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

자기답게 살기 위해선..,

오키Oki 2011. 4. 30. 17:25

 

백화등(마삭줄)이 바위 틈새에서 10년 넘게 자란 모습이다.

 자연의 것들은 애써 누굴 닮으려고 하질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식대로

고유의 색과 향기를 간직하며 굳건하게 살아간다.

 

 

- 송숙희 지음 창조적 인재의 완성, 리터러시 지능『 읽고 생각하고 쓰다 』에서 -

 

 

별을 동경하는 불나방처럼 우리도 오래도록 품고 사는 꿈이 있다. 자신에게 진실한 채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꿈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부러워할 때 그 이유는 그들만의 특정한 성취가 아니라 이 같은 삶을 살아냈기 때문이다. 이렇듯 꿈꾸는 대로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다행히도 내가 포착한 그들의 비결 속에는 공통된 것이 있었다.

성공한 이들은 하나같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능들을 담은 유전자처럼, 삶의 근간을 지배하는 원천기술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원천기술이란 바로 '매혹적으로 표현하기'다. 매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들은 많이 읽었고, 제대로 생각하는 법을 익혔다. 잘 읽고, 잘 생각하고, 잘 쓰기, 이 세가지 능력은 서로 맞물리며 세상이 탐내는 남다른 가치를 쏟아내게 했고, 그들의 이 같은 창조력은 세상을 움직이는 숨은 힘으로 작용했다. 요컨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창조력으로 지배하는 히어로들은 절대 모방이 불가능한 원천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나는 그것을 리터러시 지능literacy intelligence quotient, LQ라 부르기로 했다.

 

 

프롤로그 prologue

자기답게 살기 위한 평생공부법

 

  대학을 졸업한 1987년부터 1990년대를 거쳐 새천년 즈음까지, 나는 나름대로 눈부신 날들을 살고 있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으나 '골방'에 처박히는 대신 황홀하기 그지없는 세상속으로 부나비처럼 날아들어 갔다. 내가 일을 시작한 미디어 현장, 여성잡지를 만드는 분야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고 요란한 등불들로 가득찼다.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자극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로 날로 성장했으며 인정받았다. 나의 일은 글로써 고객(독자)을 유혹하는 것이었고, 이 능력은 나를 고용하는 회사마다 인정해 마지않는 나의 주특기가 되어버렸다. 내가 쓴 글 한 줄 한 줄이 유명한 사람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고, 어느 중소기업의 신상품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초보 예술가에게는 길이 되어 주었으며, 평범했던 회사원에게는 꿈의 풍선을 달아주었다. 나의 재능은 눈이 가득 쌓인 언덕에서 굴러내리며 날로 덩치를 키워가는 눈덩이 같았다. 미디어 커뮤니케이터로서 최고의 인생을 살고 있던 그 즈음의 나는 현실에 지극히 만족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리라 믿었다. 그 믿음에 추호의 의심도 허용하지 않았다. 로버트 기요사키라는 사람을 알기 전만 해도 그랬다.

  로버트 기요사키는《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제목의 책을 새로운 천 년의 지구 이쪽저쪽에서 연이어 출판하면서 보통 사람들의 인생에 투자에 대한 안목을 터주는 데 기여했다. 그는 '죽어라 열심히 일해봤자 남을 부자로 만드는 쥐들의 경주에 불과할 뿐이니 그 게임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라'고 고함쳤다. 처음에는 귀담아 듣지도 않았지만 결국에는 기요사키 선생에게 항복해야 했다. 외환 위기로 야기된 구조조정의 칼날은 나에게서 그 좋아하던 일을 잘라내 버렸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큰 충격은 내가 좋아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몰두한 그 일이 누군가가 멍석을 깔아주어야 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유능하든 아니든, 그 일을 좋아하든 아니든, 내가 누군가가 깔아놓은 자본의 멍석 위에서 달리기나 해대던 경주 쥐나 다름없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다행히 그해가 가기 전, 새로운 잡지를 시작했고 창간하자마자 부동의 1위 잡지를 따라잡는 믿기 어려운 성공을 얻어 실추된 명예를 이전보다 더 높이 올려놓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가 깔아준 자본의 멍석 위를 달리는 한 마리 경주 쥐였지만 머릿속에는 멍석 주인이 언제라도 멍석을 거둬가 버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동시에 남을 부자로 만들어줄 뿐인 이 게임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라는 기요사키 선생의 충고를 귀담아 듣기 시작했다.

