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

만남, 결혼, 가정, 행복

오키Oki 2011. 12. 20. 20:52

 

내(태음인) 나이 스물넷막바지에 한 남자(태양인)를 처음 만난 순간 살아온 삶도 비슷하고 진실한 말에 매료되어 선택을 하였다. 어린시절에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관계로 일찍부터 밥하기, 빨래하기. 요리하기는 할 줄 알아 그것만 믿고 신랑될 사람이 보통 까다로워 보이는게 아닌데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며 반대하는 친정엄마에게 제가 맞춰살겠으니 결혼을 승낙해주세요. ㅋㅋ

 

 

 

1988년 1월 3일 만나서 2월 7일 결혼하기까지 10회도 못 만났지만 그냥 신랑에게 맞춰사니까 크게 바가지 긁을 일이 없고 신랑한테 잔소리 들을 일 없게되어 24년간 살아온 지금은 손을 맞잡고 한 발짝 한 발짝 함께 내디디며 동행하니 평화로운 가정이 되네요. ㅎㅎ

 

 

 

사상체질중 태양인은 1%, 태음인 50%, 소양인 30%. 소음인 20% 이다.

 

 

 

 

 

 

 

 

 

 

 

- 펄벅 지음의 펄벅이 들려주는 사랑과 인생의 지혜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에서 -

 

 

펄 벅 Pearl Buck

1892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나 생후 5개월 만에 선교사인 양친을 따라 중국으로 가 15세까지 성장했다. 이런 성장 배경 속에서 중국 민중의 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와 따뜻한 시선을 담은 작품을 쓰기 시작한 펄 벅은 1930년에 『동풍·서풍』을 발표하면서 최초로 문학적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이듬해 농민의 신분에서 몸을 일으켜 대지주가 된 왕룽 일가의 역사를 그린 3부작『대지』를 발표하여 세계적인 샌세이션을 일으켰고, 이것은 근세 중국을 시사적으로 묘사하여 서양에 소개한 최초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서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 외에『싸우는 천사 』, 『어머니의 초상』, 『모란꽃』,『북경에서 온 편지』등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일련의 명작들을 발표하여 1938년에는 영예의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한국에 대한 애정 또한 남달라서 1963년에 한국의 수난사를 그린 소설『살아 있는 갈대』를 펴내기도 했다.

 

 

 

첫만남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난다는 것은  역사적인 일이다. 그가 누구이건, 어디에서건 말이다. 이런 만남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 번의 만남이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사소한 만남이 평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살을 찌푸리거나 시선을 피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첫 대면의 어색함을 무마할 요량으로 호들갑을 떨거나 지나친 친절을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행동은 모두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 여지가 있다. 상대를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무게를 두는 자기 본위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 게 좋을까?

우선 부드럽게 질문하는 정도의 태도가 좋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아직 서로가 낯설기만 하다. 때문에 지나치게 자신을 내세우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느 편이든지 상대를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면서 상대의 질문과 제안에 응할 수 있도록 차분하게 기다리는 것이 좋다. 자연스럽게 접근하되 어디까지나 자기는 자기이고 상대방은 상대방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란하게 말을 걸고 손을 뒤흔드는 행동은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어도 효과적이지는 않다.

시선은 서로를 마주 보는 것이 좋다. 단, 상대를 뚫어질 듯 쳐다보는 것은 무례하게 비칠 수 있다. 부드럽게 무엇인가를 묻는 듯한 눈길로 겸손하면서도 친밀한 정서를 전하는 정도가 적당하다. 한두 마디의 짧은 인사말을 나누는 것도 좋겠다. 조용하면서도 또렷한 음성으로 말을 건네되 자신을 내세운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따뜻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서두르는 것은 금물이다. 그렇게 손길을 내밀고 차츰차츰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만남을 지속하는 비결이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호감이 깃든 음성은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호감을 사려는 의도로 억지스런 콧소리를 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 다음 단계로 대화의 내용이 중요하다. 그 전까지의 만남은 그저 서로 가까이 다가섰을 뿐 어떤 관계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이 그것을 가늠하는 결정적인 기회이다.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지나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적어도 자기를 과시하는 허세는 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친구의 친구 같은 인물의 이름을 거론하는 일도 되도록이면 삼가는 것이 좋다.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을 매개로 나누는 대화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듣는 사람이 기꺼이 "예, 예" 하고 호응해주더라도 그것은 예의상 마지못해 하는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일로 어떻게 만났건 간에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에서는 그 둘 외에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 가식 없는 인사말만으로도 충분할 경우에는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모든 이들을 반드시 두 번이상 만나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악수를 하고, 시선을 교환하고 서로 이름을 주고받을 뿐이다. 그 이상의 필요가 없는 관계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헤어질때 잠깐 미소를 지으며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인사를 나누면 된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그때부터 비로소 대화를 나누면 된다. 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억지로 화제를 끌어내기 위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처음 만나서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멍청한 짓은 없다. 진솔한 태도로 진실을 말해야 한다. 마음속에 떠오른 여러 이야깃거리 중에서 진실하며 두 사람이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당신을 다시 만나 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머,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무엇인가 진짜 이유는 있을 것이다. 누군가 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든지. 자신이 혼자 있을 때 그가 무척 친절하게 대해주었다든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느껴졌다든지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다. 진실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늘 마음을 설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마저 없다면 인생을 지루하기만 할 것이다. 그러니 서슴지 말고 진심을 털어 놓으라. 단, 이때의 진실이 불쾌한 일이라면 처음 만났을 때는 가급적 화제로 삼지 않는 게 좋다.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의 인연이란 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진실을 말하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대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흉금을 털어놓으면 대화는 한층 즐거워진다. 그렇게까지 속마음을 열어 보여도 괜찮을까 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흉금을 털어놓을 때는 대개 자신이 가진 취미나 취향의 한도 안에서 솔직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서로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다가 한 번 더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역시 솔직하게 뜻을 전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쯤에서 대화를 중단하고 헤어지는 것이 낫다.

