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

창의성의 꽃, 혁신

오키Oki 2012. 3. 9. 21:01

텃밭엔 쪽파와 냉이가 긴긴 겨울을 지내고 아름다운 봄맞이로 통섭을 한다.

 

 

 

- 윤미정 지음부모 이노베이션에서 -

 

윤미정

대학에서 수학교육학을 전공하고 6년간 중학교 수학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큰아이를 힘들게 출산하고부터 모든 열정을 자녀교육에 쏟아붓는다. 좀더 체계적이고 심도있는 교육을 위해 모교인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유아교육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부모교육 강사로 3년간 활동하였다. 그후 미래사회의 변화와 미래교육을 화두로 두 아들과 함께 미국행을 감행 TESO 과정과 아동보육학을 공부하였다.

 

 

 

 

창조와 공감의 시대

 

숙련된 기술이 요구됐던 산업사회를 지나 우리는 지식과 정보의 힘을 중요시 하는 지식정보화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정보화의 물결'이니 '지구촌 시대' 같은 말들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고 정보통신의 기술의 발달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열쇠로 여겨졌다. 당연히 분야별 전문가와 정보능력이 뛰어난 지식근로자가 요구되는 사회였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지식정보사회를 뛰어넘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고 급속도로 진행 확산되고 있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이후, 최고의 미래학자로 꼽히는 다니엘 핑크(Daniel Pink)는『새로운 미래가 온다 A Whole New Mind』에서 세계는 새로운 시대인 하이컨솁(High Concept), 하이터치(High Touch)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그에 따르면 하이컨솁이란 예술적, 감성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능력이다. 패턴과 기회를 감지하고, 예술적 미와 감정의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며, 훌륭한 이야기를 창출해내고, 언뜻 연관이 없어보이는 아이디어들을 결합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능력이다. 또한 하이터치는 다른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미묘한 인간관계를 잘 다루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잘 유도해내고, 목적과 의미를 발견해 이를 추구하는 능력이다.

다니엘 핑크는 특히 우뇌의 능력에 주목한다. 좌뇌는 몸의 오른쪽을 통제하며, 순차적이고, 본문 해석에 강하며, 세부적으로 분석하는 논리, 연산, 언어, 분석능력이다. 반면 우뇌는 몸의 왼쪽을 통제하며, 동시적이고, 문맥 해석에 강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종합 능력이다. 우뇌는 독창성, 개인간의 소통능력, 본능적인 직관, 상상력, 남을 즐겁게 하는 능력, 재치 등을 포함한다.

지식정보화시대로 불리웠던 우리 시대는 정보를 잘 다루고 분야별 전문성을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인정받는 지식근로자의 시대였다. 이런 지식근로자시대에 주목받은 인재들은 좌뇌 주도형 사고가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우리들이 흔히 선망했던 직업인 의사, 변호사, 회계사, 엔지니어 등과 같은 전문직 종사자, 즉 화이트 칼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전형적인 좌뇌형 사고를 측정하는 시험들을 통과해야만 했다. 이는 논리력과 분석력을 요구하고 하나의 정답을 골라내야 하는 시험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대에는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그동안 소홀이 여겨왔던 예술적, 심미적 재능, 즉 우뇌형 재능이 필요하다. 논리적, 분석적 활동을 관장하는 좌뇌만이 아니라 직관, 감성, 공감능력을 관장하는 우뇌가 더욱 주목받는 시대인 것이다.

미국의 경우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과거에는 MBA(경영학 석사학위) 소지자들을 선호했지만, 이제는 MFA(미술학 석사학위)가 가장 인기있는 자격조건이 되고있고, 예술대학원 지원자 수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시대에는 분석이 아니라 통합능력,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능력, 공감능력, 웃음, 유머, 물질적 풍요를 넘어선 정신적 만족감, 의미가 중심을 이루게 된다. 그렇다고 좌뇌형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좌뇌형 능력은 여전히 앞으로도 유호하며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좌뇌와 우뇌, 양쪽 모두를 활용하는 새로운 통합적 사고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미래문제 연구집단아니 덴마크의 코펜하겐 미래학연구소 소장 롤프 옌셴(Rolf Jensen)은 정보화사회 다음에 도래할 미래사회를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 라고 제시한바 있다. 롤프 옌셴은 미래사회를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로 파악하고 미래에서 이야기가 갖는 힘에 주목한다. 그는 미래는 데이터나 정보가 아닌 이야기가 바탕이 되는 사회이며 따라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꾼이 돼야하고 미래의 전쟁은 컨텐츠의 전쟁으로 문화와 이야기의 전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드림 소사이어티를 움직일 감성시장에 여섯 가지 시장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모험의 시장, 연대감과 친밀감, 우정과 사랑의 시장, 관심의 시장, 나는 누구인가(who-am-I) 시장, 마음의 평안을 위한 시장, 신념을 위한 시장이 그것이다. 롤프 옌셴이 말한 드림 소사이어티 사회는 결국 감성과 스토리텔링의 사회로 물질적 가치보다는 감성적 풍요와 개성의 성취를 유의미하게 보고 있다.

다니엘 핑크의 하이컨셉 하이터치 사화와 롤프 옌셴의 드림 소사이어티 모두 감성적 창조능력과 공감을 이끄는 능력을 중요한 시대의 화제로 삼고 있다. 확실히 세계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 놓여 있으며 기업과 개인 모두 이러한 미래사회의 화두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경쟁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많은 부모들은 아직도 자녀들에게 의사나 변화사의 꿈을 주입시키거나, 일류대 일류기업만을 향해 달리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낡은 관성이다. 일종의 매너리즘이다. 우리 아이들이 주인으로 살아갈 하이컨셉과 하이터치, 꿈의 시대를 생각한다면 부모들의 뼈저린 각성과 사고의 혁신,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대한 진지한 사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융합(convergence)은 창조의 용광로

최근 메디치 가문의 부의 경영이 새롭게 주목받으며 TV 광고에까지 나오고 있다. 메디치 가문은 15~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공화국의 평범한 중산층이었다가 은행업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하게 된다. 메디치 가문은 축적된 부를 기반으로 예술가, 철학자, 학자들의 여러 분야에 걸친 공동 작업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메디치 가문을 필두로 당대 여러 가문들이 예술가와 학자, 철학자들을 후원하자 피렌체에는 화가, 건축가, 시인, 음악가, 철학자, 조각가, 과학자, 금융가들이 대거 몰리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서로 교류하면서 전공분야의 벽을 허물고 협력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피렌테 공화국을 중심으로 정 유럽에 문화와 예술의 부흥기, 이른바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하게 된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창조의 시대였던 르네상스가 바로 서로 다른 분야의 결합과 융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뒤 이처럼 서로 관련이 없는 다른 영역과 분야, 문화가 만나 기존과는 다른 혁신적인 새로운 결합과 창조를 이뤄내는 것을 '메디치 효과(Medici Effict)' 라 부르게 되었다. 메디치 효과의 대표적인 예로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위치한 이스트게이트 센터(Eastgate Center)를 들 수 있다. 가장 더운 아프리카에서 이 빌딩은 에어컨을 따로 설치하지 않아도 내부 온도가 항상 24도로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이스트게이트 센터는 환경 건축가 믹 피어스(MIck Pearce)가 아프리카 흰개미집에서 착안해 지은 건물이다. 그는 흰개미들이 큰 일교차에도 불구하고 내부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개미집을 짓는 것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이를 응용하였다. 개미집처럼 건물 옥상에 구멍을 뚫어 뜨거운 공기를 자연스럽게 배출할 수 있도록 만들고 건물 바닥에도 구멍을 뚫어 찬 공기를 건물로 끌어들였다. 이처럼 피어스는 건축과 자연 생태계 두 분야를 놀라운 통찰력으로 결합시킴으로써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조할 수 있었다.

자연계의 생명체가 가진 뛰어난 힘을 모방하는 연구를 '생체모방공학' 이라 하는데 자연의 뛰어난 능력을 인간 생활에 적용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내는 연구이다. 최근 생체모방공학(Biomimetics)은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분야인 건축분야뿐만 아니라 로봇공학이나 의학, 자동차산업 등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것은 고성능 다기능의 사회인 하이테크에서 더 나아가 21세기 미래사회의 특징인 기술과 감성의 융합으로 만들어지는 창조적 하이컨셉을 의미한다. 미래사회는 경계를 뛰어넘어 서로의 연관을 생각하고 하나로 녹여 합쳐내는 융합의 창조적 힘을 요구한다.