 

 

 

박수칠 때 떠났지만

 

"박수칠 때 떠난다"는 이별사로 잔뜩 폼 잡으려 나를 키워주고 인정받게 해준 그 바닥을 떠났다. 그리고 맨몸으로 찾아간 곳은 인터넷의 바다, 21세기의 금광이었다. 비트와 픽셀로 상징되는 디지털 신천지, 그 미지의 세계에서 새롭고 영원한 일인자가 되겠다는 야심에 잔뜩 매료된 나에게 활자, 인쇄, 종이, 제본이라는 단어가 전부인 아날로그 세계의 제한된 안락은 오래된 신발처럼 남루했다. 누군가의 부추김 없이 혼자의 힘으로 신세계를 향해 날아올랐다. 이 자부심은 대단한 투자심리로 작용했다. 당시에 세 살배기 아이까지 스톡옵션을 입에 올리던 때였다. "계획대로 된다면 나 또한 누구 못지않은 '부자 엄마'가 될 거야" 하며 내친김에 월급을 모아오던 통장을 깨서 한 여성 포털 사이트에 투자금으로 털어 넣었다.

  신세계는 만만해 보였다. 웹이라는 세계는 또 다른 재미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기대와 흥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껏 부풀어오른 내 꿈의 풍선은 '인터넸 거품'이란 바늘 한 방에 터져버렸다.

  여기서 주저앉는다면 그건 내가 아니었다. 대기업살이에 도전했다. 평소에 그곳은 어떻게 돌아가는 세상인지 궁금했었기 때문에 더 나이 들기 전에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한 대기업에 보란 듯이 특채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투자, 스톡옵션, 대박이란 말 대신 승진이니 연봉이니, 임원 인사니 하는 말들을 달고 살았다. 나 또한 회사에서 원하는 대로만 일해주면 초고속 승진에 고액 연봉, 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까지도 가능하겠다는 기대와 야심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속에서의 일과 생활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매일 매시간 숫자와 씨름하며 매출경쟁을 해야 하는 일상이 반복되자 내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졌다. '남다른 발상과 글쓰기로 고객을 유혹하기' 라는 나의 주특기는 유통기한 지난 유제품처럼 버러져 있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임원이라는 별을 달기 위해 죽어라 애쓴다 한들, 때가 되면 옷을 벗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여자, 그리고 그 회사에 입사해 잔뼈가 굵지 않은 이에게 임원이라는 기회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내 필살기는 조직이 나에게 원하는 것과 무관했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전형적인 고용인으로, 그 많은 구성원 중의 하나로 나날이 소모될 뿐이었다.

  참담한 몰골로 그곳을 떠났다. 두 번의 연이은 실패 경험을 꼼꼼히 분석했다. 무엇에 이끌렸고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지. 그래서 지금은 무엇을 하고 싶으며, 그것은 내가 잘하는 것인지, 또 그것을 다시 하게 된다면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제야 잘나가던 시절의 내가 어떠했는지 떠올랐다. 다른 이에 비해 두드러졌던 나의 역량이 무엇이었으며, 그 역량을 어떤 경로로 미디어 현장에 어필했는가를 간파하게 되었다.

