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재미있어진다 (2)
당신 덕이지!
- 가와기타 요시노리 지음 『 중년수업』중에서 -
나이에 지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사는 법
떠날 준비는 잘나갈 때 하라
전철역에서 한 초로의 남자가 휴대전화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언제 골프나 한 게임 하지 그래."
꽤 알려진 대기업의 OB 같은데, 예전의 동료나 후배와 통화하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또 어딘가 전화를 걸어싸. 그리고 이야기 끝에 "언제 골프나 한 게임 하자"며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세 사람에게 같은 내용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누구에게서도 바라던 대답을 듣지는 못한 것 같았다.
대기업 간부 사원으로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가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꽃이 지듯 시들어 버리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현역시절에 큰 출세는 못했어도 제2의 인생은 취미와 놀이로 활기차게 보내는 사람도 있다.
현역 때 웃고 퇴직해서 우는 사람
vs
현역 때 울고, 퇴직해서 웃는 사람
그 차이는 뭘까, 내 생각에는 현역 시절에 얼마나 '준비'를 잘 해왔는가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샐러리맨 인생이란 어차피 회사에서 부여받은 것이다. 아무리 그곳에서 큰 보람을 찾았다고 해도 그만두고 나면 기댈 곳은 없어진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현역 시절부터 조금씩 회사를 떠나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만둔 후에도 회사에 계속 미련을 갖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체성의 상실감도 커서 마음에 구멍이 뻥 뚫려 버린다. 이런 경향은 대개 일밖에 모르거나 대기업에서 나름의 지위까지 올랐던 사람일수록 강하다.
딱 까놓고 말해서 회사의 직함이 사라지면 그냥 '아저씨'다. 그때부터는 있는 그대로의 됨됨이만으로 평가받게 된다.
그런데 은퇴한 뒤에도 전에 근무했던 회의 서류 봉투를 들고 다니거나, 일부러 '전 ○○ 주식회사 ○○본부장' 등의 명함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제2의 인생을 제1의 인생과 같은 색으로 색칠하려 드니 괴로움만 더할 뿐이다. 일그러진 프라이드는 비참하고 아프기만 하다.
회사는 이익공동체이기 때문에, 인간관계 역시 의무적이며 아무래도 타협과 타산의 산물이 되기 쉽다. 주변에는 늘 사람이 있고 명절 때면 카드와 선물도 끊이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회사의 직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회사를 나온 뒤에도 여전히 자신의 직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달라진 현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니까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걸어 "골프나 한 게임 하자"라는 말을 건네는 것이다. 상대방은 내심 '언제까지 상사 노릇을 할 참인가?'라거나 '뭔가 착각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유형은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옛 직장을 '우리 회사'라고 부르면서 기를 쓰고 OB모임에 나가 희희낙락한다. 예전의 부하에게 총무를 시키고 현역 시절의 서열을 잠깐 맛보며 거기서 삶의 낙을 찾고 싶은 것이다.
나는 40대 초에 15년간 근무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지금의 편집 프로덕션을 세웠지만, 이후 그 신문사나 동료들에게 먼저 연락을 취한 적은 없다. 마음대로 살아갈 자유를 얻는 대신 직함을 버렸다고 생각하니 회사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었고, 허물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는 원래 회사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현역 시절부터 슬슬 회사를 떠날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60세가 정년이라면 그후에 다른 일을 하든 완전히 은퇴를 하든, 최소한 5년 전인 55세 정도부터는 구체적인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이 무렵이 되면 회사의 장래 동향도 대략 눈에 들어오고, 주택 대출 상환도 고비를 넘기며, 자식들한테 돈 들어갈 일도 별로 없다. 책임이나 의무가 서서히 가벼워지고 여유가 생겨나는 시기이다.