이제 세계는 '융합(convergence)의 시대' 다. 세계 각국은 융합기술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이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융합산업의 본격적인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융합의 시대' 에서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보다 포용력이다. 각각의 다른 종들의 차이를 극복하고 장점을 결합하는 능력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21세기는 개방과 다양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인류 역사를 보면 개방과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강국이 된 예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1000년 동안 로마가 번성한 데는 이방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인종적 개방과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를 받아들인 개방과 포용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이 세계 역사에서 유일하게 유럽과 아시아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도 열린 태도를 가지고 타 민족의 종교에 대해 관용을 베풀 것을 강조하였으며 여러 다양한 민족들의 물질적 문화적 교류에 장애가 되었던 장벽들을 허물었기 때문이다. 당시 역참제가 신설되었고 문명과 문명 간의 경계들이 무너져 대륙 간 교역은 번성했으며, 대상(隊商)들의 통로는 더욱 안전해지고 빈번해졌다. 또 가까운 예로 미국은 이민자들을 적극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자유와기회의 땅을 제공하여 20세기 이후 최대 강국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미국을 '다양한 인종의 차이를 녹이는 용광로' 란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다인종 다민족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 어디서든 '다문화가정'의 이웃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해마다 코시안(Kosian)들의 출생이 계속 늘어가고 있고 외국인 등록인수가 100만명을 넘는 UN이 정한 이민국가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라느 민족적 폐쇄성에서 벗어나 그들을 진정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중하고 인정할 때 함께 발전하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의 개방과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획일적 사고를 지양하고 다양하고 상대적인 문화를 인정해야 한다.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줘야 할 것은 1등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를 만나게하고 이를 즐길 수 있게하며 나아가 새로운 문화로 다시 태어나게하는 21세기 네트워크형 실크로드일 것이다.

 

 

 

초경쟁의 시대

사실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세상에 나갔을 때 그 세상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알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을 지금 이 시각에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그 누구도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그럴 수도 있겠다고 감만 잡을 뿐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꿈꾸며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갔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인재가 된다는 것은 성공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이해됐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자녀가 자라서 활약할 세상은 이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 아니라 글로벌 세상이다. 우리 아이들이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5천만의 대한민국 사람들만이 아니다. 익숙산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역사도 취향도 민족적 뿌리도 다른 70억으 지구촌 사람들과 미래를 함께 해야 한다. 때문에 나와 정말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소통과 공감의 역량이다. 우리는 언어적 소통뿐만 아니라 정보의 소통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받아들이며 변화의 파도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은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민(Global Citizen)' 으로 살아가야 한다. 생물학적 뿌리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구체적인 개인은 글로벌 시민이다. 글로벌 시민으로 세계와 마주해서 그에 맞는 더욱 확장된 역할을 맡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서로 화합하면서 살아가면서도 강도는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들은 회사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인재라면 국적과 출신배경에 상관없이 받아들인다. 한국 기업이 한국인만을 뽑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재전쟁의 시대가 온 것이다. 좋든 싫든 우리의 자녀들은 글로벌 인재시장에서 차별화 될 수 있는 능력을 준비해야 하는 그런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다.

세계는 초경쟁(hyper competition)의 시대로 돌입했다. 초경쟁의 '초'의 의미는 경쟁의 규모가 커지는 '슈퍼(superk)'가 아니라 경쟁이 지나치게 치열해서 누구와 경쟁해야 하는지 예측불허한 상황이라는 의미의 '하이퍼(huperk)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초경쟁의 시대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와 과자를 만드는 회사가 서로 경쟁관계가 될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 둘은 실질적으로 경쟁관계가 되기도 한다.

어렸을 적 나는 집에 오신 손님이 용돈을 주시면 엄마에게 뺏기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동네 구멍가게로 뛰어가 과자를 사먹곤 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돈을 주면 문방구를 가거나 과자를 사먹기 보다는 컴퓨터로 온라인에서 게임머니를 구입하거나 음악을 다운받고 돈을 모아서 게임기를 산다. 우리 학원의 아이들도 상으로 상품권을 주면 가장 좋아한다. 부모님 모르게 온라인으로 게임머니를 살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완벽한 선물이 상품권이기 때문이다. 이제 현실적으로 전자회사와 과자회사는 경쟁관계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젠 모든 세상에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미친 경쟁의 시대인 것이다. 경계는 무너졌고 전혀 다른 분야의 결합과 융합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변화의 빠른 속도다. 세상의 변화를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핸드폰이다. 핸드폰의 신제품 교체 주기는 날이 갈수록 빨라져 현재 2~3개월로 단축되었다. 최신 휴대폰이어서 샀는데 소비자가 어느 정도 휴대폰에 적응이 된 순간 더 좋은 성능의 휴대폰이 출시되는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세상은 우리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뀌고 있다. 이제 신중한 선택과 결정으로 실패를 최소화하는 것이 더 이상 최선이 아닌 것이 되버렸다. 이제 핵심은 타이밍이고 속도다. 흐름을 읽지 못하고 망설이다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오지 않는다. 그냥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불확실성이다. 불확실한 것은 예측이 어렵다. 지금 성공한 사업이 내년에도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다. 예전엔 소니하면 워크맨, GM하면 자동차 하고 딱 떠오르는 전문적인 자기 영역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기업마다 주력 사업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 세계의 기업들이 자기의 주력 사업을 선뜻 얘기하기가 어렵다. 삼성전자가 여러 가전제품이나 반도체 등을 잘 만들어내고 있지만 지금 또 다른 주력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과거에 맹주라고 할 수 있는 기업들의 특성은 사라지고 결국은 누가 어떤 분야를 어떻게 차지할 줄 아무도 모른다. 2000년대 세계 25대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던 기업이 1997년도에 7개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우리가 예전에 성공했다고 알던 회사가 사라져 가고 전혀 생각지 못한 회사가 생겨나고 있는 현실이다.

반면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이런 기업들은 역사는 짧지만 엄청난 성장을 보이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수다를 떨다가 만들어진 페이스북이라는 회사는 거의 광고 수익만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고 사회의 변화다. 그만큼 한 기업의 가능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을 초월하고 있다.

초경쟁 시대에는 경쟁일 치열한 정도를 넘어 경쟁의 대상이 모호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와도 경쟁을 해야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야 한다. 산업 간 융합(convergence)이 전 범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계를 허무는 경쟁에서 이제 하이컨셉의 기업이 아니면 살아나기 힘들게 되었다. 또한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에 한 번 뒤처지면 도태되기 쉽다.

이러한 초경쟁 시대에서는 승자독식이 만연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전에 장기간 승자가 되는 과거의 승자독식이 아니라 이동독식의 시대를 의미한다. 블루오션(blue ocean)이라는 미개척 시장에 먼저 진입해 승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영원한 승자가 될 수는 없다. 곧 시장은 수많은 경쟁자들이 합류하는 레드오션(red ocean)이 될 것이며 끊임없이 혁신하고 이동하지 않으면 성공을 지속할 수 없다.

최근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했다. 전세계 정보를 수집해 새로운 가치와 이익을 창출하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한 구글이 최근 10년 동안 인수한 기업은 100개나 된다. 대부분 구글 안으 서비스로 통합되거나 유튜브(You Tube)와 같은 핵심서비스로 발전한 경우도 있지만 직접 하드웨어를 생산하지 않던 구글이 가장 유명한 모바일 기기 생산업체인 모토로라를 인수한다는 것은 세계 IT시장과 스마트폰 경쟁에 큰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일이다.

특히 삼성과 같은 우리나라 IT기업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건희 회장은 긴급 회의를 소집해 위기의 상황을 벗어나기위해 핵심 대안을 찾을 것을 요구했다.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기보다 고성능 다기능의 하드웨어를 개발해 단기 이익에만 주력했던 기업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라도 과감한 선택과 투자에 아낌이 없어야 할 것이다.

초경쟁의 시대는 기업에게만 벌어지는 환경이 아니다. 인간의 삶에서도 미래사회의 환경은 똑같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세계는 너무나 빠르게 변화할 것이며 불확실한 현실은 학문과 직업, 문화의 경계가 무너져 통합적 사고를 요구할 것이다. 이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미래에서는 변화를 예측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새로운 정보능력을 활용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가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전에는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 제일이었다면 이제는 남들과는 다르고 새로운 것이 차별화된 경쟁력이다. 자신만의 색깔로 의미있는 불균형을 더욱 불균형하게 만드는 일에 대한 끊임없는 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초경쟁의 시대에는 끊임업는 혁신과 창조, 열린 사고와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더이상 성을 쌓고 자신의 영토에서 나온 수확물로만 살아가는 정착민의 사고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 이제는 성을 허물고 새로운 땅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유목민의 사고로 살아갈 때다.