  미디어 현장에서 일할 때 나는 시장을 읽어내고,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것을 포착해 그것을 구현한 상품-콘텐츠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데 능했다. 또 미디어 분야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재빠르게 알아차리고 그것을 가능하도록 부추기는 데 뛰어났다. 나는 잘 읽었고 잘 썼다. '나'를 읽고 세상의 필요를 읽고 그에 맞춘 콘텐츠를 만들고 표현하는 능력, 즉 리터러시 역량이 뛰어났다. 한마디로 나는 LQ가 남달랐다. 타고났다기보다는 미디어 현장에서 일하며 수십 년간 단련해온 시간이 이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LQ는 나의 핵심역량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내가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대기업에서 받은 퇴직금으로 쥐 경주를 끝내니 기념여행을 갔다. 돌아와서는 나를 위한 경주를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만큼,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는 나만의 트랙에 몸을 실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글쓰기'라는 재주를 다른 이를 고양시키는 도구로 활용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율리시즈처럼 오랜 방황 끝에 귀환한 것이다. 내 영역을 만들어가면서 그 방면으로 경쟁력을 발휘하며, 나만의 메세지를 만들고 주장하는 사람으로 자리 잡아갔다.

  두 번의 실패 끝에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돌아온 지 5년이 지났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을 위해 나 스스로 판을 깔고 공연하는 '독립군'이 되었다. 누구의 도움 없이도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 그러면서 누구든 자신이 중심에 있을 때라야 인생이 가장 빛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자신이 주도권을 잡는 삶을 살려면 어떤 경우든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기본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나름의 주장도 하게 되었다. 겨우 한숨 돌릴 즈음, 기요사키 선생을 또 만났다.

  이번에도 러버트 기요사키는 한 권을 책으로 허를 찔렀다. 이번엔 《부자 오빠 부자 동생》이란 제목이었다. 내가 몇 번의 도전과 실패를 경험하며 얻어낸, 스스로 주도권을 잡는 삶에 대한 통찰은 이 책에서 '자기계발'이란 말을 발견하면서 증폭되었다. 자기계발, 이 말 또한 하도 남발되어 그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책을 통해 기요사키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계발'이란 말이 원래 이토록 아름다운 말이었구나 싶었다.

  10년 전 그는 너 나 할 것 없이 책을 사게 만든 부자 전도사엿다. 그의 책대로 하기만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되어 원하는 삶을 살 터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여전히 부자가 아니었고, 행복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뭔가에 갈급해하고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렀다. 그의 눈에 그들은 더 심한 돈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그는 의심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럴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누이동생 에미였다. 에미는 오빠처럼 부자는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의 의심은 더해졌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돈이 아니라 영혼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영혼의 인도를 무시한 채 부를 추구해서는 절대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부란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가장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가장 자기답게 살고 있다면 그는 이미 누구도 흉내 낼수 없는 부자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다움을 찾기 위해, 자기답게 살기 위해 평생 공부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자기계발'이다. 그것은 내가 힘들게 경험한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책을 읽어가는데 눈앞이 환해졌다.

 

 

 

당신답게 살고 싶은 욕망, 자기계발

 

  기요사키 선생에게 받은 자극은 그동안 자기계발 시장에 대해 가졌던 의혹에 찬 궁금증까지 해결해주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퇴근 후와 점심시간과 주말과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자기계발서를 읽고 강연과 강좌, 스터디 모임에 매달리는 것일까? 그들의 자기계발이란 것이 취업시장에서 요구하는 대로 생각과 태도와 능력을 맞춰가는 일인가.? 또 그 일을 평생학습이라는 미명 아래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인가?

  이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자기계발이란 자신의 결핍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부단히 애쓰면서 외부(취업시장)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끊임없이 맞춰가려는 몸짓이 아니라, 비교도 경쟁도 모방도 불허하는 유일한 원형이 되는 것이라고, 가장 자기다움으로 하나의 오리진이 되기 위한 노력들이라고.