회사의 직함을 사용하지 않는 생활을 의식적으로 해보는 것도 좋다. 우선 회사 차량이 제공하는 사람은 사용을 자제한다. 또한 회사 돈으로 먹고 마시는 일도 줄여 본다. 택시를 타지 않고 전철을 이용하거나 걷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좋다. 생활수준도 정년후의 수입에 맞춘다. 연금 생활은 물론이고 재취업 등으로 일을 한다손 쳐도 수입은 크게 내려간다. 기껏해야 그 전의 30~70%정도다. 그렇게 상정한 금액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이후 큰 격차에 충격을 받게 된다.
은퇴를 고려한다면 '매일이 일요일'이 되어도 당혹해하지 않도록 혼자서 즐길 시간을 의식적으로 늘려 간다. 여로모로 자기 나름의 노는 방식을 익혀 두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골프 등을 즐기고 싶다면, 지금부터 회사 이외의 사람들과 교류를 넓혀 둔다.
'현역에 있을 때부터 차곡차곡 준비해 두는 것', 이것이 고독한 시간을 피하기 위한 핵심 포인트다.
웬만하면 창업은 피하라
얼마 전 50대 초반의 남자가 상담을 하러 왔다.
"정년 후에 촉탁으로 회사에 남아 그전까지 후배직원이었던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지적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더군요. 재취업 자리도 마땅찮고 차라리 조기 퇴직해서 창업이라도 할까 생각 중입니다만."
"창업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글쎄요, 제가 국수를 좋아하니까 국수 가게라도 내볼까 싶어서요."
'국수 가게라도'란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바야흐로 '정년 창업, '황혼 창업'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50~60대의 창업 붐이 일고 있다. '나이 들어서도 일하고 싶다'는 바람을 창업에 거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다못해 국수 가게라도' 같은 정신으로는 곤란하다.
나 역시 탈 샐러리맨으로 지금의 회사를 차린지 30년 정도가 되었지만, 그동안 몇 번이나 도산에 가까운 곤경에 처했었다. 샐러리맨일 때는 '이렇게 일하고도 겨우 이 정도밖에 못 받나?' 하면서 턱없이 적은 월급을 저주했건만, 막상 회사를 꾸려 보니 고작 몇 명의 사원이라도 월급날이 다가오면 그야말로 위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다.
사업이란 항상 좋을 때만 있는 게 아니다. 회사를 만드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일, 즉 거래처와의 지불 관계는 두말할 것도 없고, 매월 정확히 사원에게 급여를 지급하고 기분 좋게 일하도록 독려하는 일은 옆에서 보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다. 그런데도 '국수 가게라도'라고 생각한다면 장사를 만만히 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국수 가게를 열어도 하나부터 열까지 장사의 기본과 요령을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전까지 부하직원을 수십 명씩 부리던 사람이라도 젊은 요리사에게 호된 소리를 들어 가며 배우고 익혀야 겨우 따라갈까 말까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면 '국수 가레라도'라는 말은 쉽게 꺼내기 못할 것이다.
간혹 TV에서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 국수 가게들이 방송을 타니까 '나도 저거 한번 해볼까?'라는 발상이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안이한 생각이다. 국수 장사를할 거라면 가게를 열기 전에 직접 반죽하고 국물 우려내는 연습부터 해보는 게 순서다. 그것만으로도 장사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될 것이다. 애초에 창업에 대한 꿈도 없었는데 그저 즉흥적인 동기로 갑작스레 개업을 해봤자 잘될 리도 없다.
창업 후 날마다 불안에 떨고 스트레스 받는 생활을 견뎌 내기란 쉽지 않다. 안정된 생활을 원한다면 차라리 수입이 반 이하로 줄더라도 채취업을 해서 매달 고정급이들어오는 샐러리맨 생활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 물론 샐러리맨 생활은 개인적인 성취도도 떨어지고 회사에 대한 불만도 있겠지만, 매달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니 생활만큼은 안정적이다.
결국 다음과 같은 공식이 성립한다.
샐러리맨 = 불만은 있으나 불안은 없다.
창업 = 불만은 없으나 불안은 있다.