첫 만남에서는 아무래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 번 더 만나고 싶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다음번 만남을 강요해서도 안 되고, 진심이 아니라면 억지로 칭찬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경우에 따라 상대는 서투른 칭찬을 비난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또한 만남 그 자체도 오래 끄는 것은 좋지 않다. 처음부터 자신을 너무 많이 열어 보이거나 상대에 대해 한꺼번에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두 사람은 이후로 서로를 피하게 되고 만다.

'한꺼번에 너무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위기에 처한다.

"다시 또 만나요."

첫 만남에서는 이 정도로 서로를 담백하게 대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

 

 

 

사랑과 결혼

"엄마……."

그 애가 우는 얼굴로 운을 뗐다. 갑자기 나는 말문이 막혔다.

"왜 그러니? 왜 우는 거지?"

"모르겠어요. 두려워요."

"두렵다고? 설마 그 사람 얘기는 아니겠지?"

"……사랑한다는 것이 두려워요. 그이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까 봐 겁이 나요. 그 사람은 아주 똑똑하거든요. 저보다 공부도 많이 했고 교양도 깊고, 그래서……."

그것은 사실이다. 피터는 상당히 지적인 젊은 과학자로 예술적인 소양도 갖춘 사람이다. 나는 그런 유형의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 내 딸도 제대로 교육을 받긴 했지만 그와 같은 분야는 아니다. 수학 방정식은 피터에게 일상용어나 마찬가지겠지만 내 딸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엄마!"

그 애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며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 애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스쳤다.

"만약 그 사람이 날 사랑하지 않게 되면…… 죽어 버리고 말 거예요."

나는 딸아이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러 올렸다. 그러다가 그 애의 빰이 꽤 상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열이 있었다.

"자, 자…… 걱정하지 마."

나는 힘주어 말했다.

'네가 더 이상 피터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어떨까? 그 사람 역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거야. 아마도."

나는 딸아이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아마도'라는 말을 덧붙였다. 내 의중을 알아차린 건지 얼굴을 들고 주머니에서 조그만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에요. 그 사람은 그렇지 않을 거예;요. 남자들은 죽지 않아요. 생각할 게 많으니까요. 그러니까 두려운 거예요. 그 사람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더라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거예요. 그렇죠? 엄마도 아시죠? 남자들의 심리가 어떤지를…… ."

"여자도 때로는 마찬가지야."

내 말에 딸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눈빛으로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피터를 사랑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사실이란다. 어느 한쪽이 사랑하지 않게 되면 다른 한쪽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거야. 사랑에 삐자는 것도. 깨어나는 것도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일이기 때문이지."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 애가 절박하게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게 되다니. 그런 일은 생각할 수도 없어요. 엄마, 난 어쩌면 좋아요? 이젠 사랑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사실은 아직…… 그렇게 충분히는……."

나는 그 말에 금방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지만 내 경험을 늘어놓으며 그 애를 설득하고 싶지는 않았다. 본래 남성은 여성에 비해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른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남성은 대개 단순한 성적 욕구를 충동적으로 따르며 혼란스러워하기 쉽상이다. 그때문에 여성에게 신중하면서도 섬세한 면이 없는 경우, 둘 사이의 관계는 쉽게 어긋나고 만다. 그토록 꿈꾸던 결혼 생활이 지루해지고 사랑의 마법 또한 풀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것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결혼 생활이 권태로워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여성이 해야 할 일도, 의무도 아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애정과 낭만, 우정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결혼 생활에서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만 한다.