  그렇다면 자기계발의 완성은 어떤 경지일까?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떤 모습일 때 원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가 절대 원형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무엇을 기대하며 자기를 계발해야 하는 걸까. 내가 생각해낸 자기계발의 완성은 자신의 영역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으며 주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존재감과 생각으로 누군가의 삶이 바뀌는 단초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웃라이어outliers'로 사는 것이다. 어디서 어떤 삶을 살든 누군가에게 그가 원하는 변화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삶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자기계발이란 키워드를 새롭게 인식한 후 내가 공을 들인 것은 이 같은 맥락에 비춰 자기계발에 성공한 이들을 추적해, 그들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요인을 추출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원래의 타고난 자신으로 살면서 삶 자체가 누군가에게 변화의 이유가 되는 대단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들은 대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노력한 것일까? 물론 성공의 모습처럼 성공의 요인도 다양했다. 그러나 그리 어렵지 않게 그들 모두의 공통점이면서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그러면서도 그들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하나의 요인을 발견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LQ가 높았다. '읽고 쓰는 지능'쯤으로 해석되는 LQ는 자기계발에 성공한 이들이 지속적으로 진화된 성공을 창출하는 원인까지 명쾌하게 밝혀주었다. 내가 그러했듯 그들 또한 세상을 잘 읽어내고 그것이 가진 것의 의미를 통찰한 다음 자기만의 방법으로 재가공해 세상이 탐하는 것으로 내놓을 줄 아는 능력을 가졌던 것이다.

 

 

 

LQ로 가능한 것들

 

  내가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면서도, 숱한 강연이나 워크숍, 모임을 가지면서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커리어의 한 부분을 시시콜콜 공개한것은 지금 내가 누리는 호사-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그리고 만족스럽게 나의 길을 가는-가 가능한 것은 나 또한 다른 성공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LQ가 높았기 때문임을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그러므로 당신 또한 LQ를 향상한다면 당신이 바라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힌트를 선물하고 싶어서다. LQ를 바탕으로 잘 읽고 잘 생각하고 잘 표현함으로써 당신이 목표한 자기계발에 성공하고, 성공의 노하우를 주변에 전하며 사는 삶을 권하기 위해서다. 그리해 그동안 소수의 기득권자에게만 열려 있던 영향력이라는 힘을 당신도 가져보라고 권하기 위해서다.

  신비의 바닷물처럼 웹과 소셜 미디어라는 길이 열리면서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의 면면도 바뀌었다. 더 이상 통치자나 정치인 같은 특정인만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국가가 공인하는 전문가들만도 아니며, 대학에 적을 둔 지식인들만도 아니다. 그들이 독점했던 마이크는 이제 우리 모두를 향해 열렸다.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인터넷에든 책에든 메세지를 실어 내보낼 수 있고 그로 인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소셜 미디어를 통하면 당신에게 호응하는 그룹도 만들어낼 수 있다. 웹과 스마트폰을 근간으로 한 소셜 미디어가 실핏줄처럼 보급되어 있는 이 시대에 누군가가 당신이 올린 글을 읽고 기뻐하거나 울거나 분노하고 그로 인해 변화를 꿈꾸게 된다면 그만한 영향력이 어디 있으랴. 또 그만한 자기계발이 또 있으랴.

  아이팟 · 아이폰 · 아이패드 · 3연타석 홈런을 날린 스티브 잡스는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고 예술이나 디자인 교육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의 총수가 되었다. 이는 스티브 잡스의 LQ가 높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열악했어도 그는 LQ 하나로 그때그때 환경이 허락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다. 그리고 그것을 응용해 세상의 기준을 새롭게 세우는 위대한 것들을 만들어냈다.

  한비야 씨를 보자. 그녀는 일간신문 못지않은 '미디어'다. 그것도 언제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미디어다. 어떤 기성 미디어도 해내지 못한 일을 그녀는 한다. 그녀가 쓰는 책은 출간 족족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그녀가 소개하면 창고에서 오랜 시간 먼지를 덮어쓰고 있던 책들이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를 차지한다. 안철수 교수는 어떤가. 그는 단지 몇 권의 책을 썼을 뿐인데 그로부터 영향 받은 수많은 이들은 그를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자기만의 메시지를 담은 웹 사이트나 블로그, 혹은 한권의 책과 같은 자신만의 미디어를 가졌다는 것, 또 그러한 영향력을 집대성한 개인 브랜드를 가졌다는 것은 이처럼 대단한 유혹이며 권력이다. 당신의 미디어는 당신의 전설이며 신화다. 이러한 신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LQ다.

