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

오키Oki 2011. 8. 15. 00:15

장훈아! 차타고 오면서 후제 귀농하고 싶다고 했나?

준이고모부가 하는 일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 울리히 슈나벨지음 행복의 중심 『휴식』속에서 -

 

 

조그만 항구 도시에 사는 가난한 어부가 자신으 보트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그때 그곳을 지나던 사업가가 어부를 깨워 말을 걸었다.

사업가: 하루에 몇 번이나 출어하시오?

어부: 단 한 번. 나머지는 이렇게 쉬지요.

사업가: 왜 두 번 이상 하지 않소?

  그럼 세 배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게 아니오?

어부: 그러면요?

사업가: 그러면? 그러면 2년 뒤에는 모터보트를 두 척 살 수 있고,

   3~4년 뒤에는 두세 척의 보트로 훨씬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죠.

   그럼 작은 냉동창고에 훈제 생선공장, 커다란 생선 처리공장까지 지을 수

   있고,  잘만 하면 헬리곱터를 타고 날아다니며 물고기 때의 위치를 미리

   어선에 알려줄 수도 있소.

어부: 그런 다음에는?

사업가: 그런 다음에는 여기 이 항구에 편안하게 앉아 햇살 아래

   달콤한 낮잠을 즐기는 거요. 저 멋진 바다를 감사하면서!

어부: 내가 지금 그러고 있잖소!

 

행복은 우리 발 앞에 놓여 있다. 그걸 누리지 못하게 막는 것은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욕심이다. 행복의 중심에는 돈이 아니라 휴식이 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덧씌워진 의무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약속과 일정으로 채워지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라. 남보다 앞서 성공하겠다는 야심을 버릴 때 우리의 인생은 균형을 회복한다.

 

 

내 시간은 내 의지대로

 

한정된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업무량보다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게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이탈리아의 심리학자들이 티롤 남부 지방 산촌 농민들의 생활 습관을 연구하다가 놀라운 발견을 했다. 농부들을 상대로 일과 여가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묻자 그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냐는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농부들은 그저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할 따름이라고 했다. 젖소의 젖을 짰으며, 밭의 잡초를 뽑아주었고, 사이사이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저녁이면 아코디언 연주를 즐겼다. 뭐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고 무엇이 놀이인지 구분하지 않았다.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물음에 산골 사람들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지금처럼 똑같이!" 하고 대답했다.

어느 모로 보나 농부들은 헬가 노보트니가 정의한 '자신만의 시간' 이라는 이상을 완벽하게 실현한 게 틀림없다. 그런 태도가 산업 사회의 박자가 아니라 전통에 따르는 농촌 지역에서 주로 나타난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연구는 그 밖에도 많기만 하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시간과는 별 관계가 없으며, 어떤 태도와 관점을 갖느냐에 달린 것이다." 과학 전문 기자이자 <슈피겔>과 『게오 Geo 』지의 편집장을 지낸 슈테판 클라인이 자신의 책『시간Zeit』에서 한 말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프랑스의 여성 사회학자 니콜라 르페브르의 인상적인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르페브르는 모두 150명에 달하는 여인들을 상대로 인터뷰 조사를 해서 일과 여가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의 교육 수준 정도에 따라 시간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정의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교육 수준이 낮은 여성들은 '여가시간'이라는 것을 일이 없어 아이들과 함께 지내거나 쇼핑을 하는 시간과 똑같이 여긴 반면,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은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움인 동시에 일종의 의무로 받아 들였다. 그들에게 '여가'는 헬스클럽에 가서 긴장을 풀고 운동을 즐기거나 남편과 함께 외출하는 시간이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대개 요구 수준이 높고 까다로운 직업 활동을  자아실현의 필수적인 수단으로 여겼다. 반면 배움이 적은 여성에게 직업 활동은 아이들과 함께 한가롭게 지내는 시간을 방해하는 부담스러운 의무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물론 어느 쪽이 다른 쪽에 비해 더 나쁜 엄마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여가 시간'이라는 개념이 서로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남자들을 상대로 이런 연구를 한다면 더욱 극적인 결과가 나오리라. 많은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을 진 빠지는 소모적인 이리로 여기며, 사무실을 평안한 휴식처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어떤 태도를 갖는가에 따라 아이 손을 잡고 놀이터에 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거나 귀찮은 의무라는 판이한 평가를 받는 셈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에게는 한없이 부담스러운 것인가 하면, 다른 이에게는 더없이 즐겁고 보람된 것이다. "시간 압박이라는 것은 분과 초 단위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클라인이 내린 결론이다. "중요한 것은 하루의 리듬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느낌을 가져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만 한다."

런던에서 1만여 명이 넘는 관리들을 상대로 근무 만족도와 건강상태를 조사한 영국의 전염병 전문가 마이클 마멋 교수가 얻어낸 결론 또한 명백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관청의 위계질서에서 직급이 낮은 관리일수록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하급 관리는 최고 상관에 비해 세 배는 더 자주 병가를 냈으며, 같은 나이라 할지라도 사망 확률은 세 배나 더 높았다.