나는 딸에게 말했다.

"잠시 혼자 있게 해다고, 밖에 나가서 피터를 데리고 오렴. 그동안 너한테 해줄 말을 정리해야겠다. 뭐가 중요하고 뭐가 중요하지 않은지 말이야."

딸아이가 서둘러 일어서는 것을 보고 나는 피터가 바로 문밖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짐작대로였다. 딸아이가 돌아서서 바로 소리쳤다.

"피터, 들어와요. 엄마한테 얘기했어요."

문이 열렸다. 키 크고 호리호리한 청년이 당황한 기색으로 서 있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모습이었다. 안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의 검은 눈을 들여다보았다. 부드럽고 유머가 넘치는 눈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는 잠시 동안 망설이며 서 있었다.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이내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놀라지 않으섰는지요?"

"놀라다니,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죠?"

나는 반문했다. 서로의 말에 담긴 여운을 새기는 사이 대화가 중단되었다. 그는 태연한 척 의자에 앉았다.

"그럼 기뻐해주실 거라고 생각해도 괜찮겠습니까?"

"몇 해가 지나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요. 딸아이는 내 보물이나 다름없으니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가면을 벗어던졌다.

"무슨 말씀이신지 압니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여러 면에서 서로 동떨어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따님은 저에게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따님 없이 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올봄, 거리에서 처음 따님을 보았을 때부터 다른 사람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습니다. 따님과 스치고 지나갈 때, 제가 그녀를 돌아보았죠. 따님 역시 저를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게 저희들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만남은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겁니다."

이야기를 하는 그가 하도 진지해서 나도 그를 믿고 싶어졌다.

"그랬으면 좋겠군요. 이 아이가 행복해진다면 나 역시 그럴 테니까요. 좋아요. 이제는 나를 좀 혼자 있게 해줘요. 이것저것 할 일이 많으니까."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나갔다. 방문을 닫는 것도 잊고 말이다.

나는 일어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책상으로 돌아가는 대신 낡은 의자에 기대앉아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지나온 날들이 밀물처럼 한꺼번에 밀려왔다. 내게도 몇 번의 사랑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하고 있다. 사랑은 나이와 상관없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나이가 들어 이제 더 이상은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후로도 나는 여러 번 다시 사랑에 빠지곤 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습성은 살아 있는 한 사라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딸에게 이야기해주어도 좋을까? 아니다. 그 애는 아직 젊다. 지금은 그런 것을 몰라도 괜찮다. 지금 믿고 있는 것만을 믿게 하자. 현재의 사랑이 유일한 사랑이며 그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먼 훗날 알게 될 일들까지 미리 일러줄 필요는 없다. 언젠가 때가 되면 그 애도 그런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사랑보다 중요한 것,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문제는 네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든가, 더 이상 그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게 아니라 네가 대체 누구인가 하는 거야. 너는 여자야, 여러 면에서 혜택을 받은 여성이지. 아름답고, 지성도 갖추었어. 그건 신이 주신 은총임이 분명해. 감사하면서 신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최대한 살리며 살아야겠지. 하지만 이런 은총을 받든 받지 못했든 간에 네가 여자라는 사실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지. 그러니 여자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먼저 알아야 한단다.

그게 무슨 말인지 묻고 싶겠지? 말하자면 네가 남성과는 전혀 다른 생물이라는 뜻이야. 자연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고루 선물을 주었어. 여성은 명석한 두뇌를 이어받지만 남성은 그러지 못할 수도 있지. 또 여성의 수가 많고 남성은 그보다 적을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지성은 그와는 조금 다른 문제거든. 네가 지닌 여성으로서의 지성은 남성의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란다.

네 지성은 여성 특유의 구조 속에서 표현되지. 그것은 남성의 것과는 달라. 맑은 샘물을 장밋빛 유리그릇에 담으면 장밋빛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똑같은 샘물을 파란 유리그릇에 담으면 파랗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야. 본래는 같은 것인데도 그릇에 따라 다른 색처럼 보이는 거야.