  제대로 발휘된 LQ는 누군가의 영혼에 불을 놓아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살게 만든다. 그의 웅크린 삶을 자극시켜 일으켜 세운다. 또 누군가를 분노하게 만들며 그 분노의 힘을 모아 어떤 권력으로도 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한다. 그러므로 LQ를 기반으로 누군가와 교감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나는 왜 LQ에 매료당했나

 

  내가 만 가지 성공을 가능하게 하는 유전자 LQ에 사로잡히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의 '깨달음' 덕분이었다. 나는 수년째 글쓰기 코칭을 해오고 있는데 그 현장에서 발견한 깨달음은 내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통찰과 거의 동시에 선물처럼 찾아왔다.

  나는 25년 가까이 '돈이 되는 글쓰기'로 밥벌이를 해왔고, 일의 성격상 많은 이들에게 글을 쓰게 했으며 수년 전부터는 글쓰기에 막막해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코칭을 해왔다. 온라인 · 오프란인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며 '책을 써라' '글부터 잘 써야 한다'를 외쳤다. 그와 동시에 인터넷, 전화, 워크숍, 강연 등 다양한 코칭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많은 이들에게 쓰기를 권하고 코칭하고 훈련시켰다.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대단했다.

  물꼬가 터진 듯, 학교나 기업은 물론 관공서, 기관, 단체, 심지어 일선 학교 선생님, 입시생, 승진시험 준비자, 공무원, 회계사, 변호사, 의사도 글쓰기 좀 배우자며 코칭을 청했다. 그 러브콜을 감당하는 것만도 벅찰 지경이었다. 나는 지치기 시작했다. 글을 잘 써보겠다고 덤비는 기세에 비해 그들의 실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코칭을 하면 할수록 잘 쓰기는커녕 잘 읽지도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조심스럽게 똬리를 틀었다.

  처음엔 그 의구심을 부정했다. 학교 교육은 차치하고라도 우리 사회에 일기 시작한 읽기 붐이 하루 이틀이 아닌데, 읽기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는 잘 쓰기를 욕심내는 사람은 적어도 읽기와 생각하기라는, 쓰기 전에 거쳐야 할 단계까지는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 많은 독서클럽, 독서경영, 블로그며 카페에 올리는 리뷰들…. 그래서 나는 쓰기를 욕심내는 이들은 읽다 읽다 지쳐서 이제는 써야지 하는 사람들인 줄 믿었다.

  결국 인정해야 했다. 한 편의 칼럼이든 한 쪽의 글이든 써내지 못하는 이유가 쓸 줄 몰라서가 아니라 읽을 줄 몰라서라는 사실을, 코칭 현장에서 나는 수없이 목격했다. 책을 읽기는 하지만 아이쇼핑하듯 건성으로 읽어댈 뿐이었다. 그러니 금방 책을 읽었다고 자랑하면서도 필요할 때 써먹지도 못하니 책 읽은 재미가 좀처럼 붙지 않는 악순환의 한가운데 서 있는 그들을.

  쓰기는 문제조차 안 되는 것이었다. 들을 줄 모르니 말할 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제야 나는 쓰기는 읽기에서 시작하고, 읽기는 쓰기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직시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쓰지 못하는 사람은 읽지 못하는 사람이고, 읽는 안목이 없는 사람이며, 읽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고, 그 결과 쓸 줄 모르는 사람이란 것이었다. 한마디로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쓰기만 못하는 게 아니라 LQ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잘 쓰기 위해선 읽기와 생각하기, 그리고 쓰기라는 각각의 모듈이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LQ를 높이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리터러시 능력과 그 지능 LQ에 대한 나의 탐구심은 폭발했다. 이 책은 그 결과에 대한 기록이다.