 

 

 

거미의 시대가 온다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솝의 우화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화 속에서 '개미'는 더운 여름에도 땀 흘려 부지런히 일하며 겨울을 준비하는 성실한 인간형의 표본으로 등장한다. 반면 '베짱이'는 남들이 열심히 일할 때도 게으름을 피우고 몰래 혼자서 놀러 다니며 노래나 하면서 흥청망청 산다. 마침내 겨울이 되어 갈 곳도 먹을 것도 없는 한심한 베짱이가 얼어 죽을 지경이 되자 땀 흘린 대가로 풍부한 먹을거리와 재산을 갖게 된 개미가 도와주거나 아니면 찾아온 베짱이를 내쫓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성실하게 일하지 않으면 결국 베짱이처럼 굶어죽을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사회의 경고다. 그래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개미의 정신으로 미래를 위해 언제나 열심히 쉬지 말고 노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노예의 근대 산업사회를 거쳐 오면서 경제성장과 발전을 위해 사회의 구성원에게 요구된 자세였다. 그때까지는 이렇게 성실하게 묵묵히 일하는 개미가 유능한 인재였다. 제멋대로 즐기고 게으름 피는 베짱이는 사회를 갉아먹는 존재였다.

그러나 20세기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서 자본주의의 심각한 부작용이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요구되어지면서 조금씩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인간형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한 예로 우리나라는 1980년 처음『잠잠이』로 번역 소개된 미국의 유명한 작가 레오 리오니(Leo Lionni)의 그림책『프레드릭(Frederick)』을 보면 여태껏 우리가 알던 개미와 베짱이의 모습이 확실이 달라져 보였다.

그림책 속 들쥐 식구들은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며 밤낮없이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단 한 마리 프레드릭만은 함께 일하지 않고 떨어져 앉아 자신만의 '일'로 게으름을 즐긴다. 겨울이 되자 먹이를 넉넉히 모은 들쥐들은 처음엔 행복해하지만 긴긴 겨울 점점 먹이가 떨어지고 힘들어진다. 모두들 이야기조차 없어진 겨울날, 그러다 누군가 프레드릭에게 여태 모았다는 프레드릭만의 양식을 보여달라고 하자 프레드릭은 여름내 모아두었던 햇살과 빛깔과 이야기를 풀어놓고 다른 들쥐들은 프레드릭을 보며 시인이라고 감탄한다. 그렇게 들쥐 가족들은 프레드릭과 함께 겨울을 견딘다.

이 이야기에서 프레드릭은 베짱이처럼 게으르고 한심한, 사회의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로 표현되지 않는다. 프레드릭이 햇살과 빛깔과 이야기를 모으는 '일'을 할 동안 다른 들쥐들은 그를 이상하다고 여길지라도 무시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겨울이 힘들어지는 순간 프레드릭을 통해 위안 받으며 감동한다. 개미에게서 멸시당하고 쫓겨나기까지 하는,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한심한 게으름뱅이 베짱이가 이 책에서는 예술가로 인정받고 오히려 사회에 감동을 주는 필요한 존재로 표현된다.

이렇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20세기에는 개미와 베장이의 모습과 관계도 조금씩 변화하였다. 대중문화가 꽃피고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이 중요시 되면서 개인의 특성을 인정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개인의 능력이 전문적으로 발휘되는 것을 중시하였다. 또한 물질문명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20세기에 더 이상 예술을 사치나 게으름이 아니며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안식처로 여겨졌다. 그러나 창조적인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개인의 개성과 특성이 인정되었다 하더라도 개미로 대변되는 인간형은 계속 사회에서 요구되어 왔다.

그러나 21세기 우리 시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또다시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 변화의 속도와 폭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이제는 개미와 베짱이로 나눴던 이분법적인 인간형이 아닌 전혀 다른 창의와 통합의 인간형이 나타나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바로 거미의 인간형이다. 사회는 더 이상 열심히 일만 하는 개미를 원하지 않는다. 노래밖에 할 줄 모르는 베짱이를 원하지도 않는다. 시간과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에 자신의 거미줄을 칠 줄 아는 사람, 그 거미줄을 통해 어떤 정보와 지식이든 얻을 수 있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고를 수도 있으며 선택한 정보와 지식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 그런 거미형의 인간을 원한다.

거미형의 인간은 한 번 엮은 거미줄을 놓치는 법이 없다. 그 줄을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으며 누구와도 소통가능하다. 바로 다양하 인간관계와 열린사회의 유목민적 사고가 그들의 특징이다. 그들은 머무르는 법이 없으며 언제나 변화하고 발전한다. 거미줄의 시냅스(synapse)를 통해 세상의 수많은 정보돠 변화의 신호를 분석하고 통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미래를 꿈꾸는 우리 자녀들은 과연 어떤 유형의 인간인가.

 

 

12학년 겨울방학 때, 큰아이가 백인 친구 다섯 명을 서울 집으로 데려온 적이 있다. 사실 동양인이 백인 친구를 사귀기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아이는 친구들을 다섯이나 우리나라로 초대해 왔다. 더구나 그 중 한 친구는 같은 학교 학생도 안니고 다른 주에 사는 아이였다. 그 친구는 7학년 때 큰아이가 듀크대 영재선발시험, TIP(Duck Talent Identification Program)에서 전국 1% 안에 들게 되었는데, 그 학생들만을 위한 듀크대 여름캠프에 참여했을 때 잠깐 만난 친구지만 캠프가 끝나고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기 전까지 큰아이의 친구들은 한국이란 나라를 막연히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다소 불안한 나라이자 친구기혁이의 나라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고, 우리의 역사나 문화, 생활환경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큰아이는 친구들에게 한국을 꼭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미국 사회에서는 아직고 '코리아'하면 '노쓰 코리아(Nortrh Korea)'를 먼저 떠올리며 대부분 한국에 대해 가난하고 호전적인 나라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먼저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 방문에 친구들의 부모들은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큰아이의 친구들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국 문화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김치는 전혀 입에 대지도 못했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즐겨 먹게 되었고 당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가요 <노바디(Nobody)>를 흥얼거리며 원더걸스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외출했다 들어오면서 'Wow!'를 외치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혼자서 키득거리곤 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그 아이들의 배낭에는 하나같이 원더걸스의 앨범들이 들어있었다. 아이들은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12학년 학교 행사에서 원더걸스 노바디의 노래와 춤을 연습해 발표하고 UCC까지 올렸다. 여담이긴 하지만 사실 나는 그때 K-POP의 미래를 먼저 볼 수 있었다.

큰아이 친구들은 짧은 여행을 계기로 관심과 정보의 부족으로 왜곡될 수 있었던 우리나라 '코리아'에 대한, 특히 역사와 문화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 친구들은 또 다른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코리아를 알렸고 그 중 두 명은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 중이다. 그 친구들이 큰아이와 함께 오지 않았다면 한국 유학을 생각이나 했을까?

큰아이의 가장  큰 강점은 이렇게 자신과 다르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 관계 맺기를 잘 하고 지속적으로 그 관계를 발전시키는 네트워킹을 잘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무엇보다 관계 능력이 중요하다.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적어도 세 번 이상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비판하지 말고 먼저 들어봐라!"

나는 이 말을 10여 년 전부터 아이들에게 누누이 강조해 왔다. 네트워킹의 기본은 관계 맺기다. 이 관계 맺는 역량은 공감하는 능력, 소통하는 능력, 타문화를 이해하는 능력, 전인적인 품성들과도 연결된다.

 

 

21세기 우리 한국인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이 같은 네트워킹 능력이다. 네트워킹을 잘하면 한국인의 우수성을 쉽게 보여줄 수 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외교관인 시대가 온 것이다. 글로벌사회에서는 네트워킹형 삶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의 관계역량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못된 것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바로 이 관계역량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무역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다. 그런데 우수한 컨텐츠가 있음에도 결국 관계 맺는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의 상품을 효과적으로 팔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 한국인이 만나고 호흡을 나눠야 할 세계인은 단지 친구로서의 관계만이 아니다. 서로 이익을 주고받기도 하고 또 함께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자유무역협정인 FTA라는 변화의 소용돌이를 지나고 있는 이때 우리의 관계역량은 더욱 절실하다.

네트워키에 능란한 거미형 인간이 되려면 무엇보다 시대 변화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 단순 지식정보의 사회를 지나 이제 미래는 다니엘 핑크의 예측대로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시대가 되고 또 롤프 옌셴의 예측처럼 드림 소사이어티가 형성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능력과 공감능력을 겸비한 네트워킹형 인간이 성공할 수 밖에 없다.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네트워킹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임을 부모들이 먼저 자각해야 한다.