너와 피터는 생각이 같고 또 서로를 깊이 사랑하지만 그 감정은 조금은 다른 식으로 표현하게 되는 거지. 어쩌면 피터는 육체적으로 열심히 사랑을 표현하려고 할지도 몰라. 그에게는 그게 가장 좋은 애정 표현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 따뜻한 말이라든지 키스, 포옹이 너한테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처럼 그 역시 그런 거란다. 다만 그에게는 그것이 자기 몸이 원하는 최후의 행위로 이끌어가기 위해 필요한 거라고 해야할까? 너는 여기에 동의하고, 응하고, 때로는 이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거나 먼저 요구하는 경우도 있을 거야 하지만 이것은 최후에 내딛게 되는 단계일 뿐 본질적인 것이라는고는 할 수 없단다. 그의 입장에서는 도리어 그것이 사랑의 시작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말이야. 너는 네가 여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해. 네가 품은 사랑이 온몸에서 스며 나와 여러 가지 형태로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이니.

그 사람을 위해 집을 정돈하고, 요리를 하고, 그가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이것저것 마음을 쓰면서 그에게 봉사하게 될 거야. 그것이 단순하고 비천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신성하기만 한 봉사란다. 애정이 있는데 어떤 일이 비천하게 느껴지겠니. 육체적인 표현 외에도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방밥이 이렇게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너는 그것을 그에게 가르쳐줘야 해.

남자와 여자가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는 게 꼭 성적인 결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남자와 여자라는 서로 다른 인간이 함께 살아가면서 부딫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결합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지.

그도 인간이니 때때로 실수를 하기도 할 거야. 그렇더라도 상냥하게 웃어주렴. 그의 마음을 격려하면서 여자의 본심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해.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고. 네가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배울 수도 있지 않겠니? 그리고 그 사람도 그 자신에 대해 너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두렴. 다 알고 있는 척해서는 안 돼. 그는 여자가 아니니까 너에 대해서 모를 수밖에 없는 것고. 너 역시 남자가 아니니까 그에 대해 알 리가 없지. 그런 점을 인정하면서 서로 자신을 상대에게 충분히 열어 보이도록 해.

가령, 그 사람은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가 하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애정의 가장 깊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서로를 알아가고 배우는 동안 너희 두 사람은 그렇게 성장하고 발전하면서도 감성도, 지성도 새로운 차원에 도달하게 될 거야. 성장하지 않은 애정은 사그라지는 법이란다. 네 사랑이 진짜인지 아닌지. 여성으로서 성장하고 있는지 어떤지도 그런 과정을 통해 알게 되겠지. 그건 그 사람도 마찬가지이고. 두 사람이 행복하고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진다면 너희들이 걷고 있는 그 길이 영원한 길이라고 할 수 거야. 그렇다고 네가 성장하고 있는지 아닌지 몰라 초조해하거나 고민할 필요는 없어. 사랑이 자연스레 네게 일러줄 테니까. 간혹 다툴 일이 생긴다 해도 너는 행복할 거야.

싸움이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구나. 사실이나 진실이 어떻든 싸움은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그에게는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해. 중요한 건 누가 옳은 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 하는 거야. 너희들 둘이 긔 진실을 발견해내야해. 혼자가 아닌 둘이서 말이야.

일방적으로 어는 한 사람이 결론을 내리고 상대에게 선언해보았자 그건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해 아무가치도 없는 거지. 자기주장만 내세우면서 상대를 누르려는 순간, 제일 먼저 위태로워지는 것은 둘 사이의 애정이야. 그와 겨루려고 하지도 말고. 사랑하는 사람사이에 경쟁 따위는 있을 수 없는 거야. 나는 남녀 간에 싸움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단다. 사랑하던 사람들이 싸운다면 그것만으로도 둘 다 이미 패배한 거나 다름없어. 승리는, 생사를 초월한 승리는 두 사람이 하나로 융화될 때 얻을 수 있는 거야.

그러니 네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기뻐하며 받아들이도록 하렴. 여성이라는 건 근사한 일이니까. 네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너를 사랑해주는 거야. 상냥하고 현명하게 대하렴. 여성다운 애정과 열정으로 사랑하면서 말이야. 그런 너의 애정으로 훌륭하고 강한 남자란 어떤 것인가를 깨우쳐주도록 해. 그리고 그 사람을 믿어. 네가 그를 믿어야 그 역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단다.

지금쯤 너도 눈치 챘겠지. 주부로서의, 또 어머니로서의 의무라든가 네 자신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가꾸고 지켜나가는 일에 대해서 엄마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걸 말이야. 이런 의무는 네가 여자라는 사실만 확실히 인식한다면 문제없이 대처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네가 그를 정말 필요로 하며 그 없이는 그저 반쪽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건 그 역시 마찬가지겠지. 너 없이는 그 사람 역시 한 명의 당당한 남성이 될 수 없을테니까.