그 차이는 가히 천국과 지옥만큼 크지만, 의외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러니 창업 후의 불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회사생활에 대한 불만을 창업으로 해소하려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다. 사내의 인간관계나 급여, 처우에 대한 불만, 혹은 장래의 고용 불안 등이 '에라, 나도 회사 때려치우고 창업이나 해볼까?'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창업이 성공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한 조사에 따르면 1년 이내에 폐업하는 비율이 약 30%, 3년 이내가 약 50%이며, 10년 후에도 존속하고 있는 곳은 약 10%라고 한다.
젊은 세대의 창업은 실패해도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지만, 중년 이후 세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패했을 때는 엄청난 타격을 받아 까딱하다가는 비참한 말년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중년 이후 의외로 무모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오랜 회사 경력으로 나름의 위치에서 사람도 돈도 움직여 봤다는 어설픈 자신감에 처음부터 크게 시작하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 회사에서 큰 사업을 다루어 본 사람은 회사의 인재, 자료, 설비 등 사내 경영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인데, 모두 자신의 실력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창업에는 수많은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라 실패하면 엄청난 부채를 짊어지게 된다. 회사는 도산하고 집은 저당 잡혀 파산 위기에 내몰리기도 한다. 물론 성공하면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정말 드물다. 장사하는 집안에서 자랐다면 눈동냥으로라도 뭔가를 익혔겠지만, 샐러리맨 집안에서 자라 샐러리맨세계밖에 모르는 사람은 웬만하면 회사 생활을 성실히 하는 편이 났다.
잘못하면 제2의 인생을 힘겹게만 할 뿐이다.
그래도 창업하겠다면 꼭 지켜야 할 5가지 철칙
남들이 50대에 조기퇴직을 하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고 해서 덩달아 창업을 꿈꾼다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이 50대에 사업을 시작해서 성공했다면 이미 40대 시절에, 빠르면 그 이전부터 차곡차곡 준비해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40대부터 직장생활을 그대로 해나가면서 주도면밀하게 사업구상을 해온 사람과, 50대에 접어들어 정년을 앞두고 사업을 꿈꾸는 사람은 출발선부터가 다르다. 그 모든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창업해서 성공하고 싶다면, 다음의 다섯 가지는 꼭 지켜야 한다.
창업의 목적을 명확히 한다
나는 어떤 사업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회사를 만들려고 한다.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무엇보다 동기를 명확히 해야 한다. 막연히 회사에 대한 불만을 창업으로 해소하려는 생각은 없는지 거듭 생각해 보라.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반드시 앞서야 한다.
가슴에서 '이것이 하고 싶다'라는 강한 염원이 절실하게 솟구치지 않는다면 절대 회사 경영은 성공할 수 없다. 고만고만한 동기로 성공할 만큼 장사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직함을 버린다
중년 이후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어느 정도 지위에 수입도 안정적이었던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창업을 마음먹은 순간, 과거의 직함은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유명한 대기업에서 부하직원을 수십 명, 수백 명 두고 있었다 해도 회사를 그만두면 그냥 '아저씨'일 뿐이다.
회사를 만들어 사장 명함을 손에 넣어 봤자 기껏해야 사원은 두 세 명에, 고객이나 거래처도 개인이나 작은 회사가 대부분이다. 직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그 차이를 깨닫지 못해 무심코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그래서는 일이 잘 풀릴 리도 없고, '저 사람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거 아냐?' 하고 밉상으로 낙인찍힐 뿐이다.
'굽히고 들어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억지로라도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게 장사다. 그걸 못 하겠다면 창업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경영자 체질인지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한다
경영자 체질은 따로 있다. 정년까지 회사 근무를 했던 사람은 대체적으로 회사 근무가 맞는 사람이다. 창업을 하는 사람은 정년전에 독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갖춰야 할까?
왕성한 독립심과 실행력, 늘 긍정적인 발상과 추진력, 사원에게 힘을 불어넣고 용기를 붇돋우는 통솔력과 책임감, 사업을 활성화 시키는 예리한 통찰력과 직관력, 또한 야심만만한 창조력과 구상력, 그것들을 지탱하는 진중함, 인맥, 정보수집 능력, 금전, 시간, 건강 등의 자기관리력…… 끝이 없다.
