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

행복한 생태귀농을...

오키Oki 2010. 12. 15. 17:59

 

 

 

생태귀농을 꿈꾸는 벗들에게 들려주는 생명 이야기

-  서정홍 산문집 『농부시인의 행복론』中에서 -

 

 

사람 관계를 잘 풀어 나가야 합니다.

농사일이야 스스로 조절하여 몸을 보살피면 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은 스스로 조절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 신이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면 몸이 상합니다. 몸과 마음이 상하면 농촌이고 도시고 아무데서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귀농하여 마을을 위해 좋은 일을 백 번 천 번 했다 하더라도 한두 번 잘 못하면 이런 말이 오래도록 따라다니는 게 농촌입니다. "저런, 그러면 그렇지. 객지서 온 놈들은 어쩔 수 없어", "버릇없는 놈들, 도시에서는 저렇게 가르치나." 그 소문은 이웃 마을뿐만 아니라, 그 다음날이면 면사무소까지 퍼져 나갑니다.

이웃들이 생산한 물품을 팔아주거나, 농사일을 거둘어줄 때도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누군 도와주고 누군 도와주지 않으면 결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웃이 찾아와서 다른 이웃을 험담할 때는 절대 맞장구를 쳐서는 안 됩니다. 맞장구를 치면 몇 시간 뒤에 바로 그 사람귀에 들어갑니다. 슬쩍 마음을 떠보거나 농담 삼아 남의 욕을 하는 척했을 뿐인데, 그걸 진짜로 알고 맞장구를 치면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럴 때는  가만히 듣고만 있는 게 가장 슬기로운 방법입니다. 농촌 마을은 한 집 건너 친척들이니,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남의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남한테 욕을 해서 돌아오는 것은 욕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다르다'는 말과 '틀리다'는 말을 생각 없이 쉽게 씁니다. '다르다'는 말을 '같지 않다'는 뜻이고 '틀리다'는 말은 '맞지 않다', '정답이 아니다', '옳지 않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다르다고 말해야 하는데도 틀리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릅니다. 천성도 다르고 핏줄도 다릅니다. 성장 과정도 다르고 주위 환경도 다릅니다. 부모도 다릅니다. 똑같은 어미 뱃속에서 나온 자식들도 다릅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도 다릅니다.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말은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르다는 말은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집 작은아들 녀석은 몸을 움직이는 일에 관심이 많고, 큰아들 녀석은 철학과 문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녀석들이 만나기만 하면 밤새 웃고 떠들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걸 보면 신비스럽습니다. 아, 다르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싶습니다.

아내와 나도 25년을 한 방에서 살았는데도 다릅니다. 우리는 만나기 전부터 달랐고 지금도 다릅니다. 나는 돈벌이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죽었다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이렇게 자연 속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게 꿈입니다. 아내는 가난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아직까지 농사짓는 즐거움이 반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는 까닭으로 서로 미워하거나 방해하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서로 좋아서 만난 사람들이 왜 두 번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헤어져야하고, 왜 자식까지 버리며 원수처럼 등을 돌려야 하는지요. 오랜 세월 정을 쌓은 동무끼리 또는 이웃끼리 왜 작은 실수와 잘못을 서로 끌어안지 못하고 서로 원망하며 돌아서야 하는지요. 다른 이들의 실수와 잘못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기의 잘못과 실수가 훤히 보이는 것을 어찌 보지 못한 단 말인지요.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다르다'는 것을 '틀리다'고 여기기 때문은 아닌지요.

다르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생겼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나무도 꽃도 풀도 돌도 이 세상에는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한평생 살다보면 온갖 일이 다 일어납니다.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습니다. 문제가 없었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자리를 잃고 밥을 굶기도 하고 , 병이 들어 자리에 눕기도 하고, 보증을 잘못 서서 빚더미에 앉기도 하고, 별것도 아닌 일로 마음이 안 맞아 다투기도 하면서 세월은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도와가며 살아야 합니다. 저마다 조금은 다른 뜻을 품고 농촌에 들어온 사람들끼리 서로 질투하고 '피해의식'에 젖어 등을 돌리고 사는 모습을 가끔 봅니다. 마을 사람들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사람이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서야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르다는 것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갈라져서도 안 되고, 가정이 무너져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합니다. 다르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세상 무엇보다 아름답습니다.

    

 

■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나 귀농한 선후배라도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은 너무 멀리 지내는 것보다 못합니다. 사람과 사람은 조금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오래갈 수 있습니다. 사람한테 사랑을 베풀 때는 아무 조건이 없어야 참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정도 했으면 저 사람은 이 정도쯤은 해주겠지', 이런 생각은 자기에게 스스로 상처를 남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냥' 베풀면 되는 것입니다. 베푼 게 되돌아오면 기쁜 마음으로 그저 받으면 되는 것이지요. 그게 참사랑의 마음입니다.