너희 두 사람이 늘 함께 있기를 바란다. 혼자 앞서가게 한다든지 뒤처지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너희들의 사랑이 지속되는 한 언제나 함께 있도록 해. 손을 맞잡고 한 발짝 한 발짝 함께 내디디며 동행하렴. 그러면 너는 영원히 고독하지 않을 거야."

 

 

 

가정을 꾸려간다는 것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오후, 어린 소녀는 여느 날처럼 어머니와 함께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손녀는 바느질을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바느질을 싫어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 어린 소녀는 나였고, 소녀의 어머니는 내 모친이었다.

외할머니는 보수적인 프랑스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휴가노트 가문의 사람으로 딸들을 현모양처로 길러내는 일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 당시 현모양처의 조건에는 가족의 의복을 만드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옷이 바늘로 누비거나 레이스를 떠서 장식하도록 되어 있어서 여자라면 누구나 그런 기술을 익히야 했다. 그래서 나도 당연히 바느질을 하거나 레이스 뜨기를 해야 했다.

단조로운 이론의 반복과 장식, 이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하는 것은 요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케이크와 빵, 사탕 과자 만드는 법을 배웠고, 굽고 튀기고 찌는 방법을 배웠다. 꽃을 장식하기 전에는 집 안을 깨끗이 정돈해야 했다. 이런 일들은 가족의 안녕이나 행복과 직결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졌고, 어머니는 이런 일이 여자의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날도 그런 여느 날 가운데 하루였다. 무더운 오후였던 것 같다. 바늘과 실과 중국의 삼포가 내 손가락에 달라붙었다. 내 속에서 은근한 반항심이 치밀어 올랐다.

"엄마, 만약 내가 결혼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으면 되지."

어머니는 조용히 대답했다.

"모든 사람이 다 결혼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설사 그렇다 해도 넌 자신을 위해서 집 안 치우는 법을 배워야 해. 결혼을 하건 안 하건 간에 넌 여자니까 말이야. 그리고…… 아마 넌 결혼하게 될 거다."

우리는 낡은 목사관의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담장을 따라 심은 꽃에 정원사가 물을 주고 있었다. 중국에서 사는 미국인 가정에는 이렇게 일하는 하인들이 있었다.

"하인을 쓰면 되죠. 뭐."

내가 그렇게 말했다.

"그 하인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줄 수 없다면, 아무도 널 존경하지 않을 거야."

어머니는 여전히 조용하게 말씀하시고는 바느질감에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나를 보고 놀리듯 빙긋 웃으셨다.

"넌 네가 여자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

그 말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진실이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모든 일을 하든 간에 여자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모든 여성의 마음속에는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나는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시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생활비가 많이 드는 시대에는 주부도 경제활동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가정과 직장 일을 둘 다 완벽하게 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종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긴다. 나는 집에 있는 방 하나를 서재 삼아 차지하고 앉아 글을 쓰면서 아이들을 위해 늘 문을 열어놓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때로는 아이들에게 내 일을 방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한 글을 쓰던 중이라고 해도 아이들이나 남편이 내게 볼일이 있을 때는 내 일을 중단하는 방법을 배웠다.

나에게는 가족이 제일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글의 생기란 작가가 생활인으로서 살아갈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 작가라면 그래야 한다. 남성은 여성보다 일상생활로부터 다소 멀찍이 떨어져 있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긴 글을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정을 가진 여성 작가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물론 방 한가운데서 가족에게 둘러싸여 글을 쓰면서도 생명력이 긴 작품을 쓴 여성 작가들도 많다. 제인 오스틴이나 브론테 자매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집에서 일할 형편이 아니어서 매일 공장이나 회사에 나가야 하는 여성은 어떨까? 최근에는 우리 동네에도 이런 사람들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농장과 들판이 전부이던 이곳이 지금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이 지방의 낮은 지대인 델라웨어 강 근처에 큰 강철 공장이 들어선 까닭이다. 농장은 오래전에 팔려 그 자리에 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섰고, 공자어 굴뚝에서 솟아나온 연기는 푸른 하늘을 검게 흐려놓고 있다.

일찍이 이곳 여성들은 아늑한 석조 농가에서 평화롭게 일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들은 목장의 집을 나와 뿔뿔이 흩어져 하루 종일 기계 앞에 앉아있거나 사무를 본다. 그동안 아이들은 학굥에 가기도하고 탁아 시설이나 일을 나갈 수 없는 노인들에게 맡겨진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일터로 나가야만 할까?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집 안에 최신 기기들을 갖추고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기 위해서는 말이다.