이 많은 것들 중에 딱 하나만 들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신용'을 들겠다. 가짜를 팔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약속을 지킨다. 납기를 엄수한다. 어떤 일에도 성실하게 대응한다. '장사는 찍히면 끈'이란 말도 있듯이 장기적인 신용이야말로 최우선이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를 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그것을 실현할 만한 능력(지식, 경험, 기술, 자격, 인맥, 자금 등)이 없으면 창업은 힘들다. 자신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지금까지의 인생을 잘 조명하여 정리해 보도록 한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에게 그 어느 때보다 사색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충분한 사색을 하다 보면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국수에 도가 텄더라도, 아무리 기가 막힌 레시피를 개발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장사를 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은 만만치 않다. 낚시과이기도 했던 메이저리그의 타격왕 테드 윌리엄스는 은퇴 후 낚시 도구 회사를 열었다. 시작은 순조로웠지만 결국 대형 백화점에 넘어가고 말았다.
취미를 실제 이익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의 사람뿐이다. 그렇게 드문 성공 사례를 보고 '저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취미가 장사가 되는 그 순간 즐거움은 사라진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사업 계획은 딱 부러지게 짠다
'빚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다. 외형만 그럴듯하게 신경을 써서 모양 좋은 사업 계획을 세워도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파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무엇을 팔 것인가. 누구에게 팔 것인가, 돈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장사를 시작하려면 주도면밀한 준비는 필수다. 때론 전문가 과정을 밟거나 목표로 하는 업계에 재취업하여 지식이나 기술을 몸에 익힐 필요도 있다. 일반적으로 50대에 탈 샐러리맨 창업으로 성공한 사람은 40대부터 꾸준히 준비해 온 사람들이다. 창업을 염두에 뒀다면 현역 시절부터 주도면밀한 준비를 해두어야만 한다.
무리 없는 자금 계획(개업 자금과 운영 자금)도 중요하다. 대출금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실패해도 어떻게든 감수할 수 있는 액수는 한계가 있다. 집을 담보로 이리저리 돈을 융통해야만 겨우 시작할 수 있을 정도라면 그만두기 바란다.
외형을 내세우지 않는 '분수에 맞는 사업'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현실 속에서 판타지를 즐길 수 있는 법
어느 부부의 이야기다.9년 전쯤 외딴 바닷가 마을을 여행하다 마음을 빼앗긴 뒤로 휴가 때만 되면 자주 찾곤 했단다. 거기서 머무는 동안 남편은 바다낚시를 즐기고, 아내는 온종일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밤에는 남편이 잡아온 생선을 안주 삼아 둘이서 한잔씩 하는 게 가장 큰 낙이었다.
"나이 들어서도 날마다 이렇게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이런 곳이라면 정말 행복하게 늙어갈 수 있겠어."
마침내 부부는 아예 그곳에서 살기로 결심하기로 이르렀다. 그로부터 5년 뒤, 남편이 정년을 맞자마자 바닷가의 별장 같은 집을 구해 정말로 이사를 해버렸다. 도쿄의 자택은 세를 놓았끼 때문에 그 수입으로도 집세는 충분히 조달할 수 있었다.
새롭게 시작한 시골생활은 낙원 그 자체였다. 남편은 날마다 바다낚시를 했고, 아내는 텃밭에다 채소를 키웠다. 그 싱싱한 재료로 만든 요리는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의 식사보다 훌륭했다. 하지만 그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1년이 지나자 아내 쪽에서 먼저 시골생활에 싫증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친한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이웃들이 여전히 낯설기만 해요. 동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통 모르겠고, 1년을 살아도 어차피 여행자였던 거죠. 게다가 남편처럼 여기에 딱 맞는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텃밭 가꾸는 것도 잠시뿐이었어요. 저와는 맞지 않는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죠. 그러다 보니 점점 애착이 사라지더군요. 도쿄로 돌아가고 싶어진 거죠."