 

 

 

미래인재의 조건

의학박사이자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기업 '안철수 연구소'의 창업자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있는 안철수 교수는 21세기 시대의 바람직한 인재상으로 '끊임없는 배움으로 자신의 한계를 넓혀가는,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가진 A자형 인재'를 얘기한다. 안교수가 말하는 A자형 인재란 깊은 전문성과 폭넓은 지식과 인성을 갖춘 T자형 인재의 역량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더해 강조한 인재형이다.

원래 T자형 인재는 일본 도요타에서 나온 말로 자신의 분야에만 능통하던 I자형 인재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개념이다. 안철수 교수는 이러한 I자형과 T자형의 인재상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지식과 감성을 전달하고 이해하는 소통의 능력을 중요시 한다.

우리는 모두 우리 아이가 사회에 나가 훌륭한 인재로 커주길 바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인재는 어떤 상인가? 좋은 기업에 들어가 돈도 많이 벌고 폼나게 사는 엘리트? 공부를 많이 해서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과학자처럼 세계 발전에 기여하는 괴짜 박사? 아니면 가끔 TV에도 출연하고 신문에 글도 내는 교양있는 교수님?

미래의 인재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일단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는 우리 세대의 눈으로 보아선 안 되낟. 지금까지 인재란 특별한 능력을 갖춘 뛰어난 몇몇이었지만 앞으로으 인재는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우리 아이와 친구들 누구든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의 견해에 따르면 하이컨셉의 시대를 주도하는 인재는 우뇌형 재능을 갖고 다른 사람들과 감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재능을 소유한 사람이다. 하이컨셉 시대는 '양쪽 뇌를 모두 사용하는 새로운 사고'를 가진 인재를 요구한다.

앞에서도 봐왔듯히 하이컨셉은 예술적, 감성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능력, 트렌드와 기회를 감지하는 능력, 훌륭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 언뜻 관계가 없어 보이는 아이디어를 결합해 뛰어난 발명품으로 만들어내는 능력과 관계가 있다.

하이터치는 마음의 공감으 이끌어내는 능력, 인간관계의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 어떤 사람의 개성에서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요소를 도출해내는 능력, 평범한 일상에서 목표와 의미를 이끌어내는 능력과 관계가 있다. 이제는 노래하고, 시를 쓰고, 디자인하고,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재능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다니엘 핑크는 '미래 인재의 여섯 가지 조건'으로 디자인, 스토리, 공감, 놀이. 의미 부여를 제시한다. 이러한 미래형 인재의 조건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첫째, 디자인 능력

새로운 시대에는 단순히 기능이 훌륭한 하이테크(hightech)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디자인으로 승부해야 한다. 시각적 아름다움이나 심리적 행복감, 좋은 감정을 줄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과거에 특정 직업 영역에서만 필요했던 디자인 능력이 이제는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필요하다. 예술적인 감수성이 요구되고 있다. 예전에는 한 번 구입으로 10년은 보장되는 가전제품을 광고했다. 그러나 지금은 해마다 계절마다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제 사람들은 품질 좋은 에어컨을 들여놓는 것이 아니라 보기 좋고 세련된 감각으로 디자인 된 에어컨을 거실에 꾸며 놓는다. 미래 인재는 디자인 능력으로 자신과 타인을 차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미국 경제지 <포춘(fortune)>은 '최근 10년의 최고경영자'로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를 선정했다. 아이팟, 아이폰 등으로 독자기술이나 원천기술 없이 디자인과 소프트웨어만으로 지난 10년간 IT산업을 지배했다는 것이 선정의 이유였다. 애플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객의 경험과 체험을 디자인으로 구현했다.

이처럼 디자인은 단순한 모양 바꾸기가 아니라 높은 기술력을 담아내는 미학적 그릇이 되었다. 이제 핵심은 디자인이다. 우리 아이에게 미적 체험과 아름다움을 아는 미학적 시각의 중요성을 알게 할 때다.

 

 

 

둘째, 스토리 창조 능력

얼마 전 온 세계는 미디어를 통해 영국의 보잘 것 없던 외판원 폴포츠(Paul Potts)의 노래를 듣고 감동하였다. 그의 노래도 훌륭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험난했던 인생역정과 그 극복 스토리에 더 많이 감동했다. 머리에 총상을 이겨낸 미국의 가브리엘 기퍼즈(Gabrielle Giffords) 의원이 투표를 위해 의회에 나온 모습도 많은 이를 감동시켰다. 이 또한 죽음의 순간을 이겨내고 의원으로서의 모습을 지켜나가는 그녀의 도전에 모두가 감동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 단순한 사실, '팩트(fact)'를 뛰어넘는 감동의 '스토리(storty)' 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이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힘은 단순한 재미나 사실만이 아니라 재미와 더불어 시대와 조화를 이루고, 동시대인들과 공감하며, 삶의 의미를 제시하는 콘텐츠에 있다. 게임 산업만 해도 스토리 구성이 중요한 기초가 됨을 익히 보아왔다.

우리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더욱 가속화된 네트워킹의 시대에 접속만 하면 엄청난 이야기를 만날 수 있고 직접 창조하기도 하며 서로 주고 받는다. 가히 스토리텔링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이 스토리텔링의 시대에서 중요한 능력은 선택과 공감의 능력이다.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여 다른 사람과 감동을 공유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졌다. 단순한 주장과 자료만으로는 이제 아무도 설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의 시대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이에게 풍부한 경험을 하게하고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이해하게 하는 일이다. 유연한 사고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개성과 색깔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셋째, 조화 능력

산업화 시대 및 정보화시대에는 일을 전문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전문화된 개별분야를 연결 시킬 수 있는 조화가 더 강조된다. 미래의 인재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분석이 아니라 통합이다. 이는 큰 그림을 볼 수 있고 새로운 전체를 구성하기 위해 서로 다른 개별을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조화가 중요시 되면서 무엇보다 서로를 관계 맺는 능력과 경계를 뛰어넘는 사고가 요구된다. 하나의 현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하고 종합하는 능력과 서로를 연결해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는 조화와 통합이 중요해졌다.

권위적이고 일방저거인 사회적 관게에 익숙하게 살아 온 한국인들은 남과 다른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에게 익숙하지않은 상황이나 주장들을 '다르다' 고 판단하기 보다는 '틀리다' 고 평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미래사회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것, 남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조화시키고 넓은 눈으로 큰 그림을 그려낼 줄 알아야 한다. 특히 다민족국가로 변화해가는 대한민국에서 다양한 역사,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과 합리적으로 소통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것을 폭넓게 받아들이는 조화능력이 절실한 때이다. 전태를 위해 자신의 익숙함을 접고 기존의 틀을 녹여내는 과정에서 아픔을 기꺼이 감수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때다. 무한경쟁에 빠져 이기적인 우리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능력이기도 하다.

 

 

 

넷째, 공감 능력

미래 사회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공감과 소통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미래의 바다 앞에 놓여진 사람들은 홀로 불안한 파도타기를 하고 있다.

핖요하다는 것은 여성적으로 부족하다는 말이다. 서로와 서로가 이해받기 어려운 개인적 개별적 사회에서 진심으로 필요한 것이 소통이며 공감이다. 넘쳐나는 정보와 지식으로 누구나 전문가인 시대에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마음을 읽어내는 공감의 능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공감 능력은 자신을 다른 사람의 처지에 놓고 생각하며 그 사람의 느낌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공감은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하는 수단이며,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보편적 언어이다. 다니엘 핑크는 공감의 능력을 "21세기 노동시장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직업적 기술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지금 어떤 것이 필요한지 마음을 열고 들어주고 말해줄 때 상대방은 비로소 움직인다. 공감과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적극적 경청의 문제다. 우리 아이를 잘 듣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다섯째, 놀이 능력

모든 것이 진지하고 엄격한 산업사회의 가부장제에서는 웃고 즐기기엔 시대가 암울했으며 나이와 직책, 계급의 관계가 중요시 되는 권위의 시대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사회는 경계가 없어지고 통합되면 네트워킹의 관계가 중요시되는 사회다.

이러한 시대는 즐겁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다른 사람도 움직일 수 없다. 미래사회는 즐거움과 유쾌함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댜.

놀이와 유머는 상황을 새롭게 만들며 창조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삶을 여유있게 만들어 사기를 높이고 권위를 부순다. 이것은 또한 소통의 급을 한 단계 올려주고 언어보다 빠르게 정서적 공감을 얻어 낼 수 있다.