가끔 간이고 쓸개고 다 떼어 줄 것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조금만 들지 않으면 쉽게 실망하고 찿아오지도 않습니다. 참 복잡한 게 사람 마음이고 사람 관계입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가끔 흔들리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흔들리는 그 사이로 깊은 정이 든다는 걸 농사짓고 살다 보면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꽃이 아름다운 만큼 사람도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만 있으면 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못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적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우물을 온통 흐려 놓을 수도 있으니까요. 마을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남의 욕 잘하고, 자기 것만 아는 사람이 꼭 한두 사람은 있습니다. 우리를 시험하기 위함이라 여기고 고맙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면 모든 것이 마음먹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 농사 시간을 스스로 정해야 합니다.

일중독은 마야중독보다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니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해 두어야 합니다. 일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밥 먹을 때를 놓칠 수도 있고, 밭에 쪼그려 앉아 같은 동작으로 너무 오래 일을 하다 보면 몸을 다치기 쉽습니다. 마음이 여유롭고 자유롭게 그리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려고 농촌으로 들어왔지, 죽어라 일만 하려고 들어온 것은 아닙니다. 생각보다 농사일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는 단순 노동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꼭 작업 시간을 자기 몸에 알맞게 정해야 합니다. 더구나 귀농 첫해는 절대 무리하게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처음부터 일에 치여 버리면 '내가 이렇게 살려고 농촌에 들어왔나'하고 스스로 지치게 되니까요.

사람도 태어나 서너 살은 되어야 비틀거리지 않고 걸을 수 있습니다. 귀농하고 한두 해는, 한두 살이라 생각하고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해입니다. 계획도 없이 농사일을 많이 늘리면 정착하기도 전에 일이 무서워집니다. 잠시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 일어날 것처럼 서두는 것이 바로 '일중독'입니다.

농촌 마을에는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도록 일하는 사람, 무릎이 망가지도록 쪼그리고 앉아 풀을 매는 사람, 어깨가 아프도록 괭이질을 하는 사람, 비를 쭈룩쭈룩 맞고 일하다가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 그래서 마침내 깊은 병이 들어 농사일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세상을 이끌어 가는 바른 생각은 한가할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누가 농사일을 많이 하나? 누가 수확을 많이 하나? 누가 돈을 많이 모으나? 이 따위는 살아가는 데 정신만 어지럽힐 뿐입니다. 우리는 다만 얼마나 건강한 몸으로,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하느냐를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도 꽃은 피고 나무는 자랍니다. 내가 아니면 세상 만물이 다 죽을 것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다만 일하기 위해 삽니다. 편안하기 위해서 일한다는 걸 알지 못합니다.

 

 

■ 농사 규모를 함부로 늘려서는 안 됩니다.

저는 논밭을 모두 빌려서 농사를 짓습니다. 제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젊기 때문에 나이든 이웃 농민들이 공짜로 지어먹으라고 내놓는 논밭이 날이 갈수록 많습니다. 무턱대고 그 땅을 받았다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귀한 땅을 빌려 주었더니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한다는 핀잔을 들어야 합니다. 공짜, 좋아하면 큰일 납니다. 공짜로 지어먹으라고 주는 논밭을 깊은 생각도 없이 덜컥 받았다가 골병든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부리지 않고 기분 좋게 농사지을 수 있는 규모가 딱 알맞은 규모입니다.

 

 

■ 주위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농기구뿐만 아니라 집 안 구석구석 정리정돈을 잘해야 합니다. 어느때, 누가 와서 보더라도 농촌은 참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농촌, 생각만 하면 농약냄새와 지독한 똥냄새, 파리와 모기, 어지러운 마당, 지저분한 방과 부엌 - 이래서 되겠습니까? 농촌, 생각만 하면 맑은 물, 깨끗한 공기. 푸른 숲, 깔끔한 방과 부엌, 사철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마당,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과일, 작지만 밥상 차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텃밭, 정돈된 농기구 - 생각만 해도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그래야 그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농사지으며 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작지만 아름다운 손길이 큰 희망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 돈을 무리하게 빌려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싼 이자라 하더라도 무리하게 돈을 빌려 쓰면 낭패를 당합니다.

차라리 한 끼 굶고 살더라도 마음 편하게 사는 게 낫습니다. 농사는 사람이 하는 일보다 하늘이 하는 일이 더 많은 것인데. 사람이 욕심이 앞서서 일을 크게 벌이다 보면 자기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흉년이 들거나 실패를 하여 빚을 갚을 길이 없어지면 자살을 하거나, 밤에 아무도 몰래 도망을 가기도 합니다. 때론 술에 빠져 살거나, 다시 도시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이지요.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넉넉한 경험과 기술이 없으면 실패하기 쉬운게 농사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 많은 경험과 정성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아기도 자주 안아 본 사람이 잘 안을 수 있듯이 말입니다.

꿈은 늘 소박하게 꾸어야 합니다. 하늘을 믿과 겸손하게 농사지으며 한 3년 살다 보면 자급자족은 할 수 있겠지요. 이런 마음으로 살다 보면 하늘도 감동하여 길을 열어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