부부의 시골생활은 결국 2년을 못 채우고 막을 내렸다. 도쿄의 집에 살던 세입자가 이사를 가면서 부부도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처음 시골생활을 시작할 때 남편은 도쿄의 집을 아예 팔아 버리고 시골에 새집을 지으로 했었죠. 저는 가족의 추억이 있는 집이라 반대했고요. 결국 예산도 안 맞고 해서 포기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아주 잘한 일이에요. 만약 도쿄 집을 처분했더라면 이렇게 간단하게 돌아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시골의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이나 아름다운 전원에서의 생활을 꿈꾸는 사람은 많다. 특히 수십 년 동안 회사에서 몸과 마음을 시달려 온 중년들이라면 더더욱 자연에서의 여유로운 삶을 동경한다. 하지만 동경만으로는 지속할 수 없는 것이 시골생활의 어려움이다.
맑은 자연과 깨끗한 공기, 신선한 물, 저렴한 물가…… 의 이미지 광고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시골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하지만 들뜬 마음으로 시골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상상과 현실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가령 자연과 가까운 만큼 도시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벌레들이 우글거린다. 오락시설이나 문화시설 따위는 없는 것이나 진배없고, 쇼핑 역시 차로 이동하지 않으면 주스 한 병도 살 수 없다. 물론 시골은 생활비가 적게 들긴 하지만 뒤집어보면 돈 쓸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병원도 멀고 관공서도 멀다. 또한 시골은 지역마다 특유의 다양한 관습이 있어 인간관계도 도시와 다르다. 내가 아는 한 시골마을에서는 정기적으로 마을 사람들이 총출동하여 풀베기를 하기도 한다. 이런 행사는 전원이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한다.
도시에서도 이웃과의 교류는 있지만, 시골에서의 교류는 도시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교류가 질색인 사람은 일단 시골생활과는 맞지 않다.
반대로, 지역과 원만히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은 다양한 지원도 받으면서 수월하게 시골생활을 할 수 있다. 지역과의 소통은 시골생활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포인트다.
최근에는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을 풍부한 자연 속에서 실현하려는, 말하자면 시골생활의 좋은 점만 누리려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어 지역 주민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다. 주민들과 잘 어울리려면 도시생활에 익숙했던 사고방식과 감각들을 다시 조정해야 하는데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 시골생활을 바라는 것은 남편 쪽이도, 아내는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평생을 회사에서 보냈고 이젠 변변한 친구도 없는 남편과 달리, 아내는 친구들도 많고 그동안 익숙해진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부부에게 이런 차이가 있다면 시골생활은 원만하게 굴러가지 않게 되므로, 사전에 서로 깊은 대화를 통해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 지방 츨신으로 어느 정도 시골의 분위기를 알고 있다면 모를까, 평생 도시생활밖에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정보수집 등을 포함하여 꼼꼼한 사전 준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상과 현실에는 격차가 있다. 언제나 판타지로 느껴졌던 곳이라도 일단 '삶의 공간'이 되어 버리면 금세 일상이 되고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판타지 공간인 '저곳'을 보다 더 많이, 즐겁게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것'과 '지금밖에 할 수 없는 것'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에는 다양한 버전의 결말이 있다.
개미는 여름 동안 부지런히 일을 하고, 베짱이는 밤마다 바이올린을 켜며 노래한다. 겨울이 되자 배가 고파진 베짱이가 개미를 방문한다. 개미는 베짱이를 어떻게 대했을까?
우리가 알기로는 마음씨 착한 개미가 베짱이를 초대하여 먹을거리를 나눠 주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세계의 보편적인 결말은 개미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심지어는 굶어죽게 된 베짱이를 개미가 먹어치우기까지 한다.