최근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업무와 학업의 스트레스와 현실에서 맞게 되는 좌절감들을 다스리고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고 있다. 관심있는 분야의 동아리 활동이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카페활동 등을 통해 스스로 관계를 맺고 놀이와 재미를 찾는다. 대충매체에서 유명한 MC들도 엘리트 아나운서보다 소통할 줄 아는 유쾌한 개그맨이 더 각광을 받는다.

잘 놀 줄 아는 아이가 잘 산다.

 

 

 

여섯째, 의미 부여 능력

물질에 대한 욕구로 가득했던 산업시대를 건너오면서 사람들은 이제 삶의 가치를 물질에 두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물질만 가지고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유사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다시 되묻는다.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

이제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미없는 일들을 하기를 거부한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설사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일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다니엘 핑크는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을 미래인재의 중요한 능력으로 꼽는다. 현재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의미를 찾고 또 만들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단순히 노동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의미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미부여 능력은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며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능력이다.

이윤추구가 최고의 선인 기업조차도 이윤창출을 위해 기업이미지를 생산하고 기업의 상품을 소비할 때마다 몇 퍼센트는 사회환원을 하겠다는 방법 등을 써서 소비자가 마치 그 기업의 상품을 소비할 때마다.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소비를 권장하는 영리한 마케팅을 벌이기도 한다.

 

 

나는 매일 출근할 때마다 거울을 보며 스스로를 격려한다. 내가 지금 나가는 곳은 단순한 학원사업의 장이 아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이라고 내가 나에게 의미를 확인한다.

"나는 교육자다. 나는 행복하다. 누군가 한 사람의 인생의 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일은 위대하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세상의 변화를 알도록 해주고 가슴 속에 있는 시크릿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며 그 과정에서 겪게되는 어려움을 함께 할것이다. 나는 선생님이다. 선생님이란 먼저 배운 사람이다. 나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도전하고 부딪힐 것이다. 그 모습이 아이들에게 긍정적 영향이 될 것을 믿는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나는 더욱 나에게 의미를 확인하는 셀프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나와의 대화를 하면서 나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아이들에게도 이처럼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훈련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 아이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삶의 목표를 잊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하느냐이다. 이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이 되라 하기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소셜미디어시대의 도덕적 정체성

최근 들어 한 번쯤은 "TGIF"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트위터(Twitter), 구글(Google), 아이폰(iPhone), 페이스북(Facebook)의 첫 이니셜을 조합한 단어가 바로 TGIF다. 이 낯선 단어는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새로운 키워드가 되었다. TGIF는 디지털 시대의 소통을 화두로 삼고 있다. 특히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소셜 미디어인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큰 위력을 발휘하며 사람들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삶의 방식까지도 바꿔가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라디오가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이용자가 5000만 명에 이르는 데는 38년이 걸렸고, 텔레비전은 13년, 인터넷은 4년, 아이팟(iPod)은 3년이 걸렸다고 한다. 반면 페이스북은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약 2억 명이 가입했다. 올해로 서비스를 시작한 지 7년째인 페이스북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6억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셜 미디어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점차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직원을 채용하고 신제품을 홍보하기도 하고 서비스도 제공한다. 소비자들도 소셜 미디어를 적극 이용해 제품의 사용후기와 추천 글을 올리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제품구입을 결정한다. 경제 환경뿐만 아니라 정치영역에서도 소셜 미디어는 새로운 시민 사회의 소통 방법을 제시한다. 선거와 정치쟁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제 소셜 미디어는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내리고 있다.

지금처럼 소셜 미디어의 네트워킹의 보편화되고 전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이 퍼져나가는 글로벌 사회에서 개인에게 가장 중효한 것은 무엇보다 윤리적 판단과 도덕적 자기 정체성의 확립이다.

최근 너무나 손쉽게 해로운 동영상이나 사제 폭탄을 만들어 개인적인 목적으로 설치한다거나 범죄적 해킹 행위들까지 사회적 범죄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기능을 모르거나 지식이 없어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많아서 생기는 병폐이기도 하다.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고, 옳지 않은 일을 하지 않고, 옳은 일을 용기 있게 행하는 것이 도덕성이라면 자기 정체성의 핵은 도덕성이다.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힘든 때 부모는 아이에게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부모의 역할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아이의 도덕성은 우선적으로 가정에서 길러지기 때문이다. 아주 쉽게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부모, 아이들 앞에서 버젓이 거짓말을 하는 부모,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부모, 자신의 감정에 따라 다른 태도를 보이느 부모, 이런 일관되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부모에게서 정직하고 정의로운 아이가 나올 수 없다.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행동 판단의 기준을 배운다. 그 판단의 기준이 물리적 힘이 되는지 자신의 이익이 되는지 진실이 되는지는 바로 부모의 행동으로 결정된다. 도덕심과 예의를 갖추고 사려심이 깊은 아이로 성장한 아이가 나중에 미래사회에서도 공감하고 소통하는 전인적 인격체로 살아갈 것이다. 이것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지속되어온 교육의 전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미 많이 자라버린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거인가. 사실 이 친구들이 곧 사회로 진출하여 소통해야 할 아이들이기에 올바른 도덕적 정체성을 갖게 하는 일이 더 시급하고 절실하다.

사소하고 부수적인 일로 중요한 부분의 다칠 수가 있는 때가 청소년기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본질에서 벗어난 일들을 가지고 영향을 받고 흔들리고 하는 것은 아이가 아직 미성숙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성숙해질 때가 언제인가? 망나니 아들도 결국은 엄마가 아프다거나 아니면 다른 엄마의 처절한 샹황을 알게 되면, 엄마를 살려야겠다,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나 아니면 이걸 해결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면 행동이 바뀐다, 목표가 생기는 그 순간부터 아이는 바뀐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의 태도와 모습을 바꾸면 아이도 쉽게 변화시킬 수 있지만 사춘기 시기의 아이들은 부모가 바뀐다고 해서 쉽게 변화하지는 않는다. 부모는 아이를 바꾸지 못한다. 아이는 아이 스스로 바뀌어질 뿐이다. 어른들의 몫은 아이 스스로가 바뀔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일뿐이다. 사람은 절대로 남에 의해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변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변화한다.

따라서 자녀의 도덕성과 정체성을 올바로 확립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일직부터 부모의 역할을 알고 아이가 성숙한 인간이 도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러나 잘 안 됐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부모는 그때부터라도 아이가 자신의 궤도를 찾을 때까지 끊임없이 지속적을 옆에서 지켜봐주며 도와주어야 한다. 선생님이나 외부의 도움을 받든 GTI 검사처럼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든 아이가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도구와 자극을 제공하고 소통해야 한다.

자기 도덕성과 정체성이 제대로 서 있는 아이가 소셜 미디어 사회의 수많은 정보와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도 올바른 선택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은밀하고 치명적인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와 부모가 함께 노력하다 보면 아이는 어느 순간 봇물처럼 터져 당당하게 자신만의 물길을 만들어 미래의 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그렇게 바다로 흘러 갈 강물의 줄기가 될 것인지 고여서 사회의 썩은 물이 될 것인지, 지금도 우리의 아이들은 자신을 시험하고 선택하며 결정하고 있다. 그 어느 시기보다 부모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스마트시대의 자녀교육

내가 교육사업을 하고 있어서인지 기업체의 CEO들을 만나게되면 꼭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 회사는 인재를 어떻게 뽑으세요? 어떻게 하면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나요?"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 그런데 내가 만나본 CEO들 중 학벌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이런 대답이 되돌아오곤 했다.

"이제는 학벌타파의 시대입니다. 학벌이 뭐든 인종이 뭐든 우리는 회사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뽑습니다."

깜짝 놀랄 인식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학력만으로 인재를 선별하고 결정하지 않겠다는 회사들의 인재 선발의 방향과 방법들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당신의 과거를 찢어라

○○○○ 신입사원 모집엔 서류전형이 없습니다

당신의 실력과 열정을 보겠습니다

 

 

한 조간신문에 게재된 신입사원 모집광고다. 이 광고는 그날 아침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이와 학력을 걸러내는 서류심사 없이 오직 그 사람이 갖고있는 창의적 역량을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회사의 공개채용에 9000명 가까운 지원자가 몰렸다고 한다.

대학들도 이제는 심층면접의 방식으로 신입생 선발을 많이 한다. 흑백사진처럼 자신의 색도 갖지 못한 채 오로지 단편적 지식을 쌓은 학생보다 3D의 입체적 역량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사회적 변화를 볼 수 있는 흐름이다.