알코올이나 흡연, 교양 정도, 수입, 스포츠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위험 요소는 직급에 따른 이런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하위 관리일수록 상관보다 사무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더 적음에도 불구하고 업무 부담을 더 강하게 받는다.이런 결과를 설명할 열쇠를 영국 전염병학자들은 설문조사를 통해 찾아냈다. 공무원이 언제 어떻게 업무를 처리할지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적으면 적을수록, 당사자는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그 만큼 심장마비나 뇌졸중에 걸릴 위험이 커졌다.

자신의 삶이 어떤 조건을 가져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만 한다. 자신이 무얼 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은 스트레스에 덜 시달렸으며, 더욱 건강했다. 한정된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업무량의 정도보다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게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근심 걱정에 시달리며 위궤양을 앓는 사람은 항상 바쁜 경영자가 아니라, 쉬지도 않고 이런저런 지시를 해대는 상관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부하 직원이었다.

 

 

덜 누려야 더 행복하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 사회학자들은

더 많은 선택지가 행복을 보장해준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동안 사회심리학자들이 확인했듯, 그 반대가 진실이었다.

 

자신의 시간을 다스릴 수 있는 지배권을 갖는 것이야말로 시간 부족과 끊임없는 압박감에서 해방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다. 참다운 휴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아직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그건 바로 끊임없이 산만함에 시달리지 않고 순간의 행복을 충분히 음미할 줄 아는 능력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에게 인상적인 가르침을 준 사람은 프랑스와 독일 국경인 알자스의 고원지대에서 산장을 운영하는 노인이다. 오랜 산행 끝에 오른 산장은 나의 눈에 오아시스만 같았다. 맥주 맛이 기가 막히게 시원했으며, 상차림은 조촐했지만 꿀맛이었다. 당일치기 산행객들이 하산한 저녁 시간, 손꼽을 정도로 남은 몇몇 숙박 손님들과 테라스에 앉아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자랑하는 산장 주인과 오랜 담소를 나누었다. 그는 할 말이 참으로 많은 남자였다. 원래는 농부였다가 정치활동에 뛰어들어 한동안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 의원을 지냈으며, 마침내 은퇴하고 이곳 산악지방에서 평온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정치판과 대도시의 북적거림이 언제부터인가 견딜 수 없더라나, 그래도 사람들과의 관계는 끊지 않았단다. 그래서 예전의 정치 동료, 사업가, 심지어 대기업 총수 등이 그를 보러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그들 모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와인 맛이 새롭고 음식 또한 저 아래 계곡에 위치한 별 네개짜리 레스토랑의 것보다 훨씬 감칠맛이 난다며 입을 모았다고 한다.

자신의 성공 비결을 털어놓으며 산장 주인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등산로를 보시오." 그가 말문을 열며 계곡 아래로 이어지는 돌투성이의 길을 가르켰다. "사람들이 차를 타고 산장으로 오게 하려 했다면 벌써 포장을 했을 거요. 그러나 그랬다면 산장의 마법은 씻은 듯 사라졌을 거요. 내 집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면 두 시간의 산행은 피할 수가 없소. 부족할 것 없는 대기업 총수도 두 시간동안 땀 흘리며 이곳에 오르면, 여기가 낙원처럼 보일 것이고 와인 한 모금 한 모금이 시구절과 같을 거요." 노회한 얼굴이 환하게 웃었다. 산장 주인의 의도대로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이 산장에서 그동안 까맣게 잊었던 여유로움을 되찾고 배고픔과 갈증을 진정으로 해소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산장 주인이 손님들에게 선물한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뭔지 모를 허전함을 해소해주는 행복감이다. 다시 말해 손님들에게 순간의 오롯함을 맛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행복한 순간에 우리는 일상의 근심을 깨끗이 털어버리고 '순전한 인생 그 자체를 사는 느낌을 갖는다. 설령 그게 치즈를 맛보는 것일지라도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이런 체험은 두뇌에 깊이 각인된다. 그래서 며칠 뒤 다시 같은 느낌을 맛볼 수 있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매 식사 전에 두 시간에 걸친 산행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흐트러지지 않는 주의력을 발휘하는 기술은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오직 사고방식 하나만 바꾸면 된다. 항상 더 많이 욕심을 내는 대신, 행복이란 무릇 절제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 정말 제대로 맛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맛보는 대상이 아니라 온전히 그것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에 좌우되는 문제다.