사실 오리지널 버전은 '개미와 베짱이'가 아니라'개미와 매미' 였다고 한다. 이솝이 태어난 기원전 그리스에서는 매미가 흔한 곤충이었지만, 독일이나 영국 등에서는 매미의 종류나 수가 적었다. 그래서 편집자가 보다 보편적인 '베짱이'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개미가 매미에게 "여름에 노래를 불렀으면 겨울에는 춤을 추면 되잖아!" 하고 차갑게 끝을 맺는다. 결말이야 어떻든 공통점은 '앞일을 생각해서 열심히 일하라'는 교훈일 것이다. 미리미리 대비해 두면 걱정은 없다.
나중에 곤란을 겪지 않도록 꾸준히 성실하게 일하는 인생은 분명 고귀하다. 그것은 틀림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앞날에 대비하는 것과 지금의 삶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은 분명 다른 이야기다.
가령 저축이나 검약이 너무 지나치면 현재의 즐거움은 깡그리 사라지고 만다. 미래의 어느 순간이나 지금 이 순간이나 똑같은 인생이지 않은가? 게다가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 매고 살아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기껏 모아둔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개미와 베짱이>에서는 베짱이가 개미의 도움을 받으려고 방문했더니 이미 과로사로 죽어 있어서, 개미가 남긴 음식으로 겨울을 날 수 있었다는 버전도 있다. 사실 이 버전은 '지금을 즐기면 된다. 장래는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다'라는 타인의존형의 어리광쟁이가 하는 행동으로, 결코 권할 만한 것은 못 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적당히 장래에 대비하면서 나름 현재도 즐기는 '개짱이(개미와 베짱이의 합성어)'적인 생활방식이 아닐까?
한 작가가 신문 칼럼에서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오다 노부나가(1534~1582)의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노부나가는 점괘를 믿지 않았지만, 천하를 제패한 뒤에는 자신과 같은 일시에 태어난 남자를 찾아내어 자신의 운명과 비교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공고를 냈더니 정말 자신과 같은 일시에 태어난 한 가난한 남자가 찾아왔다.
"같은 일시에 태어나도 운명은 이리도 다르구나!" 하고 누부나가가 말하자,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천하를 얻어도, 가난이 극에 이르러도 그것은 어제까지의 과거에 불과합니다. 귀인의 내일은 알 수 없습니다. 귀인은 오늘 하루만 천하의 군주로서 기뻐하고, 저 또한 오늘 하루만 극빈에 고통스러워할 따름입니다."
작가는 이 말을 받아 "결국 인간은 오늘만을 살고 있다"라고 칼럼을 마무리하고 있다. 사실이 그렇다. 천하의 노부나가도 내일 일은 알 수 없었다. 실제로 그는 습격을 받아 죽게 된다.
가난한 남자가 노부나가에게 했던 말은 곧 '하루가 평생'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내일이 아인 오늘을 소중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누구나 미래의 어느 불특정한 날을 겨냥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오늘 하루치의 생명'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세상을 느끼는 방식도 저절로 바뀌게 된다. 지금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우선순위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개미와 베짱이' 또 다른 버전이 생각난다. 겨울이 되어 먹을거리가 없어진 베짱이는 , 특기인 노래와 바이올린으로 콘서트를 열어 개미에게 티켓을 팔아 유유자적하게 겨울을 났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일을 그만두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그러니까 지금은 오로지 일만 열심히 하자'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을 즐기지 않는 사람은 분명 훗날도 즐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오늘보다 내일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막상 내일이 됐을 때 '무슨 일이 생기면 큰일'이라며 또 다른 내일을 위해 현재를 감내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것'과 '지금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장래 걱정만 하지 말고 지금을 소중하게 살아가는 것도 생각하자.
인생이란 즐기기 위해 있다. 미래는 지금이 쌓이고 쌓인 것이며, 지금을 소중히 여기면 미래는 분명 즐거워진다.
미래는 바로 '지금'이다.
'병상에서의 장수'보다 빛나느 '자기 몫의 생'
우리의 평균수명이 점점 늘어 이제는 한국의 경우 남성 77세, 여성 84세인 시대를 살고 있다. 장수는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오래 살수록 병이나 치매 등으로 장기 간병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WHO의 '세계보건보고(2003)를 보면 불건강 기간이 7~9년에 달한다. 이것이 인생 80시대의 실체인 셈이다.