요즘의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선발하기 위한 면접에서 대개 정답이 없는 오픈성 질문을 던진다. 신입 아나운서 채용을 위한 한 방송프로그램에서도 보았듯이 자기소개를 말로 하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입니다." 이게 아니다. 면접관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창의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할 것을 주문한다. 똑같은 시간을 주고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은 동일한 조건하에서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자기를 설명할 수 있는지 미션을 주는 것이다.

"어떤 대통령을 원하는가?"

"맨홀 뚜껑은 왜 둥근가?"

언뜻 들으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질문을 던지고는 그만이다. 물음을 던지는 사람은 참 쉽다. 정답이 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은 편하지만 그 대답을 하는 사람들은 고역이다. 답변자들은 대답을 통해 서로 적나라하게 비교가 된다. 개인의 문제해결 능력이나 창의력을 명확하게 볼 수가 있다.

지금 기업들은 인재들을 뽑을 때 그냥 단순히 뭘 많이 알고 있는지의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솔루션, 어떤 난관에 대한 각자의 창의적인 해결 방법을 묻는다. 기업들이 인재를 뽑는 방법은 앞으로 더 많은 진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한 기업이 인재를 뽑는 가장 큰 목저거은 결국 딱 하나이다. '문제의 해결.' 우리 회사가 부딪치는 문제를 누가 해결할 능력이 있는가? 어떻게 창의적으로 해결할 것인가를 회사는 눈여겨 본다. 한 연구소의 리서치에 의하면 세계적 기업의 CEO들이 잠 못 이루는 가장 큰 원인이 사람, 즉 인재 때문이라고도 한다.

학벌이나 점수에 얽매여서 자기만의 빛깔을 만들고 창의적 문제 해결력과 미래역량을 키우는 데 소홀했던 아이는, 일류대를 졸업하고 일류기업에 입사했다 하더라도 시한부 직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2~3년 후에는 스스로 도태되어 다른 직업을 모색할지도 모른다.

점수나 지식의 양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갔다. 어떤 난관에 부딪혔을 때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창의적인 솔루션을 꺼내놓을 수 없다면 그 사람의 역량은 인정받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무조건 시킨 일만 열심히 했던 'work hard' 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름하여 스마트시대다. 일도 'smart' 하게 해야 한다. 일도 상황의 변화게 맞게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work smart' 의 시대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점수 잘 만들어내는 아이들이 높이 평가받는 기능 중심의 사회였고 학교 교육 역시 기능 중심의 교육이었다. 그러나 무조건 열심히 공부하란 말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 공부의 양이 아니라 공부의 목표와 방법이 차별화 돼야 한다.

청소년기에 방황하는 아이들을 만나보면 공통점이 있다. 대개가 공부에 상처받은 아이들이다.

"1등을 못하는구나. 대학을 못 가겠구나."

5등을 하든 50등을 하든 이런 고민을 똑같이 한다. 그러면 아이가 공부 이외의 것에서 위로를 받으려고 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 학생치고 노력해 보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자기가 해볼 노력은 다 해본다. 꼴등도 1등과 마찬가지로 노력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가능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아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무엇인가를 다른 발상으로 모색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것을 탈피해보려는 적극적인 움직임들이 있다. 창의 인성 교육의 필요성을 만하는 여러 견해들은 교육이 기능 중심에서 역량 중심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능 중심의 사회에서 길러진 인간이 새로운 시대의 요국에 이제 더 이상 부응할 수 없음을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역량이라는 것은 어떤 분야에 한정된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역량이다. 사람을 다루는 것도 역량이고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도 역량이다. 한마디로 'all round', 전인적인 창의성과 인성을 기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러한 역량과 함께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들을 판단하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자가 정체성 확립도 중요하다.

나는 학원의 아이들에게 누누이 강조한다.

"최상급의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남과 똑같은 방법으로 더 잘하려고 열심히 노력만 하는 사람도 아니다. 최상급의 학생은 더 잘하기 위해서 자기 주도적으로 남과 다른 방법을 찾아내고, 나만의 방법을 만드는 창의적인 학생이다."

이제 개인의 역량은 겉으로 보이는 그 무엇이 아니다. 보이지않는 그 무엇을 어떻게 자기만의 방법으로 꺼낼 수 있느냐,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의해 좌우된다.

 

 

나는 그동안 미래사회에 대한 궁금증과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책들을 읽으면서 많은 미래학자들의 강의를 듣고 보았다. 아떤 때에는 "아, 정말 그렇구나!" 하고 번쩍 눈이 뜨이기도 했다. 대학원 미래교육학 수업을 통해 나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었고 기대했다. 그것은 나를 또 한 번 도전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세상의 주소가 'www.' 으로 확 바뀔 것이라는 말은 실체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미래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설레임을 안고 더 앞선 나라 미국에 가서 우리 보다 좀 더 일찍 와 있던 미래의 세상을 경험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한국에서는 내가 미국에서 이미 경험한 미래 사회의 변화들이 똑같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치 데자뷰를 보는 듯 했다.

"앞으로믄 오픈소스를 활용하여 무엇이든지 배울 수 있다. 미래의 학생들을 책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암기교육의 종말이 올 것이다. 나의 지식을 어떻게 남고 다르게 쓸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미래학자들은 이런 예측들을 벌써 15~20년 전부터 들려주었다. 실제로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학교에서 처음 필수로 이수해야 했던 과목이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미국의 대학은 모든 학생들에게 커뮤니케이션 과목을 공통과목으로 반드시 이수하게 하는데 나는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쳤음에도 그 과목을 한국에서 이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들어야 했다. 강의를  통해 나는 이 사회에서 소통하면서 살 수 있는 모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을 배울 수 있었다. 미국 수업을 듣기 위해 처음에 가장 필요한 리서치하는 방법, 정보를 찾는 방법, 리포트를ㄹ 작성하는 방법, 인터뷰 방법, 발표하는 방법, 심지어 이력서를 내는 방법과 면접 받는 방법까지 이 세상에서 소통할 수 있는 유효한 정보를 활용하는 방법들을 배울 수 있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했던 것이 도서관 투어였다. 나는 미국에 있는 유명한 도서관을 데리고 가려나 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투어는 바로 우리 학교 도서관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였다. 컴퓨터를 이용해 각 분야의 정보를 어떻게 찾고 어디서 뽑아내고 그림을 카피하고 리서치하는 방법들을 읽히게 했다. 오픈소스를 활용하는 여러 소통의방법들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80년대에는 도서관에 가면 사서 앞 도서목록법으로 잘 정리된 도서카드를 뒤져 내가 원하던 책과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작은 모니터 앞에 앉아 그 많은 도서를 e-라이브러리(library)로 검색해서 찾아 바로 다운받고 카피하고 프린트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은 내겐 큰 문화적 충격이었으며 꿈꾸던 미래 사회의 복판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은 긴장과 설레임이 당시의 나를 자극시켰다.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소통의 방법과 활용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을 중요한 기초로 삼고 있던 미국 사회의 모습은 내가 미래의 한국 교육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할 수 있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대학에서는 많이 알고있는 아이를 뽑는 것이 아니라 상품창조나 지식창조에 강한 아이들을 오히려 뽑으려고 할 것이다."

미래 교육체계에 대한 이런 예측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시행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의 핵심이기도 하다. 지식을 남과 다르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 자기 인생을 끊임없이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열정이 있는 인재를 대학에서 뽑겠다는 얘기다. 그것은 학생의 미래 가능성에 더 집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자녀를 교육하고, 학생을 교육하는 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핵심은 지식의 습득이다. 요즘에는 지식을 알려고 하면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날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들을 어떻게 나만의 방법으로 나의 재산으로 만들고, 어떤 전략 하에서 차별화시킬 것인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력, 논리적 사고력, 통찰력, 이해력 등을 가르치고 경험하게 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

문제 해결력, 창의력, 인성교육은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이 과거의 산업사회가 원하는 인재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기에 제기된 화두다. 향후 100년 동안 자기 삶을 영유할 그런 교육을 만들어야 할 오늘날 우리의 교육은 그러나 아직까지 너무 미시적이고 근시안적이다.