 

 

 

맺음말 epilogue

평생 현역으로 살고 싶다면 LQ를 향상하라

 

  20대 중반에 들어서며, 원고지에 펜 하나로 시작한 내 글밥 인생은 2벌식 타자기, 전동타자기, 워드프로세서, 컴퓨터를 거쳐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로 파트너를 바꾸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비결인즉 남다른 LQ 덕분이었음을 전제로 이 책에서, 당신 또한 지금 그 자리에 머물든 떠나든 평생 현역으로 살고 싶다면 LQ를 높여야 한다는 메세지를 완성했다. 성공적인 삶을 꾸려온 많은 이들의 사례를 근거로 읽고 쓰고 생각하기로 집약되는 리터러시 역량은 자기계발의 핵심이며, 자기계발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은 언제든 어디서든 삶의 주도권을 행사하며 살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이 글을 마마무리하는 지금 나는 마흔일곱 살이다. 내 나이 또래의 남자들조타 비즈니스 필드라는 무대를 내려가 사라지는 시기이지만 여전히 나는 열정을 뿜어대며 성과를 창출하는 팔팔한 현역이다. 10여 년 전에는 그 시절이 내 비지니스 인생의 절정기라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만삭의 몸으로 취재 현장을 달려가고, 아이 낳으러 병원에 가기 전날까지 야근하는 극성으로 점철했다. 그러면서도 그땐 고용주의 돈벌이를 돕느라 급급했었다. 하지만 그 무렵보다 더 적게 일하면서, 그때와 달리 하고 싶은 일을 가려서 하고, 그러면서도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풍요롭다. 일에 치여 헉헉거리지도 않는다. 일주일에 이틀, 많으면 사흘의 비즈니스데이를 정해두고 그 시간에만 일한다. 그야말로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놀고 쉬며, 읽고 쓰고 산책하고 운동하기를 일상적으로 하면서 가족과도 많은 시간을 지낸다. 아이가 방학을 하면 나도 일방학을 선언하고 함께 체험학습을 떠난다. 무엇보다 지금 나는 내 모든 시간과 열정으로 내 돈벌이를 돕고 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참 좋다. 남다른 전문 능력과 성과를 가지고도 끙끙대는 이들을 들쑤셔 글을 쓰게 하고 책을 쓰게 함으로써 단번에 브랜드파워를 확보하게 하는,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이의 밥벌이를 돕는 일이라서 참 좋다. 제주며 강진, 해운대 등 영감을 주는 장소를 골라 책 쓰고 글 쓰는 캠프를 하며, 나 자신과 그들의 영감을 일깨울 수 있어 좋다. 우리나라의 노벨상을 내 손으로 만들어낼지 누가 알겠느냐를 너스레를 토하며 하루를 몽땅 들여 대전 카이스트에 출강하는 것도, 단 한 명이라도 자극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참 좋다. 시키는 사람, 지키는 사람 없어도 매일 새벽이면 글을 쓰고 그 결과로 1년에 두어 권씩 책이 나온다. 책을 내면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코칭을 받겠다는 요청이 부쩍 는다. 꾸준히 책을 내며 이 분야의 브랜드파워를 확보한 덕분에 판매며 마케팅을 몰라도 내 비즈니스는 나날이 좋아진다. 내 컴퓨터가 놓인 작업실은 문학도를 꿈꾸면서도 피해 가려 했던 어둡고 침침한 냄새나는 골방이 더 이상 아니다. 그곳은 이제 세상 어떤 곳보다 찬란한 '황홀한 글감옥'이다. 책을 쓰는 나 자신이나 읽는 독자에게 꽃가루와 꿀을 가져다주는 달콤한 감옥이다. 조정래의《황홀한 글감옥》에서 따옴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참 좋다. 누구로부터 구애받지 않는 프리랜서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서 더욱 좋다. 은퇴란 말이 통하지 않는 분야라서 더더욱 좋다. 내가 원하지 않는 한, 아무도 나를 해고할 수 없다. 물론 누구도 나를 고용할 수도 없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내가 싫다면 그뿐이다. 누군가가 내 능력을 원한다면 내가 제시하는 값을 치르고 프로젝트를 맡기면 된다. 이것이 지금 내가 사는 방식이며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살 것이다. 죽는 날까지 나는 현역으로 살 것이다.