얼마 전에 나는 필요 없어진 낡은 농가 하나를 부동산에 내놓았다. 자연석으로 지은 아름다운 집이었다. 나는 이집에 좋은 우물과 침실, 수도, 그리고 성능 좋은 온풍 난방시설을 갖춰놓았으므로 고가에 이 집을 팔길 원했다. 그러나 부동산 중개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좀 무리입니다. 나이를 먹어 은퇴한 분들외에는 이런 집을 탐내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자동적이고 현대적이어야만 만족스러워하니까요."

보통 사람들의 생활이 이렇게 바뀌어간다면 이제 남성 혼자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가정을 꾸리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내가 현대의 젊은 여성이라면 두 대의 차나 자동 난방시설, 혹은 그 밖의 즐길 만한 것을 갖기 위해 밖으로 일하러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라면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의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여 가정을 꾸려갈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여성이 집 안에 틀어박혀버리면―그녀가 결혼을 하고, 혹시 어린아이까지 있다면―장사꾼은 장사를 망치게 되리라는 엄숙한 사실을 생각해보자. 만일 우리의 수입이 한 사람의 벌이로만 고정되어버린다면 현재의 높은 구매력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이런 높은 구매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맞벌이를 해야 하며, 아마 그러는 것이 남녀 모두에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반드시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

가정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시간이 걸리는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 집 안을 깨끗이 청소한거나 예쁘게 장식한다거나 하는 한정된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제대로 돌보기 위해서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여성은 직장에 나가 돈을 버는 동시에 가정을 잘 꾸려가야 한다며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바깥일을 하는 여성들 가운데에는 자신이 벌어들인 돈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자책감을 면해보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집에서 가사에만 충실한 여성들에게 열등감을 안길 소지가 있다. 자신이 단순한 전업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집안일에만 전념하는 주부들 역시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여성임에도 말이다.

나는 가정을 만드는 사람인 주부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면 어떨까 싶다.

훌륭한 주부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자기수련이 필요하다. 주부라고 해서 누구나 가정을 훌륭하게 꾸려간다고는 할 수 없다. 그중에는 가정보다도 집 그자체를 일에만 열중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주부라기보다는 단순한 청소부나 요리사에 불과하다. 또 어떤 이는 게을러서 집안일을 소홀히 한 채 하루를 그냥 소비해버리도 한다. 남편이 직장에 나가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커피를 마시며 라디오를 듣거나 텔ㄹ레비전을 보고, 전화를 걸어 수다 떠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이런 식이라면 살림이라는게 얼마나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성실한 주부들은 가정을 사랑한다. 그녀들에게 집이란 가정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가정은 가족의 생활 전부를 포함한 곳이고, 생활이라든지 가정의 분위기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진정한 주부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가정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결해야 한다. 정돈하기 위해서 치우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치우는 것이다. 깨끗이 정돈된 곳에서는 아름다운 질서가 보인다. 지저분한 가정에는 질서가 없다. 그런 가정에서는 질서를 모르는 인간이 태어난다. 물리적인 혼란과 정신적인 산만함은 그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집이 한 채 있는데, 나는 자주 그 앞을 지난다. 그 집에는 창문마다 흰 커튼이 깨끗하게 드리워져 있다. 이웃의 말에 의하면 그 집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둘이서 사는데, 밖에서 보는 것처럼 실내도 굉장히 깔끔하다고 하낟. 부자는 둘 다 아침에 일하러 나갔다가 저녁에야 돌아온다.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도로에서 수백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는 크고 오래된 저택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아내가 죽고 나서 이 집을 사서 이사 온 것이다.

"왜 이리로 이사를 왔대요?"

나는 그 이웃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진짜 가정이 필요해서 그랬다고 하더군요."

"그런 가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부인이라는 사람이 아주 형편없었나 봐요. 달리 하는 일도 없으면서 게으름만 피우고, 날마다 돌아다니지 않으면 전화통이나 붙잡고 앉아서 수다를 떨곤 했다고 하던걸요. 남편이 저녁에 돌아오면 집 안은 온통 뒤죽박죽이고 집안일은 산더미처럼 밀려 있었대요. 남편은 본래 말이 없는 사림이었지만 가정이 그 모양이니 더 말 없는 사람이 되어버렷을 거예요. 아무튼 그렇게 살다가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집을 팔고 이 집으로 이사 온 거죠. 이제는 집 안을 깨끗이 치우고 정리하며 산대요. 그분과 아드님 둘이서 집을 정돈하고 탁자 위에 꽃도 장식해놓고요. 그야말로 진짜 가정이예요. 주부가 없이도 말이에요."

그는 아내가 자신과 아들을 위해 만들지 못했던, 혹은 만들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손수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그제야 비로소 가정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때때로 그가 재혼할 생각은 없는 걸까 궁금해하다가도 재혼을 했다가 전과 같은 일을 겪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째서 그의 아내는 행복의 기회를 스스로 던져버렸을까?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도 생활의 중심이 되는 가정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 이상으로 소중한 일이 또 있을까?