자녀의 시고의 틀은 결코 남들이 바꿔주지 않는다. 학교선생님이나 학원선생님에게 돈만 주면 쉽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못한다. 결국 부모가 아이들을 끄집어내어 좀 더 넓은 세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부모가 먼저 세상을 만히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만큼 교육열이 높은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 엄마들만큼 자녀교육에 열성적이고 희생적인 엄마들도 세상에 없다. 그런 엄마들이, 부모들이 맘만 먹으면 못할 일이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의지와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부모의 학벌이나 능력이 아니다. 부모가 얼마나 세상고 아이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부모가 하지 않으면 아이를 감동시킬 방법은 없다. 책을 읽는 부모에게서 책을 읽는 자식이 나오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탈권위의 부모에게서 자녀는 예술과 창조의 영감을 얻는다.

부모가 미래를 꿈꾸고 배우지 않는데 어떻게 자식이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창의성이 답이다

미래 교육의 중심 화두는 창의성이다. 미래사회는 단순한 지식만으로 주어진 문제를 기계적으로 해결하는 인재를 원하지 않는다.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해결방법을 스스로 찾아가는 스마트한 인재를 원한다. 미래 사회에서의 인재는 문제를 내면 단번에 답을 말하는 퀴즈형 인재가 아니다. 문제가 왜 생겼는지 꼼꼼이 들여다보고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다른 분야에도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다르게 생각하고 도전하는 창의적인 인재다.

창의성이란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힘이다. 흔히 별나게 행동하고 제멋대로 생각하는 것을 창의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창의력은 세상에 전혀 없었던 것을 생각하는 공상력과는 다르며 일상의 틀을 깨고 불가능했던 생각을 마음대로 연결해 생각하는 상상력도 아니다. 그 셋은 생각의 한계를 구분 짓지 않는 열린 사고와 연관되어 있지만 꼭 같은 것은 아니다. 창의력은 이미 획득한 지식의 기반위에 새로운 거을 생각하는 작업이며 기계적 공식 응용이나 계산과는 차원이 다르다.

누구나 수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상상력과 창의성, 호기심을 갖고 태어난다. 이러한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호기심, 다양성, 개방성, 융통성, 결단력, 독립심, 직관력 그리고 긍정성 같은 힘을 길러주는 것이 창의성을 높이는 교육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습시간은 세계최고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평균 7시간 50분, 1주일에 평균 50시간을 학습한다고 한다. OECD 국가의 학생 학습시가나의 평균인 주당 34시간과 비교하면 16시간이나 더 많다. 또 2002년 핀란드 헬싱키리서치에서 세계 185개국의 IQ를 조사한 결과 미국은 IQ 98로 19위, 이스라엘은 IQ 95로 26위를 했다. 그에 반해 한국인의 IQ는 106으로 세계 2위다. 머리 좋고 공부도 많이 하는데 세계적인 인재로까지 성장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역시 교육현실에 있다. 입시위주의 기능성 교육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보다는 주어진 문제의 답을 외우는 암기식 학습을 강요한다. 우리나라 학생이 초중고 12년 동안 연습한 문제가 백만 개가 된다고 한다. 가히 세계 최고의 문제풀이 박사들이다.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정답만을 쫓는 경직된 교육으로는 창의성을 기대할 수 없다.

미국의 학교에서 시험은 대개 퀴즈와 에세이로 구별된다. 퀴즈는 학생들이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기초지식으로 암기하고 숙지할 수 있게 한다. 그러한 퀴즈는 전체 성적의 20~30%를 차지한다. 그리고 나머지느 에세이를 통해 테스트한다.

에세이는 자신의 관점으로 문제를 읽어내고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 서술형 테스트로 학생의 남다른 관점과 차별적인 해결방법에 큰 점수를 준다.

우리나라 학교에서도 서술형이 내년에 50%까지 확장되며 앞으로 전면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많은 학부모들은 지금부터 서술형 시험유형을 모의테스트하고 예상문제를 훈련하느라 애를 먹는다. 정답이 하나인 문제만 풀다가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창의성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예상문제를 풀어본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일상적으로 자연과 사회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며 여러가지 가능성을 실험해보는 과정에서 온 몸이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창의성의 핵심은 호기심

"수업시간에 딴 짓하지 말고 선생님 말씀 집중해서 잘 들어."

우리 부모들은 학교 갈 때 아이에게 잘 듣고 오라는 당부를 한다. 그러나 유대인 부모들은 다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꼭 선생님께 물어봐. 네가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질문하렴."

가르쳐주는 지식을 그냥 얌전히 듣고 오는 아이와 궁금한 것을 못 참고 이것저것 질문하고 오는 아이의 차이가 창의력의 차이를 낳는다.

호기심은 창의성의 핵심이다. 호기심이 생기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호기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이 경험하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 뇌는 자극을 주어야 발달한다. 자극이 되는 경험 없이 생각을 키울 수는 없다. 부모는 아이가 경험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질문을 유도해야 한다.

"엄마, 저 오리는 물에서도 젖지 않아요"

"그래? 왜 그럴까? 방수복을 입었나?"

"그렇지만 새는 깃털로 되어 있는데요?"

"글쎄 말야. 혹시 깃털에 뭘 바르고 나왔나?"

"온 깃털에 물하고 섞이지 않는 기름같은 걸 바른 거 아닐까요?"

"우리 가서 만져볼까? 동물백과도 한번 찾아보고 말야. 로션을 바르는 멋쟁이 오리인이 아닌지."

이렇게; 답이 아닌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스스로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호기심은 지금까지의 습관을 벗어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런데 왜?"라는 질문을 할 때 새로운 생각이 나올 수 있다.

"좀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없니?"

창의성에는 정답이 없다. 그런데도 마치 정답을 알고 있다는 태도로 부모가 아이에게 창의성을 요구한다면 그 순간 아이의 창의성은 숨어버린다.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형편없다는 열등감과 다시 질책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아이는 다시는 시도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도전을 즐기고 실패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초없는 창의성은 없다

흔히 창의성은 학습과는 별개라는 위험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창의성은 이미 쌓아놓은 튼튼한 기초위에 새로운 생각을 세우는 일이다.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잘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기초 지식과 사고력은 튼튼히 마련해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는 것이 많으면 문제를 좀 더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많이 알면 알수록 더 많은 새로운 생각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많이 알기 전에 반드시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막연히 알고있는 피상적 정보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지식이라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창의력의 기초가 되는 지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국영수나 사회, 과학, 체육, 음악 같은 과목의 문제가 아니다. 학습을 하는 태도의 문제이며 방법의 문제이다. 복잡한 현실에서 발견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에 맞는 해결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공식이나 단순 지식만으로는 어림없다. 역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 과학으로 생명의 신비와 우주의 위대함을 배우고 수학의 세계를 통해 물질 세계의 뛰어난 힘을 느끼는 것, 체육을 하면서 기르는 팀워크와 건강한 자기발산, 음악을 통해 감정의 공감을 느끼고 리듬을 즐기며 시와 문학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일, 이런 모든 학습의 태도에서 즐거운 공부를 하게되는 아이가 전문적인 지식까지도 익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도전하는 긍정의 힘

0.1%의 가능성에도 도전하는 것이 창의성이라면 실패하고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긍정적 힘이야말로 창의성을 자라게 해 주는 바탕이다. 모든 일에 긍정적인 사람은 일을 할 때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높은 기대감을 갖고 있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한 긍정심은 역시 어릴 때부터 훈련된다.

부모는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하기위해 보호하려고만 하지 말고 상처 받았을 때 다시 일어서도록 박수쳐주고 격려해주며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줘야 한다.

긍정심은 자신은 장점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장점을 알지 못하는 아이는 다른 사람의 장점은 물론 어떤 일이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긍정적으로 자라기 원한다면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장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신의 장점을 아는 아이가 자존심도 강하고 다른 사람도 배려한다.

아이에게 자신의 장점을 종이게 써보게 하자. 하나 두 개가 아니고 20개 30개, 많을수록 좋다. 장점을 찾고 쓰는 동안 아이는 벌써 글너 장점 많은 아이로 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긍정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아이가 도전할 목표를 세우고 꿈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꿈이 있는 한 포기란 없다.

 

 

 

창의성의 꽃, 혁신

창의성의 꽃은 혁신 (innovation)이다. 혁신이란 발명(invention)과는 다른 것이다. 발명도 창의성의 하나지만 미래 사회에서 요구하는 창의성은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있는 것을 낫게; 만드는 혁신에 있다. 발명은 새로운 독창성은 있지만 사회에 맞는 적절성은 때때로 부족하다. 발명의 성과를 확장하고 활용하는 것이 혁신이다. 발명은 돈으로 아이디어를 만들지만 혁신은 아이디어로 돈을 번다.

창의성을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말할 때 사람들은 대개 지금까지 못 보던 특이한 걸 생각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창의적 사고란 과거의 것을 떠나서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미 있는 사실이나 가정을 토대로 그것을 탁월한 관찰력으로 분석하고 살펴 비로소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 혁신이다.