나이가 들수록 병들지 않고 특별한 고통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깨끗하게 세상을 하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건강 기간'이란 게 있어 자리보전하고 눕기나 치매 등으로 부득이하게 간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
간병 기간이 왜 이만큼이나 생기는가에 대해 어느 의사이자 작가는 "병원에 가서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기 때문에 평균수명이 늘어난다. 그러나 건강수명과의 격차가 커져 간병 수요가 높아진다"라고 말했다.
누구나 소중한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가능한 한 오래 살기를 바란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온몸을 튜브로 휘감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본인의 심정은 어떨까? 가족을 위해 재기해야겠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당한 시기에 보내 줬으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족의 마음은 알지만 그것이 오히려 본인의 마지막을 힘들게 한다면 사랑이란 이름만 빌린 자기위안,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튜브에 휘감긴 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가족에게 그 뜻을 잘 전해 두도록 한다.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거대한 부를 축적한 재벌에게도, 만 권의 책을 섭렵한 현인에게도 죽음은 똑같이 찾아온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러나 수명은 사람마다 다르다. 100세를 넘어서도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20대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쓰러지는 사람도 있다. 불합리한 데다 불공평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한탄해 본들 어쩌겠는가. 다 부질없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천수를 담담히 받아들이며 조용히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요즘은 누가 80세에 몽블랑을 올랐느니, 누가 90세에도 현역에서 한창이라느니 하면서 '장수에 대한 판타지'를 부추기는 정보가 너무 많다. 그런 정보의 주인공들은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타고난, 이를테면 '슈퍼실버'라 할 만큼 드문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초인들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슈퍼실버의 모습이 미디어를 통해 빈번히 노출되다 보니 결국 그것이 '정상적인 노인의 기준'이 되어 버린다. 언제까지나 팔팔하고 기운차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노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몸져눕는 일 없이 깨끗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오로지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만을 생각한다. 그 결과, 몸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종합검진이나 인간독(medical checkup : 뚜렷한 질병의 증상이 없는 사람을 입원시켜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건강검진의 하나) 등 과잉 건강관리에 집착하는 것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이상이 생긴다. 일단 검사를 받으면 뭔가 이상이 발견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본인도 의사도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기 때문에 치료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이 멀쩡하다가도 진짜 환자가 되어 버리는 과정이며, 건강한 장수와 죽음 사이에 불건강 기간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이다. 건강관리라는 것이 때론 불건강을 초래하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늙어서 생기게 마련인 병들은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 좋지 않을까? 때로는 사람과 함께 천천히 늙어가는 동반 병도 있다. 실제로 별 고통 없이 천수를 누린 사람을 해부했더니 암을 앓고 있었더라는 이야기도 드물지 않다. 이를 '천수암(天壽癌)'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누군가는 '일정 연령 이상이 되면 차라리 병원에 가지 않는' 것까지 선택 사항에 넣어야 한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대찬성이다. 그 연령은 70세 이후가 좋지 않을까?
병원에 가지 않으면 이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느낄 일도 없다. 치료에 따른 심신의 데미지나 약 때문에 생긴 부작용으로 고생할 일도 없다. 고령자는 암을 안고 있더라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암과 사이좋게 공존하면서 천수를 누리고 안락한 최후를 보낼 수도 있다. 당연하다는 듯 건강진단을 받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보다는 그쪽이 훨씬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가능한 한 불건강 기간을 짧게 하려면 과도한 건강관리 대신 주어진 천수를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자.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염두에 두고 건강과 죽음 사이에서 명상에 잠긴다면, 생의 의미만큼 죽음의 의미도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호스피스'를 확립한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 대부분이 '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았을까?'라며 후회한다고 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죽음을 생각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그것은 수명과는 상관없다. 일본의 한 사상가는 30세에 참수를 당했지만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제자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서른으로 생을 마감하려 한다. 여태껏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이대로 죽는 것은 곡물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애석해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꽃을 피워 결실을 맺었노라.