가정이란 그들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이자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세계이다. 사람은 일생 동안 가정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다. 살다보면 가난하다가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권력자가 될 수도 있다. 자기가 자란 집과는 전혀 다른 집을 짓고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나고 자란 가정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그와 비슷하게 살게 마련이다.

소박하지만 깨끗하고 아름다운 가정에서 자란 이들은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를 순탄하게 잘 처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질서도 아름다움도 없는 가정에서 자란 이들은 한평생 그러한 결핍을 채우지 못한채로 살기 쉽다.

나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서로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우면 마음도 덩달아 우아해진다고 믿어왔다. 가지런히 정돈되고 깨끗하게 정리된 가정에서는 마음 반듯한 아이가 자라고,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집에서는 침착하지 못하고 성급하며 불행한 아이가 자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가정을 가꿔나가는 사람으로서 주부는 자신이 의식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그녀가 쓸고 닦고 침구를 정돈하는 사이에, 또 요리를 하고 세탁을 하는 사이에 그녀는 한 인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생활 자세가 아이들의 성격을 만들고 인격의 틀을 형성한다.

오늘날의 세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바른 성격과 선량한 성품, 안정되고 조화로운 성격을 갖춘 사람이다. 또한 세계 어느 곳의 남성이든지 그들은 공통적으로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으며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잘 정돈된 쾌적한 집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를 원한다. UN 대표도 몇 분 전에 깨끗이 정돈된 아름답고 아늑한 집에서 나왔다면, 틀림없이 이해와 인내를 발휘해 세계 평화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가정을 꾸려가는 여성의 영향력은 크녀 자신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아주 먼 곳까지 힘을 미친다. 가정을 꾸려간다는 것은 이처럼 집이라는 단순한 공간을 넘어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 정성껏 가꿔가는 가정을 중심으로 모든 인간관계가 펼쳐지며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 가정주부이다. 남성은 여성의 친구이며 공동 협력자이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신은 생활을 꾸려가는 책임믕ㄹ 여성 쪽에 더 많이 지운 것 같다.

여성에게는 무엇인가 특별히 강한 것이 있다. 남성은 여간해서는 여성의 생명을 파괴할 수 없다. 여성은 몇 번이고 다시 살 수 있다. 여성의 내부에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재기하는 강한 의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은 여성으로 인해 쉽게 망가진다. 그들은 나쁜 어머니나 나쁜 아내로 인해 곧잘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여기서 내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게으르고 이기주의적인 무능함을 일컫는다.

여성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 이런 가슴 벅찬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 기회를 헛되이 흘려보내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여성의 무지는 죄악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무지는 그녀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에게 큰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의 일은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일까? 물론 그렇다. 가정을 남을 위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성인 나 자신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고 하든 그것은 진리다 훌륭한 주부라면 그녀는 여자로서 완성된 셈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면 그 역시 완벽한 남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은 각각 다르면서도 서롤 협력하며 자기의 역할을 수행해나간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완성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인류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인류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가장 훌륭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깨끗하고 아늑한 가정이 줄 수 있는 안정감이 필요하다.

가정은 나의 대지다. 나는 거기에 뿌리를 박고, 거기에서 정신적인 영양분을 섭취한다. 이러한 내적인 만족에서 마음의평화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가정은 생활의 중심이 된다. 각 가정이 여성을 중심으로 꾸려지는 것처럼 이 세계도 여성을 중심에 놓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우리 여성들은 이 세계에 왜 이렇게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가 많은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성실한 마음으로 그 원인을 찾아 고쳐나가야 한다. 아마도 그 원인은 가정에서 가장 많이 비롯되었을 것이다.

 

 

 

의지와 행복

나는 행복한 생활을 해왔고, 지금도 행복하다. 인생에서 행복은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불행한 사람에게는 사는 보람이라 할 만한 게 없다. 불행은 아주 간단하고 쉽게 닥친다. 일상의 사소한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으면 불만이 생기고, 이 불만이 쌓이면서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심각한 재앙이 닥쳐오면 인생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만다. 자신의 재능, 자기 견해, 주변 환경 하나하나가 다 견딜 수 없게 느껴지고, 어떻게 하면 이 불행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만 생각한다.

인생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행복이라든가 만족을 얻고 싶다면 그것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행복과 만족을 약속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런 약속도 받지 못한 채 태어났고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닌, 몸이라는 것에 둘러싸여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더구나 그 몸은 우리가 바라는 것과는 다분히 다르며 가족이라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 이 또한 우리의 기호와 맞는 경우와 맞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도 우리는 저마다 재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것들을 잘 활용해 행복에 이를 수 있는 하나의 도구를 받는다.

