음에 안 들어서

옷장에 그냥 처박아 둔다면,

할인된 가격으로 사서 이득을 봤다고는 할 수 없다.

 

 

그저 할인을 좋아하는 '인색한 사람'은

싸다는 이유로 원하지도 않은 물건을 많이 사들이기 쉽상이다.

방에 필요 없는 물건들이 늘어나서 어수선하기만 할 뿐

결국은 돈을 낭비하는 셈이 된다.

반면에 정말로 필요한 물건만 골라서 사면 그 물건을 소중히

사용할 테고, 여분으로 수납할 공간을 만들 필요도 없다.

적당한 범위 내에서 쇼핑한다면

가격에 상관없이 꼭 필요한 물건만 사는 사람이

'할인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더 알뜰한지도 모른다.

 

 

 

가격표를 극복한 행복찾기

 

부자가 좋은 것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 해방감은 굉장히 기분 좋은 것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돈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되도록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쇼핑하도록

노력하면 행복을 맛보게 될 가능성이 커지지 않을까?

 

 

더욱 싼 것을 선호하는 성질은 마음의 습관으로서 누구나 가지고

있게 마련인데, 이제 그 습관을 억제하고 우선은 '정말로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해 보자.

그리고 정말로 필요한 물건을 정상 가격으로 구매하면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만족감과 함께 '가격표를 극복했다'라는

자부심이 생겨날 것이다.

'이왕이면 싸게 사는 것이 더 좋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마음도 잘 알고 있다.

물론 사고자 할 때 운 좋게 할인을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할인할 때까지 기다라는 동안

다 팔리지 않으라라는 보장은 없다.

다 팔릴까 봐 가슴 졸이거나 기회를 놓치고 발을 동동 구르거나

'그때 살 걸 그랬다'며 후회하는 것에 비하면

'돈'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마음을 성형하라  

나이가 많든 적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에서 혐오감을 느낄 때가 있고, 그럴 때마다 못난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새로 태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변화가 싫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안다. 언제까지 그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인가? 큰맘 먹고 한 단계 도약하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 이때 알아 둬야 할 것은 못난 자신과 이별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사실이다. 타인이 해 주는 충고아 격려, 질책, 혹은 따뜻한 말 한마디는 일시적인 당근과 채찍일 뿐, 그 효과가 사라지면 또 다시 예전의 못난 모습으로 돌아가기 십상이니 스스로의 힘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을 다쳤을 때 '삶'을 통째로 던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고통을 느끼기도 하지만, 반대로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으면 우주를 손에 넣은 것처럼 행복해진다.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여러 구성 요소 중, 마음은 가장 약한 부분임과 동시에 가장 강한 부분이기도 하다. 당신의 마음에 레몬즙을 한 방울 떨어뜨려 보자, 쓰라린가? 건강한 피부에는 아무리 강한 레몬즙을 뿌려도 전혀 쓰라리지 않듯, 우리 마음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존감으로 단단히 무장되어 있다면 어떠한 자극도 우리를 힘들게 하지 못할 것이다.

얼굴과 달리 마음은 성형수술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 부작용도 없지 않은가? 그저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마음으로 머물러 있을 것인지, 못난 자신과 과감히 이별하고 예쁜 나를 맞아들일 것인지, 선택은 의 몫이다.

 

- 옮긴이 이수미『못난 자신 버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