창의적인 생각이 많다고 해도 그것을 더 깊이 탐구하거나 성공시키려는 끈기가 없으면 창의적인 생각은 아무 소용이 없다.

부모는 자녀가 하나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 줄줄 알아야 한다. 대신 해주거나 해결책을 던져주거나 그것도 못한다고 화를 내고 돌아서면 안 된다. 끝까지 지켜보며 마지막에 등을 두드려주고 아낌없는 격려를 해줘야 한다.

 

 

 

빈둥거리게 하자

깊이 생각하던 문제를 내려놓고 일상으로 돌아와 쉴 때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다들 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거나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다가도 문득 아이디어가 팍 하고 떠오르기도 한다. 꿈을 꾸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른 사람도 있다. 수많은 과학자나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고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는 이렇게 가만히 있을 때가 많다. 가만히 있는 것,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몽상이라고도 하고 여유라고도 하는 이 틈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이 빈둥거리는 꼴을 못 본다. 빈 곳이 있어야 채울 수 있다. 쉬어야 다음 힘을 낸다. 아이가 자신을 들여다 볼 여유를 주자. 문제의 짐을 내려놓게 하자. 아이를 가끔은 빈둥거리게 하자.

그런데 그 아이디어는 갑자기 찾아온다. 순간적을 왔다가 휙 지나간다. 인간의 기억은 매우 짧아서 순간적을 떠오른 아이디어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1분 이내라고 한다. 아이디어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떠오르기 때문에 바로 메모하지 않으면 영원히 귀중한 것을 놓칠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언제나 메모하게 하는 것도 그래서 좋은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이다. 어느 소설가는 항상 머리맡에 종이와 연필을 두고 잤다고 한다. 꿈에서 본 장면과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말이다. 요새는 디지털 기기가 발달해서 휴대폰에 거의 모든 메모기능과 녹음기능이 내장되어 있다. 그런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반추하기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반추해보기다. 분추하기란 오랫동안 어떤 문제나 과제에 집착하는 적극적이면서도 계획적인 정신활동을 말한다.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스쳐가기보다 의문을 제기해보고 다른 사람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판단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창의적 사고를 훈련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글쓰기다. 자녀에게 주제를 선정하고 글의 내용을 계획하면서 주제에 대해 반추하게 해보자.

'볼펜을 끝까지 아껴쓰는 법'

'낮잠자는 법'

'비오는 날 운동장을 진흙이 튀지 않게 걷는 법'

'피자의 토핑을 흘리지 않고 먹는 법'

이런 일상적이고 친근한 주제부터 생각해 주제를 확장해 보게 한다.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질문을 던지게 하고 읽는 사람이 평소보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할 수 있는지 보여 줄 수 있도록 깜짝 놀라는 내용이어야 한다. 그것이 우스운 것이든 심각하든 상관없다. 이러한 반추적 사고는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주고 자신도 몰랐던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견하게 할 수도 있다.

 

 

 

열린사회에서 피어나는 창의성

창의성은 다양성이 인정되고 발휘되는 열린 사회 분위기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개방적 사고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관저머을 배울 수 있게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어떤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사람과 입장을 바꿔 생각하게 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또한 창의성은 새로울 뿐만 아니라 쓰임이 유용해야 한다.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를 창의적인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자세이다. 권위적인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 아이는 열린 사고를 할 수 없다. 문제를 제기하고 이의를 제기할 대 합리적으로 받아주고 틀렸다면왜 그런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한다. 아이의 창의성은 창의적으로 되라고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던 타인고 아이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그냥 받아주고 보아주는 부모의 인내와 열린 마음에서 씨를 뿌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융합의 시대 통섭교육이 필요하다

21세기 미래 사회는 복잡한 네트워크의 사회로 경계가 허물어지고 이종간의 융합이 활발해지는 시대이다. 어제의 새로운 것은 오늘 다른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스피드의 시대이며 변화를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의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창의성은 단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을 연관지어 상호 작용시켜 전혀 다른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것을 말한다. 바로 다른 분야와 영역이 만나고 융합하는 지점에서 싹트는 것이 미래 사회의 창의성이다.

이것은 15세기 메디치 효과의 미래적 해석이며 도래이다. 바야흐로 통섭(consilience), 컨버전스(convergence), 하이브리드(hybrid), 퓨전(fusion)의 시대가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을 보면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통섭의 교육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고등학교 과정을 문과와 이과 학부로 나눠서 공부를 시킨다는 것 자체만 해도 그렇다. 수학 문제를 조금 더 잘 풀면 이고, 수학에 조금 약하면 문과다. 과학에 흥미가 있으면 이과를 선택하게 하고 사회과목에 흥미를 느끼면 문과를 선택하게 한다. 말도 안 되는 현실이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단순 무지한 교육이 일선 교육 현장에서 아직도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융합교육의 움직임과 학문간 벽을 허무는 통섭현상이 활발해지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융합한 대학원과정이 운영되는 등 학과 간 벽을 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연과학이 인문사회과학 또는 예술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가 당면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미래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고학기술공학을 기반으로 여러 학문간 융합을 통한 교육체제와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3~4년 전부터 초중고 과학교육에서 과학, 기술, 공학, 수학의 융합교육인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교육을 추진하기 시작하다가 최근에는 여기에 예술 분야와 인문사회 분야까지 확대한 융합교육, 즉 STEAM(Science, Technology. Engineeering, Arts & Mathematics)교육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SciArt 프로그램'이나 프랑스의 '실험실' 프로그램은 과학과 예술의 융합 창작과 협업 실험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서로 경계가 업는 융합교육에 의한 인재 양성교육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통섭이란 배운 지식들이 자기 안에서 자유롭게 날개를 펴고 날아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식이 자유롭게 날다가 한데 어울려 멋진 군무를 추는 새들처럼 또 다른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통섭의 교육이다.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어떠한 경험과 어떠한 어려움과 어떠한 배움도 자기으 큰 틀에 담고 필요할 때마다 용광로의 주물틀에 부어 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것이 또한 창의력이다.

 

 

 

미래인재를 길러내는 교육

교육이란 오늘을 바탕으로 내일의 변화된 환경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 교육의 목표는 너나 할 것 없이 '입시, 대학, 성공' 이라는 틀에 갇혀 고착되고 말았다. 물론 기술적인 면에서 보면 그것도 교육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교육으로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육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배우는 지식들이 영원불변의 절대적 진리라면 습득한 지식의 양을 측정한 점수로 평가하는 방법이 타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수많은 법칙들과 과학적 발견, 새로운 정보들이 쉼 없이 쏟아지고 있는 사회에서는 절대적 진리라고 부를 수 있는 지식이란 없다. 절대적 진리도 아닌 지식을 12년 동안 밤을 새워 외우고 몇 문제 더 틀렸다고 패배자가 돼 버린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부모들이 그러한 자녀교육에 돈과 시간과 정성을 쏟는 것을 굳이 주식투자에 비유하자면 곧 망할 회사에 돈을 투자하는 것과 같다. 부모들이 기꺼이 투자해야 할 회사는 지금은 조금 별 볼 일 없더라도 미래의 가능성 그리고 그 회사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회사가 잘 된다는 풍문에 혹해서는 안 된다.

부모들은 자신이 투자해야 할 회사가 흥할 회사인지, 또 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부모가 15년 이상 투자해서 자녀 교육을 하는 목적은 아이가 사회로 진출할 때 그 사회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는 21세기형 인재로 성장시키는 데 있다.

앞으로의 사회와 기업은 스스로 문제를 찾고 창의적인 문제해결력을 가진 인재를 원하는데 우리는 여태 단편적 지식을 습득하고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잘 아는 것이 우수하다고 믿고 아이를 키워왔다.

열심히 공부만 햇 점수만 올리면 된다는 말만 믿었고, 정말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들어가고, 좋은 스펙을 만든 한 아이가 있다. 그런데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보니 이 사회는 더 이상 소유한 지식의 양이나 학력이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해결능력을 원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자라왔던 지난 사회에서 1등을 했다하더라도 21세기 창의적 인재를 원하는 기업과 사회에 필요한 인재상이 아니면 아이를 부르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궁극적으로 교육은 한 사람이 20년 30년 뒤의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가 될 수 있도록 미리 변화를 예측해 미래역량을 키우게 하는 일이다."

앨빈 토플러가 이야기 했듯이 한마디로 우리 교육이 나아갸야 할 방향은 미래 사회에서 활약하는 인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