그 도구가 바로 '의지'다. 이것을 잘 사용하는 사람들은 만족을 느끼며 행복을 손에 넣게 된다. 그러나 이 도구를 절대로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불만 속에 질질 끌려 들어가 불행을 영원히 되풀이한다.

그러면 무엇이 의지에 지시를 내리는 것일까? 의지는 단독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의지를 작용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두뇌다. 두뇌가 의지에게 말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이것을 해야만 해.'

하지만 의지는 게으름뱅이다. 잠자기를 즐겨서 웬만한 강요가 아니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뇌는 다시 명령을 내린다.

'이걸 하지 않으면 안 돼. 내가 만족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이야.'

두뇌는 의지를 호출해서 '해라! 해라!' 하고 강요한다. 아침에 두뇌가 '할 일이 있다'고 하면 의지가 당신을 깨운다. 두뇌는 계획자이며 의지는 실행자인 것이다.

그러면 두뇌는 어떤 측면을 고려하면서 만족과 행복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일까? 내 경험을 빌리자면 음악이라든가 회화 등 그 계획의 범위가 한정될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간단히 말해서 취미를 갖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냐고 당신은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취미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상적으로 말한다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결정하고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아. 물론 모든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재능이 생계를 해결하지 못해도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한 경우가 있다.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당신은 좀 더 예술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즐거움으로서, 두뇌와 마음을 풍요롭게하는 것으로서, 행복을 위한 것으로서 그것을 추구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매일매일이 그렇게 우울하지 않을 것이며, 슬픔도 가벼워지고 외로움도 견딜 만한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 당신은 노력하고 공부해야 한다. 예술가의 의지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자 에너지이다. 만일 예술가가 목적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유유자적 시간을 흘려보낸다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해 불행해지고 말 것이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자기 자신의 게으른 마음이 스스로를 어떻게 속이는가를 잘 알고 있으먼서 말이다.

벌써 몇 년이나 이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아침이면 타자기 앞에 앉지 않아도 될 만한 핑계를 몇 가지씩 머리에 떠올리곤 한다. 일에 몰두하기 위해 채찍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두뇌가 이 채찍을 건네준다.

'아니, 지금 꼭 꽃에 물을 줄 필요는 없어. 반드시 지금 당장 신문을 읽어야 하는 건 아냐, 그 전화는 받지 않아도 좋아. 일을 해, 그 외의 것은 하지 않아도 좋아.'

두뇌가 이렇게 자극을 주면 결국 의지가 행동에 나선다. 이렇게 의지가 행동하기 시작하면 두뇌도 함께 작동한다. 이처럼 뇌와 의지는 기묘한 상관관계에 있다. 두뇌가 의지에 결정을 내리면 의지는 곧 두뇌에 작용해 일을 추진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에 글을 쓸 때에도 기분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의지는 기분을 외면하고 두뇌에 작용하며, 두뇌는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해도 억지로라도 일을 시작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돕는다. 항상 기분만이 먼저 앞선다면 의지와 두뇌는 게으른 습성으로 전략해버리고 말 것이다.

두뇌와 의지의 관계는, 특히 예술을 익히기 시작한 초기에는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 어떤 일을 배우더라도 어느 정도 단조로운 반복이 있게 마련이다. 가령 음악만 한다 해도 연습하지 않으면 연주할 수 없다. 하지만 간단한 곡이라도 완벽히 마스터하여 실제로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음악을 한번 배워볼 것을 권한다. 그것도 착실히 스승을 찾아 시작하는 게 좋다. 연주가 초보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정확한 지식이 기반 되어 있으면 전혀 모를 때와는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조각을 배우는 것도 좋겠다. 조각은 머리와 정신뿐만 아니라 손도 쓰는, 아주 만족할 만한 예술 활동이다. 아이들이 어리고 생활이 나날의 의무에 쫓길 무렵나는 아이들의 머리 모양을 점토며 석고로 뜨는 것을 휴식 겸 기분풀이로 삼았다.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는 정신없이 뛰노는 모양을 포착했다. 그 결과물을 전문가의 눈으로 평가한다면 몹시 형편없겠지만, 나로서는 나름대로 아이들의 모습을 잘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성장하여 성인이 된 지금 때때로 그것을 보면서 지난날을 회상한다.

예술은 어떤 장르이든 마음먹고 계속한다면 마침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순수한 행복으로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인생은 지루할 틈이 없으며 사람 그 자체도 지루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