물론 말은 쉽다. 게다가 우리 사회의 통상적인 가치관은 바로 정반대 방향을 지향한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지고 더운 풍요한 상품을 소비할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는 세뇌작용이 하루에도 몇 차레나 일어난다. 우리가 지금껏 배운 행복한 인생이란 잔고가 두둑한 계좌, 더 큰 집, 보다 빠른 자동차, 내키는 대로 떠나는 해외여행이었을 따름이다. 무한해 보이는 선택 옵션이 우리의 '다중 선택 사회'가 약속해주는 행복이며, 저마다 최신 유행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유혹한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 사회학자들은 더 많은 선택지가 실제로 행복을 보장해준다고 맏었다.그러나 이런 믿음은 날이 갈수록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회심리학자들이 확인했듯, 그 반대가 진실이었던 것이다. "덜 누리는 것이 더욱 많은 기쁨을 준다."

한번 상상해보라. 고객 만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는 구호아래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게 꾸민 백화점에 들어섰다. 진열장은 최신 상품들로 휘어질 것만 같다. 30가지가 넘는 감자 칩이 선택을 기다리며, 100여 가지에 가까운 치즈들로 눈이 어지럽고, 200여 종류가 넘는 와인이 유혹의 빛을 흘러댄다. 백화점 자체가 '선택할 게 많을 수록 더욱 좋다!'는 현대소비 세계 가치관의 화신이다. 정말 그럴까?

십중팔구 이것저것 고르느라 시간만 허비한 끝에 결국 불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백화점을 빠져나올 게 분명하다. 아삭거리는 감자 칩과 가장 만족스러운 와인을 놓친 것 같다는 후회와 함께, 여러 가지 상표를 놓고 고르는 일은 무엇보다도 시간과 힘을 낭비하게 한다.

이런 것을 두고 심리학자들은 '기회비용'이라고 부른다. 어떤 것을 선택함으로써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 발생하는 게 기회비용이고, 대부분의 경우 얻은 것을 두고 기뻐하기보다는 놓친 것을 아쉬워하게 마련이다. 실망은 미리부터 예고되어 있는 셈이다.

놀랍게도 너무 많은 선택지는 구매 행위에 동기를 부여하기보다는 오히려 가로막는 결과를 낳는다. 인도 혈통의 여성 심리학자이자 컬럼비아 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인 쉬나 아이엔가는 소비자의 이런 심리를 이미 고전이 된 그녀의 잼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그녀는 미국의 어떤 고급 식료품 가게에 다양한 잼 제품을 선보이는 광고 테이블을 설치하고 고객의 구매 행태를 관찰했다. 두 개의 테이블 가운데 한쪽은 전부 24가지 제품을, 다른 쪽은 고작 6가지만 진열했다. 실험 결과가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객이 특히 좋아하는 제품, 이를테면 딸기 잼과 같은 것은 제외했다. 이 실험의 결정적인 물음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어느 테이블에서 고객이 더 많이 구매할까? 아이엔가의 실험은 분명한 답을 주었다. 고객이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테이블 앞에 훨씬 더 자주 머무른 것은 사실이지만, 24가지를 시식해본 고객 가운데 정작 구매 선택을 한 사람은 고작 3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반대로 6가지 제품을 선보인 테이블에서는 고객의 30퍼센트가 마음에 드는 잼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열 배나 더 많이 판매한 셈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 역시 비슷한 실험을 하고 같은 결과를 확인한 바 있다. 선택의 폭이 커질수록 결정을 내라는 것은 더 힘들어졌으며, 그만큼 기회비용도 늘어났다. 새로운 디지털카메라를 사기가 무섭게 훨씬 더 싼 값에 같은 제품이 세일로 나온 것을 보는 속마음은 찢어질 듯 아프다. 노년 준비로 연금을 들자마자 다른 연금 편드가 혹시 훨씬 더 나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슈워츠는 비슷한 형태의 연금 보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계약을 맺을 확률은 떨어진다고 확인했다.

광고는 매일 우리에게 정반대의 유혹을 흘려대지만, 더 많은 선택 가능성은 행복을 키워주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로 찌들게 할 뿐이다. 도대체 미로와도 같은 휴대전화 요금체계를 보며 누가 행복해하겠는가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배리 슈워츠는 '선택의 역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짐짓 이렇게 묻는다. "왜 옛날에는 모든 게 나았을까?" 스스로 주는 답도 간단하다. "옛날에는 모든 게 형편없었으니까." 완벽하지 못했던 세상에서는 좀 부족할지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언젠가는 더 좋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즐거웠다. 그러나 어떤 욕구에도 맞춤한 상품을 제시하는 현대 상품 세계는 부족함을 용납할 줄 모른다. 광고는 오늘날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기 책임이라고 강변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고 '자아 탈진'이라는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배리 슈워츠는 끊임없는 부의 증가가 결국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슈워츠는 그 원인의 하나로 인생의 모든 영역에 걸친 선택 자유의 증가를 꼽는다. 도대체 뭐가 뭔지 한눈에 조망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요구르트 상표와 보험 혹은 방송 채널들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사람은 자유를 맛보는 게 아니라 치솟는 스트레스에 시달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