  내가 이러한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LQ를 벼린 덕분이다. LQ는 내가 가장 빛날 수 있는 나의 재능이자 나를 나답게 살게 하는 버팀목이며 필살기다. 하지만 다른 이보다 탁월한 LQ를 타고났기 때문은 분명 아니다. 그랬더라면 학창 시절 그 흔한 백일장 입상 한 번 못했을까. 다만 어릴 때부터 그것을 즐겼고 의도적으로 훈련해와 그 역량을 키웠기 때문이다.

  당신도 많은 다른 성공한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나처럼 하루라도 빨리 LQ를 계발하기 바란다. 세상이든 텍스트든 잘 읽고, 잘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뛰어나게 표현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을 하든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당신이 LQ를 높인다면 일하는 내내 뒤지지 않고 당신의 능력을 뽐낼 수 있다. 그런 뒤에, 당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퇴직을 결정할 수 있고, 바로 다음날부터 그간의 경험을 전문지식으로 개발해 팔고, 컨설팅하고, 강의하고, 책도 쓰는 정보사업가로 다시 설 수 있다. 세상이 어떻게 전개되든 당신의 능력으로 당신의 삶을 주도하고 다른 이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살게 된다. 물론, 죽는 날까지 현역으로 살 수도 있다. 당신의 LQ를 드높인다면 말이다.

  나는 틈만 나면 알피니스트 김홍빈 선생에게 책을 쓰라고 졸라댄다. 그는 손가락 열 개를 매킨리 봉에 바친 산악인이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산을 오를 때만 존재감을 느끼는 그에게, 그 기막힌 삶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독수리타법으로라도 써낸다면 책이 팔려나갈 것이고, 또 특강 요청이 쇄도한다면 후원금이 아니라도 그토록 좋아하는 산행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한 해에도 몇 번씩 등정을 떠나는 그에게 후원금보다 더 필요한 것이 헬렌 켈러처럼 '쓰며 사는' 삶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LQ를 향상하고 책 쓰는 기술을 체득한다면, 더 이상 산을 오를 수 없게 되는 그날이 오더라도 다른 이들의 등정을 돕는 알피니스트로서의 삶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햄릿의 말대로 인생은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한 삶을 사는 동안 어떤 불확실함이 매복되어 있다가 당신을 덮칠는지 모른다. 어떤 통계 불가능한 것이 기습 공격을 할는지 알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상황을 읽어내고 거뜬히 문제를 해결하도록 LQ를 기르자. 고대 그리스인들은 미래가 등 뒤에서 다가오는 무엇이라고 인식했다 한다. 미래가 눈앞에서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던 당신이라면 이제 그들처럼 어떤 미래가 등 뒤에서 나를 향해 달려들더라도 거뜬히 살아낼 수 있는 준비를 해두어야 할 것이다. 읽고 생각하고 쓰자. LQ를 높이자.

  이 책을 읽은 당신의 눈앞에 기회의 창이 활짝 열려 있다. LQ를 계발하자는 이 기회의 손길을 받아들여라. 그리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자. 다른 꿈을 꾸고 그 꿈의 버전에 맞춰 다르게 읽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식으로 표현하며 살자. 세상은 벼리는 자의 것이고 그렇게 벼리는 한 당신은 당신이 가장 빛나는 삶을 원하는 대로 살수 있다. 당신의 골든 에이지, 당신이 주인이 되는 빛나는 2차 인생을 당신 손으로 쓰라. 나도 돕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