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인생고비도 삶의 약이다.
우리는 삶에서 아무런 고비없이
그냥 삶이 평탄 했으면 좋겠다고 많이들 생각한다.
그러나 말처럼 삶이 그리 순탄치는 않다.
우리 신랑에게도 인생고비가 있었다.
남들보다 이르게 ㅋㅋ
얘길 해달라고 했더니
군복무시절에 두번이나 있었다고 했다.
하나.
한 겨울에 운전병의 실수로 트럭이 논에 전복했는데
뒷칸에서 편안하게 앉았던 고참들은 병원에 실려갔고
졸병인 신랑은 서 있었던 탓에 빨리 빠져나와 별탈이 없었단다.
둘.
기갑병으로 장갑차를 몰던 때에
졸병이 장갑차 탱크연료를 청소하다가 실수를 하여 불이 났는데
당시 신랑은 출입구에 몸을 반쯤 내놓고 책을 보다가
불길을 피하기위해 바로 몸이빠져 나와서는
급하게 불을 다 끈후에야 다리에 화상을 입은 줄 알고
두달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고 했다.
불을 낸 졸병은 온몸에 화상을 입어 서울로 수송되어
1년이 넘도록 병원생활로 고생하여 다행히
천신만고 끝에 회복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6월 25일의 아침햇살
아침햇살의 조화로움
비둘기 한쌍이 한 시간이 넘도록 전깃줄에 앉아 미동도 않는데
아침햇살에 우리부부와 누가 더 오래버티나 내기하는 것 같다.
민들레 홑씨는 아침햇살 받으며 여행 다녔다.
된장(쌈장)에 푹 찍어 먹느라 이젠 풋고추도 날마다 딴다.
노란벌레들이 연한 머루잎에 그림을 그린다.
햇살 가득 받고 커는 배
울집의 기계농사기구인 예취기 한대가
10년이나 사용했더니 24일은 산에서
예취기로 풀깍기 작업도중 멜빵끈이 떨어져
작업을 반쯤해놓고 왔던 적이 있었다.
25일 새벽 5시반부터 바깥은 훤하여
녹차를 마시면서 해맞이를 하는데
예취기 작업을 하러 산으로 갈 신랑을 위해
아침햇살 받으며 멜빵끈을 기웠다.
울신랑은 결혼후에도 인생고비가 있었는데
첫 임신 7개월때 어정쩡한 걸음으로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회사에서 직장동료를 도울려다 조금 다쳤다며
당분간 집을 비울지도 모르니 보따리를 꾸리라고 했다.
회사동료 두 사람이 집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어
어디가 다쳤는지 제대로 이야길 안해주니 궁금했지만
부산까지 대절해가는 택시안에서도 분위기가 무거웠는데
남편이 다치고 한시간이나 모르고 있다가
소변에 피가 섞여나오는 것을 보고
큰일이다 싶어 큰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임신중인 각시가 놀랠까 싶어
부산에 도착할때까지 숨기느라 애썼다.
요도관이 파열되어 상처가 잘 아물지 못하면
수술 할 수도 있다는 말에 걱정하며
부산에서 두달간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도 있었고
큰딸 6살에는 교통사고로 두달 입원하기도 했었다.
그런 시련들을 달게 받아 이겨내면서
남편 스스로 삶의 의미를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지금의 인생살이에 지난 시련들이
정신적으로 큰 버팀목이 되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임신한 배가 크게 불러와도 병 간호를 해야했고
6살 4살된 두딸을 데리고 다니면서 병간호를 해야했다.
병원생활은 아픈 당사자도 힘들고 환자를 간호해주는 당사자도 힘들다.
남편은 직장생활을 할 적에 자신이
?라는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월급 받으면
?의 아파트를 구입하고
?의 백화점에서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다 나르고
?의 병원을 찾아가고
?의 영안실을 이용하다가 장례치뤄진다는
생각을 한 번 해보니까 아찔하더란다.
이왕이면 좋을 때 떠나자고 마음먹고 기회를 보다가
경제위기때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받길래 사표를 썼다.
막상 사표를 써고서도 선뜻 제출하기가 힘들어
여러날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집에서 각시가 확인 전화를 해오는데
오늘 사표냈어요?
아니
오늘은 사표냈어요?
아니
오늘은 사표냈어요?
응
알았습니당^^
6월 어느 날
축처진 어깨로 집에 퇴근해 온 남편을 위해
작은 케잌을 준비해 놓고
초등 3학년과 초등 1학년인 두딸과 축하를 해주었다.
결혼전 2년 근무와 결혼후 10년 근무를 성실히 해준
남편과 아빠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아빠의 후~~~ 입김에 촛불이 끄지니
와~~ 와~~~짝 짝 짝
우리는 대개 겉으로 드러난
팔, 다리등 흔히 사지가 아플 땐 잘 쉬어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으로 감춰진
우리 몸속의 장기학대를 하지 않기위해
혀와 입을 다스리는 일이 쉽고도 힘들다.
울 부부는 아침을 녹차로 대신하여도
힘이 없어서 일 못하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데
가족중에 되도록이면 입원하는
사태를 만들기 않기위해 현재까지 노력하는 중이다.
몸을 위해 먹는 것과 협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건강이 더 중요한 것을 깨닫고
탈 도시를 시도했던 것이다.
탈도시 12년의 신랑은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산에서 돌아왔는데 씻을 생각도 않고
개울가에서 돌을 찾아들고와 툭툭툭 돌을 깨트린다.
6월의 끝자락만 다가오면 돌을 만지고 싶어지니
돌을 만지면 피로도 모르고 돌에 푹 빠진다.
몸 씻고 점심 먹자고 독촉을 몇번이나 하고나서야 배고픔을 느낀다.
점심 식후 달콤한 낮잠을 취한 후 달려가는 곳이 역시나...
구상한대로 잘 되었는지 마무리를 짓는데
완전한 마무리는 흙이 묻은 돌 하나라도 씻어내야 끝이난다.
자두나무가 개울가에 한 그루 있는데
가뭄을 몹시 탔던 자두나무가 올해는 달랑 한 개만 우리식구에게 안겨주었다.
큰딸도 하늘대왕구인 제 동생이 먹고 수능화이팅 하란다.
항아리속을 닦아낼려고 넘어 뜨렸더니 축축한 자리엔 집게벌레가 살고 있었다.
집게벌레들이 조용히 숨어지내던 장소가 들켜 버리고
갑자기 눈부신 하늘이 보이자 허둥지둥이다.
28일 돌 틈사이로 호박줄기가 넘어왔다.
넘어간 호박줄기를 헤쳐보니 주먹만한 호박 하나가 달려 있어
아기호박 한 개를시작으로 7월부턴 매끼마다 풋호박을 먹을 것이다.
7월의 태양을 기다리는 토마토
상추꽃대를 꼭 붙들고 버티는 벌
벌!! 오늘 밤에 장맛비가 많이 내릴거라는 소식을 접했구나?
6월의 마지막 휴일의 자정이 지나자 일주일동안 소강상태였던
장맛비가 시작되어 평안하게 6월을 마무리 짓으며
나무가 쑥쑥 커가는 7월을 맞을 수 있겠다.