사람의 수명은 정해져 있지 않다. 서른에 죽음을 맞더라도 뭔가를 이룬 인생이라면 무엇을 애달파하겠는가?
"내 몸은 비록 들판에 묻히더라도 내 영혼은 영원하리라."
그의 의연한 마지막이 눈부시다.
의연하고 건강하게 떠나는 법
얼마 전,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들이 동남아시아로 매춘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크게 빈축을 산 일이 있다. 사람들은 혀를 찼다.
"외국까지 원정을 가서 여자를 사려 하다니…… 다른 소일거리가 그렇게 없나? 늙어서 추해지니 처참하기가 이를 데 없구먼."
매춘 투어에 참가한 노인들 중에는 현지에서 에이즈에 걸려 사망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에 상관없이 한 인간의 라스트신 치고는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다. 젊은이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모습을 멋지게 수놓아야 할' 노인이기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람은 나이 드는 것과 보조를 맞춰 자기 욕심을 제어하지 않으면 늙어서 돌이킬 수 없는 추한 꼴을 보이고, 자칫하면 실의에 찬 말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추한 꼴을 보이며 말년을 더럽히는 일이 잦다.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려 기를 쓰는 경영자, 장관 자리에 연연하는 정치가, 과거의 영광을 버리지 못하는 스포츠 선수 등, 이러한 모습을 볼 때마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나, 충분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심신의 조화가 흐트러져 버리면, 자기도 모르게 욕망에 지배당하고 끝내는 추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은퇴가 확실한 사람은 나이 드는 속도와 맞춰 욕심을 제어하며 멋지게 물러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러난다는 것은 족함을 아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인간의 최대 욕망의 '삶'에의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어렵다. 암 선고를 받은 스님이 충격 때문에 우울증으로 자살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평생토록 수행을 쌓아온 스님이 그 정도니,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늙어가는 것과 죽는다는 것에 대한 지나친 공포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늙어서 추한 꼴 보이기 싫어서', '자식들 병수발 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라며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안락하게 장수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로 인해 건강검진이나 인간독을 착실히 받다가 '모르는 게 약'이었던 큰 병이 발견되어 오히려 더 비참해지거나 가족의 부담이 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노후에는 섣불리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이 의외로 건강한 죽음을 맞는 길일 수도 있다.
2006년 가을,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난 일본 아동문학작가 하이타니 겐지로 씨는 '인생을 통틀어 배운 것 하나는 매사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며 그대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그는 '들판의 나비와 잠자리 같은 생과 사'를 염원했다고 한다.
죽음과 마주한 시선이 그 얼마나 온화하고 아름다운가.
자기답게 떠나기 위하여
어느 유명 작가가 자신의 일기에 유언을 남겼다.
나 죽거든 장례식은 필요 없다. 시신은 보통 차에 태워 바로 화장장으로 보내고 뼈는 거두지 말라. 묘석도 필요 없다. 신문에 부고도 내지 말라, 장례식이 불필요한 이유는 영구차를 좋아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종이로 만든 꽃 또한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사망하자 곧 장례가 치러지고 묘석도 세워졌다. 비록 고인의 유지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후 그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아직도 '고인의 가치는 조문객 수로 알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최근에는 그런 화려하고 성대한 장례식을 생략하고 조용히 이승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람은 죽으면 모두 허공으로 돌아간다. 제행무상(諸行無常 : 세상의 모든 것은 반드시 변하고 시들어 간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생사관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완벽한 명제로 규정하긴 어렵지만 '죽음' 만큼은 100퍼센트 확실하다.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정해진 이치이며 그 누구도 피할 도리가 없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자기답게 떠나는 방법을 생각해 두어야만 한다. 드디어 그때가 왔을 대 허둥대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마음 편히 떠나기 위해서라도…….
중년이 된 다음에 젊었을 때의 소원이나 희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부질없는 기대를 거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란 10년마다 달라지는 나름대로의 운명이 있고 희망이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